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부로 구리시 시의회의장으로 민경자 시의원(더민주당)이 선출되었다.
이에 취임 즈음에 바쁜 일정을 쪼개 본지를 위해 인터뷰 시간을 할애해 준 민경자 구리시의장을 본지 발행인이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민경자 시의장님~
먼저, 구리시 제 7대 후반기 시의회 의장님으로 취임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휴대폰 컬러링이 “민”의를 “경”청하는 “자”상한 의원이라고 3행시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 강조하시는 민생(民生), 상생(相生),생생(生生)정치를 실천하겠다고 하셔서 인상적이었습니다.
Q: 구리시와의 인연과 정치입문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A: 구리시와의 인연은 고향이 강원도인 처자가 서울에 사는 남편을 만나 결혼한 후 조금 더 친정 가까운 곳으로 집을 구하고 싶은 마음과 마침 교문리에 친정 고모님이 계셔 주소를 구리시로 옮겨 놓은 한가람 아파트를 분양 받으며 구리시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구리시에 1994년 옮겨와 4살과 5살 아이를 키우며, 제일먼저 한 일이 구리시에 유일하게 있던 ‘교문도서관’에 4살 아이 손을 잡고 자원봉사를 등록하였습니다. 주로 서울에서 파트타임으로 독서 지도를 하던 저는 도서관에서 장비 작업등의 봉사활동을 하며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교육 및 훈련에 참여 하게 되었고, 도서관에 다양한 프로그램 제안과 강의를 맡게 되어 지역 정치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정치 입문 계기는 시의원이 뭔지?, 도의원이 뭔지?”조차 개념조차 없던 제가 우연히 구리시 대표로 여성단체와 의정부에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생활정치’와 이제는 여성의 정치 참여가 절실하다는 교육을 받으며 정치라는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05년 마침 경기도에서 주최한 ‘여성 정치지도자 양성 1년 과정’에 참여하면서 매주 하루는 수원을 오가며 교육을 받았고 이제는 여성의 정치 참여가 왜 필요한지? 왜 중요한지? 알게 되어 2006년 바뀐 선거법에 의해 정당정치가 실시되면서 8월31일 어렵게 열린우리당의 당원이 되었습니다.
2006년은 비례대표제가 처음 실시되었지만 복잡한 공천과정과 남편의 반대 속에서 ‘정치하려면 이혼해’하는 남편의 말에 ‘그럼 이혼해요!’ 하는 강수를 두고 무소속까지 고민을 했던 저는 흔치 않은 여성후보로서 또 열린우리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구 도의원후보로 공천을 받아 첫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열린우리당 구리시 제2선거구 도의원후보로 공천을 받아 열심히 선거 운동을 했지만 전국이 파란바람(그때는 한나라당이 파란색임)이 불어 파란 옷을 걸친 사람은 죽은 사람 마져도 당선이 되는 사태가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바람’이라는 선거판에서의 결과는 경기도의원 지역구 후보는 100% 탈락, 비례대표 몇 석을 건진 정도였습니다.
이후 정치와 거리를 두기 위해 2009년 10월에서 2010년 4월말까지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돌아왔는데 주변인들의 회유와 저 또한, 의회 입성조차 못하고 끝내는 것이 아쉽기도 했고 , 또한 여성후배들에 대한 일말의 책임 같은 것이 발동되어 결국 남편을 설득했고,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는 선거운동도 돈도 필요 없다는 말들을 했지만, 처음 시작을 지역구로 했던 저는 비례대표라 하여 시장후보나 따라 다니지 않고, 1선거구쪽은 내가, 2선거구쪽은 남편이 돌아 다니며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한 결과 구리시의회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다수가 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Q: 시의장으로서 임기내 생각해두신 것중에 강조하시는 사항은 무엇인가요?
A: 구리시의회는 최소 정원인 7명의 의원 구성체로 상임위가 없어 행정감사 시에도 전 부서를 모두 총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20여 년간 집행부의 반대당이 다수를 차지하다보니 의회 회의 진행 등의 운영이 효율적이 못한 부분이 있었고, 6대는 겨우 집행부와 의회가 같은 당이 되었지만 초선 4명인 다수당과 4선과 재선그리고 초선인 소수당의 선수를 보면 4:7로 결국은 의회의 운영이 집행부와 반대당일 때와 다름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7대에 들어와서는 다수당과 소수당의 선수의 합이 7:5로 전임의장은 의회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낼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보여 집니다. 그러나 후반기 제 임기동안은 집행부의 수장이 반대당으로 바뀐 상태에서 다시 의회 다수당은 집행부와 반대당이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에 저의 역할은 무조건적 발목을 잡는 것 보다는 합리적으로 정말 구리시의 발전과 시민을 위한 일이라면 대화와 토론으로 함께 하길 희망하고 있는데 시작부터 삐꺽삐꺽한 건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일례로 에코커뮤니티사업, 즉 소각장 증설과 음식물처리장시설 만드는 사업의 전면 철회 및 수택2동 청사 부지완 관련한 사업, 월디사업, 태극기 도시를 표방하는 도시로서의 태극기 설치 등의 갈등을 부각 시키는게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저는 후반기 임기동안 회의 규칙을 개정해 토론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는 합리적 회의 진행방식을 만들어 갈 것이고, 합리적이고 기준과 원칙이 있는 일하는 의회 상을 정립하고자 합니다. 또한 최소 2개의 상임위원회를 만들어 좀 더 깊이 있게 행정부를 감시 견제하는 기능을 다하고자 합니다.
현재 구리시의회는 열린 의회를 표방하고, 늘 시민과 함께 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기에 더욱 시민속으로 들어가는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의원님들을 보좌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합니다.
Q: 구리시민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생활정치로서 시의회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A: 시의회는 조례를 통한 입법활동, 예∙결산심의를 통한 예산 심의 통제권, 행정사무감사 조사를 통한 견제활동 및 각종 계획보고, 처리결과 등의 의견청취권 등의 기본적 역할을 함과 동시에 현재 구리시의회는 열린 의회체험을 통해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의회의 역할에 대해 알리고 있고, 월1회 명품강좌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의정 모니터단이 2기가 조직되어 활동하며 의원들의 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넓혔고 또한 의원님들의 손이 미쳐 미치지 못한 곳의 문제점들을 찾아내어 함께 개선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시의회는 의회 자체내에서 의원 주도하의 간담회나 토론회가 거의 없었기에 이런 토론회나 간담회가 많이 개최되어진다면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시민에게 좀 더 다가가는 의회가 되어 생활정치를 실천 하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Q: 시의장님의 정치철학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나의 정치철학은 기준과 원칙을 지킴을 통해 정의로운 복지사회 즉, 열심히 땀흘리며 일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리는 사회, 열심히 일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구리시는 시 승격 30년간 하드웨어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정책을 펼쳐야 할 때라 생각 합니다. 여기에 오직 시민만을 생각하고 실질적으로 시민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사구시의 정치를 편 ‘세종대왕 리더십’을 존경하며, 나의 이해관계의 득실을 따지기 보다는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독일 총리 메르켈의 처세를 존중하고 있으며 늘 약자편에서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 저의 정치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시의원을 하시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A: 2010년 처음 비례대표의원으로 처음 발의한 “장애인복지증진 조례”는 주변의 장애인 단체를 방문 의견을 모으고, 주변 장애인들을 인터뷰하며 정말 당장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내어 제정하게 되었는데, 타당의 무조건적 반대로 몇 번의 상정과 유보를 반복, 본회의장에서 눈물로 호소하고 ,결국 장애인단체분들이 의회에 몰려와 대거 농성을 통해 힘을 실어 주었고, 결국 타당의원을 설득 해내어 1년 반만에 조례를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조례 한 건’이지만 최소 타시군의 8개 정도의 조례 효과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또한, 지난 2016 7월 정례회때 “구리시 발달장애인 평생학습지원에 관한 조례”도 준비하여 제정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아마 장애인분들에게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 시의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공동주택지원법’에 의해 20세대 이상은 매년 10억씩 공동주택 개보수 지원 보조금을 주는데 정작 어려운 20세대 미만 공동주택들은 위험이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전혀 시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속에서 부시장과 부서장들을 설득하여 3년 묵은 공동주택 담벼락이 앞의 건물로 기울어 가며 건물에 크렉을 내던 상황속에서 주민들을 설득하여 비용을 만들어 내고 시민의 안전유지 차원에서 시의 역할을 찾게 하여 무너지는 담벼락을 제거 하였고, 공동주택지원조례의 개정을 통해 정기적인 안전진단을 실시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전진단 만으로는 관리 주체가 없는 소규모 공동주택들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에 ‘소규모 공동주택의 지원에 관한 조례’의 제정을 피력했지만 담당부서에서는 타시군의 전례도 없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조례의 제정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시도한 저의 노력 결과 2015년 12월 결국 ‘구리시 소규모 공동주택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고 그 효과로 현재 소규모 공동주택 지원 사업을 신청 받고 있는 중으로 오래된 건물등의 방수 등에 어려운 상황속에서 살고 있는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좀 더 안전하고 쾌락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또한, 저는 “친환경 최우수 의원”으로 6년 의정활동 기간중에 3번의 상을 수상했는데, 특히, 에너지 기본조례를 2012년 12월에 제정하며 태양광 사업에 대한 시예산을 수립했습니다. 그 지원사업을 하는 중에 아직은 투자대비 효율이 좋지 않고 원금 회복시까지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미래 환경을 위해 대체 에너지를 만들어 가야 함이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의무라 생각했기에 전 국민이 250W라도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 아파트 베란다형 태양광 설치를 제안했고, 시민들의 신청을 받아 베란다형 태양광 설치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리시는 협소한 면적 탓에 공동주택이 많은 상황에서 개인이 3KW 태양광 설치사업은 주민들의 전체 동의를 받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기에 어려움이 있기에 공공전기요금을 태양광 사업으로 만들어 보고자 했으나 공공전기요금은 누진세율이 개인가정 전기요금체계와 달라 가정에서 태양광 설치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미약하였지만 공무원을 설득했고, 주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소규모 공동주택의 공공전기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소규모 공동주택의 대표들과의 만남을 위해 이른 시간, 늦은 시간 구분 없이 그들이 편안한 시간에 그들 집주변의 카페 등에서 만나 이해와 설득을 통해 대표의 의지가 있는 공동주택에는 반상회에 참여하여 또 주민들을 설득했고 결국 한 소규모 공동주택 단지에 공공전기료 절감을 태양광 사업을 통해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Q: 정치나 인생에서 인상적인 멘토가 계시다면 소개해 주시겠어요?
A: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세종대왕의 실사구시정신과 백성을 사랑하는 위민사상”을 존경합니다. 세종대왕은 훌륭한 리더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위대한 성군이었고, 늘 깨어있는 자세로 자기관리에 철저했고, 인재를 발탁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으며 늘 신하와 소통하려는 자세를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언제나 백성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고 계셨던 분으로 솔선수범하는 군주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그 분을 멘토로 흉내내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성 정치인으로는독일의 ” 메르켈총리”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Q: 국제화 시대에 있어서, 본지 뉴스아이신문이 “구리시와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州와 자매결연 관계”를 추진 중에 있는데 시의장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A: 국제화 시대의 자매결연 도시는 상당히 구리시의 발전과 시민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프리카는 우리가 TV동물의 왕국속에서나 접하는 신비의 세계이자,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태고적 모습이 보존되는 지역이며 자연생태학적으로 미래를 위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곳과 자매결연이 된다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듯해서 설레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프리카와 자매결연을 맺은 자치단체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배경 지식의 부족탓인지는 몰라도 일단, 케냐는 비행기로 15시간 이상 가야 하는 먼거리의 나라로 알고 있고, 아직은 안전에 대한 담보가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거리상의 문제로 자매결연을 맺고도 예산과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실질적 교류가 없을 수 도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전등의 문제가 선행 해결되어진다면 우리는 G20의 경제대국으로서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케냐의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게 공무원 파견 교류나 공적개발원조를 통해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구리시민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적극 검토할 의향이 있습니다. 특히, 기회가 된다면, 개인적으로 케냐라는 국가의 시골에 우물 하나를 파드리고 싶습니다. 일단은 , 구리시 시장의 의지가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Q: 구리시만의 특화된 산업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개발 및 발굴 계획 및 사례와 진흥방안을 조금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구리시는 제한된 토지면적으로 큰 공업단지 등의 제조업을 유치할 수 있는 구조가 되지 못하고 있기에 지난 8년간 구리시가 베드타운이 아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경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월드디자인시티 사업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박시장의 하차로 사업의 진행이 오리무중의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치않고 방법을 찾아가고 있으며 우선은 도시공사가 관리공단의 역할만이 아닌 사업을 할 수 있게 우선은 임원들을 직무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해야 하며, 현재 할 수 있는 갈매동 아파트형 공장부지 사업이나 수택3동 주차장 부지에 임대아파트 사업 등을 통해 구리도시공사가 공사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규모 중소기업들을 지원육성하여 자급자족의 구리시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울러, 저는 한정된 면적에 20만이 안되는 소규모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사업으로는 사회적 경제 기업이 적정하다고 생각하기에 또한 , 많은 전수자가 포진하고 있는 공예 협동조합의 적극적 지원을 통해 ‘고구려의 역사와 조선의 역사 문화’가 살아 있는 이곳의 특징을 살려 전시장과 작업장이 함께 만들어져 할 것이며, 다양한 문학인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이곳을 “컨텐츠화 국립현대 문학관 “등을 설치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특히, 앞으로의 복지는 단순한 수혜를 떠나 일자리를 통한 복지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린벨트가 많고 유휴 공간이 없는 구리시기에 다양한 일자리 마련을 위해 사회적 경제분야의 기업 확산을 통한 다문화, 노인, 청년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력할 것이고, 아파트형 공장부지를 통한 소규모중소기업들이 쾌적한 근무환경과 세제혜택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크러스트화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친환경도시로서의 청정도시를 위한 대체에너지의 확산 지원노력 및 도시재생을 통한 주거환경의 개선, 문화 예술을 연계한 벨트형성을 통해 경제활동을 활성화 하는 것입니다.
Q: 구리시 시의장님으로서 시민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구리시의회는 시민의 대변자로서 시민을 대신하는 대의정치를 펼치고자 합니다. 저는 구리시의회 7대 2기 의장으로서 또 구리시 최초 여자 의장으로서 약자를 보듬고,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살리는 정치 즉 , “살림정치”를 하고자 합니다.
생활정치 풀뿌리 정치가 바로 살림정치이기에 이를 실천하기 위해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시민의 소리에 귀기울이겠습니다. 즉, 구문현답(구리시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을 실천하겠습니다. 그리고, 당리당략을 떠나 진정 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싸우는 정치가 아닌 모성으로 보살피고 함께 만들어가는 정치를 통해 구리시의회의 품격을 높이고 구리시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일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구리시민 모두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넘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더운 날 인터뷰 해주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구리시 7대 후반기 시의회가 활성화될 것 같습니다.
좋은 의회정치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기사작성 허득천 편집발행인(truepen8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