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생환과 가족의 가치“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든지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살아나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그것이 물리적 사고든, 정신적 고통이든, 육체적 질병이든, 사업의 실패든 갑작스럽게 맞닥뜨리게 되면 대부분 깊은 좌절과 함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격게 되고 이 고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생사를 가르는 고비를 잘 넘기게 되면 과거의 삶에 대한 회상과 반성, 그리고 남은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야겠다는 삶의 애착이 생긴다.
필자는 생사의 고비에서 살아난 두 번의 경험을 조금 구체적으로 공유함으로써 건강과 행복의 소중함을 새기고자 한다.
때는 2011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심장대동맥협착증을 진단받게 된다. 뛰거나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고, 급기야는 횡단보도를 헐떡거리며 건너는 상황이 이어지고 몇 번의 실신상황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동네 의원에 들렀더니 “아니, 시체가 걸어 들어왔네”라고 놀라워 하기도 했었다. 건국대학교 병원을 찾아 상세진료를 받았고 송명근 교수의 ‘카바수술’로 심장대동맥판막협착증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 시간은 8시간, 마취 상태로 가슴을 가르는 고난이도 수술이었다. 수술은 원활하게 진행되어 2주만에 퇴원하여 일상으로 돌아왔고, 그동안 무탈하게 등산, 운동을 비롯한 격렬한 활동에도 아무런 지장 없이 15년 동안 약 한 알 복용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왔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심장에 이상이 감지되었고 8월부터는 이따금씩 부정맥 느낌과 심장에 작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만사 제쳐 두고 병원으로 당장 달려갈 수만은 없었다. 매달, 매주 계획된 행사와 업무 스케줄이 빼곡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호흡기 질환에 이상이 생겼는지 잦은 기침과 함께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몸이 쉽게 녹초가 되곤 했다.
일단 두렵고 급한 마음에 대학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은 결과 심장 기능 지수가 매우 낮다며 심장내과 진료를 권했다. 병원을 나오며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과 폐 기능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폐의 이상도 결국은 심장 기능 저하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심장 수술을 다시 받아야 함을 직감했다.
그러나 계획된 일들이 즐비한데 바로 병원에 입원 ,수술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개인 특유의 집착과 책임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은 업무들을 체크해 보니, 9월의 남은 업무와 약속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어느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계획들이었고 약속이었다. 결국 모든 행사와 약속들을 이행하고 나서 기진맥진, 그로기(groggy)상태가 되어가는 심장을 부여안고 드디어 9월 29일 서울로 진찰을 받으러 갈 수 있었다.
우선 15년 전에 나의 심장 수술을 했던 송명근 교수가 건국대병원을 퇴임하신 후 개인 병원을 차린 ‘청감 송명근 내과’를 방문하여 응급으로 진찰을 받았는데, 결과는 시술로는 안 되고 개흉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15년전 개흉 수술로 심장 수술을 했을 때 너무 고통스럽고 끔찍한 경험을 했었기에 두 번 다시 이런 수술은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초음파로 심장 판막을 들여다 본 송명근 교수는 깜짝 놀라며 ‘왜 심장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가지고 왔느냐’며 판막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라고 했다. 건국대학교로 써주신 진료 의뢰서를 받아들고 다음날인 9월 29일 오후 두시, 건국대병원 응급실로 벅찬 숨을 쉬며 걸어 들어갔다.
다행히도 응급으로 진료를 받았고, 예상했던 대로 개흉 수술로 기존의 판막을 긁어내고 인공 판막을 넣을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개흉 수술이었지만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었다.
입원 후 3일째인 10월 2일 오전 8시에 심장수술을 받기 위하여 15년 만에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대에 올라 전신 마취 전에 기도하였다. 인명은 재천이라 했으니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옵니다’라는 제물된 심정의 기도를 올렸고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는 8시간 만인 오후 4시가 넘었다. 온몸에는 각종 튜브와 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살 수 있다니! 기적이었다. 지속적인 통증에 진통제 주사를 맞고 있음에도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4일 만에 일반 병실로 옮겨지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렇게 기적의 생환을 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을 통하여 나 자신에 대한 회개와 반성,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보낼 것이며,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의 뜻에 맞게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우선 과거의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다. 업무와 성과 중심주의 성격이다 보니 나 자신과 내 가족을 꼼꼼히 챙기지 못하였다. 이것은 욕심인가, 사명감의 발로인가, 앞으로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라는 존재의 원천인 가족을 소중하게 보살펴야겠다.
이번 생사의 고비를 가르는 수술을 격으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혼자 감당해야 할 절망과 고통, 외로움을 함께 해주는 가족은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되는지 가족의 소중한 가치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일상이 소중한 행복이다. 신은 행복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두셨다. 팔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놓으셨다. 지금 여기가 행복이다.
한 수 한 수 자수를 놓듯, 남은 삶을 엮어 가야겠다. 그리고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꾸려가야겠다. 오늘도 병실의 하루는 건강과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김기복<강원백년포럼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