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심각성>
6.3지방선거가 종료된지 2주가 지났음에도 뒤 끝이 개운하지 않은 것은 국민 모두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 감정의 표출이 2030세대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많은 국민들에게 깊은 충격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자랑하고 정보통신기술 강국으로 평가받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그런데 그 꽃을 피우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등 극심한 혼란을 초래한 상황은 국가적 수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선거 때마다 선거관리의 부실 논란은 반복되어 왔다. 사전투표 관리 문제, 선거사무 운영 문제, 각종 행정 착오와 혼선 등이 끊임없이 지적되었지만 근본적인 혁신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제는 단순한 사과나 재발방지 대책 수준을 넘어 선거관리위원회의 시스템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조직문화, 인사제도, 업무 프로세스까지 전면적인 혁신이 요구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정권은 단순한 권리가 아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주권 행사의 수단이다. 자신의 의사를 국가 운영에 반영할 수 있는 신성한 권리이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가치이다. 이러한 핵심 가치가 설마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하여 침탈을 당하다니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비유를 들어보자. 고3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러갔는데 시험지가 부족하여 수백 수천명이 시험을 못보는 사태가 벌어졌다면 수험생은 물론 3년간 수험 뒷바라지를 해 온 부모들의 심정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그 학생의 청춘과 미래를 누가 보상할 수 있겠는가.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들의 심정 또한 다르지 않다. 참정권을 박탈당한 상실감은 결코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번 사태가 선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훼손했다는 사실이다. 선거의 공정성은 실제 공정성뿐 아니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과정에 의해 유지된다. 기본적인 준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각종 의혹과 불신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부정선거 여부와는 별개로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선거 시스템이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가”라는 깊은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이제 선거관리위원회는 환골탈태 수준의 개혁에 나서야 한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은 결코 무소불위의 기관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기관인 만큼 국민의 엄중한 감시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그동안 제기되어 온 인사 운영과 조직 관리에 대한 각종 의혹도 투명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공정과 투명성을 생명으로 하는 선거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라면 어떤 기관보다도 엄격한 인사 원칙과 책임 행정을 실천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 역시 이번 사태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철저한 국정조사와 감사, 필요하다면 특별검사 도입까지 포함한 객관적 진상규명을 통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했는지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제도를 고칠 것은 확실히 고쳐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한 표에서 시작된다. 그 한 표를 행사할 기회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행정 실수로 덮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선거제도의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기사작성 김기복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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