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뉴딜에 대하여
요즘 그린 뉴딜, 디지털 뉴딜이란 말들을 종종 들을 수 있다.
트랜드적인 거대 담론이라서 대부분 의심을 보내지 않는다. 마치 이런 단어를 쓰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 양 저탄소 녹색 성장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LH 사태를 예견한 건축가 유현준씨는 악당과 위선자를 잘 구분하라고 하였다. 시장이 악이고 공공은 선이 아니라는 필자의 생각과 일맥상통한 말이다. 거대 담론만 이야기하는 도덕 군자는 특히 경계해야만 한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 여러 사회경험을 한 필자로서 유현준씨 말이 실감이 난다.
우리는 좋은 말과 도덕적인 말을 하면 좋은 행동을 할 거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공자는 교연영색이 선은 아니라고 했듯이 누구나 말에 의해, 글에 의해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판단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단정은 짓지 말았으면 한다. 그린 뉴딜이라 쓰고 녹색을 빙자한 성장 산업이 하나 있다.
바로 태양광 사업이다. 태양광 사업이 대표적인 그린 뉴딜 사업 중의 하나이다. 마치 천혜의 자원이고 저탄소이고 돈까지 벌 수 있다는 논리로 가정집이나 시골집 더 나아가 산기슭까지 태양광 패널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미 태양광 전기는 주력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보다는 보조 에너지원이라고 판명이 났으며, 산업 에너지원과 중요국가방위사업에는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저탄소만을 강조한 태양광사업으로 혈세와 범법자 그리고 시행착오만을 낳게 되었다.
필자는 선진국 사회의 사다리 걷어차기 정책이라는 데에 주목한다. 물론 미래 사회는 저탄소를 지향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선진국 제도를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도시의 미세 먼지와 공해를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대중교통의 수소화, 전기화 버스 도입과 전기충전을 위한 배터리 혁신과 수소 충전지를 설치하여 저탄소 생활을 대중화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한다. 자유주의를 마치 전체주의로 착각하여 sns 소통만이 능사가 아니다 . 거버넌스도 없으면서 일방적으로 시정 홍보나 시정협조를 요청하는 일 뿐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녹색 성장을 앞세워 시정 홍보만을 양산하는 저급한 소통만이 난무하다.
두 번째로 그린뉴딜을 한다면서 원자력을 폄훼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원자력은 현존하는 고효율 에너지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고 탄소를 배출하는 악당 에너지도 아니다. 다만 불가역적인 피해가 크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악의 에너지도, 사라져야 할 에너지도 더더욱 아니다. 제 4차 산업혁명의 꽃인 반도체에 순도 일정한 에너지를 주는 것도 원자력이요, 값싼 산업에너지로 사용하는 것도 원자력이고, 밤길이나 도로에 어둠을 밝히고 있는 전등도 원자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혜택은 뒤로 하고 원자력의 위험성만 강조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더구나 세계 제일의 원자력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원자력 기술의 개발은 평화롭고 안전하게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뿐 아니라 저탄소 에너지원의 개발 가능성까지 제공해주고 있다. 산업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위정척사의 가치가 득세하여 끝내 조선을 패망으로 이끈 과거의 실패를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도덕적 가치와 관념 속에 빠져 지식정보화를 선도하지 못한다면 자유와 산업화로 이룬 제2의 한강의 기적이 머무르고 좌초하고 말 것이다. 사람은 그리 착한 게 아니다. 행복도 이익도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어린이날이 되어보자. 사람들의 이익추구는 경쟁의 첫출발이요, 남의 욕망을 거세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은 전체주의자나 독재주의자의 망령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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