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73. 원방현〈꽃중의 꽃〉,〈봉덕사의 종소리〉, 허민〈페루샤 왕자〉(2026.06.22.)
다가오는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다시는 이땅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그날의 비극을 우리들의 가슴속 깊이 새기면서, 오늘은 원방현 1957년〈꽃중의 꽃〉과 1955년〈피난길 고향길〉1956년〈봉덕사 종소리〉〈청춘 쌍곡선〉그리고 김해 출신의 가수 허민 1954년〈페루샤 왕자〉5곡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꽃중의 꽃〉– 서일수 작사, 황문평 작곡, 원방현(1957년 신세기레코드사)
1절. 꽃 중의 꽃 무궁화 꽃 삼천만의 가슴에 / 피었네 피었네 영원히 피었네
백두산 상상봉에 한라산 언덕위에 / 민족의 얼이 되어 아름답게 피었네
2절. 별 중의 별 창공의 별 삼천만의 가슴에 / 빛나네 빛나네 영원히 빛나네
이 강산 온 누리에 조국의 하늘위에 / 민족의 꽃이 되어 아름답게 빛나네
〈꽃중의 꽃〉은 1957년 국민가수 원방현(1928년〜2001년 본명 원구현)이 부른 노래로 신세기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꽃중의 꽃 / 내 사랑 그대에게(김용만)’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1956년 공보처에 오재경 공보실장이 취임하면서 해방 후 우리나라 대중가요도 왜색에서 탈피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불리워 지고 있어 진정한 우리의 대중가요 보급 운동을 펼치자 ‘KBS 전속가수인 원방현·송민도·금사향·권혜경·안다성’ 등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다 1957년 6월에 공보처에서 ‘백만인의 노래 건전 가요 보급 운동’을 벌였을 때 작곡가 황문평(1920년∼2004년)은 1951년 부산 종군극작가단에 있을 때 뮤지컬 ‘루포루타쥬’ 공연시 사용한 노래 중〈꽃중의 꽃〉을 출품하여 선정된 곡이라고 합니다. 맑고 깨끗한 국민가요〈꽃중의 꽃〉은 처음에는 경신고등학교 음악교사인 테너 강준희가 불렀으나, 그 뒤에 대중가수 이인권·송민도·원방현 등이 노래를 부르면서 대중들 사이에 크게 유행을 했고, 그후에 ‘선명회 합창단’에서도 불렀습니다.
1956년 뮤지컬 ‘다시 만날 때’ 극본 박노홍, 연출 허남실, 공연 창공악단, 주연 소프라노 서혜영, 영화배우 최봉 등이 출연했습니다. 1951년 신문보도 ‘빛을 잃은 상이용사를 위해 일생동안 그의 지팡이가 되었다’「한국전쟁 때 육군 호랑이부대(사단장 김종원 대령)가 영덕작전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던 한 소대장이 적의 수류탄을 맞고 실명해 육군병원에 입원했고, 이 병원에 위문을왔던 한 처녀가 이 장교를 위해 일생을 바쳐 그의 아내가 될 것을 맹세했습니다. 이 소대장은 임억재(任億宰) 대위였다 합니다.」무궁화를 상징하는〈꽃중의 꽃〉은 국민가요입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노래를 주로 불렀던 원방현님의〈꽃중의 꽃〉아주 좋은 곡입니다.
–〈피난길 고향길〉– 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 원방현(1955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강 건너 산을 넘어 비바람 속에 / 피난길 떠나왔오 천리길 왔오 /
일가도 친척없는 부산항구에 / 갈매기 벗을 삼아 갈매기 벗을 삼아 정을 맺었오
2절. 오늘도 어젯날도 밤낮을 잃고 / 우렁찬 생산공장 용사가 되어 /
힘차게 돌아가는 모타소리에 / 언제나 낙을 삼어 언제나 낙을 삼어 힘을 내었오
3절. 수륙길 마음놓고 갈 수 있는 날 / 고향을 찾으리다 태극기 아래 /
한시도 잊지 못할 부모님 전에 / 목메여 인사하리 목메여 인사하리 무릎 꿇고서
〈피난길 고향길〉1955년 국민가수 원방현이 부른 노래로 신태양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신태양 가요 힛트 앨범 제4집’ 앨범의 타이틀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 원방현〈피난 길 고향 길〉백일희〈센치멘탈 부루스〉박재홍〈금남아 다시보자〉황금심〈노들강〉SIDE B면. 장세정〈워듸꾸냥〉현인〈타국선〉오정심〈비오는 밤 탱고〉김선영〈마도로스 주장〉등 8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작사가 천봉(1923년∼1989년)의 본명은 천상률,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악극단 공연을 쫒아다니면서 작사가의 꿈을 키웠고, 1948년〈한 많은 천마산〉으로 데뷔해 한국전쟁 때인 1952년 부산 대영극장 사업부장으로 부산으로 피란 온 대중가요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도미도레코드사 대표인 작곡가 한복남과 가장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 시기에 천봉(千峯)을 필명으로 첫 히트곡인〈피난길 고향길〉을 발표하면서 히트곡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표곡들은 1955년 김정애〈앵두나무 처녀〉1956년 남인수〈이별 슬픈 플렛홈〉정향〈방랑일기〉한복남〈엽전 열닷냥〉방운아〈부산 행진곡〉남백송·심연옥〈전화통신〉1958년 김용만〈부산 마도로스〉손인호〈짝사랑〉〈동백꽃 일기〉신해성〈온천의 하룻밤〉1959년 손인호〈청춘등대〉이미자 선생님 1965년〈저이가 누구시더라〉1966년〈꽃피는 여수바다〉1969년 고봉산〈울지마 철진아〉등 다수의 히트곡들이 있습니다. 작사가 천봉은 부산에서 태어나 평생동안 고향 부산을 떠나지 않고, 오로지 부산에서 창작활동으로 히트곡을 양산하다 부산에서 마지막을 보낸 진정한 ‘부산사나이’였습니다.
–〈봉덕사의 종소리〉– 김병철 작사, 박시춘 작곡, 원방현(1956년 유니버샬레코드사)
1절. 금자동아 은자동아 수명장수 효녀동아 / 왕생불사 봉덕이는 영세불망 종이되어 /
어머니의 참사랑을 천만번 불러보는 / 에밀레 아아아 엄마찾는 그 종소리 구슬프다
2절. 들고보면 달덩이냐 안고보면 해덩이냐 / 방실방실 봉덕이는 구름속에 봉학타고 /
어머니의 젖가슴을 천만번 찾으면서 / 에림레 아아아 엄마찾는 그 종소리 애달프다
〈봉덕사의 종소리〉1956년 국민가수 원방현이 부른 노래로서 유니버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봉덕사의 종소리 / 경주의 노래(백설희)’ SP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봉덕사’ (奉德寺)는 신라 제34대 성덕왕이 태종무열왕을 위해 서라벌(현재 경주) 북촌(北村)에 창건한 사찰로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왕을 위해 황금 12만근(1997년 국립 경주박물관 측정기록 18.9톤)으로 대종(大鐘)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고, 771년 아들 혜공왕이 완성해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cm)이라 명명했으며, 일명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소실되어 사찰터만 남아있어 복원이 시급합니다.〈봉덕사의 종소리〉는 1962년 12월 20일 ‘성덕대왕 신종’이 국보 제29호로 지정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 곡입니다.
‘에밀레종’ 전설「경덕왕은 부왕인 성덕대왕을 기리기 위해 대종을 만들라고 신하에게 명을 하자 신라에서 종을 가장 잘 만드는 ‘일진’이 종이 완성되어 봉덕사 스님이 힘껏 종을 쳤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스님들은 전국을 돌면서 백성들에게 동과 쇠붙이 등을 시주로 받았습니다. 어린 아들 ‘외동덕’과 둘이 살던 홀어머니는 시주를 못했습니다. 어느 날 봉덕사 주지스님이 꿈속에서 “며칠전 시주를 받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집의 아이를 데려오너라. 그 아이가 들어가야 되느니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스님이 다시 그 집을 찾자 홀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정을 하다가 아기를 내놓고 말았습니다. 아기가 펄펄 끓는 쇳물 속에 넣어져 완성된 그 대종의 맑은 종소리 속에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섞여 나왔는데, 그 소리는 아기가 어머니를 애타게 찾는 듯한 소리였습니다.」당시 신라 백성들은 “한번 치면 에미 에미, 두번 치면 예미 예미, 세번 치면 어미 어미 / 삼십삼천을 굴리치면 에밀에밀 하는구나”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며 외봉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합니다. 에밀레종 전설 슬프요.
–〈청춘 쌍곡선〉– 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원방현(1956년 노벨레코드사)
1절. (백) 청춘은 꿈이런가 아름다운 호시절 / 새파란 젊은 꿈은 즐겁게 즐겁게
피어난다 / 희망이 넘실대는 저 멀리 검푸른 수평선에 / 청춘을 꿈을 싣고 달린다
달려간다 / (원) 이 아름다운 해변에 / 청춘의 쌍곡선은 정담을 속삭이며 /
아득한 먼 바다에 슬픔도 괴롬도 보내고서 / 청춘을 아름답게 꾸민다 꾸며간다
(백) 파도가 밀려드는 아름다운 바닷가 / 청춘의 쌍곡선은 내일의 행복을 속삭이며
(백·원) 사랑아 굳세어라 갈매기 노래를 즐기면서 / 청춘을 아름답게 꾸민다 꾸며간다
〈청춘 쌍곡선〉1956년 백설희·원방현이 부른 영화 ‘청춘쌍곡선’ 주제가로 노벨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청춘 쌍곡선 / 마음의 창을 열고(백설희)’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영화. 제작 한형모푸로덕슌, 원작 손기현. 각본·각색 김소동, 한형모 감독. 배우 황해, 지학자, 양훈, 이빈화, 복혜숙, 지방열, 고선애, 양석천, 김희갑, 경윤수, 김진희, 김오헌, 특별출연 박시춘, 김시스터즈 김애자·김숙자·이민자, 전방일 등이 출연 1956년 4월 10일 서울의「중앙극장」에서 개봉된 우리나라 최초의 코메디 영화로서 1950년대 최고의 희극영화로 평가를 받았습니다.「가난한 집안의 명호(황해)와 부잣집 아들 부남(양훈)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아파서 병원을 찾아 의사(박시춘)으로부터 한 사람은 너무 못 먹어서, 한 사람은 너무 잘 먹어서 생긴 병이라며 2주일 동안 환경을 바꿔서 살아 보라고 권유하자 내키지는 않지만 그렇게 생활을 하자 합의를 해 불편한 생활을 했지만, 서로의 여동생(이빈화, 지학자)에게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더니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국 쌍쌍이 혼인하게 된다.」잘 사는 가정과 가난한 가정을 풍자적으로 묘사해 웃음과 눈물, 사랑을 엮은 명랑 코메디와 뮤지컬 요소가 섞인 영화입니다. 의사 박시춘 기타 반주에 간호사들인 김트리오가〈즐거운 토요일〉을 부르고 김희갑이〈이별의 부산정거장〉〈신라의 달밤〉을 백설희·원방현이〈청춘쌍곡선〉을 부릅니다.
영화의 배경이된 당시 부산의 생활상도 엿 볼 수가 있는데, 특이한 것은 영화 타이틀 백은 당시 경향신문사 시사만화 ‘두꺼비’로 유명한 만화가 안의섭의 작품인 것입니다. 또한 ‘훌쭉이와 뚱뚱이’로 유명한 양석천과 양훈은 이 작품을 계기로 콤비가 됐습니다.
–〈페루샤 왕자〉– 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허민(1954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페르샤 왕자 / 눈 감으면 찾아 드는 검은 그림자 /
가슴에다 불을 놓고 재를 뿌리는 / 아라비아 공주는 꿈 속의 공주 /
오늘 밤도 외로운 밤 별빛이 흐린다
2절. 약해서야 될 말인다 페르샤 왕자 / 모래 알을 움켜 쥐고 소근 거려도 /
어이 해서 사랑에는 약해지는가 / 아라비아 공주는 마법사 공주 /
오늘 밤도 혼을 빼는 촛불이 꺼진다
〈페루샤 왕자〉1954년 국민가수 허민이 부른 노래로 도미도레코드사 발매한 ‘백마강 / 페루샤 왕자’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페루샤 왕자〉이 곡은 1950년 현인〈인도의 향불〉과 함께 아라비아의 신비를 노래한 대표적인 곡인데, 한복남이 1951년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동회 사무실을 빌려 국제시장에서 구입한 미군 담요와 쌀가마니로 벽을 막아 녹음실을 만들어 1954년 첫취입곡 금사향〈홍콩아가씨〉박재홍〈물레방아 도는 내력〉을 악기점에 내다 팔아 ‘도미도레코드사’를 설립〈페루샤 왕자〉〈백마강〉으로 신인 가수 허민을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당시「한복남의 신곡 발표와 신인 가수 허민의 열창 ‘페루샤 왕자’ 선전 포스트가 부산 시내를 대중가요의 세계로 몰아갔습니다.
다음에는 한복남〈저무는 충무로〉옥두옥〈눈물의 오리정〉등에 대한 글을 올립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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