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24. 김정구의〈항구의 선술집〉〈눈물의 국경〉〈오월의 노래〉(2025.07.14.)
다가오는 17일은 제73주년 제헌절(制憲節)입니다.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해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합시다. 또한 20일은 삼복(三伏)중 첫 번째인 초복(初伏)이고, 내일은 가수 김정구(1916년∼1998년)님이 태어나신 날입니다.
오늘은 김정구 선생님의〈항구의 선술집〉〈눈물의 국경〉〈유쾌한 봄소식〉〈오월의 노래〉글을 올리겠습니다.
김정구 선생님은 명사십리가 자랑인 함경남도 원산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맏형인 작곡가 김용환과 성악가 누나 김안라, 피아니스트 동생 김정현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음악과 접하며 자랐습니다. 1935년 금강산 입구 ‘온정리교회’에서 노래를 불러 김소동 교수의 권고로 서울로 상경해 1936년 뉴코리아 레코드사에서 여가수 최선과 듀엣으로〈삼번통 아가씨〉(박고송/김용환)로 데뷔했고, 이듬해 오케레코드사로 옮겨〈항구의 선술집〉을 불렀으며, 1939년 대표곡〈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러 가수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밖에도〈왕서방 연서〉〈바다의 고향시〉〈총각진정서〉〈수박행상〉〈낙화삼천〉장세정과〈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가정전선〉등이 있습니다.
특히, 만요 가수로 인기절정이었던 1939년 이후 조선악극단이 일본 공연할 때 동경의 아카사카(赤阪)에 있는 영친왕의 저택에 초대되어 조선악극단이 공연했을 때 김정구가 부르는〈낙화삼천〉을 듣고 영친왕이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정구는 1985년 평양에서 열린 ‘고향방문단 특별공연’에 출연해〈눈물 젖은 두만강〉을 목이 터져라 불렀으며, KBS1-TV ‘가요무대’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1992년 국내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떠나 1998년 9월 25일 그 곳에서 쓸쓸히 작고해 자유로운 영혼이되어 그토록 가고 싶어서 꿈에서도 찾았던 고향땅으로 훨훨 날아갔습니다.
–〈항구의 선술집〉– 박영호 작사, 박시춘 작곡, 김정구(1937년 오케레코드사)
1절. 부어라 마시어라 탄식의 술잔 / 잔 위에 찰랑찰랑 부서진 하소
2절. 사나이 우는 맘을 누가 아리요 / 울래야 울 수 없는 사나이 가슴
3절. 파이프에 연기처럼 흐르는 신세 / 내일은 어느 항구 선술집에서
1937년 2월 ‘오케레코드사’에서 이난영〈연애특급〉과 함께 발매한 곡으로 필명 처녀림, 김다인, 불사조인 작사가 박영호가 아름다운 노랫말을 짓고, 1935년〈몬테카를로의 간난이〉로 작곡가로 데뷔한 박시춘(본명 박순동)님이 곡을 붙혀 그해 오케레코드사로 이적한 김정구님이 불러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곡입니다. 당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서 방황하던 청춘들의 심정을 대변한 노래는, 청년들을 완전히 매료시켜서 그해에만 김정구가 18곡이 넘는 곡을 발표해 최고의 인기가수로 등극하게 한 곡입니다.
그러나 1965년 3월 작사가가 월북했다는 사유로 방송부적합 판정을 받아 금지곡이 되는 수난도 겪었습니다. 김정구는 송달협·장세정 등과 같은 날 오케레코드사에 입시했습니다. 첫곡인〈항구의 선술집〉은 당시 가수의 매너인 부동자세로 불렀지만〈총각진정서〉〈왕서방 연서〉등 만요를 부를 때는 자연스럽게 손짓 발짓 동작과 몸도 비비 꼬면서, 손으로 청중들을 가르키는 동작이 저절로 나왔는데, ‘무대 제스처’의 시초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 음반 발매를 주로하던 가요계에는 점차 연극무대 등 공연에서 가수 출연이 점차 늘어나면서 출연료가 인기 가수는 15원, 일반 가수는 1회 10원, 2회 공연 15원이었다는데, 김정구는 한달에 1천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고 합니다. 당시 큰집 한 채 값이 3백 50원이었다니 어마어마하게 벌었던 것이죠. 가수들의 씀씀이가 커지자 남자가수 주변에는 여성들과의 로맨스가 빈번한 시기에 김정구의 인기는 단연 최고였답니다.
–〈눈물의 국경〉– 박영호 작사, 이시우 작곡, 김정구(1938년 오케레코드사)
1절. 하염 없이 지향 없이 눈썰매는 달린다 / 광야에도 오로라 정처 없이 달린다 /
구름 따라 바람 따라 휘더듬는 국경선 / 썰매의 한 세상이 야속하고 무정해
2절. 지향 없이 향방 없이 눈썰매는 달린다 / 북국에도 저문 날 한정 없이 달린다 /
하소 맺힌 방울소리 흘러가나 내 신세 / 한 많은 보헤미안 얼어 떠는 피눈물
3절. 안타까운 기타소리 마디마디 애절해 / 타향 도는 몸이라 슬프기만 하구나 /
눈물 어린 방울소리 오나 가나 외로워 / 무정한 눈썰매는 갈 길 몰라 우노나
나라 잃은 설움과 배고픔에 지친 우리들의 할머니, 부모님들께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고향땅을 떠나 국경을 넘어 끝없이 살 곳을 찾아갔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유쾌한 봄소식〉– 조명암 작사, 채월탄 작곡, 김정구(1940년)
1절. 남산에 아지랑이 아롱아롱 / 북악산 비둘기는 꾸룩꾸룩 / 에타 좋다 에타 좋다
봄이로구나 / 봄봄봄봄 봄봄 봄봄봄봄 봄봄 / 경복궁 붉은 추녀가 날아갈 듯 /
아가씨 노래가락이 띵똥땡똥 / 구리개 광화문통 자문밖 봄바람 좋다 /
어리구 어허 저리구 어허 / 뻐스걸 웃음에도 봄빛이 어스러진다
2절 한강의 봄 물결은 출렁출렁 / 왕십리 버들가지 넘실넘실 / 에타 좋다 에타 좋다
봄이로구나 / 봄봄봄봄 봄봄 봄봄봄봄 봄봄 / 총각은 가슴을 비틀며 콧노래요 /
아가씨 치마자락이 팔랑팔랑 / 남대문 종로거리 도봉산 봄바람 좋다 /
어리구 어허 저리구 어허 / 세종로 복판으로 봄타령 굴러를 간다
(3절. 남산에 아지랑이 아롱아롱 / 북악산 비둘기는 꾸룩꾸룩 / 에타 좋다 에타 좋다
봄이로구나 / 봄봄봄봄 봄봄 봄봄봄봄 봄봄 / 경북궁 붉은 추녀가 날아갈 듯 /
아가씨 노래가락이 띵똥땡똥 / 구리개 광화문통 자문밖 봄바람 좋다 /
어리구 어허 저리구 어허 / 뻐스걸 웃음에도 봄빛이 어스러진다)
애국시인 이상화(李相和 1901년∼1943년, 대구광역시)는 1926년『개벽』에 실은 시(詩)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나라 잃은 비극적인 현실과 새로 찾아온 봄의 아름다움을 대비하면서,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설움을 울부짖으며 광복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기나긴 겨울을 지나 광복의 봄은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광복의 봄이 찾아왔던 것처럼, 봄은 1940년에도 찾아왔고, 1945년에도 찾아왔으며, 2025년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희망찬 소식과 함께 대한민국에 또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김정구님이〈유쾌한 봄소식〉을 전해줬을 때가 1940년, 그때에도 봄이 찾아와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 필자 가슴 어딘가에 시큰하고 짠하게 다가옵니다.
☞ 노랫말에 서울의 왕십리·종로 지명과 남산·북악산·도봉산·한강, 경복궁·광화문·자문(자하문)·남대문 등 눈익은 이름들이 많이 노랫말에 실려 있어서 상당히 이채롭습니다.
‘구리개’ 생소한 이름이죠? ‘구리개’는 현재 을지로 입구→ 을지로2가→ 충무로1가→ 명동으로 이어지던 지역을 옛날에 부르던 지명입니다. 붉은 황토 흙으로 된 언덕으로 고개가 있어 저녁 햇빛이 비치면 구릿빛으로 보인다 해서 ‘구리고개’라 불리다가 짧아져 ‘구리개’로 변한 것으로 한자 표기는 ‘동현(銅縣)’입니다. ‘구리개’는 ‘진고개’와 이어져 있었는데 구한말 ‘진고개’ 부근에는 일본인들이 거주해 본정(本町, 혼마치)이라 불렀고,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종로 김두한과 혼마치 하야시 장면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리개’ 부근에는 중국인들이 거주하였습니다. 광복 후 1946년 10월 지명을 우리말로 바꿀 때 ‘진고개 지역’은 일본의 기운을 없애기 위해 일본군을 수장시킨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忠武路)’로 ‘구리개 지역’은 중국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수나라 군사를 수장시킨 을지문덕 장군의 성을 따서 ‘을지로(乙支路)’라고 바꾸었던 것입니다.
–〈오월의 노래〉– 고명기 작사, 김광빈 작곡, 김정구(1956년 유니버샬레코드사)
1절. 구름 흘러 떠나간다 언덕넘어 저 하늘 / 설레는 가슴 젊은 가슴 노래를 부릅시다
/ 가벼운 이름 휘파람 소리 남풍따라 흘러간다 / 푸른 넥타이 휘날리는 오월의 사나이
2절. 빛난 아침이란다 너도나도 부르자 / 참새들도 들창 아래 노래를 불러준다 /
명랑한 아침 즐거운 아침 불러보자 청춘 송가 / 오월의 햇빛 젊었구나 오월의 청춘아
〈오월의 노래〉1956년 김정구가 부른 노래로 유니버샬레코드사에서 백설희〈춘보의 노래〉와 함께 발매한 곡으로 본 영상은 1962년 촬영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정구는 밝고, 흥겨운 노래들을 많이 불러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했는데, 전쟁이 끝나고 피폐해진 금수강산과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가수 배호의 외삼촌인 김광빈이 흥겨운 멜로디를 붙혀 김정구가 부른 것입니다. ‘마라카스’를 흔들면서 지휘하시는 분이 김광빈입니다. 발표된 초기에는〈오월의 청춘〉〈오월의 청춘아〉등으로도 불렸습니다.
다음엔 음력 7월 22일이 생신이신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 5곡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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