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209.〈비애 부르스〉〈고향초〉〈여옥의 노래〉 (2025.03.31.)
다가오는 4월 3일은 가수 박경원님과 송민도님께서 태어나신 날입니다. 그리고 4일은 청명(淸明), 5일은 한식(寒食)이니 모두 조상님 산소도 정비하시고 잘모셔야겠습니다.
먼저, 박경원 1954년〈비애 부르스〉1958년〈남성 넘버원〉2곡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비애 부루스〉– 세고천 작사, 전오승 작곡, 박경원(1954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어느날 그대와 헤어지던 가로등불 깜빡빰빡 / 이 밤도 이 마음 외롭게하는
희미한 등불 / 밤 마다 잊을려고 하늘을 보며 별들의 노래를 들어보련다 /
저 달을 바라보니 저 별을 바라보니 아쉬운만이 / 나를 울리누나 나를 울리누나
이 밤이 다 가도록 / 나 홀로 그 님만을 나 홀로 그 님만을 불러봅니다
2절. 고요히 바람에 스며드는 풀잎 속의 노래 소리 / 한없이 내 맘을 슬프게하는
어둠의 장막 / 오늘도 달빛 따라 별빛을 따라 나 홀로 그 님을 찾아간다 /
저 달을 바라보니 저 별을 바라보니 아쉬움만이 / 나의 마음속을 나의 마음속을
파고 드는 그대여 / 영원히 그 님만을 영원히 그 님만을 불러봅니다
〈비애 부루스〉1954년 박경원이 부른 노래로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백마야 울지마라(명국환) / 비애 부루스’ SP음반에 실려 있는 데뷔곡입니다. 박경원(1931년∼2007년 인천 중구 신포동 출생)은 동국대학교 2학년 때 1952년에 백난아〈찔레꽃〉(1942년 태평레코드사)의 작곡가 김교성이 경영하던「계림극장」에서 주최한 ‘전국 남녀 가요 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때에 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전오승(1923년∼2016년)에게 발탁돼 1954년 오아시스레코드사를 통해〈비애 부르스〉(悲哀)를 부르면서 가수로 데뷔했던 것입니다. 작사가 세고천은 작곡가 전오승(본명 전봉수, 나애심 오빠)의 필명이고, 세고석도 그의 필명입니다.
1956년 KBS에서 건전가요 보급을 위해 전속가수단을 모집할 때 KBS 경음악단 출신인 전오승이 박경원과 명국환을 KBS전속가수단원으로 추천해 세 사람은 늘 함께 음악활동을 했습니다. 박경원은 1961년 9월 해병대(병 121기)에 입대해 1964년 2월 전역 때까지 동기 최희준(1936년∼2018년), 도미(1934년∼2010년)와 함께 해병대 연희대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청춘의 화려한 감성과 낭만이 가득 실려 있는 정감 어린 대표곡은 1955년〈이별의 인천항〉1958년〈만리포 사랑〉1958년〈남성 넘버원〉1965년〈내 고향 마산항〉〈청춘은 산맥을 타고〉입니다. 1994년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해수욕장에〈만리포 사랑〉과 1999년 인천광역시 중구 월미도와 연안부두에〈이별의 인천항〉노래비가 세워졌습니다.
–〈남성 넘버원〉–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박경원(1958년 미도파레코드사)
1절. 유학을 하고 영어를 하고 / 박사호 붙어야만 남자인가요 /
나라에 충성하고 정의에 살고 / 친구간 의리있고 인정 베풀고 /
남에겐 친절하고 겸손을 하는 / 이러한 남자래야 남성 남버원
2절. 다방을 가고 영화를 보고 / 사교춤 추어야만 여자인가요 /
가난한 집안 살림 나라의 살림 / 알뜰히 살뜰히로 두루 살피며 /
때묻은 행주치마 정성이 어린 / 이러한 아낙네가 여성 남버원
3절. 대학을 나와 벼슬을 하고 / 공명을 떨쳐야만 대장부인가 /
부모님 효도하고 공경을 하고 /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 위하고 /
귀여운 자녀교육 걱정을 하는 / 이러한 남녀래야 한국 남녀요
〈남성 넘버원〉1958년 박경원이 부른 노래로 미도파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남성 NO.1 / 보이프랜드(백설희)’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대한민국의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전쟁 후의 시대 분위기가 급변해 가던 과도기에 나온 대중가요로 경쾌한 멜로디와 당시 사회상을 풍자한 노랫말로 인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곡입니다. 1963년 미도파레코드사에서 ‘박경원, 남성 NO.1’ 앨범도 발매했는데, 음반에는 Side A면. 박경원〈남성 NO.1〉백설희〈홍콩에서 흘러온 여자〉안다성〈타향무대〉황금심〈미우나 고우나〉Side B면. 최숙자〈삼다도 소식〉도미〈신라의 북소리〉백설희〈그리운 눈동자〉방태원〈여수야화〉가 수록됐습니다. 필자가 노래를 처음들은 고등학생시절 ‘남성 넘버원’이라는 가사때문에 따라 부르면서 괜히 어깨를 으쓱하던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다음은 송민도〈나 하나의 사랑〉,〈청춘 목장〉,〈행복의 일요일〉3곡을 올려드립니다.
–〈나 하나의 사랑〉– 손석우 작사, 손석우 작곡, 송민도(1955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 /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소
2절. 나 혼자만을 그대여 생각해 주 / 나 혼자만을 그대여 사랑해 주 /
나 혼자만을 그대는 믿어주고 / 영원히 영원히 변함없이 사랑해 주
〈
나 하나의 사랑〉1955년 송민도가 부른 노래로 1956년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나 하나의 사랑 / 추억의 다방(신세영)’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악단장인 손석우가 처음으로 만든 대중가요로 손석우님 회고「“전쟁이 끝나고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경음악단장으로 재직하던 어느 가을 밤, 기타를 안고 있는데 어떤 모티브가 떠올랐고, 이를 음악으로 옮겨보니 간결한 선율에 32소절의 왈츠가 되었다.” 그렇지만 가사는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 임신한 몸으로 잠들어 있는 아내를 보는 순간 고생만 시켜 미안한 마음에 내 자신에 대한 반성과 죄책감이 밀려오면서 떠오른 가사가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로 시작하는 곡이 완성됐습니다.“」간결한 가사와 평탄한 멜로디로 따라 부르기 쉬운〈나 하나의 사랑〉은 전쟁에 시달린 국민들이 마음을 위로하는 큰 힘으로 작용되어 인기를 얻었고, 혼인식장의 축가로도 많이 불리웠다고 합니다.
〈나 하나의 사랑〉은 한형모 감독, 김의향, 김진규, 조미령, 이대엽, 장동휘, 서애자, 박암 등이 출연한 영화 ‘나 혼자만이’로 제작되어 1958년 4월 5일 서울의「국도극장」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영화에서 주제가는 권혜경(1931년∼2008년)이 불렀다 합니다.
–〈청춘 목장〉– 손석우 작사, 송민영 작곡, 송민도(1957년 킹스타레코드사)
1절. 날이 샌다 목장에 아침이 온다 / 사랑하는 그대여 어서 일어나 / 아름다운 하루를
노래 부르자 / 레이호 레이레이호 레이호 레이레이호 / 파랑새 소리소리 노래 부르고 / 안개가 소리없이 흘러가며는 / 송아지 망아지가 매매 날 부른다 배고파 운다
2절. 달이 뜬다 목장에 밤이 뜬다 / 사랑하는 그대여 두 손을 씻고 / 즐거웠던 하루를
노래 부르자 / 레이호 레이레이호 레이호 레이레이호 / 풀벌레 소리소리 짝을 부르고
/ 밤안개 소리없이 스며들며는 송아지 망아지가 매매 / 안녕한다 단꿈을 꾼다
3절. 날이 샌다 목장에 아침이 온다 / 사랑하는 그대여 어서 일어나 / 아름다운 하루를
노래 부르자 / 레이호 레이레이호 레이호 레이레이호 / 파랑새 소리소리 노래 부르고
/ 안개가 소리 없이 흘러 가며는 / 송아지 망아지가 매매 / 날 부른다 배고파 운다 /
배고파 운다
〈청춘 목장〉1957년 송민도(1923년∼2023년 예명 백진주, 경기도 수원생)선생님이 부른 노래로 킹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청춘목장 / 물망초’ SP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눈을 감고〈청춘 목장〉을 듣고있으면 참 맑고 명랑한 목가적인 풍경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목장의 아침과 저녁 풍경은 우리들이 원하는 이상향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은 1959년 김씨스터즈가 내한 했었을 때 송민도님과 함께 부르는〈청춘 목장〉영상을 올려드립니다. 지휘는 송민도님 동생인 당시 악단장으로 활동한〈청춘 목장〉작곡자 송민영(1927년∼2002년)이고, 아코디언 연주는 노명석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네 분의 화음이 잘 어울려 청량함을 느낍니다.
☞ 송민도님 대표곡은, 1947년〈고향초〉1955년〈나 하나의 사랑〉1956년〈서귀포 사랑〉〈여옥의 노래〉〈청실홍실〉(with 안다성 최초의 드라마 주제가), 1957년〈청춘 목장〉〈하늘의 황금마차〉1958년〈나의 탱고〉〈서울의 지붕밑〉〈축배의 노래〉(with 남일해)〈행복의 일요일〉1959년〈웬일인지〉1960년〈카츄사의 노래〉등입니다.
–〈행복의 일요일〉– 반야월 작사, 나화랑 작곡, 송민도(1958년 킹스타레코드사)
1절. 다람쥐가 꿈꾸는 도봉산으로 / 그대 손을 잡고서 같이 갈거나 /
하늘엔 흰구름도 둥실 춤추고 / 흐르는 시냇물은 맑기도 한데 / 송사리 숭어떼가
물장구 친다 / 행복의 일요일은 사랑의 꽃이 핀다 / 가슴에 꽃이 핀다
2절. 실버들이 늘어진 우이동으로 / 그대 손을 잡고서 같이 갈거나 /
그늘숲 파랑새가 노래를 하고 / 나리꽃 하늘하늘 반겨주는데 / 일곱빛 무지개가
아롱거린다 / 행복의 일요일은 사랑의 꿈이 핀다 / 곱게도 꿈이 핀다
3절. 벌거숭이 뛰노는 광나루가로 / 그대 손을 잡고서 노젖어 갈거나 /
은구슬 부서지는 뱃머리에는 / 연분홍 꽃잎들이 휘날리는데 / 물제비 살랑살랑
나래를 친다 / 행복의 일요일은 사랑의 싹이 튼다 / 살며시 싹이 튼다
〈행복의 일요일〉1958년 송민도님이 부른 노래로 1960년 킹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내일이면 늦으리’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바로 옆지기와 함께 손잡고 웃으며 떠나세요. 2020년 9월 8일 한국의 산들, 암벽등반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고요. 추억의 산을 담은 ‘등산박물관’을 운영하신다는 ‘다르샨’님 블로그에 실린 글을 올려봅니다.(죄송)
「도봉산과 우이동 북한산이 함께 나오는 대중가요는 무엇이 처음일까요? 아마도 1958년 송민도가 부른 “행복의 일요일”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왜 도봉산이 1절이고 우이동이 2절일까? 왜 우이동은 벚꽃놀이의 대명사인데 굳이 버드나무를 넣었을까? 등등 송민도가 부른 “행복의 일요일”에 대한 등산박물관식 코멘트를 해 볼까 한다. (중략) 1) 왜 1절이 북한산을 제치고 도봉산일까?
북한산 국립공원 안에 도봉산이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교통수단이 지금같지 않던 시절 서울 사람들이 자주 찾은 곳은 우이동, 정릉 등 북한산 계곡과 봉은사 근처와 뚝섬 근처 등 한강변이었다. 도봉산은 너무 멀기도 했고 딱히 찾을 이유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작사가가 1절에 도봉산을 넣은 건 다분이 의도적이다. 시선을 산(도봉산)→ 계곡(우이동)→ 한강(광나루)로 이동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본다. 그리고 계절적으로 1절, 봄눈 녹을 무렵, 2절 봄, 3절 여름으로 하고 있어 시간과 공간이 잘 결합된다. 2) 왜 ‘다람쥐가 꿈꾸는’ 도봉산이라고 했을까?
행복한 일요일날 우리 들뜬 마음처럼 움직이는 포유류로 다람쥐 말고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다람쥐가 그나마 귀여운 놈이라서일 거라 본다. (중략) 3) 왜 우이동에 실버들일까? 우이동은 벚꽃으로 유명했다. (중략) 단 하루 주어진 주말이라 행복의 ‘일요일’이었고, 전쟁이 끝나고 채 복구되기도 전인 1950년대 말 한 시인이 꿈꾸었던 행복은 이랬을 것이다. 서울 근교의 산과 계곡 그리고 한강변은 이랬을 것이다.」(^^)
다음에는 4월 7일 태어나신 박재홍님께서 부르신 전통가요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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