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27. 그리운 조미미의〈바다가 육지라면〉(2021.09.06.)
‘조미미(曺美美)’ 본명 조미자, 1947년 1월 17일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출생해 2012년 9월 9일 작고했으니, 3일후 제9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목포에서 성장한 조미미는 목포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5년〈떠나온 목포항〉(감우동 작사/김부해 작곡)으로 데뷔했고, 1969년 발표한 〈여자의 꿈〉(박일명 작사, 김학송 작곡)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1967년〈강화도 처녀〉(천지엽/강포중), 1969년〈산천초목〉(최호영/김학송)〈서산 갯마을〉(김운하/김학송), 1970년〈바다가 육지라면〉(정귀문/이인권)〈선생님〉(이호/이호)〈약혼녀〉(조용하/박원)〈제주아가씨〉(심형섭/심형섭), 1971년〈먼데서 오신 손님〉(이호/이호)〈사랑은 장난이 아니랍니다〉(최홍기/최홍기), 1972년〈단골 손님〉(임영일=이인권/이인권)〈목포 연락선〉(김성유/김성유), 1973년〈동창생〉(이호/이호)〈서귀포를 아시나요〉(정태권/유성민)〈처녀사공〉(김왕래/김왕래), 1974년〈진부령 아가씨〉(박건호/이호), 1975년〈눈으로만 안녕을〉(최홍기=나훈아/최홍기)〈연락선〉(최홍기/최홍기), 1976년〈동백꽃 그늘에 숨어〉(전우/이호)〈참사랑〉(박성규/박성규), 1978년〈진천 아가씨〉(이동원/남국인) 등이 최고의 히트곡들입니다.
지난 2일〈여고시절〉〈사랑의 의지〉〈내 곁에 있어 주〉의 가수 이수미(1952년 전남 영암 출생, 본명 이화자)가 조미미 누님의 곁으로 떠났다고 하니 슬픔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조미미 목포여고 1학년 때 목포방송국 전속가수 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1965년 동아방송 주최 민요가수 선발 콩쿨대회였던 ‘가요백일장’에서 김부자, 김세레나 등과 함께 발탁돼 가요계에 입문했습니다. 1960년대 초 한명숙의〈노란샤쓰의 사나이〉최희준의〈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등 팝 스타일의 노래들에 밀려 잠시 주춤하던 전통가요가 1964년 이미자 선생님의 〈동백 아가씨〉를 계기로 되살아 났습니다. 그 주연은 당연히 이미자 선생님이였고 그 뒤에 트로트의 시골이미지를 시골스럽지 않게, 슬픔 또한 아주 슬프지 않게 노래한 가수가 조미미였습니다. 조미미라는 예명은 데뷔곡인〈떠나온 목포항〉작곡가인 김부해가 당시 같은 지구레코드사 전속이었던 최고의 인기가수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선생님과 이름이 겹쳐 혼동되기 쉽다고 해서 지어줬습니다. 본명인 조미자 보다 더 아름다운 조미미가 인기가수에 걸맞았다고 독자는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인 1966년부터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시작해 빠른시기에 가수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한 조미미는 1967년〈강화도 처녀〉와 1969년〈서산 갯마을〉이 연속를 히트해서 가수로서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산 갯마을〉은 1966년 이미자 선생님께서 불렀지만〈섬마을 선생님〉등 다른 히트곡에 묻혀 빛을 못 보다가 1969년에 조미미가 리메이크해 불러 히트한 명곡입니다. 〈서산 갯마을〉은 필자의 작고하신 장모님 고향이 충남 서산이라 해 불러 히트한 명곡입니다. 〈서산 갯마을〉은 필자의 작고하신 장모님 고향이 충남 서산이라 더욱 애정이 가는 노래이며, 중학교 동창인〈잔치국수〉의 가수 ‘나일강’ 고향도 서산입니다.
조미미는 1968년 9월 일본에서도 가수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와 다섯동생 등 육남매의 가장으로서 역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개런티가 높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유명해 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6개월 후인 1970년 귀국해서 발표한〈바다가 육지라면〉 〈선생님〉〈약혼녀〉등이 크게 히트를 했고, 그 이후에도〈먼데서 오신 손님〉〈단골 손님〉 〈목포 연락선〉〈동창생〉〈서귀포를 아시나요〉〈진부령 아가씨〉〈연락선〉〈동백꽃 그늘에숨어〉등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이 시대 최고의 인기가수 중 한 분이었습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정귀문 작사, 이인권 작곡, 조미미(1970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얼마나 멀고 먼지 / 그리운 서울은 / 파도가 길을 막아 / 가고파도 못 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 바다가 육지라면 / 배 떠난 부두에서 / 울고 있지 않을 것을
아아아아 바다가 육지라면 / 눈물은 없었을 것을
2절 어제 온 연락선은 / 육지로 가는데 / 할 말이 하도 많아 / 목이 메어 못 합니다
이 몸이 철새라면 / 이 몸이 철새라면 / 뱃길에 훨훨 날아 / 어데론지 가련만은
아아아아 바다가 육지라면 / 이별은 없었을 것을
〈바다가 육지라면〉은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이 고향인 가요작사가 정귀문(1942년∼2020년) 님이 1969년 어느 봄날, 고향 인근에 있는 감포해변을 찾아 낚시를 하던 중 눈이 부시도록 푸른 나정리 앞바다에 새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고기는 낚지 않고 작사가 특유의 정과 한을 담은 주옥같은 노랫말만 낚았습니다. 내 고향 바다, 바다가 육지라면! 이 몸이 철새라면! 어려운 시기 현실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을 수평선에 그려놓고 보면서 지은 노랫말! 그렇게 탄생한 가수 조미미 최고의 히트곡은 아직까지 국민들의 애창곡이 됐습니다. 2009년 7월 10일 경주시 감포읍 나정해수욕장에〈바다가 육지라면〉노래비가 건립됐습니다.
정귀문 회고.「1968년 세광 음악출판사의 작사, 작곡가 공모에 당선되어 가요계에 데뷔한 뒤에도 너무 가난해서 신을 신발, 입을 옷 한 벌조차도 변변치 않았던 현실에 너무 가슴이 답답해 이른 봄날 감포 나정해수욕장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니 힘든 현실은 사면이 바다였고, 나는 외로운 섬에 갇혀 있는 듯해서 나를 가로 막는 저 바다가 육지라면, 이 몸이 철새라면 막막한 그 극한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26살 젊은 작사가의 어려웠던 형편이 담겨져 있었네요.
필자도 10살 어린시절, 어느 누구 하나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고향 신포나루로 가서 낙동강 건너 을숙도로 향해 가던 연락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뒤편 전파사에서구슬프고 애절한 조미미의 목 소리로〈바다가 육지라면〉이 흘러나오면 따라 부르면서 배웠던 슬픈 추억이 떠오르네요. 10살 때 배웠던 노래가 지금까지도 기억이 되고 있는게 신기합니다. 정귀문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노랫말로 심금을 울리는 대중가요 1,000여 곡의 가사를 지었고, 경주시 출신 시인 박목월과 소설가 김동리의 작품 등을 소재로 한 가곡을 짓기도 했습니다.
대표곡으로는〈바다가 육지라면〉을 비롯해 1968년 문주란〈먼 여로〉1971년 배호〈마지막 잎새〉1974년 봉은주〈동네방네 뜬소문〉(2019년 가요무대에서 송가인이 불렀음) 1979년 김연자〈먼 훗날〉이 있고,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로는 1970년〈새벽 정거장〉1972년〈기다리다가〉1974년〈마지막 인사〉1975년〈꽃씨〉1976년〈사랑의 길〉등의 노래를 남겼습니다.
작년 8월 23일 정귀문의 고향인 경주시 경주엑스포공원문화센터에서 추모공연이 열렸습니다.
–〈진부령 아가씨〉– 박건호 작사, 이호 작곡, 조미미(1974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진부령 고갯길에 산새가 슬피 울면 / 길을 가던 나그네도 걸음을 멈추는데
굽이마다 돌아가는 사연을 두고 / 말없이 떠나가는 야속한 님아
아아아 아아 울지마라 진부령 아가씨야
2절. 청계수 맑은 물에 구름이 흘러가면 / 굽이 굽이 얽힌 사연 잊을 수 있으련만
돌아서는 발길마다 사연을 두고 / 말없이 떠나가는 야속한 님아
아아아 아아 울지마라 진부령 아가씨야
〈진부령 아가씨〉이 노래 너무 너무 슬퍼요. 조미미 목소리가 너무나 슬퍼서 더욱 슬펍니다.
구슬픈 노랫가락 만큼이나 진부령 아가씨의 실제로 담겨진 이별의 사연도 너무 너무 슬퍼요.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서울에서 구리시를 거쳐 강원도 홍천과 인제를 지나 한계령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면 십이선녀탕이 있는 인제 남교리, 용대리 백담사입구를 지나가면 또 삼거리를 만나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가고, 왼쪽으로 돌아서면 겨울철 빙벽타기로 유명한 용대 매바위를 지나 용대터널을 거쳐가면 해발 약 520미터 진부령고개가 반겨줍니다. 강원도 태백산맥의 5대 고개인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구룡령, 대관령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는 고개가 진부령인 것입니다. 금강산 1만 2천봉의 우리나라 제2봉인 마산봉(해발 1,052m)을 주봉으로 하는 진부령분지에 알프스 스키장이 있으며, 향로봉지구전적비와〈진부령 아가씨〉노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1960년대 진부령에 주둔한 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직업군인과 고갯마루 작은 마을의 가난한 산촌의 아가씨는 서로 사랑을 나누게 되었죠. 젊은 군인이 고향을 떠나 산넘고 물건너 강원도 고성군의 첩첩산중에 있는 진부령 부대에 근무하게 되었으니 젊은 가슴속에는 항상 그리움이 가득했겠지요.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늘과 산, 또 부대에서 같이 근무하는 동료 밖에 없었으니 그 마음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진부령 첩첩산중의 젊은 아가씨 또한 만나 볼 수 있는 사람은 부모님과 고갯마루를 지나는 길손이 유일한 사람이었으니, 순진무구의 순정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애틋한 사랑을 키워가면서 연인사이가 되어 꿈같은 나날들을 보냈는데. 이 젊은 연인들에게 운명의 여신은 끝끝내 사랑한 두 사람 사이를 외면하였습니다. 직업 군인이었던 남자가 부대 이동으로 인하여 진부령지역을 떠나게 되었던 것인데, 그 시기에는 군부대가 사단 재배치로 인해 부대의 이동이 매우 잦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처럼 자동차가 거의 집집마다 있고, 휴대전화나 인터넷 등 통신수단이 발달되어 있었으면 두 젊은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게 군인이 부대이동을 한 후 서로를 못잊어 편지로만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지만,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진부령 아가씨〉군인을 연인으로 둔 아가씨의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이 너무나 슬퍼요.
2007년에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진부령고개 정상에〈진부령 아가씨〉노래비가 세워졌습니다.
필자는 2019년 7월 31일 속초여행 후〈진부령 아가씨〉노래비를 보고 사진에 담아 왔습니다.
–〈먼데서 오신 손님〉– 이호 작사 작곡, 조미미(1971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 그렇게 기다려도 / 오지않던 님인데
꿈속에서 그린 님인데 / 어이 하라고 어이 하라고 / 나는 나는 어이 하라고
대답해 주세요 말좀 하세요 / 뭐라고 말하리까 뭐라고 말하리까
먼데서 오신 손님
2절.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 이렇게 애타도록 기다리던 님인데
마음속에 그린 님인데 / 어이 하라고 어이 하라고 / 이제와서 어이 하라고
대답해 주세요 말좀 하세요 / 뭐라고 부르리까 뭐라고 부르리까
먼데서 오신 손님
필자가〈단골 손님〉〈진부령 아가씨〉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조미미의 노래 중 한 곡입니다. 조미미는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이 노래로 10대가수에 선정됐고, 1972년엔〈단골 손님〉 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1976년엔 최홍기(나훈아 본명) 작사 작곡의〈연락선〉과 1960년 가수 박신자의 히트곡〈댄서의 순정〉리메이크 노래가 당시 대학생들로부터 인기가 폭발해서 MBC 10대가수로 화려하게 컴백을 했습니다. 가수 박신자는 가수 주현미의 큰어머니입니다.
가수 주현미는 2020년 8월 19일 방송된 SBS ‘트롯신이 떳다’에서 조미미의〈바다가 육지라면〉 을 불렀는데, 이날 “조미미 선배님이 내가 노래를 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제공해 줬습니다. 앨범 ‘쌍쌍파티’ 녹음을 한 게 선배님이 그날 안 나타나셔서 대신 하게 됐다”고 일화를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조미미 선배님이 날 무척 예뻐해줬습니다. 여자트로트 가수 계보를 논할 때 조미미 선배님을 빼놓을 수 없고,〈바다가 육지라면〉은 내 운명을 바꿔준 선배님의 노래라서 꼭 한 번은 불러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신데 너무 보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조미미는 후덕한 인상과 아름다운 미모로 노래의 인기 만큼이나 많은 남자연예인들과의 스캔들에 시달렸는데 해병대 군인으로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던 가수 남진은 “귀국을 하는대로 조미미와 약혼을 하겠다.”고 발표해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다고 합니다.(깜놀) 1971년 5월 10일 발표한〈먼데서 오신 손님〉이 인기몰이를 할 무렵인 6월 가수 남진이 군복무에서 제대를 하자 월남에 파병되어 돌아온 남진을 그리워한 조미미가 이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이 번지며 전남 목포가 고향인 남진과 영광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부터 목포에서 성장한 조미미의 약혼설까지 나돌았고, 1972년에는 가수 나훈아와 조미미가 우리나라 최초로 가수 노래 바꿔부르기 음반을 발매한 후엔 나훈아와의 스캔들까지 생겨나는 화제를 일으키며 흥행몰이에 성공하기도 했으며, 그후에도 스캔들이 있었지만 조미미는 1973년 재일교포 사업가와 혼인을 했습니다.
–〈동창생〉– 이호 작사, 이호 작곡, 조미미(1973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 보고파라 보고파라 나의 동창생
수많은 달과 해가 지난 지금은 / 눈가에 주름살이 얼마나 피었을까
보고파라 보고파라 / 나의 동창생
2절.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 보고파라 보고파라 나의 동창생
지금은 엄마 아빠 되어 있겠지 /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 그리워라
보고파라 보고파라 / 나의 동창생
–〈연락선〉– 최홍기(나훈아) 작사, 최홍기 작곡, 조미미(1975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음음 떠나가네 내 님 실은 연락선이 / 해풍이 날리는 옷고름을 손에 쥐고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 붙잡아도 매달려도 보았는데
떠나가네 연락선은 / 물거품만 남기고
2절. 음음 떠나가네 내 님 실은 연락선이 / 해풍이 날리는 옷고름을 손에 쥐고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 붙잡아도 매달려도 보았는데
떠나가네 연락선은 / 물거품만 남기고
조미미가 불렀던 노래 제목을 보면 ‘목포’와 ‘바다’를 주제로 한 것이 많은데, 데뷔곡인〈떠나 온 목포항〉과〈목포 연락선〉은 학창시절를 그리며 불렀고, 1970년 발표해 조미미의 최고 히트곡이 된〈바다가 육지라면〉(그때 라면이 가장 많이 팔린 때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과 〈서산 갯마을〉〈서귀포를 아시나요〉〈강화도 처녀〉〈제주 아가씨〉〈연락선〉 등이 있습니다. 아마도 고향 영광과 고등학교를 나온 목포 등이 바다여서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노래로 불렀던 것 같습니다. 어느 평론가는 “조미미의 목소리는 낭랑하고 경쾌하며, 이미자가 인기를 얻은 직후에 나왔지만 그녀의 창법은 이미자와 조금은 닮아 있는 것 같지만, 그녀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으며, 이미자의 목소리가 다소곳한 어머니나 누이같은 느낌이라면, 조미미가 노래할 때의 목소리는 좀 더 짜랑짜랑하고 강하며 또한 교태스럽다.”고 평했습니다.
조미미는「실크처럼 포근하고 결이 고운 목소리로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으로 힘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한 노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연출하는 매혹적인 가수다. 조미미의 노래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픈 이별이나 보고 싶은 그리움, 그리고 가슴 따뜻한 추억이 있고, 모진 시련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의 강인한 모습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2008년엔 제주 서귀포시 서홍면 소재 ‘서귀포 칠십리공원’에 1973년 발표한〈서귀포를 아시나요〉노래비가 건립되었고, 2019년 3월 8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는 제 1 회 ‘조미미 추모가요제’ 열려 조미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트로트의 발전을 위해 ‘조미미 추모가요제’가 더욱 더 내실있게 개최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에는 9월 21일 한가위 추석을 앞두고 전라북도편〈고향역〉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