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81 신카나리아〈삼천리강산 에라 좋구나〉〈강남달〉박향림〈오빠는 풍각쟁이〉(2026.08.17.)
오늘은 신카나리아〈삼천리강산 에라 좋구나〉〈강남달〉〈강남제비〉박향림〈오빠는 풍각쟁이〉〈타국의 여인숙〉5곡에 대한 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신카나리아(1912년〜2006년)의 본명은 신경녀(申景女)로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집안이 가난하여 원산 ‘루씨여자고보’ 1학년을 중퇴한후 1928년 ‘조선예술좌’ 악극단이 원산의 ‘원산관’에서 공연을 하면서 부부의 연을 맺은 극작가 임서방(任曙昉)의 테스트를 받고 그가 지어준 우리나라 가수 최초의 예명인 ‘신카나리아’를 사용 극단 막간가수로 활동하며 1928년〈뻐꾹새〉〈연락선〉으로 데뷔했습니다.
또한 막간가수로〈에헤라 좋구나〉〈강남달〉〈강남제비〉등을 불렀는데, 특히〈강남달〉를 부를 때 너무나 애절한 음색으로 불러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1932년 동아일보 기사 한 토막,「연극시장에서 아직까지도 아모 지장이 없이 곱게 피고있는 방년 십칠세의 귀여운 존재 신카나리아양은 산골짝에서 “졸졸졸” 흐르는 냇물 소래의 리듬처럼 청아한 목소리를 가졌다.
연기에 있어서는 세련되지 못하였으나 대리석으로 깎아낸 듯 곱고도 정돈된 그의 얼굴이 스테지에 나타날 때에는 관객의 시선은 그의 연기보다도 미모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1972년 서울 충무로에 ‘카나리아 다방’을 경영하면서 가요계와 예술인들의 추억담을 나누는 장소로 제공했으며, 90세인 2002년 KBS1-TV ‘가요무대’ 추석특집편 무대에 오르는 등 격동기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대중가요사에 한 족적을 남긴 가수입니다.
–〈삼천리 강산 에라 좋구나〉– 전수린 작사·작곡, 신카나리아(1931년 시에론레코드사)
1절. 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말어라 / 아까운 이내 청춘 다 늙어가누나
삼천리 강산에 새봄이 와요 / 무궁화 강산 절계 좋다 에라 좋구나
(2절. 강산에 새 봄은 다시 돌아오고 / 이 가슴에 새 봄은 언제나 오나요
삼천리 강산에 새 봄이 와요 / 무궁화 강산 절계 좋다 에라 좋구나)
3절. 세월은 한 해 두 해 흘러만 가구요 / 우리 인생 한 해 두 해 늙어만 가누나
삼천리 강산에 새봄이 와요 / 무궁화 강산 절계 좋다 에라 좋구나
〈삼천리 강산 에라 좋구나〉신카나리아가 1931년에 부른 노래로 원제목은〈무궁화 강산〉이었습니다. 11월 시에론레코드사에서 전수린이 직접 부른〈황혼의 비〉와 함께 수록해서 발매한 곡입니다. 일제강점기 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민족의 꽃인 무궁화(無窮花)를 “보면 눈병이 나고, 피부병에 걸린다,”는 유언비어까지 퍼뜨렸지만 신카나리아의〈무궁화강산〉은〈무궁화강산 에라 좋구나〉로 바꾸어서 불렀으며, 1945년 광복 이후 제목을〈삼천리강산 에라 좋구나〉로 변경해 무대에서 빠짐없이 불렀습니다.
–〈강남달〉– 김서정 작사, 김서정 작곡, 신카나리아(1927년 빅타레코드사)
1절.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 구름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우네
2절.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 적막한 가람가에 물새가 우네
오늘밤도 쓸쓸히 달은 지노니 / 사랑의 그늘속에 재워나 주오
3절.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 구름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우네
〈강남달〉의 원제목은〈낙화유수〉로 신카나리아가 악극단에서 부를 때〈강남달〉로 제목을 바꾸어 불렀습니다. 1942년 가요황제 남인수가 부른〈낙화유수〉도 있습니다.
〈강남달〉김서정이 작사·작곡해 1927년 이정숙이 단성사에서 상영된 극작가 김서정 어머니의 삶을 극화한 무성영화 ‘낙화유수’(落花流水)에서 막간 무대에 부르던 곡으로 음반은 1927년 빅타레코드사와 1929년 6월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발매를 하였습니다.
☞ 김서정(1898년〜1936년)의 본명은 김영환으로 경상남도 진주에서 화가인 아버지와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기 변사(辯士)와 작사가·작곡가·시나리오작가·영화감독·가수 등 모든 분야에서 활약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예술가’(大衆藝術家)였습니다. 당시 무성영화를 상영할 때 영화 장면에 맞춰서 그 줄거리를 설명하던 김서정의 해설 한자락 “강남(江南)의 충초(春草)는 해마다 푸르고, 세세연년에 강물은 흘러간다. 아! 남방(南方)을 향하여 흘러가는 한 떨기 춘홍(春紅)의 운명은 장차 어찌나 될 것인가? 다음 예고편을 기대하시라” 우리시대 마지막 변사 신출(申出)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강남 제비〉– 김서정 작사·작곡, 강석연(1932년 시에론레코드사)
1절. 강남 제비 돌아와서 봄은 왔건만 / 님은 어이 봄이 온줄 모르시는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흰구름 저편에 / 달과 함께 님의 얼굴 솟아오르네
2절. 강남 제비 돌아와서 봄은 왔건만 / 님은 어이 봄이 온줄 모르시는지
꽃이 피고 새가 울면 오시마 하더니 / 님은 어이 봄이 온줄 모르시는지
〈강남 제비〉1932년 국민가수 강석연이 1932년 시에론레코드사를 통해 취입한 곡입니다. 원창자는 1930년 이애리수(1911년〜2009년)로 1930년 3월 빅타레코드사에서〈방랑자〉와 함께 발매한 곡으로 1932년 강석연과 신카나리아도 취입해 불렀습니다. 보시는 영상은 1963년 신카나리아가 ‘쇼는 즐거워’ 프로그램에 나와 부르는 모습입니다.
☞ 강석연(姜石燕 1914년〜2001년) 본명은 강복형(姜福亨)으로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1929년 언니 강석제와 오빠 강석우를 따라서 토월회 연극배우로 활동을 했고, 1930년 극단 막간가수로 활동하던 중 1931년 콜럼비아레코드사를 통해〈방랑가〉〈오동나무〉를 취입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1932년 ‘빅타레코드사’ 1935년 ‘태평레코드사’ 전속가수로 1939년까지 활동을 하다 언론인 방태영(1885년〜1950년 납북)과 혼인한 후 은퇴하였습니다. 작사가 박노홍의 평 “강석연은 모든 행동이 야무진 구석이 많았고, 노래 부르는 모습과 창법이 야무졌다.” 아드님은 농구감독 방열(方㤠 1941년)입니다.
–〈오빠는 풍각쟁이〉– 박영호 작사, 김해송 작곡, 박향림(1938년 콜럼비아레코드사)
1절. 오빠는 풍각쟁이야 머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 난 몰라 난 몰라
내 반찬 다 뺏어 먹는거 난 몰라 /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고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 오빠는 깍쟁이야
2절. 오빠는 트집쟁이야 머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 난 싫어 난 싫어
내 편지 남몰래 보는 것 난 싫어 / 명치좌 구경갈 땐 혼자만 가구 심부름 시킬때면
엄벙땡하구 / 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쟁이 / 오빠는 트집쟁이야
3절. 오빠는 주정뱅이야 머 오빠는 모주꾼이야 머 /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밤늦게 술취해 오는 것 난 몰라 / 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하구 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 / 오빠는 짜증쟁이 오빠는 모두쟁이 / 오빠는 대포쟁이야
〈오빠는 풍각쟁이〉1938년에 국민가수 박향림이 부른 노래로 12월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옵빠는 풍각쟁이 / 열정의 불루르(박향림)’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그 당시 재즈송의 대표적인 가수가 되고 싶었던 17살 소녀가수 박향림의 간드러진 콧소리로 들려오는 이 노래는 무엇보다도 가사의 내용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는데, 당시 서울이나 평양의 중류층의 세태를 풍자적으로 잘 반영한 파격적인 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듣고보면 지금은 흔히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풍각쟁이’는 시장이나 집을 돌아 다니며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해 돈을 얻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엄벙땡’은 얼렁뚱당과 유사한 의미이며, ‘모주꾼’ ‘모주쟁이’는 술을 마시고 주사가 심해 난동을 피우는 사람을 일컸는 말이고, ‘대포쟁이’는 허풍쟁이와 비슷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의미의 단어는 떡볶이, 불고기, 콩나물, 오이지 등이 있네요.
20024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형제인 장동건, 원빈의 행복했던 어린시절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노래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1994년 4월 24일부터 방영된 SBS-TV 예능프로그램 ‘좋은 친구들’에서 옛가요를 소개하는 코너 ‘불멸의 우리 가요’ 첫회에 출연한 배우 겸 인기가수 유채영이 특유의 웃음과 동작으로 불러 큰 인기를 받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빠역에는 ‘박수홍’이 나왔었죠. 2021년 1월 30일 MBC ‘트롯전국체전’과 12월 13일 KBS1-TV ‘가요무대’에서 요정가수 신미래가 간드러지게 부르던〈오빠는 풍각쟁이〉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박향림(朴響林 1921년〜1946년)
☞ 박향림(朴響林 1921년〜1946년) 본명은 박억별. 함경북도 경성(鏡城)에서 태어나 1937년 ‘오케연주단’의 경성 주을온천 공연 때 작곡가 박시춘에게 발탁되었지만, 오케레코드사에는 이난영, 장세정, 이은파 등 최고가수들이 즐비해 1938년 태평레코드사를 찾아가 문예부장인 작사가 박영호를 만나 1937년 11월 예명 박정림으로〈청춘극장〉〈서커스걸〉로 데뷔했고, 1938년 2월 콜럼비아레코드사에 영입되어 예명 박향림으로〈오빠는 풍각쟁이〉〈타국의 여인숙〉〈선창에 울러 왔나〉등을 부른 국민가수입니다.
–〈타국의 여인숙〉– 박영호 작사, 문예부 편곡, 박향림(1938년 콜럼비아레코드사)
1절. (3중창) 부는 바람 우는 물새 모두 낯설어 / 때 묻은 벼개맡에 꿈은 바쁘다
너도 나도 나도 너도 흘러 가는 몸 / 신세의 타령이나 하여 봅시다
2절. (박향림) 요 내 몸은 흘러가는 참빗 장사요 / 고향은 전라도 땅 벌써 다섯 해
조실부모 어린 몸을 바람에 부쳐 / 애송이 열여덟이 차마 가엾다
3절. (신회춘) 요 내 몸은 흘러가는 신약 장사요 / 고향은 황해도 땅 벌써 일곱 해
돈 벌러 간 아들 찾아 이 땅에 왔소 / 을축년 동짓달에 이 땅에 왔소
4절. (남일연) 요 내 몸은 흘러가는 물감 장사요 / 고향은 함경도 땅 벌써 여덟 해
시집가던 그 당년에 소박을 맞어 / 집 떠난 남편 찾어 헤매입니다
5절. (3중창) 우습구려 우습구려 요 세상살이 / 울어도 인생이요 웃어도 인생
빈 손으로 왔다가는 뜬 세상살이 / 울기는 왜 우나요 웃고 삽시다
〈타국의 여인숙〉1938년 국민가수 박향림·남일연·신회춘이 부른 노래로 8월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타국의 여인숙 / 눈물의 금강환(박향림)’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이곡은 세명의 트리오가 5절까지 부르는 아주 독특한 형태의 대중가요입니다. 극작가의 소질을 잘 살린 박영호의 노랫말은 타국의 여인숙에서 만나 서로의 고달픈 신새타령 넋두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한편의 단막극 같습니다. ‘타국의 여인숙’ 위치는 간도지방, 만주지방 등 같은데, 빼앗긴 삼천리 금수강산이 전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1절은 세명이 만나서 신세타령이나 하자는 말이고, 2절은 13살에 부모 잃은 18살 참빗장수 전라도 아가씨의 넋두리. 3절은 을축년이면 1925년으로 홍수로 600여명이 사망한 해라 돈 벌러 간 아들이 걱정돼 찾아 다니는 떠돌이 신약장사의 넋두리. 4절은 시집간 해에 소박 맞고 8년동안 남편을 찾아 나선 물감장수 아낙네의 넋두리가 애닯기만 합니다. 그러나 5절을 들으면 서로의 넋두리를 하고나니 그래도 웃고 살자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신약장사의 넋두리를 보면 이해는 1932년. 그러니까 박영호가 1932년에 가사를 지어 놓았고, 박향림이 1938년 8월에 취입한 곡이겠지요?
다음에는 영원한 범띠 가시내 양미란과 진도가이나 김하정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일치하지않을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