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40. 이인권〈얄궂은 운명〉〈눈물의 춘정〉〈향수의 휘파람〉〈나그네 극장〉(2025.11.03.)
내일(4일)은 ‘점자의 날’(點字)이고, 7일은 입동(立冬)이며, 9일은 ‘소방의 날’입니다. 그리고 모레 5일은 작사·작곡·가수 3박자를 모두 갖춘 싱어송라이트 이인권(1919년〜1973년, 본명 임영일)이 탄생한 날입니다.
이인권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청진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여름(?) 오케레코드사의 쇼단이 청진에서 공연 중일 때 무대 뒤로 찾아가 이철 사장과 전속작곡가 박시춘을 만나 노래 테스트를 받고 싶다고 하자 흥미를 느낀 두사람이 그가 부른 남인수의〈꼬집힌 풋사랑〉을 듣고 감탄해 마침 지병 치료차 함께 못온 남인수 대역으로 무대에서 그를 ‘청진의 남인수’라고 소개했고,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자 서울로 데려와 정식으로 오케레코드사 전속가수로 영입해〈눈물의 춘정〉〈향수의 휘파람〉〈국경의 다방〉을 발매했고, 1940년 11월 조명암 작사, 레코드사의 전속피아니스트인 임근식 작곡〈꿈꾸는 백마강〉을 발매하였습니다.
한국전쟁 때에 가수였던 부인과 함께 전방부대에서 위문공연 중 포탄이 날아와 부인을 잃고, 다리에 중상을 당한 이인권은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대구로 피난와 집앞 ‘계산동 천주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으며, 어느 겨울밤 성당의 종소리에 아내가 생각나 이불 속에서 아내의 넋을 기리는 글을 써 탱고풍의 곡을 붙이니〈미사의 노래〉입니다. 이곡은 1953년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를 통해서 음반이 발매가 되자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상심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노래가 됐습니다. 오늘은〈얄궂은 운명〉〈눈물의 춘정〉〈향수의 휘파람〉〈나그네 극장〉〈낙동강 칠백리〉글을 올리겠습니다.
–〈얄궂은 운명〉– 이부풍 작사, 전수린 작곡, 임영일(1938년 빅타레코드사)
1절. 보기 싫다 듣기 싫다 어서 가라 하여 놓고 / 간 후에 뉘우치는 마음이고나 /
싫어져도 당신은 미워져도 당신은 / 못 잊겠더라 못 잊겠더라
2절. 손바닥이 아프도록 내 마음껏 때려 놓고 / 울면서 뉘우치는 인연이고나 /
싫어져도 당신은 미워져도 당신은 / 못 잊겠더라 못 잊겠더라
3절. 우연하게 사귄 정이 이렇듯이 모질어서 / 얄궂은 운명 속에 안타깝고나 /
싫어져도 당신은 미워져도 당신은 / 못 잊겠더라 못 잊겠더라
〈얄궂은 운명〉이인권이 1938년 부른 데뷔곡으로서 11월 빅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얄구진 운명 /〈여창에 기대어〉(황금심)’ 음반에 실린 곡입니다. 이인권은 오케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눈물의 춘정〉을 발매하기 1달 앞서서 빅타레코드사에서 이곡을 발매해 이중계약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1942년 태평레코드사로 전속을 옮겼습니다.
청진보통학교 때부터 음악적 소질이 있던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청진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동경 음악학교에 원서를 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서 뜻을 이루지 못한 후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하던 중, 청진에 공연차 찾아 온 빅터레코드사 연주단에서 한번 노래를 불러보라고 해 부르자 고향이 같은 엄앵란씨 아버지인 엄재근이 불러 연락하면 서울로 오라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케레코드사의 테스트를 받고 누님이 적극 결정해 준 오케레코드사와 가계약을 맺었습니다. 1938년 서울로 올라온 그는 오케에서 마련해 준 광교여관에서 취입할 날을 기다리다 심심해서 빅타레코드사에 놀러갔다가 붙들려 본명 임영일로〈얄궂은 운명〉등 10곡을 녹음해 11월 발매했고, 오케레코드사에서는 이인권으로〈눈물의 춘정〉을 녹음 음반을 발매해 이중계약 소동을 벌렸습니다.
–〈눈물의 춘정〉– 김운하 작사, 박시춘 작곡, 이인권(1938년 오케레코드사)
1절. 꽃 피는 미풍 속에 숨 쉬는 춘정은 / 비 오고 바람 불면 허무한 꿈이로세 /
아 아아 가는 이 봄은 어이타 이다지도 / 울려주나 으으 음 사나이 마음을
2절. 거치른 인생살이 지는 꽃과 같으니 / 오로지 산다함이 아득한 꿈이로세 /
아 아아 가는 이 봄은 어이타 이다지도 / 울려주나 으으 음 사나이 마음을
〈눈물의 춘정〉1938년 이인권이 부른 오케레코드사 데뷔곡으로 12월 서봉희〈홍등가 의 반월〉(조명암/박시춘)과 함께 발매된 곡입니다.〈눈물의 춘정〉은 김운하의 작사가 데뷔곡이기도 합니다. 서봉희는 1939년 이난영(1916년∼1965년 목포 출생)을 리더로 결성된 최초의 걸그룹 ‘아리랑씨스터즈’의 멤버로 이들은 무대 의상으로 저고리를 입고 나와 당시 나라 잃은 백성에 민족의식을 환기시킨 그룹입니다. 멤버는 리더인 이난영과 장세정은 고정이었고, 서봉희, 박향림, 이화자, 김능자, 홍청자, 이준희 등이 들락날락하다 광복 후 해체됐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걸그룹은 1953년 데뷔한 ‘김씨스터즈’로 이난영의 딸 김숙자, 김애자와 오빠인 이봉룡(1914년∼1987년)의 딸 이민자로 구성되었습니다.
–〈향수의 휘파람〉– 문일석 작사, 이봉룡 작곡, 이인권(1939년 오케레코드사)
1절. 휘파람을 날리며 나는 왜 우는가 / 구슬픈 타향의 달빛이 나를 울리나 / 아니다
아니다 떠나온 고향 이별하던 그 사랑이 그리워 / 어리석은 미련에 못생겨 내가 운다
2절. 휘파람을 날리며 나는 왜 우는가 / 쓸쓸한 여관방 등불이 나를 울리나 / 아니다
아니다 사랑은 가고 추억만이 가슴속을 두다려 / 참을 길이 없기로 눈물에 내가 젖다
3절. 휘파람을 날리며 나는 왜 우는가 / 차라리 마음껏 취하며 아니 울쏘냐 / 아니다
아니다 고향은 멀고 청춘만이 시들어 가느니 / 마음껏 취할 지라도 울리는 사랑이다
〈향수의 휘파람〉이인권이 1939년 오케관현악단 반주로 부른 노래로 2월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불 꺼진 정거장(김남홍) / 향수의 휘파람’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으로 일제강점기 나라 잃고 고향을 떠나 타지를 유랑하는 떠돌이 신세를 탄하는 노래입니다.
–〈나그네 극장〉–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이인권(1942년 오케레코드사)
1절. 나그네 밑천이란 괴나리 봇짐이냐 / 십삼도 주막집을 차례로 돌고 돌아 /
비로봉 넘어 가는 비로봉 넘어 가는 / 짝 잃은 박 첨지
2절. 어제는 강원도의 미나리 타령이요 / 오늘은 함경도의 신고산 타령일세 /
줄 우에 춤을 추는 줄 우에 춤을 추는 / 새빨간 홍 동지
3절. 넋 없는 인형이란 분 바른 아가씨냐 / 예쁘던 꼭두각시 늙어서 울퉁불퉁 /
그래도 주책없는 그래도 주책없는 / 허 생원 마누라
〈나그네 극장〉이인권이 1942년 부른 노래로 4월에 발매된〈환희의 눈길〉에 이어서 7월에 오케레코드사에서 발표한 신보에 권명성의〈어머님 은혜〉와 함께 실린 곡으로, 이인권이 오케레코드사를 통해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대중가요가〈나그네 극장〉입니다.
–〈낙동강 칠백리〉– 문예부 개사, 김용환 작곡, 이인권(1963년 미도파레코드사)
(대사 : 어머님의 젖줄같이 구비치는 낙동강아 / 춘풍추후 긴 세월에 물새들도
늙었구나 / 구포다리 투루루루 경부선 급행차가 지나가도 / 서울 간 님 소식은
전할 길이 막연구나 / 아 낙동강 낙동강 칠백리 노래마저 애절하다.
1절. 달빛 아래 칠백리 낙동강 저 너머로 / 은혜로운 봄바람 한가히 불어 올 때 /
구포의 물레방아들은 목 놓아 우나이다 / (대사)
2절. 봄철마다 울리는 아름다운 노래에 / 만백성을 기리는 영원한 어머니라 /
고요한 그대 젖꼭지에 세월은 흐릅니다
3절. 창포 예 저 비석에 제비똥 가득한데 / 밭고랑에 청기왓장 간장을 끊는구나 /
구포의 물레방아들은 언제까지 우시나
〈낙동강 칠백리〉이인권이 1963년 부른 영화 ‘낙동강 칠백리’ 주제가로 미도파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영화 지미는 슬프지 않다 / 낙동강 칠백리’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 최무룡〈추억은 영원하리〉〈사랑은 오직 한 길〉조방자〈성당이 보이는 창문〉황금심〈화류백서〉Side B면. 이인권〈낙동강 칠백리〉황금심〈서울은 왜 왔던가〉박성민〈추풍령〉백설희〈도라오라 나의 칼멘〉등 8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원곡은 1933년 3월 포리돌레코드사를 통해 김활라의〈청춘은 괴로워〉와 함께 발매된 가수 김정구 친형인 김용환(1909년∼1949년)이 부른〈낙동강〉(왕평/김용환)을 일부 개사한 곡으로 부산의 노래 중에 가장 먼저 출반된 노래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1980년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집대성하여 9월 15일 세광출판사에서 간행한 ‘한국가요전집’에 따르면 1928년 왕평 작사, 조자룡 작곡〈낙동강 칠백리〉가 1928년 발표됐다고 합니다.
이인권은 150여 곡을 부르고, 50여 곡의 노랫말을 지었으며, 400여 곡을 작곡했습니다. 그의 히트곡은, 1940년〈꿈꾸는 백마강〉1949년〈귀국선〉〈무영탑 사랑〉〈선죽교1952년〈미사의 노래〉등이 있으며, 작곡한 대표적인 가요는 현인〈꿈이여 다시 한번〉송민도〈카츄샤의 노래〉최무룡〈외나무다리〉〈원일의 노래〉이미자 선생님〈몸조심 하세요〉〈나룻배〉〈다시 또한번〉〈사랑이 메아리 치면〉〈숨어서 우네〉〈알고싶은 그 곡절〉〈울지마라 물새야〉〈저 하늘 끝까지〉〈촛불을 밝혔어요〉〈가짜 여대생〉〈기다리는 여심〉〈님을 보낸 부두〉〈들국화〉〈살아 있는 가로수〉〈구룡포 처녀〉〈포항 소야곡〉〈한 많은 흑산도〉남상규〈산포도 처녀〉조미미〈바다가 육지라면〉〈단골 손님〉등의 노래가 있고, 그밖에 작곡한 영화음악은 1960년〈박서방〉〈해떨어지기 전에〉1961년〈매부〉1963년〈새 엄마〉1964년〈이쁜이〉1965년〈뜬구름아 말 물어보자〉〈슬픔이여 잘있거라〉1966년〈한많은 석이 엄마〉1967년〈보은의 기적〉1968년〈남정임 여군에 가다〉1969년〈울지도 못합니다〉등 20여 편이 있습니다.(^^)
영화 ‘낙동강 칠백리’는 각본 곽일로, 감독 이강천, 음악 이인권, 배우 최무룡, 김지미, 이예춘, 김진규, 최남현, 김정옥, 최성호 최지희, 서애자, 김칠성, 최준, 양석천, 윤아영, 이업동, 임해임, 채랑, 임선자 등이 출연해 9월 7일 개봉됐습니다.(촬영지 부산 엄궁동)
타이틀 “방화 사상 최고의 호화 황금 배역진!” “낙동강(洛東江) 강변에 눈물과 사랑에 얽힌 두 젊은이의 격정(激情)! 숙명(宿命)에 우는 한 여인의 애절(哀切)한 절규(絶叫)!”
줄거리는「낙동강 상류의 뱃사공 덕삼(이예춘)은 딸인 채순(김지미)과 6.25 때 가족을 잃은 박진성(최남현)의 5살된 아들 윤호(김진규)를 양아들로 길렀다. 채순은 사춘기에 이르자 오빠인 삼룡(최무룡)을 한 사람의 남자로 대한다. 박진성의 일행이 신설공장의 부지조사를 위해 낙동강에 내려와 삼룡이 일하는 강기슭에 이른다. 진성의 아들이며 회사 전무인 윤호는 채순과 시선이 마주친다. 도시 생활에 세련된 윤호, 마가렛을 연상시키는 채순의 순박미(素朴美)! 서로는 강렬한 매혹을 느끼면서 마침내 최후의 선까지 넘는다. 눈치를 챈 오빠 삼룡과 아버지를 볼 낯이 없게 된 채순은 윤호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다. 옥진(최지희)이라는 여자를 알게되고 따뜻한 우정 속에 캬바레 생활을 한다. 하루는 뜻하지 않게 윤호는 채순이 나가는 캬바레에 나타난다. 해산을 눈앞에 둔 두 여인은 궁핍한 생활로 생각 끝에 옥진이 윤호의 집을 찾아가 사유를 전하고 해산비를 받아와 무사히 해산을 하고서 낙동강으로 내려간다. 윤호와 진성 내외도 모두 낙동강으로 내려온다. 윤호와 삼룡은 친형제라는 것도 모르고 처절한 격투를 벌이자 달려 온 덕삼과 채순! 덕삼은 친형제라는 것을 밝히고 만다.」(야담과 실화 1963년 10월호)
다음에는 11월 12일 권혜경님의 탄생일을 맞아〈산장의 여인〉등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