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37. 진송남〈바보처럼 울었다〉〈고향 처녀〉〈시오리 솔밭길〉 (2025.10.13.)
지난 11일은 1962년 부산MBC 3기전속가수로 선발돼 1965년〈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데뷔한 진송남의 생신이었습니다. 오늘은 진송남〈바보처럼 울었다〉〈고향 처녀〉〈잘 있거라 공항이여〉〈시오리 솔밭길〉〈나란히 걸읍시다〉5곡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진송남이 말씀하는 데뷔시절.
「첫 출발점은 부산 MBC 1959년 개국과 함께 부산일보사와 공동 주최하는 경남 콩쿠르대회가 있었다. 나는 부산 영도구 대표로 참석해 2등을 했다. 그후 진로소주 제공의 ‘직장대항 가요대전’ 연말 결선전으로 부산 국제극장에서 ‘제1회 MBC 문화방송제’가 열렸는데, 나는 3등을 했다. 1964년 어느날 피아노를 치면서 연습을 하고 있는 진송남에게 어느날 백영호 선생이 “야! 송남아 니 이제 전속가수 그만하고 내 따라 서울로 올라가자. 내 일도 좀 도와주고, 니 취입시켜 줄께”라고 했다. 그때 백영호 선생은〈동백아가씨〉를 빅히트 시키고서 밀려드는 주제가 등 많은 일로 도와줄 제자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그즈음 지구레코드엔〈동백 아가씨〉이후 매일같이 녹음을 했다. 취입실에 사무실이 함께있어 매일 살다시피 하다보니 여러 작곡가 선생님들의 타이틀곡과 구색곡을 많이 부르게 되었다. 다음해 영화주제가〈인정사정 볼 것없다〉(권용/백영호)를 발표했다. 이 노래는 후랑크 백씨가 부르고 지방공연을 떠났다. 영화사에서 그 음악을 들어보고 액션영화에 어울리도록 박력 있게 노래를 고쳐 달라고 해서 중간 부분부터 뒷 부분을 고친 백선생이 “야! 이거 남일해 줄까? 김상국이 줄까?” 하자 “선생님, 그거 제가하면 안되겠습니꺼? 그래서 내가 부르게 되었고, 결국은 나의 데뷔곡이 됐다.
백영호 선생과 영화 촬영장인 ‘홍콩빠’로 가서 그곳 무대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영화가 히트하고 노래도 따라서 유행하였다. 어느날 버스를 타고서 가는데 어린아이가 동냥을 하면서〈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불렀다 나는 너무 감동해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몽땅 털어주고 내릴 때에 차비가 없어 난감했다. 어느날 아침에 한산도씨 댁에 들어 갔는데 반색하시며 빨리 들어오라고 했다. ‘이미자씨’에게 주려고 밤새 작곡을 했다며 악보를 내밀어 그 악보를 보는 순간 소름이 돋는 감동과 충격으로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정두수씨가 쓴 첫 가요 작사인〈덕수궁 돌담길〉가사와 곡이 너무도 맘에 들고 욕심이 생겼다. 해가 질 무렵이 될 때까지 부르고 싶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있다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형님! 이 노래 내가 좀 부르면 안되겠습니꺼?” 했다. 힐끗 바라보던 한산도씨가 “뭐 안될끼야 있겠노” 노래가 발표되자마자 큰 반응을 불렀고, 판 주문이 밀려 들었다. 그후부터 왕성한 활동을 하다 군대에 갔다.」
–〈바보처럼 울었다〉– 한산도 작사·작곡, 진송남(1967년 지구레코드사)
1절. 그렇게 그렇게 사랑을 하면서도 / 어이해 어이해 말 한 마디 못한 채 /
바보처럼 바보처럼 그 님을 잃어 버리고 / 고까짓 것 해 보건만 아무래도 못 잊어 /
아무래도 못 잊어서 바보처럼 울었다 / 목을 놓아 울었다
2절. 차라리 차라리 생각을 말자해도 / 너무나 너무나 사랑했던 까닭에 /
바보처럼 바보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해 / 수소문을 해 보건만 찾을 길이 막연해 /
찾을 길이 막연해서 바보처럼 울었다 / 소리치며 울었다
〈바보처럼 울었다〉진송남이 1967년 부른 노래로서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한산도 작곡집 제 2집, 바보처럼 울었다 / 다대포 처녀’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 진송남〈바보처럼 울었다〉〈나는 외톨이〉〈죽도록 미워해도〉〈내일은 맑은 날씨〉문주란〈외등이 켜진 거리〉조계숙〈그리운 하동포구〉SIDE B면. 이미자 선생님〈다대포 처녀〉〈별하나 나 하나〉〈불광동 밤길〉진송남〈먼 사랑〉〈먼 길〉문주란〈한 마리 사슴〉등 12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진송남은 부산의 동아중학교와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MBC에서 3년간 남상규, 후랑크백, 케리부룩 등과 전속가수로 활동하다 1965년〈인정사정 볼 것없다〉로 주목받고, 1966년〈덕수궁 돌담길〉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1967년〈바보처럼 울었다〉로 톱가수 대열에 합류했던 것입니다. 당시 최고의 작곡가인 백영호, 박춘석, 한산도, 손석우 등의 노래를 오직 지구레코드사를 통해서만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남진, 박일남, 태원 등과 함께 해병대 연예대에 입대했을 때에는 신고식으로〈바보처럼 울었다〉를 부르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군생활도 힘들텐데 자신의 히트곡을 부르면서 속으로는 진짜로 울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잘 있거라 공항이여〉– 김준규 작사, 김준규 작곡, 진송남(1973년 지구레코드사)
1절. 안개 짙은 김포공항 가로등도 내 마음 같이 / 떠나가는 그 사람을 아쉬워 하네 /
수 많은 사연들을 안개 속에 묻어 버리고 / 웃으면서 보내리다 잘 있거라 공항이여
2절. 이슬내린 활주로에 그 사람을 멀리 보내고 / 돌아서는 이 발길은 한없이 무겁구나
/ 졸고 있는 가로등아 너와 나는 친구되어 / 그리우면 찾아오리다 잘 있거라 공항이여
〈잘있거라 공항이여〉진송남이 1973년 부른 노래로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진송남 스테레오 독집, 오! 임아 / 비와 함께’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오! 임아〉〈잘 있거라 공항이여〉〈연인의 블루스〉〈덕수궁 돌담길〉〈역에선 가로등〉Side B면엔.〈비와 함께〉〈웃으며 안녕〉〈고백해야지〉〈바보처럼 울었다〉〈남국의 향수〉등 10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1975년 문주란이 리메이크해 불렀습니다.
–〈고향 처녀〉– 임석호 작사, 임석호 작곡, 진송남(1974년 지구레코드사)
1절. 고향을 떠나온 지 어느듯 몇해 생각하면 마음 설렌다 / 두고 온 그 사람 보고싶은 그 사람 생각하면 마음 설렌다 / 앞산 뒷동네에 어제 불던 바람이 고향소식 전해 올 때면 / 나는 하루에도 하루에도 몇번씩 고향처녀 생각이 난다 / 고향을 떠난온지 어느듯 몇해 생각하면 마음설렌다 / 두고 온 그 사람 보고싶은 그 사람 생각하면 마음설렌다
2절. 앞산 뒷동네에 어제 불던 바람이 고향 소식 전해 올때면 / 나는 하루에도 하루에도
몇번씩 고향처녀 생각이 난다 / 고향을 떠나온 지 어느듯 몇해 생각하면 마음 설렌다 / 두고 온 그 사람 보고 싶은 그 사람 / 생각하면 마음 설렌다
〈고향 처녀〉진송남이 1974년 부른 노래로 5월 5일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임석호 작곡집, 고향처녀 / 멋진 인생’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1면.〈고향 처녀〉〈좋아요 좋아요〉〈옛임 생각〉〈바보처럼 울었다〉〈사랑은 싫어요〉SIDE 2면.〈멋진 인생〉〈인생은 나그네〉〈그 소녀〉〈덕수궁 돌담길〉〈고향〉등이 수록돼 있습니다. 이 노래는 진송남이 남진, 여운, 박일남 등과 함께 해병 청룡부대에 배치되어 월남으로 떠나면서 연예 활동이 중단되었고, 1972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후 1974년 독집앨범 ‘진송남 힛트송 앨범’에 실린 타이틀곡〈고향 처녀〉가 히트하면서 제 2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1976년 문성재가 가수데뷔하면서 리메이크해 불렀습니다.
–〈시오리 솔밭길〉– 정두수 작사, 김준규 작곡, 진송남(1977년 지구레코드사)
1절. 솔바람 소리에 잠이 깨이면 /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나선 시오리길 /
학교가는 솔밭길은 멀고 험하여도 / 투정 없이 다니던 꿈같은 세월이여 /
어린 나의 졸업식 날 홀어머니는 / 내 손목을 부여 잡고 슬피 우셨오 /
산새들 소리에 날이 밝으면 /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나선 시오리길
2절. 학교 가는 솔밭길은 멀고 험하여도 / 투정 없이 다니던 꿈같은 세월이여 /
어린 나의 졸업식 날 홀어머니는 / 내 손목을 부여 잡고 슬피 우셨오 /
산새들 소리에 날이 밝으면 /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나선 시오리길
〈시오리 솔밭길〉진송남이 1977년 부른 노래로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김준규 작곡집, 시오리 솔밭길 / 임찾아 가야겠네’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1면.〈시오리 솔밭길〉〈시오리 솔밭길(대사)〉〈아름다운 이 강산〉〈옛집〉〈잘 있거라 공항이여〉〈밤의 이야기〉side 2면.〈임찾아 가야겠네〉〈공항은 말이없네〉〈그대여 변치마오〉〈이슬비〉〈오! 임아〉〈그리운 영아〉등 12곡이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오리 솔밭길〉에 얽힌 사연「어느 아주 깊은 산골 아주 가난한 집에 어린 소녀가 매일 같이 엄마 손을 잡고 시오리(6킬로미터)나 되는 산길을 따라 초등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어느덧 세월도 흘러 그 어린 소녀가 자라나서 바로 그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니던 초등학교에 선생님이 되어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딸 자식이 선생님이 되었다고 기뻐하시던 홀어머니는 삶의 질고에 시달리다 얼마 후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 나서던 그 솔밭길을 이제는 엄마가 되어서 자신의 아이와 손을 잡고 학교가는 세월에 이르렀습니다. 문득 어머님이 그리워지면 자신의 아이와 함께 어머니 무덤을 찾게되고 보니 그제서야 홀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가를 깨닫게 되어 울면서 가슴 시린 ‘시오리 솔밭길’ 시(詩)를 쓰게 됩니다.」
2013년 가요산맥 정두수 선생님을 모시고 하동을 처음 방문했을 때 선생님의 모교인 ‘고전초등학교’를 지나시면서 “안과장! 저 옆에 솔밭길이 진송남이가 불렀던〈시오리 솔밭길〉의 고향이야.” “네에!” “내가 어릴 때 지나다니던 곳이지” “네에!!!” “그리고 저 반대방향에 고개가 보이지” “네!” “저 고개가 김상진이 부른〈도라지 고갯길〉이 태어난 곳이지” “저 고개가요?” “그래! 내가 어릴 때 저 고개를 넘어서 외갓집에 놀러가고 그랬지” “네, 그 시절이 다시 가고 싶으시겠네요?” “그럼, 참 좋았던 시절이었지 그립구먼.”
–〈나란히 걸읍시다〉– 김설강 작사, 이동훈 작곡, 진송남·한인식(1991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나란히 나란히 걸어 갑시다 / 당신과 나 어느덧 머리엔 서리 내리고 /
눈가에 피어난 잔주름 깊어 가는구려 / 여보 우리 잔칫날 발맞추던 사뿐한 걸음새로
/ 한 자국도 앞서지 말고 뒤서지도 말고 / 나란히 나란히 걸음 맞추어 /
누구도 먼저 가지 말고 우리 함께 갑시다
2절. 나란히 나란히 걸어 갑시다 / 당신과 나 어느덧 머리엔 서리 내리고 /
눈가에 피어난 잔주름 깊어 가는구려 / 여보 우리 잔칫날 발맞추던 사뿐한 걸음새로
/ 한 자국도 앞서지 말고 뒤서지도 말고 / 나란히 나란히 걸음 맞추어 /
누구도 먼저 가지 말고 우리 함께 갑시다
〈나란히 걸읍시다〉진송남·한인식 부부가 1991년 부른 노래로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진송남 나란히 걸읍시다 / 바보처럼 울었다’ 앨범에 실려있는 타이틀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나란히 걸읍시다〉〈인생은 나그네〉〈사랑 만들기〉〈제 3자〉〈그해 겨울의 연가〉〈부산 가시내〉 Side B면.〈바보처럼 울었다〉〈오! 님아〉〈덕수궁 돌담길〉〈고향처녀〉〈잘 있거라 공항이여〉〈사랑때문에〉가 수록돼 있습니다.
한인식 말씀 “고등학교 여학생시절〈덕수궁 돌담길〉이 막 히트를 할 때 친정 오빠 친구들이 한무리씩 자주 집으로 놀러왔다가 어느날 오빠 친구의 친구인 진송남이 함께와서 언니하고 가수가 우리집에 왔다며 소곤소곤했는데, 가수지만 별로 세련돼 보이지도 않고 그저 동네오빠 같이 편안한 인상이었고, 그후에 이상하게 저희 집을 자주 들락날락 했습니다. 길가에서 파는 군밤과 옷핀으로 찍어 먹던 해삼, 멍게를 사먹으면서 늑대에게 홀랑 넘어간 어린양이었습니다.”(^^) “데이트 하면서〈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가면 데이터하시던 분들이 그 노래를 부르면서 갔는데, TV가 많이 없던 시절이라 잘 모르더군요.”
귀엽고 예쁜 손녀 보는 재미로 산다는 진송남·한인식 부부의 행복한 꽃길을 기원합니다. 필자도 어부인과 첫데이트한 지도 어느덧 40년이 넘었네요. 기념 선물은 현금 5백만원.
다음에는 나애심의 탄신일을 맞아〈밤의 탱고〉〈백치 아다다〉등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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