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211. 손인호〈남원 땅에 잠들었네, 〈청춘 등대〉(2025.04.14.)
다가오는 19일은 4.19혁명이 일어난 지 65주년이 되는 날로 당시 17세 고(故) 김주열 열사를 기리는〈남원 땅에 잠들었네〉를 비롯 가수 손인호님이 부르신〈나는 울었네〉〈동백꽃 일기〉〈청춘 등대〉〈돌아가자 남해 고향〉5곡에 대한 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남원 땅에 잠들었네〉– 차경철 작사, 한복남 작곡, 손인호(1960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원통하게 죽었구나 억울하게 죽었구나 / 몸부림친 3.15는 그 누가 만들었나 /
마산 시민 흥분되어 총칼 앞에 싸울 적에 / 학도 겨레 장하도다 잊지 못할 김주열 /
무궁화 꽃을 안고 남원 땅에 잠들었네
2절. 남원 땅을 떠날 적에 성공빌던 어머니는 / 애처러운 주검안고 목메어 슬피 울때 /
삼천 겨레 흥분되어 자유 민족 찾으려고 / 학도 겨레 장하도다 잊지 못할 김주열 /
무궁화 꽃을 안고 남원 땅에 잠들었네
〈남원 땅에 잠들었네〉1960년 손인호가 부른 노래로 도미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남원 땅에 잠들었네 / 양산도 맘보(황금심)’ SP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첫번째 음반에는 ‘혁명의 노래’라고 적혀 있었는데, 재발매 될 때부터는 글자가 모두 빠져있었다 합니다. 대중가요 중에 4.19혁명과 관련한 노래는 몇 곡 있지만, 마산 3.15항쟁을 기리는 곡은 손인호의 노래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될 때는 앞부분에 총소리가 들리고 시위 군중들의 소리와 함께 1절과 2절 간주 부분에 가수 왕숙랑(어머니 역)의 애끓는 대사가 삽입돼 있습니다. “주열아 남원 땅을 떠나 마산에서 공부하여 성공한다던 네가 죽다니 웬 말이냐? 그러나 내 아들 장하다. 지금은 슬프지도 않다. 네가 원하고 원하든 우리 민족의 자유는 학도들의 힘으로 찾고야 말았단다. 아, 주열아! 주열아!”
☞ 김주열(1943년∼1960년)은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나 1960년 마산상업고등학교에 합격했으나, 다음날 마산 항쟁에 참여했다가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돼 13일 밤 11시 마산을 출발 14일 아침 고향 남원 옹정리마을 선산에 영면했습니다.
〈남원 땅에 잠들었네〉의 가수 손인호는 2006년 10월 28일 오전 10시 30분 경 국립 3.15 민주묘지에서 고(故) 김주열 열사 묘지를 참배하였습니다. 손인호님의 장남 가수 손동준의 칼럼 ‘가수 손인호/손동준의 가요와 영화이야기’에서 발췌「남원 땅에 잠들었네는 김주열 열사를 기리는 곡이다. 1960년 차경철씨가 가사를 쓰고 한복남씨가 곡을 붙였다. “3.15의거가 있던 날 저는 서울에 있었지요. 관절이 안좋아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마산에 어떤 학생이 최루탄을 맞고 떠올랐다고 소리치더군요.” 1960년 4월 12일, 2차 마산의거가 시작된 날이다. 손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시위가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다고 했다. “손인호한테 노래를 맡기자.(한복남)” 같은 날 한복남씨와 작사가 차경철씨가 신문에 마산의거 기사를 보고 난 뒤 차씨는 한씨에게 이걸로 노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씨는 흔쾌히 동의했다. 노래는 만들어졌다 누구한테 부르게 할 것인가~ 한씨는 자연스레 손인호를 떠 올렸다. 손인호님 말씀 “제가 한복남씨와 고향이 같습니다. 형. 동생하는 사이지요. 한씨가 노래를 만들었는데 네가 해야한다 너밖에 없다더군요. 기꺼이 승낙했지요. 그 노래가 ‘남원 땅에 잠들었네’였다. 노래를 부르는데 저절로 눈물이..” 수백 곡을 녹음했다고 자부하는 손씨. 모두 단 한 번 부르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지만 ‘남원 땅에 잠들었네’는 달랐다. “가사를 음미하며 부르는데 김주열 학생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저절로 울음이 나오더군요. 처음 녹음은 울먹울먹하면서 했습니다. 그래서 녹음을 3번이나 해야 했지요.”」
–〈나는 울었네〉– 김동일 작사, 박시춘 작곡, 손인호(1954년 유니버샬레코드사)
1절. 나는 몰랐네 나는 몰랐네 저 달이 날 속일 줄 / 나는 울었네 나는 울었네
나루터 언덕에서 / 손목을 잡고 다시 오마던 / 그 님은 소식 없고 나만 홀로 /
이슬에 젖어 달빛에 젖어 / 밤새도록 나는 울었소
2절. 나는 속았네 나는 속았네 무정한 봄 바람에 / 달도 기울고 별도 흐르고
강물도 흘러갔소 / 가슴에 안겨 흐느껴 우던 / 그대는 어디가고 나만 홀로 /
이 밤을 새워 울어 보련다 / 쓸쓸한 밤 야속한 님아
〈나는 울었네〉1954년 손인호가 부른 노래로서 유니버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나는 울었네 / 칼멘야곡(백설희)’ SP음반에 실려 있는 얼굴 없는 가수 손인호 데뷔곡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폐허가 된 집과 건물들, 도로 등 기반시설이 황폐화 되어 있던 암울한 시절을 배경으로 국민들의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있는 심정을 애절한 노랫말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조화를 이루고, 얼굴 없는 가수 손인호의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가 배가되어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곡입니다. 한 맺힌 눈물로 사랑의 그리움을 애절하게 표현한〈나는 울었네〉로 정식 가수로 데뷔한 손인호는 ‘얼굴 없는 가수’로 40년을 지내시다 2001년 KBS 가요무대 ‘얼굴없는 가수, 손인호’편에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2003년에 77세 최고령 가수로 가수협회에 가입했으며, 2011년 대한민국의 최고령 발표곡〈휴전선아 말해다오〉를 발표하시기도 하였습니다.
☞ 손인호 선생님은 1926년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태어나 2016년 하늘의 별이돼 파주 헤이리 동화경모공원에 영면한 분으로 대표곡은 1956년〈비 내리는 호남선〉〈하룻밤 풋사랑〉1957년〈울어라 기타줄〉1958년〈한 많은 대동강〉〈해운대 엘레지〉1959년〈동백꽃 일기〉〈물새야 왜우느냐〉〈청춘등대〉1966년〈경원선 기적소리〉등입니다.
–〈동백꽃 일기〉– 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 손인호(1958년 라라레코드사)
1절. 흘러간 삼년 세월 일기장 속에 / 남쪽바다 물새 우는 고향 포구를 /
잘있거라 떠날 때 목이 메어 잘가세요 네 / 그리운 그 아가씨 사진이 한 장
2절. 밤마다 적어 보는 일기장 우에 / 이내 마음 동백꽃 핀 고향 포구로 /
잘있거라 사나이 가는 길에 잘가세요 네 / 손에다 쥐어주던 만년필 하나
〈동백꽃 일기〉1958년 손인호가 부른 노래로 라라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동백꽃 일기 / 나의 태양(김정애)’ SP음반에 실려 있는 곡으로서 들으면 들을수록 애잔한 곡입니다. 2021년 5월 26일 국민가수인 주현미 누님의 ‘주현미 TV’에 실린 노래이야기에서 발췌「제주도를 비롯해 남도 지방을 중심으로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 가사를 볼때 노랫 속 정확한 지명을 유추해내기는 힘들지만 천봉 선생님의 삶을 들여다보면 배경이 어디인지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겠네요. 1923년 부산 서구 초장동에서 출생한 천봉 선생님은 본명이 천상률(千祥律)로, 1941년 경찰로 근무했던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산 행진곡’, ‘부산을 부른다’와 같은 노래에서 보듯 부산 토박이의 감성으로 ‘동백꽃 일기’를 썼다고 볼 수 있겠지요. 유난히도 꽃잎이 붉고 아름다운 동백꽃은 우리 가요의 단골 소재로 자주 등장하기도 하지요. 우리가 어렸을 적, 멀지 않은 과거를 떠올려보면 머리를 단장할 때 이 동백기름을 바르기도 했지요. 가사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만년필’은 노랫속 시적인 표현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그 당시 만년필이 대중적인 필기구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에 볼펜이 처음 전해진 것이 1945년 해방 이후 미군들에 의해서였는데, 대중적으로 널리 쓰여진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니 이 노래가 발표된 1958년에는 실제로 필기구라고 하면 만년필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노랗게 색이 바랜 수십년 전의 일기장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으실거예요. 그 안에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인생과 사랑의 이야기들. 하루를 마치고 일기장에 만년필로 정성스레 일기를 쓰는 대신 휴대폰을 들여다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오래된 일기장 속엔 어떤 사연들이 담겨있을까 궁금해집니다.」“손에다 쥐어주던 만년필 하나…”
–〈청춘 등대〉– 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 손인호(1959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파도 치는 등대 아래 이 밤도 둘이 만나 / 바람에 검은 머리 휘날리면서 /
하모니카 내가 불고 그대는 노래 불러 / 항구에서 맺은 사랑 등대불 그림자에 /
아아 아 아 정은 깊어가더라
2절. 깜빡이는 등댓불에 항구를 찾아드는 / 타국선 고동소리 들리어 오네 /
손을 잡고 안개속을 그대와 걸어갈 때 / 등대에서 놀던 사랑 영원히 잊지 못해 /
아아 아 아 정은 깊어가더라
〈청춘 등대〉1959년 손인호가 부른 노래로 음반은 도미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손인호 가요힛트앨범 제1집’ 앨범 B면 타이틀 곡입니다. 어둠 짙은 밤 항구, 불빛 밝은 등대 아래에서 검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나누는 남녀들의 사랑을 그린〈청춘 등대〉는 당시 낭만적인 노랫말과 통통 튀는듯한 멜로디로 청춘 남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런 추억 간직하고 계시죠? 필자가〈청춘등대〉를 처음 접한게 1983년 10월 7일 ‘주현미 쌍쌍파티 1집’입니다. 1982년 10월 27일 군대에 입대 후 첫휴가를 나왔을 때 여자친구도 애인도 없던 필자는 이 노래를 듣고 바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파도치는 등대 아래 이밤도 둘이 만나..” 애절한 주현미의 부드러운 듯 청량한 목소리와 중후한 김준규의 음색이 필자를 노래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음치라 그저 “파도치는 등대 아래…”만 반복해 불렀습니다. 주현미 쌍쌍파티 1집을 들으면서 편안히 지내다가 이틀 후 19일 ‘버마 아웅산 사태’가 발생해 철원의 부대로 자진 복귀했습니다.
–〈돌아가자 남해 고향〉– 야인초 작사, 백영호 작곡, 손인호(1964년 미도파레코드사)
1절. 너 나이쯤 되며는 누구나 한번 / 봄바람에 마음 달뜬 도회지 병이 /
못된 사람 꼬임에 속는 법이다 / 하모 하모 하아 하모 오빠가 쿠는 말은 /
너 장래를 위해서 쿠는 말이다 / 돌아가자 남해 고향 오빠와 둘이
2절. 남해포구 뱃사공 머석이 아들 / 거석이와 너 사이가 머석이 된 줄 /
아버지도 아시고 거석 하신데 / 하모 하모 하아 하모 오빠가 쿠는 말은 /
너 장래를 위해서 쿠는 말이다 / 돌아가자 남해 고향 오빠와 둘이
〈돌아가자 남해 고향〉1964년 손인호가 부른 영화 ‘동백 아가씨’ 삽입곡으로 미도파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백영호 작곡집, 동백아가씨’ 앨범에 실려있는 곡입니다. 노랫말에 경상도 사투리가 많이 들어있어 더욱 정겹지만 뜻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하모 하모”는 “그래 그래” “쿠는 말”은 “말하는거다” “머석이, 거석이”는 이웃에 사는 아이들을 뜻하는 것으로 전라도의 “거시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미자 선생님〈동백 아가씨〉가 탄생한 영화 ‘동백 아가씨’는 DBS라디오 연속방송극을 김기 감독, 배우 엄앵란, 신성일 김승호, 석일우, 남미리, 석금성, 나애심, 강문, 주선태, 최남현 등이 출연해 제작돼 1964년 8월 29일 서울의「을지극장」에서 개봉됐습니다.「섬처녀 숙이(엄앵란)는 서울서 온 대학생 철웅(신성일)과 사랑에 빠져 임신까지하자 그를 찾아 서울로 가지만 그가 유학을 떠난 뒤라 동백빠의 여급이 된다. 그후 철웅을 만나지만 이미 가정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고 딸 진옥을 넘겨주고 섬으로 돌아간다.」
다음에는 4월 24일 배호 탄신일을 맞아〈누가 울어〉〈안녕〉등 5곡의 글을 올립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