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4. 경상북도 대중가요〈신라의 달밤〉〈안동역에서〉(2021.08.16.)
어제는 제75주년 광복절 이었습니다. 뉴스아이신문 애독자 여러분! 모두 다 태극기는 달으셨죠?
경상북도(慶尙北道)는 대한민국 동남부에 있는 도입니다. 동쪽은 동해, 서쪽으로 전라북도·충청북도, 남쪽으로 대구광역시를 둘러싸며 울산광역시·경상남도와 접하고, 북쪽은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며, 대한민국의 행정구역 중 관할 면적이 가장 넓은 경상북도 도청 소재지는 안동시 풍천면입니다. 경주를 중심으로 다양한 불교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으며, 신라와 고려시대에 축조된 산성과 조선시대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경상북도는 신라시대의 화랑도가 탄생한 곳이자 고려시대 거란 침입 당시 초조대장경을 보관하던 호국 정신의 중심지였고, 몽고 침입 당시에는 팔공산을 중심으로 군사적 요충지의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선비 문화가 발달한 곳이자 유학의 본고장으로 43개의 향교를 비롯하여 수많은 유림(儒林)을 양성하였고,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등의 학자들을 배출 영남학파를 형성했습니다.
–〈신라의 달밤〉–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1947년 럭키레코드사)
1절. 아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걸음을 멈추어라
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에서 /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2절. 아아 신라의 밤이여/ 화랑도의 추억이 새롭구나/ 푸른 강물 흐르건만 종소리는 끝이없네
화려한 천년 사직 간 곳을 더듬으며 /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3절. 아아 신라의 밤이여/ 아름다운 궁녀들 그리워라/ 대궐 뒤에 숲속에서 사랑을 맺었던가
님들의 치맛소리 귓 속에 들으면서 /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2013년 10월 10일 편찬된 ‘노래따라 삼천리’에 실린 내용을 정리하면,「1947년 작사가 유호는 드라마를 정신없이 집필하고 있던 그에게 박시춘이 불쑥 나타난다. “유호씨, 지금 바빠요? 이제 해방도되고 했으니 한민족의 정서가 담긴 노래 한 곡 만들어 봅시다. 이미 작곡을 하나 해 뒀으니 작사를 좀 해 주시오. 오늘 가수한테 연습시키려고 하는데 급해요. 급해! 안돼면 지금 당장 1절만이라도 만들어 주시오! 노래 제목은〈신라의 달밤〉.” “차라리 우물가에서 숭늉을 달래지 그래요? 당장 어떻게 노래를 만듭니까? 드라마도 아직 다 못 썼어요.” “에이, 좋은 머릴 어디다 쓰려고 그래요? 이따 명동에서 만나 대포나 한 잔 합시다. 허허허.” 박시춘은 유호의 답변도 기다리지 않고 휑하니 나가 버렸다.
사람 좋은 유호는 박시춘이 흥얼대던 멜로디를 기억해 내면서 경북중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한 번 갔었던 경주를 우선 기억해 내어서 신라 천년 사직(司直)에 부서진 신비로운 달빛 조각을 떠올렸다. 그는 드라마를 쓰던 원고지에 가사를 옮겨 적기 시작했다.」 현인은 1947년 시공관(현재 명동예술극장)에서 영화 ‘자유부인’ 상영 때〈신라의 달밤〉을 열창해 관객들의 계속되는 앵콜요청에 아홉 번이나 불렀다고 합니다.
「1948년 해방 정국. 코가 유난히 커 ‘코끼리’란 별명을 가진 가수 현인은 누구도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다. 다들 그냥 ‘신라의 달밤’이라고 불렀고, 간혹 ‘코끼리’라 부르기도 했다. 명동이나 충무로를 지나칠 때면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마져도 대뜸 “야, 저기 신라의 달밤이 간다”고 소리쳤다. 그만큼 그는 일세를 풍미한 가수로 떠있었다. 현인은〈신라의 달밤〉이란 노래로 인기가 치솟아 빠쁠 때라 귀가 시간은 통금을 넘기기가 일쑤였다. 이따금씩 순경들의 검문에 걸려들 수 밖에 없었다. “그기 누군데 이렇게 통금 시간에 나다니는 거요?”, “나요. 신라의 달밤이요.” 이 한마디면 무사 통과였다. 큰 코에 서글서글한 눈매, 여기다 함박웃음을 곧잘 터트리는 현인은 인상이 좋아 누구에게나 정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사람 자체가 멋쟁이요, 풍류객이다. 늘상 웃음을 띄우고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호걸형이기도 했다.」
부인 김미정 여사의 회고는 “경상도 분이라서 그런지 성격이 무척이나 무뚝뚝 하세요. 약주는 많이는 안하셨지만 좋아하셔서 소주 한 병을 아침과 점심, 저녁 세 번에 걸쳐서 드시곤 했죠. 쓸데없는 말과 잔소리는 없고 이해심은 많으셨지만 엄격하셨죠. 시간 관념도 굉장히 철저했어요.
그리고 자신이 출연한 TV방송은 절대 안보셨고, 당신의 노래중에서〈세월이 가면〉과〈굳세어라 금순아〉를 특히 좋아 했습니다. 6.25때 위문공연을 갔다가 차가 굴러 허리를 크게 다쳐서 노래를 부를 때에 피아노에 기댄다거나 의자에 앉아서 불러 건방지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고, 거제포로수용소에서 포로 교환을 할 때〈신라의 달밤〉을 부르게 해 이남사람과 이북사람을 구별했다는 일화가 유명했죠. 만년에는 고향 부산에서 살기를 원했고 부산 모래사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자신의 노래를 실컷 불러보는게 꿈이라고 했죠. 바쁜 공연으로 몸을 돌보시지 못했습니다.”
경주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년)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해, 혜공왕 10년(774년)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년)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는데, 이후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한 뒤 복원을 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불국사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교와 백운교, 또한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교와 칠보교가 국보로 지정,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불국사의 문화재들을 보면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훌륭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들도 그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합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불국사는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습니다.
노래비는 2000년 8월 29일 경주시 불국동에 건립되어서 오고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모읍니다.
–〈안동역에서〉– 김병걸 작사, 최강산 작곡, 진성(2008년 쿠킹뮤지)
1절.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 안오는 건지 못오는 건지 /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2절. 어차피 지워야 할 사랑은 꿈이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 안오는 건지 못오는 건지 / 대답 없는 사람아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
가수 진성은 전북 부안이 고향이지만 경상북도 안동시의 명예시민이고, 가수 설운도는 부산 출신이지만 전라남도 순천시에는 ‘설운도길’이 있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 화합의 상징입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작사가 김병걸씨가 ‘안동사랑 모음집’이란 CD를 제작하면서 알고 지내던 가수 진성에게 준 곡이〈안동역에서〉라고 합니다. 진성은〈안동역에서〉는 오랜 무명가수 생활을 벗게 해준 인생곡이라고 했습니다. 2008년 첫 음반 발표 후엔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진성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않아 거의 부르지 않았다고 했으나 이 곡이 세상에 다시 알려지기까지 무려 6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2014년 작사가 김병걸이 “지금 이 시기에 부르면 딱 히트할 곡”이라고 권유하자, 그는 나훈아가 부른〈어메〉의 작곡자 정경천씨한테 복고풍 리듬으로 편곡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재발표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고, 1년 여만에 역주행 신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진성의 회고, “모든 게 다 꿈만 같았죠. 10대 후반 밤무대서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쉰 살이 넘도록 무명이었으니까요. 솔직히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고, 더이상 승부가 나지 않으면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하던 차에 뒤늦게 히트곡이 터진 거죠.” 〈안동역에서〉의 히트는 애초 타이틀 곡도 아니었기 때문에 의외로 비쳐졌습니다. 노래가 터지면서〈님의 등불〉〈태클을 걸지마〉〈보릿고개〉등 이전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곡들까지 덩달아 히트 대열에 올라서는 계기가 됐습니다. 진성의 말 “17살부터 10년이상 남의 노래로만 무대에 섰고, 93년에야〈님의 등불〉로 정식 데뷔했어요. 이후〈사랑은 장난이 아니야〉〈내가 바보야〉같은 노래를 불렀는데 여전히 가수로는 존재감을 내지 못했죠. 〈안동역에서〉의 히트가 제 40년 무명가수 인생을 바꾼 셈이죠. 그리고 안동역이란 특정 지역이 언급돼 대중적 히트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는 기우였습니다.” 누구에게나 단 한번의 첫사랑의 기억은 있습니다. 아픈 이별의 쓰라림도 한 번쯤은 가슴에 담고 있을터, 〈안동역에서〉는 연인간 보편적인 사랑과 이별을 소재로 하여 애틋함을 더하는 노래입니다. 영상 사이트에서 입소문을 타던〈안동역에서〉는 2014년 5월, MBC 트로트 시상식인 ‘가요베스트’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받았고, 6월 MBC케이블 음악채널 MBC 뮤직의 트로트 프로그램 ‘가요시대’가 당시 신설한 ‘트로트 차트 핫 20’에서 첫 1위곡이 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진성은 “2014년부터 6년 동안 노래방 인기가요 순위 1위가〈안동역에서〉였다.”로 말했습니다.
2014년 7월 3일 안동역 광장에〈안동역에서〉노래비가 건립되어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카카오스토리, 김상욱의 생활엣세이「안동역에 얽힌 사랑이야기…」(2021년 1월 14일)
「‘바람에 날려 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건지 못 오는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마음만 녹고 녹는다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 어차피 지워야 할 사랑은 꿈이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건지 못 오는건지 대답 없는 사람아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
가수 진성이 부른〈안동역에서〉라는 노래의 노랫말이다. 가수 진성은 전북 부안 출신이다. 그리고 노랫말의 배경은 경북 안동역이다. 정치가 만들어 놓은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뛰어 넘는 노래인 것이다.
지역감정을 뛰어 넘는 노래는 또 있다. 가수 나훈아가 부른〈고향역〉이라는 노래다. 〈고향역〉의 배경은 전북 익산에 있는 ‘황등역’이 그 배경이다. 그리고 나훈아는 경남 부산사람이다. 안동역에서… 이 노래는 사랑하는 연인의 애절한 사연을 담은 노래다.」 〈안동역에서〉조용히 폼나게 한번 불러보세요.
경북 안동역사 주차장 뒤편에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오층 전탑과 오래된 벚나무에 얽힌 역무원과 승객의 애절한 사랑을 담고 있다. 해방전 어느 해 겨울 밤, 한 처녀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그 때 젊은 역무원이 역무실로 그녀를 업고 와 정성스레 간호를 해주고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며칠 뒤 그 처녀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역무원을 찾아왔고,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당시 안동역 주변에는 두 사람이 같이 시간을 보낼 만한 이렇다 할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늘 오층 전탑 주위를 거닐며 사랑을 나누곤 했다. 그리고 그 옆에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며 사랑의 징표로 벚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그러다 얼마 쯤 뒤, 그 역무원이 갑자기 일본 고등계 형사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그러자 그 역무원은 애인이 걱정할 것을 우려해 “같이 심은 벚나무가 죽지 않는 한 자신에게도 별 일이 없을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만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역무원은 비밀 독립운동단체의 단원이었고, 그런 사실이 일본 형사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도 처녀는 수시로 역을 찾아와 전탑 앞에서 간절히 기도를 하며 벚나무를 보살폈다. 그리고 몇 년 뒤 6.25 전쟁이 일어났고, 피란을 떠났던 그녀가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오자 안동역 부터 찾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뜻밖에도 안동역에는 그가 와 있었습니다. 만주에서 독립군 생활을 하던 그는 해방이 되면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북한군에 편입됐다가 전쟁이 일어나 안동까지 내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벚나무를 보고는 그녀 생각에 도저히 그 곳을 떠날 수가 없어 국군에 투항한 후, 그녀를 기다리다 만나게 되었다. (MBC ‘서프라이즈’)
「♡ 사랑의 무게란 이런 것일 것같다. 어느 한 쪽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것.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랑처럼 달콤하고 따뜻하고 감미로운 느낌이 어디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새로운 나날을 위해 행복을 충전하는 시간이다. 사랑! 참 좋은 말이다.♡」 누구에게나 단 한번의 첫 사랑의 기억은 있을 것이고, 이별의 쓰라림도 한번 쯤은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2020년 10월 21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진성은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했습니다.
“단골 식당 주인이 아내의 친구였고 진성의 노래를 즐겨 듣던 아내와 진성을 소개해 준 것이 만남의 시작. 진성은 양평 별장이 있다는 말이 가슴에 확 꽂혔다고 능청을 떨면서도 향긋한 가을바람이 감싸는 느낌이었다고 아내와의 설렜던 만남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진성은 아내가 자신을 위해 자연산 백도라지가 암에 좋다는 말을 듣고 산에 올라가서 바위에 있는 백도라지를 캐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얼굴과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며 평생을 바쳐 사랑하기로 했다.”는 사연도 털어놨습니다. 「나라 사랑, 이웃 사랑, 가족 사랑, 자신 사랑 모두 소중한 사랑입니다.」
☞ 경상북도 대표 노래, 이미자 선생님 1964년〈포항 소야곡〉1966년〈구룡포 처녀〉1969년〈고모령을 넘을 때〉1958년 도미〈신라의 북소리〉1960년 현인〈불국사의 밤〉1961년 시민철〈님떠난 대구역〉1962년 박재홍〈울고넘는 문경새재〉1965년 김상희〈울산 큰애기〉1967년 이시스터즈〈울릉도 트위스트〉조미미〈구룡포 사랑〉〈낙동강 아가씨〉1972년 나훈아〈문경재〉1977년 조미미〈금호 아가씨〉1982년 정광태〈독도는 우리 땅〉1989년 최백호〈영일만 친구〉1999년 오은정〈울산 아리랑〉2004년 홍인숙〈부석사의 밤〉〈순흥 아가씨〉2010년 강민주〈회룡포〉2012년 조은성〈내사랑 군위〉〈제비원 아지매〉2014년 김양〈주산지〉문연주〈삼강주막〉박구윤〈청송으로 오세요〉조은성〈팔공산아〉주현미〈주왕산〉2015년 김수찬〈대구 아가씨〉김용임〈양산에서 맺은 첫사랑〉2016년 신유〈사문진 나루터〉등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미자 선생님의 81세 생신을 맞아〈아씨〉〈여로〉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