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지가 있는 사람이 건강하다 – 첫 번째 어진(仁) 사람이 되자.
요즘은 매일 아차산에 오릅니다. 정각사에서 형제 약수터까지 산책을 합니다.
입구에 국화가 꽃 몽우리를 띄웁니다. 서리를 맞아도 꽃이 핀다는 국화의 결기가 생각납니다. 이슬이나 서리가 내리면 하나둘 이파리들이 시들거나 물을 잃고 떨어집니다.
전에 태풍이 불어오던 날 남들은 떨어진 과실이나 잎사귀들에게 눈길을 주지만 필자는 그 와중에도 떨어지지 않은 과일과 이파리를 주목해 봤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떨어지지 않은 과일과 이파리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입니다. 큰 활엽수가 태풍으로 쓰러지는 와중에도 올곧이 떨어지지 않고 버틴 과일이나 이파리들이 신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어진 사람이 되어보자는 것은 단순이 도덕 각성 운동을 말함이 아닙니다. 마음이 그만큼 건강을 좌우하는 것이 크기 때문입니다. 요즘 말하는 디스크나 혈압. 당뇨병 등이 마음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단순이 아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지 않으면 더 병이 심해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멈추면 병이 더 심해진 않습니다. “이렇게 살다 죽을 꺼야“ 라든지 ” 도 닦는 소리 하고 있네“ 등등 말입니다.
어질다는 것을 맹자는 측은지심에서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곤경에 처한 사람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에서 仁이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어진 마음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진 마음은 두 사람이상에서 존재합니다.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회 속에서 어진 마음이 발현 되어야하는 이치인 셈이지요. 즉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건강한 사람으로 발현 될 수 있다는 말이 되는 셈이지요.
일전에 어느 환자 분과 상담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사실여부는 차지하더라도 정신병이 아닌데 자기 아들이 정신병에 자기를 강제 입원시켜서 지금도 분노하고 억울해 하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조울증 진단을 받고 오셨는데 “저보고 자기가 조울증 진단이 맞는지 물으시면서요” 저는 현재 상태에서는 모르겠지만 아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내려놓지 않으면 다시 조울증이 발생할거라고 이야기 해드렸습니다. 그러자 언성을 높이며 “그걸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사실이 그 분 말대로 조울증이 아니라도 이미 그 시간은 흘러버렸습니다. 억울과 분노 그리고 원통한 과거의 그 시절이 지금도 지배하고 잇는 형국입니다. 예수님이 용서하라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함입니다. 피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살기 위해서 용서하는 것이겠지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신명이 난 상태를 말함이요, 분노와 원통과 억울은 신명이 꺼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신명나게 살 내 인생이 아직도 아들 때문에 분노와 억울, 원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지, 그 무엇도 아님을 알아야만 합니다.
어진 사람이 되어보십시다. 내 몸의 유전자는 신명나게 살아 숨 쉽니다. 그러다 보면 당뇨도 고혈압도 치료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아픈 상처를 극복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 등 믿는 사람 등에게 받은 상처는 더욱 오래갑니다. 그럼에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위하여, 내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어진 사람이 되어보도록 노력하는 삶이야말로 용서요. 승화요, 진정 승리하는 삶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어진 사람이 되어보고자 이 글을 써봅니다.
우리가 건강해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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