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15.〈님 계신 전선〉〈아내의 노래〉 (2021.06.14.)
지난 9일 오후 5시 1분 경 광주 학동에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불의의 사고에 큰 슬픔을 가눌 길 없고, 사연 사연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ㅠㅠ)
〈님 계신 전선〉은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1952년 애국가수인 금사향이 부른 노래입니다.
「애국가수 금사향(琴絲響)」의 본명은 최영필(1929년〜2018년), 평양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와 오빠에게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고 합니다. 1946년 상공부 섬유국 영문 타이피스트로 근무 하던 중, 럭키 레코드사에서 주최한 ‘조선 13도 전국 가수 선발대회’에 참가해 1등 우승상을 차지한 후, 1946년〈첫사랑〉을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입문했습니다.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전속가수 1기생으로 활동하던 때 1950년 전쟁이 발발해 당시 작곡가 박시춘이 이끄는 국방부 정훈국 소속 군예대에 남인수, 구봉서 등과 함께 최전방까지 위문공연을 통한 종군 활동을 했는데, 전쟁 중에 국군 장병 위문 공연에는 항상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 하는 위험이 뒤따르기 마련이었습니다. 종군 활동을 하는 군예대도 포탄이 떨어지는 공연장과 트럭 두 대를 연결한 간이 무대에서 공연을 했고, 폭우가 쏟아지는 야외 무대에선 감전의 위험 때문에 저고리 고름으로 마이크를 감싸 쥐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체구는 작았지만 우리나라 여가수 최초로 하이힐을 신고 전장의 무대를 누비던 멋쟁이였는데, 젊은 시절엔 얼굴이 동그랗고 뽀얗다고 별명이 ‘양파’, 부지런하다고 해서 ‘생쥐’였다고 합니다. 작고 통통한 체구에 얼굴도 귀엽고 말도 화려하고 재치가 있어 뭇 남성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명 금사향은 작사가 고려성이 ‘거문고를 울려서 나는 교향악’이라는 뜻으로 지어줬다 합니다.
〈님 계신 전선〉은 군예대가 1952년 제주 모슬포에 위치해 있던 육군 제1훈련소에 배치 됐을 때 작사가 손로원이 가사를 쓰고, 작곡가 박시춘이 곡을 만들어 금사향이 노래를 녹음했는데, 제주도에는 녹음시설이 없어서 10시간 동안 배를 타고 부산까지와서 노래를 녹음했다 합니다.
1절에서는 태극기를 흔들며 군인들을 환송하는 이별 슬픈 가족들의 모습을, 2절에서는 님을 전장으로 떠나 보내는 부인의 애절한 소망을, 3절에서는 살아 돌아 오기만을 바라는 심정을 노래에 고스란히 담아 놓은〈님 계신 전선〉전쟁으로 찢긴 상처난 가슴들을 울리는 애절한 노래입니다.
–〈님 계신 전선〉–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금사향(1952년, 오리엔트레코드사)
1절. 태극기 흔들며 님이 떠난 새벽정거장 / 기적이 울었소
만세 소리 하늘 높이 들려오던 날 /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 용감하게 싸우시나 / 님이여 건강하소서
2절. 두 손을 붙잡고 님의 축복 빌던 정거장/ 햇빛도 밝았소 /
파도치는 깃발 아래 헤어지던 날 /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 용감하게 싸우시나 / 님이여 건강 하소서
3절. 화랑의 몸이신 님이 떠난 새벽정거장/ 햇빛도 밝았소
동리 사람 인사마다 즐거웁던 날 /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 용감하게 싸우시나 / 님이여 건강 하소서
위문공연 중에 있었던 가슴 아픈 일화는「최전방 공연을 갔을 때 한 젊은 군인이 무대로 나와 춤을 추었다. 금사향은 씩씩한 그를 격려하려고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노래했다. 이튿날 공연 때 그 군인이 보이지 않아 좌중에 물어보니, 전날 밤 적의 기습으로 전사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눈물이 핑 돌고 현기증이 났지만 꾹 참고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금사향(琴絲響)이 부른 대표곡으로는 1952년〈님 계신 전선〉(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과
1954년〈홍콩 아가씨〉(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1956년〈소녀의 꿈〉(손석우 작사·작곡)
등이 있습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2010년 제16회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 특별 공로상 수상,
2011년 제1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습니다.
금사향은 2018년 5월 10일 작고해, 현재 전북 임실호국원의 전우들 곁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님 계신 전선〉노래비는 2014년 6월 24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평화공원’에 세워졌습니다.
–〈홍콩 아가씨〉–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금사향(1954년, 오리엔트레코드사)
1절.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 나는야 꿈을 꾸며 꽃파는 아가씨
그 꽃만 사 가시는 그리운 영란꽃 / 아아아아 꽃잎같이 다정스런 그 사람이면
그 가슴 품에 안겨 / 가고 싶어요
2절. 이 꽃을 사가세요 홍콩의 밤거리 / 그 사람 기다리며 꽃파는 아가씨
오늘도 하나 남을 애달픈 영란꽃 / 아아아아 당신께서 사가시면 첫사랑 인연
오늘도 꿈을 꾸는 / 홍콩 아가씨
〈홍콩 아가씨〉, 이 노래는 피란시절 한국가요의 산실이었던 대구의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1952년 녹음실이 없어 살롱을 빌려 녹음돼 불리어지다가 1954년 음반으로 발매된 노래입니다.
당시 피난시절의 피폐한 삶에 비해 홍콩은 자유, 동경, 향락, 풍요로움을 간직한 곳이었습니다.
〈홍콩 아가씨〉와 허민의〈페르샤 왕자〉가 대히트를 친 부산에서 도미도레코드사 한복남 사장은〈페르샤 왕자〉로 기와집을 받고〈홍콩 아가씨〉로 벽돌집을 지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아내의 노래〉, 유호 작사, 손목인 작곡, 1952년도에 가수 심연옥이 취입했던 노래입니다.
〈아내의 노래〉원곡은 1948년 김백희의〈안해의 노래〉(김다인 작사, 손목인 작곡)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삼팔선이 그어진 것은 1945년 8월, 군사지도 위에 38선을 그은 사람은 미국의 3부 조정위원회(SWNCC)에 근무하던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 대령, 30여분 만에 그었답니다.
처음엔 군사작전의 지형적 용이점을 고려해 39도선이 고려됐는데, 예일대학교 지리학 교수인 니콜라스 스파이크만의 의견에 따라 최종 38도선으로 정해졌다고 합니다.(2014년 ‘운명의 1도’)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까지 248㎞의 철조망으로 장벽을 이루고 있고, 또 남북으로 너비 4㎞의 공간인 비무장지대는 지난 70여 년의 세월을 흘려보냈습니다.
–〈안해의 노래〉– 김다인 작사, 손목인 작곡, 김백희 (1948년, K.B.C)
1절. 당신이 가신 길은 가시밭 골짜기오나 / 기어코 가신다면 내 어이 잡으리까
가신 뒤에 내 갈 곳도 님의 길이요 / 까마귀가 울어도 떨리는 가슴 속엔
피 눈물이 흐릅니다 / 피 눈물이 흐릅니다
2절. 가신단 그 때 종은 꿈속에 울었나이다 / 이 몸이 죽어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넋이야 있든 없든 님 향한 마음 / 이 세상이 휘돌아 떨리는 가슴 속엔
잊을 길이 있으리까 / 잊을 길이 있으리까
1947년 HLKA(현 KBS) 방송국에서 방송경음악단을 구성해 광복과 더불어 민족적 주체성을 높이는 새로운 방송가요를 만들었는데, 1948년 정부수립과 동시에 국군이 창설됐던 이 무렵 3·8선에서는 작은 군사충돌이 잦았습니다. 〈안해의 노래〉는 군인의 아내로서 남편을 싸움터로 보내고 굳세게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노래에 담은 방송가요였던 것입니다. 원창자 김백희는 이때 HLKA 방송국이 최초로 선발한 전속 가수였습니다. 한국방송문화협회에서 음반을 제작해 판매했지만 작사가 김다인(조명암)이 월북을 하면서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되었고, 6.25전쟁 중인 1952년 작사가 유호가 가사를 바꿔 곡명을〈아내의 노래〉로 심연옥이 재취입 했습니다.
–〈아내의 노래〉– 유호 작사, 손목인 작곡, 심연옥(1952년, 오리엔트레코드사)
1절.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옵기에 /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가신 뒤에 제 갈 곳도 님의 길이요 / 바람 불고 비 오는 어두운 밤길에도
홀로 가는 이 가슴에 / 즐거움이 넘칩니다
2절. 님께서 가신 길은 빛나는 길이옵기에 / 손수건 손에 들고 마음껏 흔들었소
떠나시는 님의 뜻은 등불이 되어 / 눈보라가 날리는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처럼 / 님의 행복 빛나소서
심연옥(沈蓮玉)은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무용연구소’에서 무용을 공부했습니다.
1946년 국도극장(1919년 개관)에서 김해송이 이끈 KPK악극단(단장 김해송 K, 연출 백은선 P, 무대미술감독 김정환의 K자를 딴 이름) 공연을 봤는데, 그 무대에 출연한 친구(주리)를 만나 친구에게 부탁해 김해송(〈목포의 눈물〉이난영 신랑) 만나 KPK악극단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그 당시 KPK 악극단에는 당대 최고의 가수들인 신카나리아, 백설희, 김백희 등이 단원이었고, 1950년〜1960년대 작사가·작곡가로 명성을 날린 손석우가 악단에서 기타를 쳤는데 김해송의 애제자였습니다. 1947년〈한강〉(최병호 작사·작곡)을 취입했고, KPK 악극단장 김해송이 신임해 무용과 노래를 겸비한 가수로 1948년 ‘투란도트’, 1950년 ‘카르멘 환상곡’, ‘로미오와 줄리엣’ 등 뮤지컬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활동하다 6.25 전쟁 때 김해송이 납북된 후, 한국 뮤지컬을 제작할 감독이 전무한 상태에서 뮤지컬 무대를 잃게 되어 할 수 없이 대중 가수로 전향했습니다.
KPK악극단은 해방후 미군이 들어온 것을 계기로 연출가 겸 작곡가, 가수였던 김해송은 부인 이난영과 위문공연을 계획하고 이를 실현하여 1945년 10월 18일 부민관에서 있었던 연합군 위문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김해송과 부인 이난영은 본격적인 공연단을 구성했는데, 그 공연단이 바로 KPK악극단 이었습니다. 1946년 4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신문광고에는「K.P.K 봄마지 野外公演大會(야외공연대회) 21일부터 28일까지 晝間(주간) 午前(오전) 9시 午後(오후) 5시 夜間 午後 6시 午後 9시 반 昌慶苑(창경원), 출연진은 현경섭과 그 악단, 아리랑 보이스-, 저고리 씨스터-, 솔로 가수 김해송, 박시춘, 윤부길, 최병호, 강희준, 장세정, 옥잠화, 신카나리아, 나성려, 이난영 출연, 동시상영 뉴-쓰영화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48년 12월 31일자 광고엔「K.P.K 新正 大公演(신정 대공연), 김해송 악단, 손석우, 현경섭, 송민영 등 11명, 가수는 이난영, 심연옥, 계수남 등 14명, 그리고 特別出演(특별출연) 김정구, 1월 1일부터 中央劇場(중앙극장) 自動煖房完備(자동난방완비)」또한 1950년 1월 1일 경향신문 광고는「K.P.K 新春 大公演(신춘 대공연), 1950년도를 스타–트 하는 대호화공연 〈칼멘 환상곡 전 9경〉1일부터 時公館(시공관), ‘각본 김해송, 김정섭, 백은선, 연출 백은선, 음악 : 김해송, 이봉룡, 장치: 김정환, 안무 박용호, 전만경, 출연 가수 : 이화실, 황해, 백설희, 김옥희, 금년동, 심연옥, 이인권, 강준희, 이난영, 장세정, 손일평, 이남수, 이종원, 이영화, 원정자, 문영희, 김영자, 유명숙, 김은자, 신카나리아, 이몽녀, 박옥초, 지일연, 전만경, 전해남, 전지남, 전천남, 전우봉 등 명단이 실려 있어, 그 당시에도 공연은 광고도 활발히 한 것 같습니다.
심연옥은 전쟁이 끝난 1954년 도미도레코드사에서 손로원이 개사한〈한강〉을 재취입 했고,
1954년〈야래향〉(반야월 작사 이재호 편곡, 원창 1939년 리샹란=이향란=야마구치 요시코)
1955년〈도라지 맘보〉(탁소연=나화랑 작사 나화랑 작곡)〈그대 이름은〉(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
1957년〈시골버스 여차장〉(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전화통신〉(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
〈쓸쓸한 여관방〉(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1966년〈꽃파는 아메리카 아가씨〉(이인권 작곡)
등을 발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고, 1957년 가수 백년설과 혼인하면서 가수 활동을 거의하지 않았습니다. 1979년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계시던 중 1987년 가요 무대 100회 기념 무대에 출연해 〈아내의 노래〉를 불렀고, 1989년 해금 가요편에서는〈한강〉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는 2013년 가요무대 ‘가요산맥 백년설 & 심연옥편’에 출연해〈아내의 노래〉와〈한강〉을 부르신 것입니다. 올해 연세가 만 93세인 심연옥님의 건강하심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필자가 동화고등학교(남양주시 도농동)을 다닐 때 한 달에 한 번 수요일 오후 수업시간에 있었던 ‘특활시간’에 문학반을 자원했는데, 6월 특활시간은 점심을 먹고 잠이 쏟아지는 시간대라 지도하시던 김봉덕 선생님께서 필자를 부르시면 “옛날 노래를 잘한다고 하는데 나와서 노래 한 번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당당하게 교실 앞 연대로 나가〈아내의 노래〉를 불렀습니다.「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 옵기에 /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준비가 안된 상태라 다음 가사를 까먹었습니다. “에이〜”, “에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야유소리(?)에 바로 나훈아의〈물레방아 도는데〉를 2절까지 멋들어지게 불렀던 기억이 새록 새록 나고 있습니다.
1984년 KBS 조사 6.25 전쟁가요 10곡(TOP TEN) 순위
1위 1956년 이해연〈단장의 미아리고개〉(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2위 1953년 현인〈굳세어라 금순아〉(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
3위 1950년 현인〈전우야 잘자라〉(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4위 1952년 심연옥〈아내의 노래〉(유호 작사, 손목인 작곡)
5위 1952년 신세영〈전선야곡〉(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6위 1951년 금사향〈님 계신 전선〉(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7위 1954년 유춘산〈향기 품은 군사우편〉(박금호 작사, 나화랑 작곡)
8위 1956년 원방현〈꽃 중의 꽃〉(서일수 작사, 황문평 작곡)
9위 1958년 최갑석〈삼팔선의 봄〉(김석민 작사, 박춘석 작곡)
10위 1952년 황금심〈삼다도 소식〉(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다음에는〈단장의 미아리고개〉〈굳세어라 금순아〉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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