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22. 김영춘〈항구의 처녀설〉〈그 항구 그 남자〉〈타향살이 목선〉(2025.06.30.)
김영춘(본명 김종재)은 1918년 6월 29일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나 1937년 김해농림고등학교 졸업 후 1938년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주최한 ‘전국가요콩쿠르’에서 입상해 콜럼비아레코드사 전속가수로 12월〈항구의 처녀설〉을 취입해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이듬해인 1939년 1월〈국경특급〉에 이어 3월 17일「부민관」에서 개봉돼 기생들이 인력거를 타고 와 인산인해를 이뤄 장안의 화제가 된 영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주제가〈홍도야 우지마라〉(이서구/김영준)를 취입 4월 콜럼비아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했습니다.〈홍도야 우지마라〉가 발표된 4월 조선권번의 기생 ‘장미화’가 18살 나이에 연인과 함께 한강에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더욱 유명한 가수가 됐다고 합니다.
오늘은 필자와 같은 고향인 김해 출신 김영춘님 데뷔곡〈항구의 처녀설〉〈국경특급〉〈썰매야 가자〉〈그 항구 그 남자〉〈포구의 항등〉〈타향살이 목선〉6곡을 올립니다.
–〈항구의 처녀설〉– 처녀림 작사, 김송규 작곡, 김영춘(1938년 콜럼비아레코드사, 데뷔곡)
1절. 흘러온 항구에도 가락눈은 나린다 / 무심한 갈매기의 울음도 내 귀에는 망향가 /
지내온 주막에다 지내온 주막에다 / 두고 떠난 그 얼굴 턱을 괴고 드는 잔 속에 /
아롱아롱 아롱아롱 떠돈다
2절. 맥풀린 가슴에도 가락눈은 쌓인다 / 카츄샤 울고 가던 얘기도 생각하니 내 신세 /
지내온 주막에다 지내온 주막에다 / 남기고 온 옛노래 눈을 감고 보는 고향에 /
가물가물 가물가물 떠돈다
3절. 흘겨본 이 부두도 떠나려면 아깝다 / 평생에 한번 뿐인 사랑을 잊을수가 있느냐 / 지내온 주막에다 지내온 주막에다 / 흘리고 온 그 맹서 눈물 속에 어리는 모습 /
아른아른 아른아른 떠돈다
〈항구의 처녀설〉(港口의 處女雪) 1938년 11월 김영춘(본명 김종재)님이 콜롬비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항구의 처녀설 / 열매나 걷고 가소(김장미)’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항구의 처녀설〉은 당시 최고의 작사가 처녀림(1911년∼1953년? 본명 박영호, 타명 김다인·불사조)이 사물화 같은 아름다운 노랫말을 쓰고, 다재다능한 천재 작곡가 김송규(1911년∼불명, 필명 김해송, 가수 이난영 남편)가 가사에 어울린 곡을 만들고 다듬어서, 김영춘님이 불렀습니다. 이 곡을 부른 김영춘님은 이후〈국경특급〉1939년 2월〈당신 속을 내 몰랐소〉(김상화/김송규)〈북국천리〉를 취입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39년 4월 발표한〈홍도야 우지마라〉(이고범/김준영)로 그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그는 2006년 2월 22일 작고했습니다.
–〈국경특급〉– 처녀림 작사, 이용준 작곡, 김영춘(1939년 콜럼비아레코드사)
1절. 어서가자 어서가자 어서어서 어서가자 썰매야 썰매 / 핏결은 울고 살은 떨린다
끝없는 눈보라 속에 / 오날은 이 주막에 술잔에 웃고 / 내일은 저 주막에 사랑에 운다
2절. 어서가자 어서가자 어서어서 어서가자 썰매야 썰매 / 추억은 울고 꿈은 깨진다
아득한 눈보라 속에 / 고달픈 이 여로에 끝이 어데냐 / 유랑이 속절없어 방울도 운다
3절. 어서가자 어서가자 어서어서 어서가자 썰매야 썰매 / 고향도 멀고 타향도 멀다
한많은 이국의 하늘 / 차라리 닿을 곳을 구름에 맺자 / 내일은 내일이요 오날은 오날
〈국경특급〉(國境特急)은 김영춘님이 1939년에 부른 노래로 1월에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국경특급 / 님도 꿈이련가(이옥란)’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이 곡은 처녀림 작사, 이용준 작곡으로, 데뷔곡〈항구의 처녀설〉에 이어 김영춘님이 두번째로 발표한 노래입니다. 1963년에 노랫말을 개사〈썰매야 가자〉제목으로 재취입했습니다.
–〈썰매야 가자〉– 서정권 작사, 이용준 작곡, 김영춘(1963년 미도파레코드사)
1절. 어서가자 어서가자 어서어서 어서가자 썰매야 썰매 / 고향도 멀고 타향도 멀다
한많은 이국의 하늘 / 고달픈 이 여로의 끝이 어데냐 / 오날은 오날이요 내일은 내일
2절. 어서가자 어서가자 어서어서 어서가자 썰매야 썰매 / 핏결은 울고 꿈은 깨진다
아득한 눈보라 속에 / 고달픈 이 여로의 끝이 어데냐 / 오날은 오날이요 내일은 내일
3절. 어서가자 어서가자 어서어서 어서가자 썰매야 썰매 / 온 길도 멀고 갈 길도 멀다
방랑의 설움을 싣고 / 고달픈 이 밤길의 끝이 어데냐 / 오날은 오날이요 내일은 내일
1939년 발표한〈국경특급〉을 작사가 처녀림이 월북한 관계로 24년이 지난 1963년 작사가 서정권(1936년∼1974년 작사가명 월견초, 경상남도 밀양)이 개사해 제목을〈썰매야 가자〉를 미도파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제목과 노랫말은 바뀌었어도 김영춘님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하고 힘찬 것은 세월의 흐름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 항구 그 남자〉– 작사 미상, 김용환 작곡, 김영춘(1940년 콜럼비아레코드사)
1절. 해 저문 이 항구는 눈물의 항구 / 달빛 찬 강언덕에 외로이 서서 /
목메어 부르건만 대답 없구나 / 기약없이 떠난 임 언제나 오리
2절. 비 오는 이 항구는 이별의 항구 / 끊어진 테프만이 바람에 날려 /
얼골에 스치건만 소식 없구나 / 정처없이 떠난 임 언제나 오리
3절. 달 없는 이 항구는 원한의 항구 / 밝도록 마셔보자 잔을 들어라 /
하룻밤 맺은 사랑 어찌 믿으리 / 비 나리는 부두가 더욱 섧구나
〈그 항구 그 남자〉김영춘님이 1940년에 부른 노래로 10월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그 항구 그 남자 / 너 없는 세상은(남일연)’ 읍망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이 곡의 작사자는 알 수 없고, 가수 김정구의 형님인 작곡가 김용환이 곡을 붙혀 1940년 7월〈남국의 달밤〉〈비련의 청춘항〉(悲戀의 靑春港)에 이어 10월에 발표된 노래입니다.
–〈포구의 항등〉– 산호암 작사, 어룡암 작곡, 김영춘(1941년 콜럼비아레코드사)
1절. 포구로 창이 뚫린 낯설은 찻집에서 / 단둘이 마주 앉아 울던 사람아 /
남쪽은 호놀룰루 떠나가는 뱃머리 / 오늘도 붉은 불이 깜박 어린다
2절. 궂은 비 산란스런 포구의 밤이 깊어 / 어설픈 가슴 속에 그리운 님아 /
뜨집는 카르다의 점을 치는 사람은 / 이 밤은 그 어디서 꿈을 꾸느냐
3절. 리라의 꽃잎파리 시들은 창문머리 / 행복을 속삭이고 떠나간 임아 /
구슬픈 일요일의 눈물겨운 노래를 / 이 밤도 틀어 놓고 흐득여 운다
〈포구의 항등〉(浦口, 港燈)은 김영춘님이 1941년 5월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발표한 곡입니다. 손복춘〈푸념 사거리〉와 함께 발매된 이 노래는, 산호암(珊瑚岩) 작시(作詩), 어룡암(魚龍岩) 작곡으로〈그 항구 그 남자〉〈유랑써커스〉(流浪)에 이어 김영춘님이 1941년에 들어서 취입해 콜럼비아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첫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포구의 항등〉노랫말에 ‘호놀룰루’가 나오는데 노래가 나온 지 7개월 후인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 하와이 오아후섬 진주만에 주둔한 미국 해군기지를 공중 기습해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태평양전쟁이 발발했으니 필자는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 하와이 땅을 밟은 것이 1883년 조선의 사절단이 간 후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약 150명이 하와이로 이민을 가면서 하와이 이민 역사가 시작됐으니 58년이 지나 김영춘님의〈포구의 항등〉노랫말에 하와이의 호놀룰루가 있는 것으로 봐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익히 많이 알고 있었다는 생각합니다.
☞ ‘카르다의 점’ 밤하늘 행성을 보고 점을 보는 점성술의 일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954년 허민〈페르샤 왕자〉가사 ‘아라비아 공주는 마법사 공주’ 같은 점성술 말입니다.
–〈타향살이 목선〉– 함경진 작사, 하영랑 작곡, 김영춘(1942년 콜럼비아레코드사)
1절. 얼음이 풀립니다 타향살이 목선들이 떠납니다 / 오늘은 이별이구려
오늘은 하직이구려 / 한 겨울 여문 사랑이 남북으로 쪼개집니다 /
아아 아아아 아 아아 아 아아아 아아 / 항구의 사랑이란 남북의 사랑이냐
2절. 깃발이 날립니다 타향살이 소금배가 떠납니다 / 이것이 마즈막이요
이것이 생이별이요 / 꼼꼼히 얽힌 애정이 천만리로 틈이 법니다 /
아아 아아아 아 아아 아 아아아 아아 / 항구의 사랑이란 천만리 사랑이냐
3절. 기약이 느껴우네 귀양살이 나뭇배가 떠납니다 / 너무나 허무스럽소
너무나 박정스럽소 / 속속히 우는 사연이 구천으로 날러 갑니다 /
아아 아아아 아 아아 아 아아아 아아 / 항구의 사랑이란 구천의 사랑이냐
〈타향살이 목선〉김영춘이 1942년 2월에 콜럼비아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신민요로 또 다른 신민요〈영산강 뱃사공〉과 함께 1942년〈잘있거라 인풍루〉(仁風樓)에 이어 발표된 곡으로 노랫말에 담겨있는 생이별의 기구한 사연이 참으로 구슬퍼게 들립니다.
〈타향살이 목선〉노랫말을 보니 ‘압록강 이천리에 뗏목이 뜬다’로 끝나는 1942년 가수 이해연〈뗏목 이천리〉(유도순/손목인) 노래와 1960년 작곡가 박춘석의 필명인 백호 작사, 박춘석 작곡으로 가수 이해연의 ‘압록강 칠백리 뗏목이 흘러간다’로 시작하는〈압록강 칠백리〉노래가 생각나는군요.〈압록강 칠백리〉1967년 윤정희, 남진 주연의 영화 ‘그리움은 가슴마다’에서 이미자 선생님이 부르시는 노래를 김지미가 립싱크해서 부르는 장면이 나오고, 1968년 음반으로 발매했고, 1973년 황금심, 1979년 조미미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불렀습니다. 1940년 ‘수풍수력발전소’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압록강(鴨綠江 길이 925m) 물줄기를 따라 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해발 2,788m)과 평안북도 지방의 나무를 압록강에 뗏목을 띄워 목재와 소금 등 생필품을 운반했습니다.
☞ 우리나라 전통가요 초창기인 1927년부터 1934년까지 설립된 레코드사를 살펴보면, 1927년 미국계인 ‘빅타레코드사’ 1928년 영국계 ‘콜럼비아레코드사’(을지로), 독일계인 1931년 ‘포리돌레코드사’(충무로) 3대 메이저 레코드사에 일본계인 1931년 시에론레코드사, 1932년 ‘태평레코드사’(을지로), 1932년 ‘오케레코드사’가 가세해 6대 레코드사가 각각 전속 작곡가와 전속 가수, 전속 경음악단 체제를 갖추고서 불꽃 튀기는 치열한 시장 확보 경쟁을 펼쳤습니다. 이와 같은 음반산업의 활성화와 함께 우리나라 대중음악 트로트 전통가요는 양적·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됐습니다.
음반사별 대표 가수와 노래는, ‘빅타’ 이애리수〈황성 옛터〉황금심〈알뜰한 당신〉박단마〈맹꽁이 타령〉‘콜럼비아’ 김영춘〈홍도야 울지마라〉박향림〈오빠는 풍각쟁이〉‘포리돌’ 선우일선〈능수버들〉〈조선팔경가〉그중 ‘오케(OK)레코드사’는 1932년 한국인 최초로 이철이 서울 다동에 설립한 레코드사로, 고복수〈타향살이〉〈짝사랑〉김정구〈눈물 젖은 두만강〉남인수〈애수의 소야곡〉이난영〈목포의 눈물〉〈목포는 항구다〉‘태평레코드사’ 백년설〈나그네 설움〉〈번지없는 주막〉진방남〈불효자는 웁니다〉백난아〈찔레꽃〉그밖에도 1931년 ‘시에론레코드사’ 남인수〈눈물의 해협〉신카나리아〈삼천리강산 에라 좋구나〉1934년 ‘리갈레코드사’ 남일연〈홍도의 고백〉 신카나리아〈월야의 탄식〉등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박일남〈갈대의 순정〉〈정〉〈마음은 서러워도〉등 5곡에 대한 글을 올립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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