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인, 4월 11일에, “구리시평화의소녀상시민건립추진위원회(상임대표 허득천)”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에 한통의 전화가 왔었다. ‘장자초 6 최여민’ 학생의 어머님인데, 상임대표를 만나고자 한다고…
이유는 이랬다. “본인은 남양주시 학교 교사인데 , 자녀가 ‘소녀상’에 무척 관심이 있어 애를 태우던 중 본지가 ‘평화의 소녀상 건립운동’을 하는 소식을 듣고서 자녀와의 만남을 어머님께서 주선을 요청하면 안되냐?”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어렵사리 장자못 공원의 ‘맥도날드”에서 만났다.
본인은 “장자초 6학년 최여민”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첫인상이 매우 뚜렷한 인상, 보통이 아니라는 느낌…등의 마음으로 인터뷰를 했다. “구리시에 소녀상의 건립이 필요한데, 어머님께 여쭈어 봐도 신통한 답이 없어, 살고 있는 삼성아파트 게시판에도, 시청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자신의 글을 써서 시민들과 아파트 주민들에게 호소를 하였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시청에서 ‘뉴스아이신문’을 소개받게 되었다고 했다. 본지 발행인도 초등학교 학생이 보여 주는 자료에 놀라 입이 쩍!하고 벌어졌던 것이 기억이 난다. 본인이 “장자초등학교 측에 허락을 받아 6학년 전체 학생들의 건립 서명을 직접 받았다”며 그 자료를 보여 주었다.
“장차 꿈이 정치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소녀상 건립’ 홍보 운동이 이루어지면 친구들과 동참하겠다”고 했다.
최여민 학생은 “제가 ‘제 17회 구리시 유채꽃 축제’에 ‘소녀상 건립’ 홍보물을 나누어 주는데 참여해서 도와드려도 되느냐?”고 하였다. 그 순간, 얼마나 대견했던지 …발행인은 흐뭇한 마음으로 그 제의에 응했다. 하지만, 그날은 ‘유채꽃’ 축제 기간 중 너무 많은 바람과 비와 번개까지 치는 기상악화에 오전, 오후내내 힘들었지만 친구, 대학생 언니, 어머님,자원봉사자 김은미씨,방옥남씨, 그리고 발행인과 함께 홍보물 배부를 진행하였었다.
이제는 ‘소녀상건립추진위’에서는 특히, ‘장자초교’에도 정식으로 ‘소녀상 건립을 위한 서명 및 모금운동의 참여 공문’도 발송하였고, 자발적인 모금활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전 시민을 대상으로 가입이 활성화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조금 지난 내용이지만, 우리 구리시에도 “위안부할머님들을 위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의 선한 뜻과 개념이 있는 초등학교 학생”도 있다는 점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며, 비로소 발행인이 가진 마음의 빚을 갚는 느낌이다.
“구리시 평화의 소녀상”은 건립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최여민 학생’도 성장해서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그런 “개념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 날이 되면 발행인 역시 한 시민으로서 순수한 정치인의 그 혜택(?)을 받고 싶은 생각 간절하다. 최여민 학생과의 기사 게재 약속을 늦게라도 지키면서, 구리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자랑스럽고 고마움을 표한다.
소녀상 건립이 되면 ‘최여민’ 어린이 같은 숨은 노력들의 결과로 만들어졌다고…
끝으로, 6월 20 일, “구리시평화의소녀상건립시민추진위원회” 통장계좌에는 ‘최여민’의 이름으로 50 만원의 성금도 말없이 보내어졌음도 알린다.
■ 구리시청 참여게시판(2017.4.6.) 원문 ■
안녕하세요? 저는 구리시 장자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학생입니다.
여러분 소녀상 아시죠? 소녀상은 1998년 8월에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알리며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세워졌습니다. 서울 나눔의 집에 처음 세워진 이후 현재는 전국 곳곳에 소녀상이 세워져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구리시에는 소녀상이 없습니다.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조금 늦어지는 것도 있겠지만 우리가 구리시를 고구려의 기상, 태극기의 도시라고 부른다면 소녀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전국 모든 지역에 소녀상은 세워져야 합니다. 또한 이 문제 만큼은 진보와 보수, 니 편, 내 편 가리지 않고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올리는 현재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제가 사는 아파트에도 이와 관련된 글을 붙였고, 저희 학교 학생들에게도 서명을 받는 운동을 하는 등 앞으로도 더 다양한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여러분 이 일에 부담가지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할 수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많은 소녀상도 모두 민간인이 주도하여 세워졌습니다. 우리라고 못할게 있겠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엄마가 그러시더군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문제에 관심은 있지만 직접 나서기는 어려워서 주저한다고요. 여러분 이 문제가 어렵다고 피해도 되는 겁니까? 우리가 피하면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해결 될까요? 천년 만년이 지나도 우리의 후손들에게 골치 아픈 문제가 될 것이고 일본의 뜻대로 하게 해주는 겁니다. 또한 할머니들의 슬픔과 아픔이 우리의 어려움과 비교될까요? 그렇다면 그 분들의 슬픔과 아픔은 대체 어떻게 포기해야 할까요? 피하지 마십시오. 그분들의 아픔을 정부가 감싸줘야 하는건데 그렇지 못하니 어떡합니까. 우리가 위로해 드려야죠.
저도 일을 저질러 놓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서 멘붕이 온 적도 있고 막막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피해서는 안 되니까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우리가 하는 것 뿐이다고요. 그렇게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반성했습니다.
제 꿈은 정치인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본을 보며 할 수 있는 욕은 다 해보고, 해결되길 바랬지만 정작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아니, 찾아보지 않았고 행동으로 실천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나 인권문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나라가 해결해야 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분들이 살아계시니까.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피하면 안 됩니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함께 해주세요.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또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고 어렵겠지만 많은 분들이 같이 해주실거라고 믿으니까요. 많이 많이 함께 해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초등학생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용기내 주세요.
함께 해주실 분들은 runningcat79@naver.com로 연락해주세요.
어느 때나 환영합니다~~
출처:구리시청 홈페이지
기사작성 허득천 편집발행인(truepen8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