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가위 추석 특집《고향 생각, 고향 노래》(2023.09.25.)
오늘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대한민국 최고의 명절 추석을 맞이해 긴급히 한가위 추석 특집《고향 생각, 고향 노래》를 편성해 함께 행복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추석 한가위를 맞이한 특집 대중가요는 나훈아〈고향역〉,〈귀향〉,〈머나먼 고향〉,오기택〈고향 무정〉,홍세민〈흙에 살리라〉,문일화〈꿈에 본 내 고향〉 6곡을 올립니다.
–〈고향역〉– 임종수 작사·작곡, 나훈아(1972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
이뿐이 곱분이 모두 나와 반겨 주겠지 /
달려라 고향 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2절.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역 /
다정히 손잡고 고개 마루 넘어서 갈 때 /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
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
〈고향역〉1972년 나훈아가 부른 노래로서 원곡은 1970년〈차창에 어린 모습〉으로 노랫말을 짓고 곡을 붙힌 임종수는 어려웠던 학창시절 전라북도 익산의 남성중학교를 다닐 때 ‘이리역’에서 ‘황등역’까지 기차를 타고 통학하던 시절의 감흥을 담아 노래를 만들어 당대 최고의 가수 나훈아에게 주고자 1970년 1월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건너편에 있던 오아시스레코드사를 3개월 동안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5시까지 기다리던 끝에 어느 날 나훈아가 소속사에 온 것을 보고 기다리다 나훈아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무작정 어깨를 잡으니 “와예?” 무명 작곡가의 설명을 들은 나훈아는 곧장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 가서 한번 불러보라고 해 임종수는 자신이 치는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1소절을 부르니 나훈아가 계속 3번을 시켜 듣고서 직접 부른 후 취입을 결정 음반을 발매했지만 밝지 않은 노랫말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듬해 12월 말 오아시스레코드사에 들렸다 우연히 만난 나훈아의 제안 “임선생님! ‘차창에 어린 모습’이 너무 아깝심니더, 어차피 방송도 안됐으니까 슬픈 가사를 빼고 건전하게 고쳐 주이소. 리듬도 트로트에서 고고로 바꿔주시고 예! 고고로 바꾸면은 경쾌하게 들리지 않겠어 예?” 그렇게 탄생한〈고향역〉은 1972년부터 설과 추석 등 명절만 되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흘러나왔습니다. 필자의 셋째 동생 애창곡이〈고향역〉인데 아마 6살 때 고향을 떠나 그렇지 않을까요?
☞ 임종수(1942년)의 고향은 전라북도 순창군. 중학생 때 이리(현 익산시)로 이사해 남성중·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67년〈호반의 등불〉(월견초/나화랑)로 가수로 데뷔했지만 나화랑의 추천으로 작곡가로서 1970년〈차창에 어린 모습〉,1972년〈고향역〉,1976년 하수영〈아내에게 바치는 노래〉,1984년 나훈아〈대동강 편지〉,1989년 태진아〈옥경이〉,1991년 박윤경〈부초〉,1997년 조항조〈남자라는 이유로〉 등을 작곡했습니다.
–〈귀향〉– 백영호 작사·작곡, 나훈아(1973년 지구레코드사)
1절. 목화송이 송이 송이 머리에 이고 /
버렸던 흙냄새를 잊지 못해서 /
비 내리는 모녀고개 넘어올 적에 /
두번 다시 내 고향을 떠나지는 아니하리 /
아아 구름 가듯 세월이 갔네 돌아온 내 고향/
2절. 목화송이 송이 송이 머리에 이고 /
꿈에도 잊지 못할 내 고향인데 /
비 내리는 모녀고개 돌아가 보면 /
이젠 다시 타향 생각 그립다고 아니하리 /
아아 바람 가듯 청춘이 갔네 돌아온 내 고향/
〈귀향〉1973년 나훈아가 부른 노래로 원곡은 1972년 이미자 선생님의〈서울간 님〉입니다. 필자가 이미자 선생님의〈서울간 님〉을 처음 들었을 때 어찌이리 슬픈 노래가 있나 할 정도로 구슬픈 곡이었지만 나훈아의〈귀향〉을 듣는 순간 정말 포근한 고향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귀향이 나오자 설날과 추석 한가위 귀성전쟁이라고 표현하던 시절 귀성열차 등에서는〈귀향〉이 단골 곡으로 전국방방곡곡에 울려퍼졌습니다. “서울가는 서울가는 기차를 타고…아아 가고 싶어 가고 싶어라 님 계신 서울로” “목화송이 송이송이 머리에 이고… 아아 구름 가듯 세월이 갔네 돌아온 내 고향” 두곡 다 한번 불러보세요.
필자는 12살 때 고향 떠나 구리에 정착해 여름방학, 겨울방학과 군 휴가 기간 고향을 찾을 때 서울역에서 통일호 열차를 타고 대전역에서 가락국수 한그릇 후딱 먹고 부산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김해 외할머니 집과 경상남도 김해군 녹산면 생곡리 209번지 고향집과 진해 큰아버님, 작은 고모님, 사촌 큰누나 집을 두루두루 다니다가 부산 동대신동 작은집에 들려 저녁을 먹은 후 부산역에서 마지막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구리 집으로 돌아오던 여정의 ‘귀향’길이 있었습니다. 좌석표가 없으면 입석표를 구입 기차칸의 끝지점과 의자사이 공간에 칼잠을 자면서 가도 고향가는 길은 즐거웠습니다.
–〈머나 먼 고향〉– 박정웅 작사·작곡, 나훈아(1971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
천 리 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2절. 천 리 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머나 먼 고향〉지금은 조금 가까워 보이지만 어릴 때에는 왜 그렇게 고향길이 멀게만 느껴지던지… 한동안 노래방에서〈머나 먼 고향〉(KY. 335, TJ. 547)을 단골로 부르던 때가 있었고, 직장 넘버2의 애창곡이었는데 그 분도 떠난신지 벌써 10여 년이 흘렀네요.
–〈고향 무정〉– 무인도 작사, 서영은 작곡, 오기택(1965년 신세기레코드사)
1절.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아래 /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
잡초에 묻혀있네/
2절. 새들도 집을 찾는 집을 찾는 저 산아래 /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
바다에는 배만 떠있고 어부들 노래소리 /
멎은지 오래일세/ (1994년 11월 21일 KBS 가요무대)
〈고향 무정〉1965년 오기택(1939년∼2022년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이 부른 노래로 작사가 무인도(본명 김득봉, 필명 김운하)는 1966년 설날 파주 임진강 부근에서 열린 이북 5도민 ‘망향제’ 현장에서 이북 고향의 부모님들께 새배를 드릴 때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다가 문득 고향 산천과 월남을 권유한 친구 아버님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면서 고향에 대한 애달픈 그리움으로 절절한 노랫시를 지었고, 코메디언 서영춘(1928년∼1986년)의 형님인 작곡가 서영은이 애잔한 리듬으로 작곡 했으며, 오기택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승화돼 실향민은 물론이고 고향을 떠나 서글픈 타향살이 삶을 살아가는 출향민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고향무정〉은〈흙에 살리라〉〈꿈에 본 내 고향〉등과 함께 각종 ‘고향 노래 베스트 10’ 집계에 꼭 포함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향노래입니다.
–〈흙에 살리라〉– 김정일 작사·작곡, 홍세민(1973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초가삼간 집을 지은 내 고향 정든 땅 /
아기 염소 벗을 삼아 논밭 길을 가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
흙에 살리라/
2절. 물레방아 돌고 도는 내 고향 정든 땅 /
푸른 잔디 베개 삼아 풀 내음을 맡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
나는야 흙에 살리라 내 사랑 순이와 손을 맞잡고 /
흙에 살리라/
〈흙에 살리라〉1973년 홍세민(1950년∼2021년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이 부른 노래로 원창자는 1972년 서정우(1953년 경기도 평택, 본명 서상희)입니다. 2012년 8월 13일 KBS 가요무대에서 서정우가 부른〈흙에 살리라〉를 유튜브에서 보실 수가 있겠습니다. 김정일(1943년 본명 이종원)은 작곡가 데뷔곡인〈흙에 살리라〉의 작사가로도 되어 있지만 실제 작사가는 1997년 데뷔한 걸그룹 S.E.S 리더 바다(1980년 본명 최성희)의 아버님이신 명창 최세월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내 고향 정든 땅”은 고향인 전라남도 완도군이고, “내 사랑 순이”는 어부인, 즉 바다의 어머님이신 조복순님이시라고 하네요.
–〈꿈에 본 내 고향〉– 박두환 작사, 김기태 작곡, 문일화(1943년, 한정무 1954년)
1절.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
저 하늘 저 산아래 아득한 천리 /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2절. 고향을 떠나온 지 몇몇 해던가 /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메는 이몸 /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 잊어/
〈꿈에 본 내 고향〉1943년 문일화가 유랑극단인 ‘반도가극단’ 시절 무대에서 부르던 노래라 대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불리워 전해지면서 음반은 발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부산 피난시절 송달협이 악극단 무대에서 불러 실향민들의 가슴을 울리며 널리 불리워져 다시 큰 인기를 얻었고, 1954년 나진에서 피난온 가수 한정무가 불러서 도미도레코드에서 음반을 발매해 원창가수가 한정무로 알려졌습니다. 2021년 1월 29일 이동순 교수님의「백세시대 금요칼럼」에서 발췌한 ‘꿈에 본 내 고향’「1943년 문일화가 불렀던 노래 – 월남한 한정무가 다시 불러 실향민들에게 큰 인기
해외동포 방문 시 이 노래 부르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어 (중략) 하루는 두 사람이 송도 부근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데 한 취객이 비틀걸음으로 걸어가며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르는 광경을 보았다. 가슴이 울컥해졌다. 한복남은 한정무에게 그때까지 음반으로 나온 적이 없던 이 노래의 취입을 제의했다. 가마니와 미군 담요를 둘러쳐서 엮은 허술하기 짝이 없던 도미도레코드사 녹음실에서 이 노래를 취입했다. 두 실향민의 기획으로 제작 발표된 이 노래는 곧바로 전체 실향민들의 가슴 속으로 젖어 들어 피눈물의 아픔과 서러운 공감을 자아내었다.
한정무는 이 노래의 1절과 2절 사이에 기막힌 대사를 삽입하고 있다. “뜬구름아 물어보자 어머님의 문안을 / 달님아 비춰다오 인성이와 정숙이의 얼굴을 / 생시에 가지 못할 한 많은 운명이라면 / 꿈에라도 보내다오 어머님 무릎 앞에 / 아, 어느 때 바치려나 부모님께 효성을 /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가수가 직접 모놀로그로 엮어가는 이 대사 부분은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면서 귀향 충동을 왈칵 치밀어 오르도록 이끌었다. 한정무는 이 노래를 통해 실향민으로서의 절절한 심정을 유감없이 담아내었다. 눈물에 젖어 파들파들 떨리는 음색과 울먹이는 창법으로 취입한 이 노래는 부산 피난 시절 막장의 삶을 어렵사리 이어가던 실향민들에게 크나큰 공감으로 퍼져나갔다.」
☞ 가수 문일화는 1919년 평양에서 출생해 1935년 럭키레코드사를 통해서〈하이킹의 노래〉(이고범/이경주) 등 6 곡을 발표했습니다. 그 후 ‘반도가극단’ 전속가수와 단장으로 활동했고, 해방 후 1945년 ‘반도 단장’, 1962년 ‘성보 대표’를 역임하는 등 대중음악 발전에 공헌했습니다. 대표곡〈사나이 사랑〉,〈대동강 추억〉,〈아내의 사진〉등입니다.
다음부터는 서울의 개봉관에서 상영된 영화주제가에 대한 글을 50회에 걸쳐 올립니다.
*상기 컬럼은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