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66.〈인도의 향불〉,〈샌프란시스코〉(2022.06.06.)
매년 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고, 오늘은 제67회 ‘현충일(顯忠日)’입니다. 우리 모두 조기를 게양해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하신 애국지사들과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그 분들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해야 할 것입니다.
6월 6일이 현충일로 지정된 유래는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24절기 중 6월 5일 또는 6일에 해당하는 망종(亡終) 때 제사를 지내곤 했습니다. 1953년 현충일을 지정할 당시 6일이 망종이라 그날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했고, 1975년에 현충일로 개칭됐으며, 1982년부터 법정공휴일로 지정해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충절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했지만 피폐해진 국민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5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해 국민들은 더욱 고단한 삶이 계속되었으며 춥고 배고픔의 시련들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후에는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 심리가 국민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고, 현실 도피적 성격의 노래인 〈인도의 향불〉. 〈페르샤 왕자〉. 〈샌프란시스코〉.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등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는 이국적인 노래 제목과 가사, 음이 인기를 끌었고, 1954년 금사향 〈홍콩 아가씨〉, 1955년 명국환 〈아리조나 카우보이〉, 1956년 현인 〈나포리 맘보〉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밖에도 1959년 이미자 선생님 〈워싱턴 부르스〉, 1961년 백일희 〈차이나 맘보〉, 1963년 이시스터즈 〈워싱턴광장〉, 1966년 윤일로 〈월남의 달밤〉, 1978년 세샘트리오 〈나성에 가면〉, 1983년 현철 〈추억의 테헤란로〉, 2007년 권성희 〈하이난의 밤〉 등이 있습니다.
–〈인도의 향불〉– 손로원 작사, 전오승 작곡, 현인(1952년 럭키레코드사)
1절. 공작새 날개를 휘감는 연불 소리 / 간지스강 푸른 물에 찰랑거린다 / 무릎 꿇고
하늘에다 두손 비는 인디아 처녀 / 파고다의 사랑이냐 향불의 노래냐 / 아아
아아아아 깊어가는 인도의 밤이여
2절. 야자수 잎사귀 무더운 저녁 바람 / 뱅갈사의 종소리에 애달퍼진다 / 풍각소리
자르메라에 춤을 추는 인디아 처녀 / 파고다의 사랑이냐 향불의 노래냐 / 아아
아아아아 깊어가는 인도의 밤이여
☞ 자르메라(포르투칼어) : 인도의 관악기로 우리나라의 태평소처럼 나팔모양입니다.
〈인도의 향불〉은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6월 현인(1919년∼2002년 본명 현동주, 부산 영선동 출생)이 부른 노래로 음반은 1952년 럭키레코드사에서〈서울부루스〉와 함께실어 발매했습니다.
인도는 한국전쟁때 우리나라에 의료부대를 지원한 국가입니다. 이전에는 익숙하지 않은 국가로 신비의 나라였습니다. 당시 전쟁 중인 시대에 걸맞지 않는 다소 과시적인 의식이 엿보이는 이국적인 정취를 한껏 풍기는 곡으로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런 노래가 등장했던 이유는 국민들이 일상의 고통 속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마음의 긴장감을 풀고 위안을 삼으려 했던 욕구와 더불어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수많은 외국 병사들을 통해 들어온 외국 문물에 대한 신기한 모습들 때문일 것입니다.
구리시 인창동에 사시는 필자의 학교 선배 박정구 형님은 1972년 2월 9일 새마을지도자 위촉장을 받아 50년을 봉사하고 계신 분인데 이 분의 애창곡이 〈인도의 향불〉입니다. 반주가 흐르면 한껏 폼을잡고 부르는〈인도의 향불〉은 가수 뺨칠 정도로 환상적입니다.
☞ 여러분! 학창시절에 배웠던 신라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기억하시죠? 1908년 3월 프랑스의 탐험가 ‘폴 펠리오’가 중국 둔황 천불동 석굴에서 발견한 두루마리 필사본(길이 358.6cm, 폭 28.5cm, 227행 5,893자의 한자)로 723년부터 727년까지 인도의 불교 4대 성지 등을 참배하면서 보신 8세기 당시 인도의 풍습이나 불교유적과 관련된 상황과 카슈미르, 중앙아시아 등에 관한 세계 유일의 기록물입니다.
세계 4대 여행기로는 통일신라 혜초스님(704년∼787년) ‘왕오천축국전’, 이탈리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1254년∼1324년) ‘동방견문록’, 이탈리아 수도사 오도릭(1286년∼1331년) ‘동방기행’, 모로코 율법학자 이븐 바투타(1304년∼1369년) ‘리흘라’가 있습니다. 2020년부터 구리문화재단 상주단체로 지정된 ‘고래야’에서는 2020년 12월 12일과 2021년 8월 21일 구리아트홀 코스모스대극장에서 첫 번째 신작 ‘판타지아 1950’ 공연을 개최해 〈인도의 향불〉, 〈페르샤 왕자〉 등 12곡을 원곡의 정서를 간직해 연주했습니다.
–〈페르샤 왕자〉– 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허민(1953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페르샤 왕자 / 눈감으면 찾아드는 검은 그림자 / 가슴에다
불을 놓고 재를 뿌리는 / 아라비아 공주는 꿈속의 공주 / 오늘 밤도 외로운 밤 /
별빛이 흐른다
2절. 약해서야 될 말이냐 페르샤 왕자 / 모래알을 움켜쥐고 소곤거려도 / 어이해서
사랑에는 약해지는가 / 아라비아 공주는 마법사 공주 / 오늘 밤도 혼을 빼는 /
촛불이 꺼진다
〈페르샤 왕자〉는 1953년 허민(1929년∼1974년 본명 허한태, 경남 김해)이 도미도레코드사를 통해〈백마강〉과 함께 발표한 데뷔곡입니다. 1951년 한복남이 부산 아미동에 설립한 도미도레코드사는 영세 경영으로 어려움을 겪다〈페르샤 왕자〉가 엄청나게 히트하면서 한순간에 회사가 일어났다 합니다.
1971년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린 대사는 “오리온 별빛이 꿈을 꾸는 밤 달콤한 오리온 향기높은 밤 / 멀리서 캬라반 옥피리 불며 혼을 빼는 마법속에 춤을 추는데 / 페르샤 왕자는 사랑을 찾아 오늘도 점을 치네 별점을 치네 / 한 밤이 지새도록 별점을 치네 아라비아 공주 찾아 별점을 치네”
2012년 9월 19일 조선일보에서는「‘홍콩 아가씨’ ‘페르샤 왕자’ 첫 녹음 목소리 찾았다.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가수이자 도미도레코드사 설립자인 한복남의 음반들을 정리하다가 처음 녹음된〈페르샤 왕자〉오리지널 음원이 처음 발굴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장세정(1953년 오리엔트레코드사)
1절. 비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그림자 /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 나는야 꿈을 꾸는 나는야 꿈을 꾸는 /
아메리칸아가씨
2절. 네온의 불빛도 물결따라 넘실대는 꽃그림자 /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 내일은 뉴욕으로 내일은 뉴욕으로 /
떠나가실 님이여
3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꿈을 꾸는 님그림자 / 달콤한 그 키스에 쌍고동이 울린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 나이트 여객기가 나이트 여객기가 /
유성같이 날은다
〈샌프란시스코〉1953년 장세정이 부른 노래로 원제목은〈쌴프란씨스코〉로 신세영〈병원선〉과 함께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려있는 곡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손로원은 부산항에 입항한 적십자기를 단 스웨덴 국적의 두 척의 배와 그 배에 타고있는 하얀 가운차림의 의사와 간호사를 보고 평화의 사도들에게 노래로 보답을 해야겠다 생각해 샌프란시스코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해외 문물에 대한 동경이 매우 컷고 해외여행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할 처지였던 시절로 유럽, 동남아, 미국 등 해외의 문물이 가요에도 많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노래로 1950년 현인의 〈인도의 향불〉, 1954년 백설희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심연옥 〈예라이샹〉, 허민〈페르샤왕자〉, 1956년 현인 〈나포리 맘보〉 등이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1962년 백설희가 재취입하면서 이 노래는 백설희의 노래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원곡자는 장세정입니다. 그리고 1976년 미국의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개최된 ‘한인 순회공연’의 주요 노래 중 한곡이었습니다.
☞ 1930〜40년대 가수 : 홍청자, 왕숙랑, 박향림, 이난영, 서봉희, 김능자, 장세정, 이화자
–〈월남의 달밤〉– 반야월 작사, 김성근 작곡, 윤일로(1966년 콜롬비아레코드사)
1절. 남남쪽 머나먼 나라 월남의 달밤 십자성 저 별빛은 어머님 얼굴 / 그 누가 불어주는 하모니카냐 / 아리랑 멜로디가 향수에 젖네 가슴에 젖네
2절. 열대어 꼬리치는 사이공 항구 산호등 아롱다롱 물에 서리면 / 카누에 실어보는
그 님의 노래 / 떠나온 수륙만리 아득한 고향 그리운 산천
〈월남의 달밤〉 1966년 윤일로가 부른 노래로 1966년 1월 1일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윤일로 최신가요집 Vol. 1 월남의 달밤’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입니다. 음반엔 SIDE A면.〈월남의 달밤〉, 〈그녀는 25번〉, 〈멋쟁이 마도로스〉, 〈천년부여〉, 〈잘살어 보세〉, 〈울고간 사나이〉 SIDE B면.〈비젖는 골목길〉, 〈해인사의 밤〉, 〈춤추는 파리〉, 〈울며 웃는 인생살이〉, 〈매정한 여인〉, 〈청춘무대〉 등 12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월남의 달밤〉이 첫 발매됐을 때 1절에 ‘남 남쪽 섬의 나라’라는 부분이 있어 논란이 있었는데 월남은 섬나라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작사가 반야월이 ‘남 남쪽 먼 먼 나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1966년 3월 30일 방송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월남전쟁은 제1차 1946년 12월 19일∼1954년 8월 1일 프랑스와의 독립전쟁과 1955년 11월 1일∼1975년 4월 30일 벌어진 통일전쟁이었습니다.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미국이 참전했고, 우리나라는 1964년 9월 제 1 이동 외과병원 병력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의 파견으로 시작해 1965년 2월 비둘기부대, 10월 9일 해병청룡부대, 10월 22일 육군 맹호부대를 비롯 십자성부대, 백구부대, 1966년 4월 16일 혜산진부대, 8월 15일 백마부대를 파병했습니다.
그리고 1971년 12월 청룡부대 철수를 필두로 1973년 3월까지 철수를 끝마쳤습니다. 필자도 코흘리개 어린시절〈청룡부대가〉, 〈맹호부대가〉, 〈백마부대가〉를 친구들과 불렀고, 또 여자애들은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 부르던 기억이 납니다. ‘국군장병 아저씨께’로 시작한 위문편지와 엄마가 입던 ‘월남치마’ 기억나시죠?
1969년 어느날 막내외삼촌이 월남에서 돌아온 후 필자의 집에 오셔서 국방색 통조림을 따주셨는데 위에는 노란콩으로 채워졌고 아래에 고기가 있었는데 말고기라고 하셨습니다.
☞ 윤일로(1935년〜2019년 본명 윤승경)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출생해 1946년 3월에 월남했습니다. 1955년 작곡가 나화랑을 찾아가 킹스타레코드사 전속가수로 데뷔, 예명 윤일로(尹一路)는 작곡가 나화랑과 가수 백년설이 ‘오로지 가수 한길로만 가라’고 지어줬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주가 너무나 많아서 작사·작곡·노래 3박자의 싱어송라이터, MC, 성대모사 등 다재다능한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윤일로는 1967년 2월 청룡부대를 시작으로 1969년과 1971년 세차례 파월장병 위문공연을 갔는데, 해군 군악대 출신인 그는 코메디언 백금녀와 공동 MC와 원맨쇼를 펼쳤습니다. 〈월남의 달밤〉가수인 그는 장병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다시피 했는데, 한번 가면은 사진만 5만 장 정도를 찍었다고 하니 입이 딱 벌어집니다. 에피소드 하나, 위문공연때마다 빨래줄에 걸린 여자 속옷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자 속옷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부적이 되어 총알이 피해간다.’는 군인들 사이에 떠도는 속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 위문단은 위문공연을 갈때마다 여성 속옷을 따로 몇 벌씩 챙겨가서 군인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답니다. 윤일로의 농담 한마디, “파월장병 위문공연 때 가장 인기있는 여자 연예인이 함께 MC를 보고있는 백금녀씨였는데, 그녀의 속옷으로는 여러 장의 속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윤일로의 부인은 ‘대전에서 가장 빼어난 가수’라는 예명으로 〈사랑의 물새 한쌍〉을 부른 박수전(朴秀田)님, 아들은 영화배우·탤런트 윤철형입니다.
–〈하와이 연정〉– 주동진 작사, 길옥윤 작곡, 패티김(1967년 지구레코드사)
1절. 사랑이란 즐겁게 왔다가 슬프게 가는 것 / 훌라 춤에 흥겹던 기쁨도 모래알에
새겨진 사연도 / 파도에 부서지는 이 순간 / 아아 가버린 그 사람 그 사랑 / 하와이안
기타에 목놓아 / 나 여기 웁니다
2절. 사랑이란 살며시 왔다가 괴롭게 가는 것 / 야자수 그늘 아래 단꿈도 / 와이키키
해변의 맹세도 / 파도에 부서지는 이 순간 / 아아 가버린 그 사람 그 사랑 / 하와이안
기타에 목놓아 / 나 여기 웁니다 / 나 여기 웁니다
〈하와이 연정은 1967년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패티김 히트송 제3집, 영화주제가집’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2001년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유오성에게 말한 “니가 가라 하와이” 그런 하와이가 절대 아닙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국의 가난한 나라였던 이 땅의 국민들은 필리핀, 홍콩, 유럽을 부러워했고, 미국의 하와이는 그야말로 지상 최고의 천국인 파라다이스였습니다. 망망대해 태평양 끝자락에 있는 그 곳은 야자수 그늘 아래 꿈속에서나 그려보던 지상 최고의 낭만과 풍요로움이 가득한 낙원이었습니다. 잎사귀로 겨우 몸을 가리고 기타의 음률에 맞춰 훌라춤을 추며 어서 오라고 손짓으로 유혹하던 요염한 아가씨들의 건강하고 밝고 풋풋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땅 이었습니다. 영화 ‘하와이 연정’. 감독 현상열(현제명 아들), 남정임, 김진규, 정민, 전계현, 김희갑, 이대엽, 윤인자, 주증녀 등이 출연 1967년 1월 1일 서울「국제극장」에서 개봉해 관객 4만 6천명 입장으로 흥행에도 성공했습니다. 타이틀「격정의 태양 아래 작열하는 사랑, 이국의 청취 가득한 아름다운 애정의 역사. 태평양을 건너뛰고 사상 최초의 하와이 올로케!!」
줄거리는,「어릴 때 부모가 이혼한 후로 어머니 손에서 자란 경애(남정임)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를 찾아 하와이로 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픈 어머니의 주치의 역할로 어머니를 보살핀 닥터 박, 상훈(김진규)를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숙환으로 숨을 거두면서 상훈에게 딸의 장래를 부탁하게 되자 경애와 상훈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혼인을 하면서 사랑과 내일의 행복을 굳게 다짐한다.」 비극적인 가족사를 배경으로 한 통속적인 멜로영화였지만 그 당시 지상 최대의 낙원 ‘하와이’ 현지 로케를 한 총천연색으로 상영된 영화속 장면에는 낙원 하와이의 시원스런 풍광과 아름다움이 가득 담겨 있어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줬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엔 작사·작곡 콤비, 정두수와 박춘석, 이용일과 백영호 등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수 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