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17. 〈향기품은 군사우편〉〈이별의 부산정거장〉 (2021.06.28.)
2021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조국과 민족, 부모와 형제, 국민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리고자 지난 5월 31일부터 오늘까지 총 5회에 걸쳐 우리나라 현대사의 격동기인 1948년부터 1959년까지 민족의 한과 희망을 담은 대중가요를 실어 보았습니다. 1948년 남인수의〈가거라 삼팔선〉을 시작으로 6.25 전쟁 중 발표된 1951년 현인의〈전우야 잘자라〉황정자의〈삼다도 소식〉박재홍의〈경상도 아가씨〉1952년 신세영의〈전선야곡〉금사향의〈님계신 전선〉심연옥〈아내의 노래〉박단마〈슈샤인 보이〉1953년 현인〈굳세어라 금순아〉가 있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후에는 전쟁으로 겪었던 상흔을 극복하고 내일의 희망을 담은 노래가 많았습니다. 1953년 남인수의〈이별의 부산정거장〉1954년 유춘산〈향기품은 군사우편〉1956년 원방현의〈꽃중의 꽃〉이해연의〈단장의 미아리고개〉1959년 최갑석의〈삼팔선의 봄〉이 대표적입니다.
〈향기 품은 군사우편〉은 박금호 작사, 나화랑 작곡으로 1954년 유춘산이 발표한 노래입니다.
작사가 박금호가 어느 여인의 편지 사연을 받고 노랫말을 지었다고 하여서 더욱 실감이 나는 〈향기 품은 군사우편〉은 1952년 방송을 통해 전파돼 입소문을 통해서 인기를 끌었던 노래로 전시 중에 많이 불려 오다가 전쟁 후인 1954년 라이온레코드사를 통해 음반이 발매됐습니다. 남인수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졌으나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한 미성(美聲)을 가졌던 유춘산은 1931년 서울 출생이고, 당시 102야전공병단 소속 군예대원인 것말고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취입은〈생산항구〉〈안개낀 목포항〉〈영일만 뱃사공〉〈처녀일기〉〈평양성의 울음소리〉등 작사가 박금호는 1930년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1993년 작고, 1954년 금사향〈남국의 처녀〉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군대에 간 식구들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밤낮없이 기다리던 가족들은 군사우편이 도달하면 배달부가 문밖을 나가기도 전에 편지를 받은 자리에서 내용을 확인하고 무사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으면 저절로 기쁨의 눈물이 나오던 시절, 그 시절을 대변한 노래〈향기 품은 군사우편〉. 이 노래 한 곡으로 작곡가 나화랑의 위상은 확고해졌고, 작사가인 박금호와 가수 유춘산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전쟁 미망인들에게는 위안을 줬고, 전쟁 유공자들에게는 자긍심을 갖게 했으며, 당시 국민들이 함께 부르고 불렀던 노래〈향기 품은 군사우편〉
1950년에서 1960년대까지 군대 간 남편을 둔 아내들이나, 군복무 하는 애인을 둔 국민들은 흰봉투에다가 ‘군사우편’이란 파란색 소인이 찍힌 편지를 학수고대 하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편지요”하는 집배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부엌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손살같이 달려나갔고, 꿈에서라도 애타게 보고 싶어 낮잠을 자고 있을 땐 벌떡 일어나 달려나가 편지를 받아보고는 눈물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6.25 전쟁 속에 살았던 시절 사랑하는 낭군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선으로 떠나고, 여인네들은 고향에 남아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사랑하는 낭군이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총뿌리를 붙잡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을까? 아니면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진을 꺼내어서 나를 보고 계실까? 하는 이별과 통한의 슬픔을 그렸고, 오늘일까 내일일까 군복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여인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 당시에 국민들의 심정을 잘 표현한 이 노래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유춘산의 맑고 아름다우면서도 정감이 있는 목소리가 짙게 향기를 품고 있어 더욱 애절합니다.
–〈향기 품은 군사우편〉– 박금호 작사, 나화랑 작곡, 유춘산(1954년)
1절. 행주치마 씻은 손에 받은 님 소식은 / 능선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엔 / 전해주는 배달부가 싸릿문도 못 가서
복받치는 기쁨에 나는 울었소
2절. 돌아가는 방앗간에 받은 님 소식은 / 충성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엔 / 옛 추억도 돌아갔소 얼룩진 한자 두자
방앗간의 수레도 같이 울었소
3절. 밤이 늦은 공장에서 받은 님 소식은 / 고지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엔 / 늦은 가을 창 너머로 보이는 저 달 속에
그대 얼굴 비치며 방긋 웃었소
또다른 3절. ‘버들 푸른 빨래터에 받은 님 소식은 / 필승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엔 / 그 얼굴이 떠 올랐소 군악소리 들렸소
반가움에 겨워서 나는 울었소
〈향기 품은 군사우편〉은 3절로 구성된 가사에 각각 담은 이야기는 전쟁터에 나간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는 세명의 아내가 군사우편 편지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데, 1절은 부엌일을 하던 아내, 2절은 방앗간에서 일을 하던 아내, 3절은 공장에서 야근일을 하고 있던 아내를 노랫말에 새겨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군대에 간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들, 오빠나 남동생을 기다리던 아내와 어머니, 누이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영원히 한결같을 것입니다.
2013년 6월 16일에 ‘청운클럽’님이 유튜브에 올린 ‘향기품은 군사우편 유춘산’에 달린 댓글 2.
「이 가사 가만히 음미하면 너무 슬퍼요. 고향의 부모님에게 당신 아들의 검은 영정띠가 찍혀있는 전사 통지서를 전하기가 너무 힘들어 싸리문 앞에서 꺼억~ 꺼억~ 목놓아 우는 배달부. 아들의 소식을 매일같이 기다리는 어머니는 오늘은 혹시 아들에게서 잘있다는 소식이 왔는지, 한달에 한 두어번 먼 길을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오는 배달부를 위해 대접 한가득 물이라도 떠서 내어오다 고개를 숙인 체 떨리는 배달부의 손에 잡힌 젖은 봉투엔 물방울이 가득하다.」
「1955년도 진해 해병대 신병훈련소~~ (4개월간)의 훈련기간 대형스피커서 주야로 울려펴저 힘든 기간을 잘 참고 참아 해병대원으로 만들어질 때 큰 위로를 받았던 추억의 정든 노래!!!
〈향기 품은 군사우편〉은 힘들 때마다 자주 들으면서 이제 어언 80살이 넘었습니다. “필승”」
유춘산이 부른 대표적인 또다른 노래는 1947년 데뷔곡〈새별〉과 1954년〈안개낀 목포항〉
1953년 7월 25일 강원도 화천군 소재 406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7사단 3 연대 2 대대 6 중대장 故 이규학(1928년생) 소령의 향기 품은 군사우편. “그리운 그대에게, 보이지 않으나 보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만은 항상 당신의 가슴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물음이 있을 때는 그대의 가슴에게 물어주시오.” 짧지만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부인 정금원 여사는 작고하실 때까지 남편의 군번줄 ‘204515’와 100여 통의 군사우편을 지니고 계셨다고 합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1953년 남인수가 발표한 노래입니다.
6·25 전쟁 당시에 부산 지역에서의 고단했던 피난살이의 심정을 담은 대표적인 노래입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비록 피난살이의 고단한 삶은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었지만 부산 사람들과의 인연이 큰 힘이 되었음을 표현하고 있고, 만남과 이별의 공간이었던 부산역을 소재로 한 노래 중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노래로 발매되자 단번에 판매고 5만여 장을 기록했습니다.
문화관광부 제1차관과 제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장실님께서 일제강점기부터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까지 각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의 뒷 얘기와 그 안에 담긴 사회상을 풍성하게 풀어내어 지난 4월 1일 편찬한「트롯의 부활–가요로 쓴 한국현대사」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이별의 부산정거장〉탄생 비화에 대한 말씀을 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작곡가 박시춘과 작사가 유호는 부산 공연을 마치고 자갈치 시장을 지나던 중 박시춘이 “이제 전쟁이 곧 끝날 것 같은데 부산에 피난 온 사람들이 서울로 가게 될 것이니 그 느낌 같은 것을 노래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해 유호가 노랫말을 쓰고, 박시춘이 곡을 만들어 남인수에게 주니까 남인수가 서너 번 불러보더니 “박선생님 정말 좋습니더” 그러면서 빙긋이 웃더랍니다. 그래서 시중에 나온〈이별의 부산정거장〉이 엄청 히트했습니다.」 남인수가 곡을 선택할 때 빙긋이 웃는 것은 꼭 히트를 했다고 합니다. 6.25전쟁 전후 박시춘이 작곡한 노래는, 1950년 현인〈전우야 잘자라〉1951년 신세영〈전선야곡〉현인의〈굳세어라 금순아〉1952년 박단마의〈슈샤인보이〉1953년 남인수〈이별의 부산정거장〉등으로 국민들이 울분을 토해내고 희망을 가지게 했습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1954년)
1절.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 잘가세요 잘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어 /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 우네 / 이별의 부산 정거장
2절. 서울가는 십이열차에 기대 앉은 젊은 나그네 / 시름없이 내다보는 창밖에 등불이 존다
쓰라린 피난살이 지나고 보니 / 그래도 끊지 못할 순정 때문에
기적도 목이 메어 소리 높이 우는구나 / 이별의 부산 정거장
3절. 가기전에 떠나기전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 유리창에 그려보는 그 마음 안타까워라
고향에 가시거든 잊지를 말고 / 한 두자 봄소식을 전해 주소서
몸부림 치는 몸을 뿌리치고 떠나가는 / 이별의 부산 정거장
그리고 낯설은 부산 땅에서 피난살이를 마치고 피난지에서의 추억을 간직한 채 환도 열차를 타고 부산을 떠나면서 부산정거장, 즉 부산역에서 이별을 맞는 순간을 애절하게 묘사하였고, 몸부림치며 이별하고 기적마저 슬퍼 우는 가사와는 달리 가락은 빠르고 경쾌하여 희망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고 있습니다. 대중의 감성과 정확히 공감대를 이룬 이 노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국민들로부터 “역시, 노래는 남인수야”라는 호응을 받았습니다. 가사는 슬프지만 흥겹고 신난 빠른 템포의 대중가요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중의 큰 사랑을 받는 노래가 됩니다.
피난민들의 애환을 그려낸〈이별의 부산정거장〉가사 중 ‘피난살이’, ‘판자집’, ‘경상도 사투리’ 등이 직접 등장해 당시의 시대상을 표현합니다. 3절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1절은 피난살이의 생활에 대한 회상을 담았으며, 2절은 피난살이에서 맺은 인연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습니다. 3절에는 남은 부산 사람들이 화자가 되어 떠나는 피난민들에 대한 미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막내 고모부는 처갓집에 왔을때 술이 불콰하게 오르면 장구를 목에메고 마당으로 내려가 마당을 돌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이별의 부산정거장〉을 거창하게 불렀다고 합니다.
–〈울리는 경부선〉– 반야월 작사, 나화랑 작곡, 남인수(1958년)
1절. 연보라빛 코스모스 눈물젖은 플랫트홈 / 옷소매를 부여잡고 한없이 우는 고운 낭자여
구름다리 넘어갈 때 기적 소리 목이 메어 / 잘 있거라 한 마디로 / 떠나가는 삼랑진
2절. 달려가는 철로가에 오막살이 양지쪽에 / 소꼽장난 하다말고 흔들어 주는 어린 손길이
눈에 삼삼 떠오를 때 내 가슴은 설레이어 / 손수건을 적시면서 / 울고가는 대구정거장
3절. 전봇대가 하나 하나 지나가고 지나올 때 / 고향이별 부모이별 한정이 없이 서러워져서
불빛흐린 삼등 찻간 입김 서린 유리창에 / 고향 이름 적어보는 / 이별 슬픈 대전정거장
1절은 삼랑진역, 2절은 대구역, 3절은 대전역이 등장하지만 이 노래의 주무대는 낙동강입니다. 그 중 삼랑진(三浪津)은 낙동강·밀양강과 바닷물 세 물이 만나 일렁이는 나루라 붙혀진 이름. 가수 남백송(본명 김지환)의 고향이라서 그는〈경상도야 잘있거라〉에서 “부산아 잘있거라 / 삼랑진아 다시 보자”라고 노래했고, 1954년 박재홍이 부른〈비 내리는 삼랑진〉도 있습니다. 그밖에 1967년 유경미〈세갈래 길 삼랑진〉과 1998년 문희옥〈이별의 삼랑진〉도 있습니다. 그리고 구포나루, 구포다리, 구포국수의 고장 구포는 1933년 김용환〈낙동강〉노래에 “구포의 물레방아들은 언제까지 우시나요”가 있고 1967년 박철로〈눈물의 구포다리〉, 낙동강 종점 다대포는 1964년 영화 ‘동백아가씨’의 촬영지. 1967년 이미자 선생님〈다대포 처녀〉가 있습니다.
☞ 경부선 철도노선, 서울역→ 수원역→ 대전역→ 동대구역→ 밀양역→ 삼랑진역→ 물금역→ 구포역→ 사상역→ 부산진역→ 부산역까지 총길이 441.7km에 총 90개의 기차역이 있습니다. 낙동강은 삼랑진역부터 부산역까지의 차장 밖을 내다보면 유유히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울리는 경부선〉이 노래의 고향은 삼랑진부터 부산역까지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이별의 부산정거장〉과 같은 철도와 관련된 대중가요가 꾸준히 발표됐습니다.
1937년 남일연〈눈물의 경부선〉1941년 백년설〈만포선 길손〉1956년 남인수〈무정열차〉손인호의〈비 내리는 호남선〉 1957년 남백송〈이별의 삼등열차〉손인호의〈이별의 밤열차〉〈이별의 서울역〉1959년 남성봉〈서울행 삼등열차〉와 손인호의〈기적이 울든 그밤〉안정애〈대전부르스〉윤일로〈눈물젖은 서울역〉1960년 남인수〈울리는 경부선〉손시향〈이별의 종착역〉 1962년 손인호〈고향열차〉1963년 손인호〈나그네 밤열차〉〈불꺼진 대합실〉〈프랫트홈〉 1964년 김중자〈서울역 밤열차〉손인호의〈최종열차〉1966년 고봉산〈이별의 대구정거장〉남상규〈추풍령〉손인호〈경원선 기적소리〉1967년 문주란〈서울역〉손인호〈떠나가는 밤열차〉 1968년 은방울자매〈마포종점〉1972년 나훈아〈고향역〉〈녹슬은 기찻길〉이미자〈서울간 님〉 1978년 이은하〈밤차〉1981년 김연자〈서울행 완행열차〉1985년 한영애〈완행열차〉1986년 김수희의〈남행열차〉서울시스터즈〈첫차〉1987년 서울시스터즈의〈청춘열차〉1989년 김현철〈춘천가는 기차〉1993년 송대관〈차표 한 장〉2000년 김용임〈경의선 열차〉박진도〈야간열차〉 2008년 진성〈안동역에서〉2016년 김연자〈밤 열차〉2017년 현숙〈이별없는 부산정거장〉2018년 홍기철〈목포역 시계탑〉2019년 장윤정〈목포행 완행열차〉2021년 손종환〈목포역〉
다음에는 1983년 KBS 남북이산가족 찾기와 관련된 노래 2곡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 사진 5장, 동영상 3편〈향기품은 군사우편〉〈이별의 부산정거장〉〈울리는 경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