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54. 고운봉〈국경의 부두〉〈남강의 추억〉〈백마야 가자〉〈명동 블루스〉 (2026.02.09.)
오늘은〈선창〉의 가수 고운봉의 탄신일입니다.
고운봉(본명 고명득)은 1920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1938년 가수가 되고자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인 작사가 박영호를 찾아가 ‘높은 봉우리 위에 우뚝 선 구름 같은 가수가 되라.’는 뜻으로 예명 고운봉(高雲峰)을 받아 1939년〈국경의 부두〉로 데뷔 1940년〈남강의 추억〉을 발표했고, 그해에 오케레코드사로 옮겨서 1941년 그의 대표곡〈선창〉을 취입했습니다.
고운봉은 창법이 매우 맑고 고와서 애잔한 곡을 많이 불러 ‘순정가수’로 불렸습니다. 2000년 예산 덕산온천에〈선창〉노래비가 세워졌고, 매년 4월 ‘고운봉 가요제’가 열립니다. 고운봉〈국경의 부두〉〈남강의 추억〉〈백마야 가자〉〈명동 블루스〉글을 올리겠습니다.
–〈국경의 부두〉– 유도순 작사, 전기현 작곡, 고운봉(1939년 태평레코드사)
1절. 앞산에 솜 안개 어리워 어 있고 / 압록강 물 위에는 뱃노래로다
용암포 자후창 떠나가는 저 물길 / 눈물에 어리우는 신의주 부두
2절. 똑딱선 뾰족배 오고 가는데 / 갈매기 놀래 놔서 황급히 난다
부리는 뱃짐에 기다리는 님 소식 / 헛길에 돌아가는 신의주 부두
3절. 석양의 유초도 누였지를 않고 / 돛 내린 뱃간에는 불빛이 돈다
진강산 바라며 그리웁던 내 고향 / 설움에 깊어 가는 신의주 부두
〈국경의 부두〉고운봉(1920∼2001년 본명 고명득, 충남 예산 출신)이 1939년 부른 데뷔곡으로 7월에〈아들의 하소〉와 함께 태평레코드사에서 SP 음반에 발매한 곡으로, 국경을 넘나들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와 이별의 슬픔이 자연의 풍광과 어울리는 신의주 부두의 풍경을 신의주에서 살던 유도순(1904년∼1938년)이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 용암포(龍巖浦)는 평안북도 용천군 압록강 하구에 있는 포구로 신의주 외항입니다. 똑딱선은 발동기로 움직이는 작은 배, 뾰족배는 앞뒤의 모양이 날카롭게 생긴 배입니다. 유초도(柳草島)는 평안북도 신의주 압록강에 있는 큰 섬으로 자갈과 모래가 풍부합니다.
–〈남강의 추억〉– 무적인(이재호) 작사, 이재호 작곡, 고운봉(1940년 태평레코드사)
1절. 물소리 구슬프다 안개나린 남강에서 / 너를 안고 너를 안고 아 아아 울려주던 /
그날 밤이 울려주던 그날 밤이 / 음 으으음 다시 못올 옛꿈이여
2절. 촉석루 옛성터엔 가을달만 외로히 / 낙엽소리 낙엽소리 아 아아 처량코나 /
그대 모습 정들자 헤어진 몸 / 음 으으음 불러라 망향가를
(3절. 고향에 님을 두고 타향살이 십여년에 / 꿈이라도 꿈이라도 아아아 잊을소냐 /
그대 모습 정들자 헤여지던 / 음 으으음 불러라 망향가를)
〈남강의 추억〉고운봉이 1940년에 부른 노래로서 가수 나성려의〈임 두고 썩는 몸〉(무적인/이재호)과 태평레코드사에서 발매한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작사자 무적인은 작곡가 이재호의 필명입니다. 이재호는 1919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중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할 때 제자가 이봉조였다고 합니다. 가요황제 남인수도 고향을 떠난지 10년만에 공연을 위해 진주를 찾으면서〈진주라 천리길〉을 불렀지만, 작곡가 이재호도 어릴 때 친구들과 뛰어 놀던 고향 진주를 그리면서〈남강의 추억〉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북 평양(平壤), 남 진주(晋州)’라고 했고, 1592년 임진왜란 때도 평양의기 (平壤義妓) 계월향과 진주의기(晋州義妓) 논개가 있었던 고장입니다. 예향(禮鄕) 진주가 낳은 대표적인 대중가요 예술인으로〈강남달〉의 서정시인 작곡가 김서정과, 베레모와 아코디언〈목포의 눈물〉작곡가 손목인,〈노들강변〉작곡가 문호월, 한국 대중가요계의 슈베르트 이재호, 작곡·지휘 색소폰연주자 이봉조, 작곡가 정민섭을 비롯해서 가요황제 남인수 등 일곱분이 있으며, 진양호공원에는 이들을 기리는 동상과 노래비가 있습니다.
그밖에 진주의 대중가요는 1940년 남인수〈진주의 달밤〉1941년 이규남〈진주라 천리길〉1950년 남성봉〈쌍가락지 논개〉1955년 남인수〈내고향 진주〉1956년 박일석〈논개의 노래〉1957년 남인수〈석류꽃 피는 고향〉손인호〈울어라 진주남강〉손인호〈촉석루의 하룻밤〉1958년 손인호〈진주는 천리길〉황금심〈진주는 천리길〉(=금주의 노래), 1959년 박재홍〈남강은 살아 있다〉1960년 남인수〈진주의 하롯밤〉1961년 최숙자〈논개의 최후〉1962년 은방울자매〈진주의 눈물〉1965년 이미자 선생님〈내 사랑 진주〉1966년 남강수〈추억의 진주〉박지연〈진주의 노래〉1967년 남강수〈추억의 진주남강〉배호〈남강의 비가〉최숙자〈진주 기생〉1968년 김부자〈촉석루 아가씨〉남강수〈촉석루의 밤〉남진〈촉석루의 달밤〉유정민〈남강의 달〉1969년 신행일〈진주야곡〉이동근〈안개낀 촉석루〉이미자 선생님〈논개〉최진〈촉석루〉파랑새 자매〈논개의 사랑〉1971년 나훈아〈진주 처녀〉독고성〈이별의 진주다리〉린다박〈논개야〉박민아〈진주 가인〉1973년 김세레나〈진주 아가씨〉1974년 최희준〈진주성〉1982년 이동기〈논개〉와 은방울자매〈진주의 소야곡〉이봉조〈향수의 내고향〉등이 있습니다.
–〈백마야 가자〉– 고명기 작사, 박시춘 작곡, 고운봉(1942년 오케레코드사)
1절. 먼동이 터 오른다 백마야 가자 / 청대콩 무르익은 고향을 찾아서 /
불빛이 반짝이는 저 언덕 넘어 / 해장술 건들 취해 백마야 가자
2절. 방울소리 울리면서 백마야 가자 / 물방아 돌아가는 고향을 찾아서 /
새벽별 반짝이는 저 언덕 넘어 / 해장술 건들 취해 백마야 가자
3절. 먼동이 터 오른다 백마야 가자 / 부모님 기다리는 고향을 찾아서 /
아침 이슬 반짝이는 저 언덕 넘어 / 해장술 건들 취해 백마야 가자
〈백마야 가자〉고운봉이 1942년에 부른 노래로서 10월에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SP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또한 1963년 신세기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박시춘 멜로듸, 12인의 야도’ 앨범에도 수록돼 있습니다. 음반에는 Side A면. 도미의〈12인의 야도〉황금심〈구름따라 바람따라〉김용만〈울산의 사나이〉심연옥〈나는 알아요〉Side B면. 고운봉〈백마야 가자〉황금심〈둥기 당기당〉김용만〈아리랑 길손〉박재홍〈아메리카 항로〉등 8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또한 2004년 ㈜경성미디어에서 발매한 ‘대사로 엮어보는 추억은 노래따라 2집에 실려 있는 대사는 “얼마나 보고팠던 고향이길래, 얼마나 보고팠던 어머니기에 먼동이 밝아오나 백마야 가자. 아침 이슬 반짝이는 저 언덕 넘어 해장술 건들 취해 백마야 가자. 옥수수 익어가는 고향을 찾아서 어머님 기다리는 고향을 찾아서 말방울 울리면서 백마야 가자.” 병오년 붉은 말의 해에 들으니 더욱 애절합니다.
–〈명동 블루스〉– 이철수 작사, 라음파 작곡, 고운봉(1958년 신세기레코드사)
1절. 궂은비 오는 명동의 거리 가로등 불빛따라 / 쓸쓸히 걷는 심정 옛 꿈은 사라지고
/ 언제나 언제까지나 이 밤이 다 새도록 / 울면서 불러보는 명동의 블루스여
2절. 깊어만 가는 명동의 거리 고요한 십자로에 / 술 취해 우는 심정 그님이 야속튼가
/ 언제나 언제까지나 이 청춘 시들도록 / 목메어 불러보는 명동의 블루스여
〈명동 블루스〉1958년 고운봉이 부른 노래로 신세기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장미의 꿈 / 흑색의 탱고’ 앨범 1면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1면. 현인〈장미의 꿈〉고운봉〈명동 부루스〉김정애〈거리에 핀 장미〉김일홍〈을지로 부루스〉SIDE 2면. 윤일로〈흑색의 탱고〉안정애〈그대 없는 이밤〉〈이 순정을 다 받쳐〉박재홍〈꽃피는 청춘시〉등 8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명동 블루스〉는 국민가수 김용만이 1956년 작사·작곡해 부른 노래로 일본엔카와 비슷하다는 평이 나오자 이철수가 노랫말을 새로 쓰고, 라음파가 곡을 새로 만들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원창자 김용만 보다 리메이크한 고운봉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휴전 직후 서양 문물과 자유연애 등 시대상을 반영한〈명동블루스〉명동은 광복의 기쁨과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도 서울의 중심, 명동(明洞)은 말 그대로 밝은 동네로 당시 명동 뒷골목은 퇴근길의 샐러리맨들과 문화예술인들의 꿈, 낭만이 있던 곳으로 한잔 술에 사회를 논하고 자신의 인생관을 설파하던 장소였으며, 연인들의 추억이 서린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서울 중심이 강남으로 옮겨간 듯 하지만 그래도 “명동은 명동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땅 명동” 그러나 필자는 서울 생활 54년동안 명동길을 걸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다음에는 2월 20일 탄신일이었던 방운아〈부산 행진곡〉등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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