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발로 시작된 연평도 포격전 5주년을 맞이하여 군에서 33년간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최근 고향인 남양주에 대한 애착을 잊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고 계시는 당시의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님을 만나 5년 전 긴박했던 상황을 전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Q.유 전 사령관님께서는 군에서 33여 년간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다가 중장으로 전역하셨습니다. 특히 사령관으로 재임하던 2010년 11월 23일에 북한의 도발로 시작 된 “연평도 포격전”이 올해로 5주년이 되었습니다. 5주년을 맞이하여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에 대해 잠시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북한의 포격에 대한 처음 상황을 어떻게 보고 받으셨으며 가장 먼저 조치하신 사항은 어떤 것이었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A.당시 저는 작전을 위한 현장지도를 위해 지방부대 순찰 중이었습니다. 처음 연평도 부대로부터 유선 보고를 받으며 그 상황을 현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포격 권한을 가지고 있는 나의 결정이 이후에 발생될 국가와 가족,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죽음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전면전 또는 세계 전쟁의 시초가 될 수 있다는 인간적인 두려움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북측의 포격직전까지 해병대는 매달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사격연습 마무리 중에 북한의 포격으로 부대원 및 주민들의 피해가 발생되었고 대응사격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주변 참모들의 긴장감 있는 모습을 둘러보며 약 2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특히 6.25때 한강대교를 폭파한 공병감이 사형 당했다는 말이 떠오르며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했기에 격앙된 어조로 바로 “쏴~”라고 명령했습니다.
Q. 당시 전략적인 차원에서 공군 전투기가 북한 지역을 타격하는 등 여러 가지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여겨지는데 그런 상황까지 확대되지 않은 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A.일단 포를 쏘는 게 중요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연평도에 있는 “K-9 자주포”로 즉각적인 대응사격을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전투기나 함정지원은 해병대에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안한 것이 어쨌든 잘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만약 확대 되었다면 연평도 주민들과 우리 부대원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었을 겁니다.
현재의 우리군은 당시 상황 이후에 대응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많이 개선되었지만 당시에는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현재 육,해,공군의 합동 성을 강조한 교전규칙이 개선된 점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당시 연평도 주민 2명 사망 10명 부상, 해병대원 2명 사망 16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피해상황이 여러모로 발생했는데 국가에서 후속 조치와 지원은 잘되고 있다고 여기시는지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며 개선방향은 어떻게 진행시키는 게 맞는다고 보시는지요?
A.지난해 모 언론에서 표현하길 당시 포격전은 해병대의 승리. 한국부대의 패배라고 표현한 문구가 기억납니다. 실질적인 전투는 해병대까지만 이루어지고 상급 부대에서는 모니터링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해병 부대원들에게 이루어진 훈,표창의 포상이 안타깝게도 너무 아쉬웠습니다. 전사자에게는 훈장이 주워졌지만 전투 참가 부대원 및 부상자들에게는 국방부장관이하 표창만 이루어져 당시 지휘관으로서 건의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포상만 이루어져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전투 참가 지휘관 및 부대원들에게 포상이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서 우리 부대원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찾게 해주는 게 나의 의무이자 역할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Q. 유 전 사령관님께서는 당시 상황의 명칭이 “연평도 포격도발”에서 “연평도 포격전”으로 조정해야 된다고 사령관 재임 시절은 물론 전역 후에도 건의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와 현재 어떻게 정리가 되었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A.당시 상황이 종료된 후에 여러 기관에서 “연평도 포격도발“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이건 도발이 아니라 ”연평도 포격전“입니다. 도발에는 우리의 대응이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일방적으로 맞기만 한 것으로 비추어 집니다. 반면 포격전은 쌍방이 주고받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전,현직 해병대 사령관들이 여러 차례 건의하여 최근 국방부 대변인으로부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Q. 사령관으로 재임하던 시절 긍정적인 사고와 지혜로운 덕장의 모습으로 부대원들에게 남다른 노력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셨던 부분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A.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밀리터리 머슬(Military Muscle-군인의 근육)이라는 용어를 많이 강조하였습니다. 밀리터리 머슬은 반복된 훈련을 통해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대원들에게 “훈련 때 흘리는 땀 한 방울이 전투에서 피 한 방울이다”라고 강조하며 반복된 훈련을 통해 항시 전투태세를 유지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리더십으로 부대원들을 통솔하여 안전하게 부모 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게 나의 의무였고 초급 장교들에게는 저축을 장려하여 전역 후에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부대원들을 독려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Q. 잠시 유년시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유 전 사령관님께서는 “꿈꾸는 소년”이라는 어릴 적 애칭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애칭을 얻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A.나의 어린 시절에는 지금과 같이 미래 직업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변 어른들이 추천하는 직업이 순간적으로 막연하게 나의 꿈으로 선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대표적인 꿈이 법관이었고, 영어 선생님 이였으며, 기자였습니다.
그러다가 고2때 해군생도의 멋진 모습을 동경하여 해군사관학교를 입학하게 되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군복무 시절에도 지속적으로 미래에 대해 늘 고민하면서 군 복무를 했다고 여겨집니다.
한의사와 대학교수가 되고 싶은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저는 경운대학교에서 군사학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전역한 지금도 저는 또 다른 꿈을 갖고 뛰고 있습니다. 그 꿈은 바로 지역을 위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의 나의 꿈이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Q.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십니까?
A . 부인과 1남 1녀입니다. 한 때, 제 처가 암투병을 하였는데, 지금은 완치가 되어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살려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들은 제 후배로 해병대를 나왔습니다.
Q.마지막으로 남양주 지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군복무 시절에도 고향을 잊지 않으시고 지역 발전에 대해 항상 관심 갖고 계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특별히 지역 발전을 위해 건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A.어릴적 고향의 모습과 지금은 너무도 많이 변화 하였습니다.살기 좋은 환경으로의 변화에 고향 선,후배님들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좀 더 발전되기를 희망합니다. 현재의 남양주시는 아파트가, 차량이, 사람이 많아진 소비 중심의 단순 주거형태 도시로 성장하였습니다.
이제는 좀 더 생산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넓은 면적의 남양주시에 우리 시민들이 생산적이고 경제 활동이 가능한 창조적 생산 시설을 유치하여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지방재정 확대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부족한 문화시설의 확대, 교통 여건의 편리성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구성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고향인 남양주시가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 발전되어 나가는데 봉사하는 마음으로 기여하고 싶은 게 저의 새로운 꿈입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유낙준 사령관의 긍정적인 사고로 가족과 지역을 사랑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남양주시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유 전 사령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약 력 |
현 재 |
– 남양주시 마석초 졸업 – 동북고 졸업 – 해군사관학교 졸업 – 동국대학교 석사 – 위덕대학교 박사 – 제 30대 해병대사령관
♦ 훈포상 ♦ – 대통령 표창 – 천수장,국선장 훈장 – 미국공로표창 |
– 마석초등학교 총동문회장
– 남양주시 향우회장 – 남양주문화원 자문위원 – 남양주 지체장애인 지회 고문 –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문 – 재향군인회 고문 – 해병전우회 중앙회 수석 부총재 – 부산장애인협회 고문 – 수원시 교향악단 후원회장 – 2015년 9차 국제건강포럼/박람회 고문 – SKC 고문 – 한.브라질 소사이어티고문 – 경운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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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성 유병걸국장(bgyoort@hotmail.com)
2 Comments
왈순아지매
우리 지역을 위해 애써주세여
나라사랑
우리지역에 큰인물이 계신줄 몰랐습니다. 활약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