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30. 쟈니리〈뜨거운 안녕〉위키리〈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 (2025.08.25.)
다가오는 29일은 ‘칠월 칠석날’. 이별하신 견우와 직녀는 올해는 꼭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은 ‘가요계의 영원한 신사’ 쟈니리〈뜨거운 안녕〉〈방랑의 휘파람〉위키리〈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밤차에 만난 사람〉〈미련도 후회도 없다〉5곡의 글을 올립니다.
–〈뜨거운 안녕〉– 백영진 작사, 서영은 작곡, 쟈니리(1966년 신세기레코드사)
1절.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 비둘기 나란히 구구대는데 /
기어이 가신다면 헤어집시다 / 아프게 마음새긴 그말 한마디 / 보내고 밤마다
울음이 나도 /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2절.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 별들이 나란히 손을 잡는 밤 /
기어이 떠난다면 보내드리리 / 너무나 깊이 맺힌 그날 밤 입술 / 긴긴날 그리워
몸부림 쳐도 /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뜨거운 안녕〉쟈니리가 1966년에 부른 노래로 음반은 1968년 신세기레코드사에서 발매했습니다. 노래가 빅히트를 하자 이듬해 동인프로덕션에서 영화로 제작을 했습니다.
각본 서윤성, 김시현 감독, 배우 신영균, 남정임, 장동휘, 독고성, 트위스트김 등이 출연 1967년 6월 10일 서울의「동아극장, 구 아세아극장」에서 개봉이 됐지만 흥행은 별로였습니다. 줄거리는,「한국전쟁이 끝나고 군납업자들간에 이권을 둘러싸고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 그 덕분에 주먹으로 살아가던 영수(신영균)과 남두(독고성)은 폭력조직에 고용된다. 영수는 점차 폭력세계에 회의를 느껴 빠져 나오려고 하지만 왕초(장동휘)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편 고아인 남두가 거리의 부랑아로 다닐 때에 길에서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데려다 키워서 이제는 어였하게 대학생이 된 여동생(남정임)은 오빠의 친구인 영수가 폭력배인 줄도 모르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남두는 누이동생에게 몸이 아파 요양원에 간다고 거짓말을 한후 두사람의 행복을 위해 왕초와 결투를 벌이다 결국 두사람은 혈투 끝에 자동차끼리 부딪혀 모두 자멸하고, 영수와 그의 누이동생은 고인이 된 남두의 뜻을 받들어 착하게 살기로 다짐을 한다.」주제가〈뜨거운 안녕〉은 누이동생을 사랑하게 된 남두가 술집 마담에게 고백을 하고, 술에 취해 거리를 방황 할 때 술집빠 무대에서 쟈니리가〈뜨거운 안녕〉을 부릅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기어이 떠난다면 말없이 고이 보내주겠다는 한 남자의 애련한 뜻이 담긴 쟈니리의〈뜨거운 안녕〉은 음반이 발매되자마자 35만장이 팔려나가 그야말로 대박을 쳤습니다. 그러나 당시 인천에서는 한 연인이 ‘뜨거운 안녕’ 노랫말을 적어 놓고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센티멘탈 리’로 불릴만큼 고독한 성격의 쟈니리는 지금도〈뜨거운 안녕〉을 부를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고 말합니다.
한편 1997년 독일 출신의 가수 니코(Nico)가 랩퍼 XL Singleton과 함께 ‘Kotean Dance Express’란 부제로 트로트 계열 곡을 편곡 흥겨운 댄스곡처럼 만들어 ‘Trot Pop’이란 앨범을 발매했는데, 쟈니리〈뜨거운 안녕〉을 번안한 노래 제목은〈Hrre I Am〉입니다.
☞ 쟈니리(본명 이영길)은 1938년 만주 지린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기생이었던 어머니가 그를 생선장사를 하던 외할머니에게 맡기어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한국전쟁 때 할머니는 남쪽으로 내려가 있으라고 해 홀로 부산으로 피난와 수용소에서 생활하던 중 부산 항만 담당인 미국인 양아버지에게 입양되어서 안정된 생활 속에서 영어와 노래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양아버지가 작고하고 부산에서 다시 숱한 고생 끝에 1958년 서울 종로 극장가로 무작정 상경해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스카라극장」에서 청소와 잔심부름을 하면서 1959년 쇼단체 ‘쇼보트’의 단원으로 입단해 현인, 안다성, 배삼룡 등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1961년 미8군 무대에서 가수활동을 했습니다. 1966년 신세기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쟈니리 가요 앨범’에〈뜨거운 안녕〉〈내일은 해가 뜬다〉〈통금 5분전〉을 발표해 인기가수가 됐습니다. 1974년 미국 이민, 1976년 귀국, 또다시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가 9월 KBS ‘빅쇼’에서 가수 정원과 함께 우정의 라이벌 무대 특집방송에 출연했습니다.
필자가 No 194.에서 들국화 멤버인 전인권〈사노라면〉의 원곡이〈내일은 해가 뜬다〉라고 올렸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독자논단,”고인돌의 트로트 세월따라 사연따라”
–〈방랑의 휘파람〉– Ennio Morricone 작곡, 쟈니리(1971년 신세기레코드사)
1절. 내 사랑을 찾아서 떠나온 마음 / 사나이의 외로움 그 누가 아나 /
방랑의 휘파람 메아리쳐 오면 / 끝없이 끝없이 나는 떠나간다네 /
내 고향을 등지고 홀로 온 마음 / 쓴웃음을 남기며 사랑을 찾아 /
떠도는 하얀 하늘에 휘파람 불며 / 홀로 간다네
2절. 내 사랑을 찾아서 떠나온 마음 / 사나이의 외로움 그 누가 아나 /
휘파람을 불면서 사랑을 찾아 헤매네
〈방랑의 휘파람〉1971년 쟈니리가 부른 노래로 신세기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노래의 성좌, 외국가요 시리즈 제4집’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멜로디가 아주 귀에 익은 곡이죠?
1960∼70년대 미국 서부영화를 보신 분들은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1966년 봄 서울「명보극장」에서 개봉돼 3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세르조 레오네(1929년∼1989년 이탈리아)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클린트 이스트우드 (1930년 미국)가 담배를 오른쪽 입에 담배를 물고 서 있던 장면 기억나실 것입니다.
☞ 스파게티 웨스턴 3부작 :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 전우 작사, 김기웅 작곡, 위키리(1964년 신세기레코드사)
1절. 끝없는 벌판 멀리 지평선에 노을이 물들어 오면 / 외로운 저 목동의 가슴 속엔
아련한 그리움 솟네 / 뭉개구름 저편 산너머로 기러기떼 날으고 / 양떼를 몰고 오는
언덕길에 초생달 빛을 뿌리면 / 구슬픈 피리소리 노래되어 쓸쓸히 메아리 치네
2절. 뭉개구름 저편 산 너머로 기러기떼 날으고 / 양떼를 몰고 오는 언덕길에 초생달
빛을 뿌리면 / 구슬픈 피리소리 노래되어 쓸쓸히 메아리 치네 / 쓸쓸히 메아리 치네 /
쓸쓸히 메아리 치네
〈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위키리가 1964년에 부른 노래로 그랜드레코드사에서 발매한 ‘포 클로버스와 본본사중창, 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1면에는, 위키리〈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종이배〉최희준〈그리운 별아〉〈향수〉박형준〈나홀로 있어도〉유주용〈그대는 오시지 않네〉Side 2면에는, 본본사중창〈까만 눈동자 그 아가씨〉〈사랑은 가고〉〈그리워〉〈황성옛터〉〈방랑자의 노래〉〈좋아요〉등 12곡이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본본사중창’은 ‘봉봉사중창’입니다. ‘포 클로버스(네잎클로버)’는 1963년 결성된 서울대 법대 출신 ‘찐빵 최희준’ 서울대 문리대 출신 ‘멋쟁이 유주용’ 외국어대 출신 ‘도깨비 박형준’ 그리고 서라벌예술대 출신 ‘신당동 콩나물 위키리 이한필’로 구성된 학사출신 4인조 그룹으로〈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을 제1집 타이틀곡으로 실었고, 제2집 발매 후에는 각자 솔로로 활동했습니다. 별명은 코메디언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지었습니다. 어머니가 독일계인 유주용은 경기고, 서울대 출신 가수 윤복희 남편, 누나는 가수 모니카유, 엄토미 악단장 부인 유인경입니다. 대표곡은 1969년〈부모〉입니다. 위키리(1936년 본명 이한필)는 1960년 미8군 쇼단체 ‘메이크 인 후피 쇼’에서 활동하다 1962년 데뷔했습니다. 1960년대 DBS 동아방송의 첫 라디오 교통정보방송 ‘달려라 위키리’ DJ와 1976년부터 배우 정윤희와 함께 TBC-TV ‘쇼쇼쇼’를 진행했고, 1980년 11월 9일부터 KBS1-TV ‘전국노래자랑’ 초대 MC를 5년간 진행하다가 송해 선생님께 사회 마이크를 옮겼습니다. 1992년 미국 LA로 이민해 투병 생활을 하기 전까지 주 5일간 저녁 골든 타임에 2시간씩 교포방송 ‘KATV’에서 ‘굿 이브닝 코리안’을 진행을 하다 2015년 2월 12일 지병으로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미련도 후회도 없다〉– 이달운 작사, 이인권 작곡, 위키리(1966년 그랜드레코드사)
1절. 타고난 사나이의 순정의 목숨 / 의리에 살아야 할 운명이던가 / 거치른 무정가를
걸어야 하던 / 얄궂은 사나이의 과거였지만 / 미련이 있을소냐 후회도 없다
2절. 외로운 사나이의 걸어온 길은 / 의리에 살아야 할 운명이던가 / 황금도 첫사랑도
뿌리쳐 버린 / 지나온 내 청춘이 가여웠지만 / 미련이 있을소냐 후회도 없다
〈미련도 후회도 없다〉는 위키리가 1966년 부른 노래로 그랜드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이인권 작곡집 인생무상’ 앨범에 수록된 B면의 타이틀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 남상규〈인생무상〉〈사랑의 산호초〉〈서울의 로맨스〉박지연〈진주의 노래〉〈봄은 오고 봄은 가고〉정원〈군자대로행〉Side B면에는. 위키리의〈미련도 후회도 없다〉〈자고 가는 저 구름〉전항〈비련의 사나이〉〈태양은 없어져도〉임혜정의〈잃어버린 행복〉이미자 선생님의〈정들여 놓고〉등 12곡이 함께 수록이 돼 있습니다. 1971년 나훈아가 리메이크해 부르기도 했는데, 노랫말에는 태어나서 한 평생을 의리를 지키고 정도를 밟으면서 살아왔기에 삶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남은 인생 “미련도 후회도 없다.”는 너긋한 마음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합시다.
–〈밤차에 만난 사람〉– 월견초 작사, 이인권 작곡, 위키리(1967년 그랜드레코드사)
1절. 밤차에 만난 사람 이름은 몰라도 / 밤차에 만난 사람 간 곳 몰라도 /
우연히 부딛치던 검은 그 눈길 / 어이해 내 가슴에 젖어있는가 /
그날 밤 그 밤차가 아아 아 아아 아아 / 원망스럽소 원망스럽소
2절. 밤차에 만난 사람 다시 또 한번 / 밤차에 만난다면 만나 진다면 /
가슴을 애태우던 지난 세월을 / 하나도 남김 없이 고백하련만 /
밤차는 오고 가도 아아 아 아아 아아 / 만날 길 없네 만날 길 없네
〈밤차에 만난 사람〉위키리가 1967년도에 부른 노래로서 그랜드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이인권 작곡집, 밤차에 만난 사람’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 위키리〈밤차에 만난 사람〉〈항구의 에레나〉오정란〈섬항구 처녀〉남상규〈먼고향〉박가연〈강화도 사랑〉정원〈혼자 사는 사나이〉Side B면. 남상규〈느티나무〉〈청춘선〉이미자 선생님〈종로에레지〉오정란〈광주아가씨〉전항〈그대는 있네〉임혜정〈가을이 준 사랑〉등 12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나훈아가 리메이크한 곡은 1970년 4월 5일 이인권 작곡의 역작 10곡을 묶어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나훈아 스테레오 힛트앨범 제4집’ 앨범에 실었습니다. 작곡자 이인권(1919년∼1973년 본명 임영일)의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 일제강점기 시절에 서울로, 만주로 다니면서 복싱선수, 사업가, 가수, 작곡가 등으로 굴곡진 삶은 곡의 대사에서 그의 인생역로를 볼 수 있습니다. “함경도 사나이는 한도 많은가 ? 고향은 빼앗기고 금순이는 토라지고, 서울 가는 밤차에 만난 그 여인. 한많은 사나이의 사랑을 고백하려해도 이제는 간 곳 없고, 만날 길 없고, 오로지 기적만이 밤하늘에 울려 퍼지네.” 필자도 서울역에서 기차 무궁화호를 타고 고향 부산을 갈 때면 옆자리에 아가씨가 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다음에는 9월 7일 탄생한 항구, 마도로스 노래의 1인자 ‘백야성’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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