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군에는 6.25 한국전쟁당시 호국영령들의 숨결이 깃는 역사의 현장이 많다. 호국·안보·교육장으로 안성맞춤이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한지 70년이 되는 해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자꾸만 잊어버리고 낯설게 느껴진다.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지금은 서로 무기를 내려놓고 잠시 중단한 정전상태로 한국전쟁당시 적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킨 별처럼 많은 영웅들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시한번 돼 새기며 이들이 잠든 전적비를 소개해본다.
▲ 영연방참전기념비(가평읍 읍내리)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4개국 장병들이 정의의 십자군으로 한국 땅에 파견되어 성난 파도와 같이 밀어닥치는 공산적과 치열한 격전을 치러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전공을 기린 영웅적인 용사들에게 바치는 기념탑이다.
2천 777㎡의 부지에 12m높이를 가진 초대형 석조물로 1967년 9월 유엔한국참전국협회와 가평군이 건립했다. 매년 4월 마지막 주중에 영연방 4개국 대사와 참전용사가 참여해 기념행사를 갖는다.
▲ 가평지구 전투전적비(가평읍 읍내리)
1951년 1월부터 2월 25일까지 우리군 제5사단, 제6사단이 미군9군단과 함께 중공군 제39군, 제40군 및 괴뢰10사단을 맞아 격렬한 전투를 벌여 가평지구를 사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58년 3월에 건립됐다.
이 전투는 아군의 전세를 유리하게 전개하는데 기여한 전투로 일명 늪산(148m) 정상에 위치해 있다. 정상에 오르면 1천년을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과 자라섬, 남이섬, 가평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 용문산전투 가평지구 전적비(설악면 천안리)
6.25한국전쟁사상 국군 최대의 전과를 올리고 사주방어의 신화를 창조한 용문산대첩을 기념하는 전적비다.
이 전투는 휴전을 거부하던 적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휴전을 제의하지 않으면 안될 6.25전쟁의 명암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또한 전선을 현재의 휴전선상으로 북상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조성한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1997년 6월에 건립됐다.
용문산전투는 1951년 5월17일부터 21일까지 6사단 용문산연대 전 장병이 결사항전에 돌입해 중공군 제63군 예하 3개 사단(2만여 명)을 격멸한 전투로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교범에 사주방어의 성공사례로 기록되어있다.
▲ 캐나다군 참전기념비(북면 이곡1리)
6.25 당시유엔군의 일원으로 파병된 캐나다군의 가평지구전투(1951. 4. 24~4. 25)를 기념하여 1975년11월에 건립됐다.
참전국가중 다섯 번째에 달하는 많은 병력을 파견한 캐나다는 52년 4월 가평전투에서 중공군 20군 예하부대와 치열한 격전을 벌여 677고지를 사수함으로서 중공군이 춘계공세를 가평 북쪽에서 차단하는 전과를 올렸다.
1,650㎡의 부지에 6.5m 높이의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 호주, 뉴질랜드 전투기념비(북면 목동리)
호주군과 뉴질랜드 군이 합동으로 북면 목동리에서 적과 대치하며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며 인명피해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히 싸워 적을 무찌르고 승리한 전적을 기념하기 위해 1963년 4월에 건립됐다.
캐나다군 및 호주, 뉴질랜드 기념비는 청정지역인 북면의 중심 주변에 위치해 산자수려한 자연환경에 흠뻑 취해볼 수 있다.
▲ 미국참전 기념비(북면 이곡리)
2016년에 세워진 한국전쟁 미군참전 기념비는 미국 성조기 모양의 주탑과 프랭크 데일리 중령의 통솔아래 중공군을 대파한 미 213 야전 포병대대 전공을 기리는 기념동상과 2사단·40사단 표지석, 그리고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Freedom Is Not Free)’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석 등으로 구성됐다.
1951년 5월 26일 미 40사단 예하 213 야전 포병대대는 북면에서 단 한명의 피해도 없이 400여 명의 중공군을 물리쳐 지금도 ‘가평의 기적’으로 불린다.
기사작성 백정우 국장(295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