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29. 제주도 대중가요〈찔레꽃〉〈서귀포를 아시나요〉(2021.09.20.)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뉴스아이신문 애독자 여러분! 추석(秋夕) 명절 잘 보내시고 계시죠? 아무쪼록 코로나 잘 대처하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주특별자치도(齊州特別自治道),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섬. 8개의 유인도와 71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주도는 육지와 고립된 섬이었으나 국민소득의 증대와 더불어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해짐에 따라 오늘날 전국 제일의 관광지역으로 발전했습니다. 제주해협을 사이에 두고 목포와 약 140 km 떨어져 있는 제주도는 윤곽이 대략 동서방향으로 가로놓인 고구마처럼 생겼는데, 남북간의 거리가 약 31 km이고, 동서간의 거리가 약 73 km이며, 2006년에 제주특별자치도로 승격됐습니다. 총 면적은 1,850.16 ㎢이며, 총 인구수는 2020년말 기준으로 674,001명입니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유럽, 미국, 동남아 등 국외여행 보다 제주도 여행 가는게 가장 좋습니다.
대한민국 가요산맥 정두수(본명 정두채) 선생이 2013년 10월 10일 편찬한 ‘노래따라 삼천리’에 제주 출신 가수 백난아가 1941년 취입한 국민애창곡〈찔레꽃〉에 대한 뒷얘기를 살펴보면은,「찔레꽃은 그 이름처럼 가시가 있는 꽃입니다. 하지만 궁핍했던 어린 시절, 나는 밭두렁에서 언덕위에 핀 찔레꽃에 처음 돋는 새순 껍질을 벗겨 맛있게 먹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눈물겹도록 정다운 꽃이 찔레꽃입니다. 찔레꽃은 우리 민족성과 무관하지 않는 꽃이다. 빛깔은 호들갑스럽지 않고 은은한 향기를 발산합니다. 열정과 끈기를 상징합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작사가 김영일이 북간도에 간 것은 음력 5월, 양력으로는 6월 무렵이었습니다.
찔레꽃이 한창 피어나는 모내기철에 함경북도를 통과하는 간도선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북간도에 사는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동포들의 삶의 역사가 밴 터전이라서 그런지 북간도의 찔레꽃은 유난히 붉고 아름다웠습니다. 민족의 애환이 꽃잎마다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이 사진을 좀 보게나. 이 아이가 그토록 자네를 따르던 정순일세. 하지만 시국이 어수선해서 내가 서둘러 시집을 보냈지. 큰오빠라서 어쩔 수가 없었어. 가장으로서 말일세.” 보통학교 졸업 때 찍은 사진 속의 정순이는 세 동무와 함께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꽃송이 같은 처녀들의 탐스러운 얼굴이었습니다. 서울에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진 김영일은 북간도의 찔레꽃과 함께 사진 속의 세 동무를 떠올리면서 노래시를 씁니다.」
–〈찔레꽃〉– 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 백난아(1941년 태평레코드사)
1절.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흘리며 /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2절.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동창생 / 천리객창 북두별이 서럽습니다
작년 봄에 모여앉아 찍은 사진을 /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겁던 시절아
(원곡) 1절.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 언덕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2절.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3절.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찔레꽃〉은 한 때 금지곡으로 몰려 방송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는데, 금지 사유는 작사가는 월북한 조명암이고 ‘동무’, ‘북간도’ 등 가사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작사가인 김영일의 항의로 다시 부르게 된〈찔레꽃〉은 가사 중에서 1절 끝부분 ‘못 잊을 동무야’는 ‘못 잊을 친구야’로, 2절의 ‘노래하던 세 동무’는 ‘노래하던 동창생’, ‘삼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은 ‘작년 봄에 모여 앉아 박은 사진’으로, 3절에서는 ‘돌아드는 북간도’가 ‘날아드는 내 고향’으로, ‘그리운 고향아’는 ‘즐거운 시절아’로 변경을 하여 검열을 재신청 어렵게 통과되어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5.16 후 모든 대중가요는 가사를 2절까지만 하라고 해서 또 다시 개사를 해야 했습니다.
백난아(白蘭兒), 1925년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에서 태어나 1992년에 작고했는데 본명은 오귀숙(吳貴淑)입니다. 세살 때에 가족을 따라 만주로 이주했고, 아홉살 때 함경북도 청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1940년 태평레코드사와 조선일보사 공동주최 ‘제1회 레코드예술상 신인가수대항 콩쿠르대회’에서 입상해 태평레코드사 소속 가수가 됐습니다. 당시 심사위원은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 작사가 박영호, 기획담당 천아토, 작곡가 김교성과 이재호, 가수 백년설. 백년설은 본인 성 ‘백’에 ‘항상 난초처럼 곧고 순결한 품위를 지키라’는 뜻으로 예명 ‘백난아(白蘭兒)’를 작명해 줬습니다. 1940년〈갈매기 쌍쌍〉〈망향초 사랑〉〈오동동극단〉을 취입해 가수생활을 시작했고, 1949년 럭키레코드사(대표 박시춘) 2호음반인〈금박댕기〉〈낭랑 18세〉를 취입했습니다. 1988년〈이별의 술잔〉이 마지막 취입곡. 고향인 제주 공연은 1957년과 1961년, 1986년 세차례였습니다. 남인수(南仁樹)의 예명을 작명한 작사가 강사랑은 “백난아는 부잣집 맏며느리 같이 복스럽고, 어느 항구 뒷골목 목로주점에서 젓가락 장단에 한많은 신세를 푸념하는 여인의 넋두리같은 청승 맞으면서도 정다운 느낌이 가는 목소리를 지녔다.”고 했습니다.
이외 대표적 노래, 1941년〈아리랑 낭랑〉〈직녀성〉〈도라지 낭랑〉1942년〈북청물장수〉
1943년〈무명초 항구〉〈아주까리 선창〉〈황하다방〉1985년〈개나리 아리랑〉등이 있습니다.
또한, 1985년 시작된 ‘가요무대’에서 2005년까지 20년간 불렸던 15,0000여 곡 중〈찔레꽃〉이 총 108회로 방송횟수 1위로 선정됐습니다. 2007년 4월 제주 한림읍에 ‘국민가수 백난아 기념비’와〈찔레꽃〉노래비가 세웠졌고, 2009년부터 제주도에서는 ‘백난아 가요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백난아가 1988년 발매한 ‘히트애창곡집’ 인사말 중 일부「그리운 세월입니다. 풋 복숭아 같이 보송보송하던 열다섯 살에 태평레코드 전국가요콩쿠르에 당선되어 전속 가수가 된 뒤로 울고 웃던 무대 생활이 어느덧 47년째라니… 생각하면 유리알 같이 눈물이 돌아 번져버릴 것 같은 아름다운 청춘이었습니다. 어느 간이역에서 피어난 키가 큰 해바라기 같이 유달리 외로움을 잘 타던 내가, 세상 어려움과 싸우면서 헤쳐온 나날들이 지나간 꿈결처럼 그립기만 합니다.」
–〈삼다도 소식〉–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황정자(1951년 오리엔트레코드사, 1954년 황금심)
(원곡)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 / 바닷물에 씻은 살결 옥같이 귀엽구나
미역을 따오리까 소라를 딸까 / 비바리 하소연에 물결 속에 꺼져가네
으으으음 으으으 으으음 물결에 꺼져가네
2절. 삼다도라 제주에는 돌멩이도 많은데 / 발뿌리에 걷어 채는 사랑은 없다던가
달빛이 지새드는 연자 방앗간 / 밤 새어 들려오는 콧노래가 구성지다
으으으음 으으음 으으음 콧노래 구성지다
(3절). 삼다도라 제주에는 모진바람 부는데 / 고기잡이 고깃배는 때맞혀 돌아온다
황혼이 깃들이면 선창가에는 / 감자술 두어잔에 타령소리 구성지다
으으으음 으으음 으으음 타령이 구성지다
(현곡) 1절. 삼다도라 제주에는 돌멩이도 흔한데 / 발뿌리에 걷어 채는 사랑은 없다드냐
달빛에 새어드는 연자 방앗간 / 밤새워 들려오는 콧노래가 서럽구나
음으으음 으으음 으으음 콧노래 서럽구다
2절.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 / 바닷물에 씻은 살결 옥같이 귀엽구나
미역을 따오리까 소라를 딸까 / 비바리 하소연이 물결 속에 꺼져간다
음으으음 으으음 으으음 물결에 꺼져간다
삼다도(三多島)는 제주도의 예명격으로 돌, 바람, 여자(비바리)가 많다고 그렇게 불려졌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가 없는데(三無) 대문과 도둑, 거지가 없었다고 합니다. 노래〈삼다도 소식〉은 1951년〈처녀 뱃사공〉으로 유명한 가수 황정자가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표한 후, 1954년 가수 황금심이 스타레코드사와 1960년 킹스타레코드사에서 발매했고, 1967년 가수 최숙자가 취입을 했으며, 최숙자는 정통 트로트 리듬을 차차차 리듬으로 바꿔서 불러 최숙자의 음색과 경쾌한 리듬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최숙자의 노래로 알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 노래는 6.25때 낙동강까지 밀렸던 전선이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두만강 혜산진까지 진격을 했지만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한 1.4후퇴로 전선이 팽창된 시기인 1951년 1월 21일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모슬포에 창설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국군장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편성한 전속악단 군예대(軍藝隊)에 박시춘, 유호, 황금심, 남인수, 신카나리아, 구봉서, 황해, 주선태 등 가수와 배우들이 소속돼 있었습니다. 어느 날 유호와 박시춘은 제주도에서 주위의 풍광에 푹빠져 감탄을 자아내고 있던 중 이왕 제주도에 왔으니 제주도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해서 만든 노래가〈삼다도 소식〉입니다. 당시 전쟁으로 고달픈 생활에 지친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한많은 설움과 고뇌를 털어주었던 노래였습니다.
〈삼다도 소식〉노래비는 2014년 옛 군예대 건물터였던 대정읍 ‘섯산이물공원’에 세워졌습니다.
육군훈련소는 제1훈련소 제주도 모슬포, 제2훈련소 1951년 11월 부산, 제3훈련소 1951년 3월 부산 구포, 제5훈련소 1950년 7월 제주도 제주항, 제6훈련소 1950년 9월 경남 밀양 삼랑진, 제7훈련소 경남 진해에 창설됐습니다. 휴전 이후 대부분 논산 육군 제2훈련소로 옮겨갔으며, 남은 부대는 춘천으로 옮겨가서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102보충대’로 창설이 되었습니다.
–〈서귀포를 아시나요〉– 정태권 작사, 유성민 작곡, 조미미(1973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밀감 향기 풍겨오는 가고 싶은 내 고향 / 칠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동백꽃 송이처럼 어여쁜 비바리들 / 꽃노래도 흥겨웁게 미역 따고 밀감을 따는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2절. 석양 빛에 돛단배가 그림같은 내 고향 / 칠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한라산 망아지들 한가로이 풀을 뜯고 / 구비 구비 폭포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정두수 선생님의 ‘노래따라 삼천리’에 실린〈서귀포를 아시나요〉에 얽힌 뒷이야기를 살펴보면,
「2009년 12월 6일.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 70리 시립공원’에서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서귀포 바닷가〉와 〈서귀포 사랑〉그리고〈서귀포를 아시나요〉. 서귀포는 풍광명미의 고장입니다. 그만큼 서귀포를 소재로 한 노래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서귀포를 아시나요〉작사가 정태권은 자신이 쓴 노래시를 들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습니다. 정태권이 처음 서귀포를 찾은 것은 1970년 여름이었습니다. 서귀포는 소문대로 역시 아름다웠습니다. 한국적인 정서와 이국적 정취가 함께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탁 트인 망망대해하며, 한라산의 풍요로운 초원 바다 기슭에 핀 눈이 시리도록 황홀한 동백꽃과 갯바위며 하얀 거품을 뿜으면서 쪽빛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해녀들, 그리고 길가의 야자수들은 넉넉하고 푸근한 인상을 젊은 작사가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서귀포를 아시나요〉의 노래시가 완성되자 그는 작곡가 유성민에게 곡을 의뢰합니다. 유성민은 그때〈여인의 눈물〉〈나 홀로 걸으면〉〈가버린 영아〉등의 히트곡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가수 오은주가 유니버샬레코드사를 통해 취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마스터 테이프는 그해 태풍으로 공장이 침수되는 바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1973년 결국 이 노래는 가수 조미미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구성지면서도 애뜻한 민요풍의 노래는 서귀포를 알리는 ‘서귀포 찬가’로 역할을 한몫 단단히 합니다. 이 무렵, 우리 사회에 관광 문화시대가 찾아오면서 관광지와 명승지 개발이 아연 활기를 띤 것과 절묘하게 맞물려 곡은 크게 히트합니다.」 「그리운 남쪽 바다 서귀포의 정경을 간결한 서경시로 읊은 이 노래는 이제 노래비가 세워져서 서귀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반가움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세월은 가도 노래는 남는 것, 청순한 미모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 조미미는 비록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노래비로 한 시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서귀포를 잘 나타낸 노랫말엔 밀감, 칠백리 바다, 비바리, 한라산, 망아지, 폭포 등 단어만 들어도 “아! 서귀포구나”하고 알 수가 있게 해주는데, 노랫말을 만든 사람이 서귀포 사람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겠지만 이 노래의 작사가인 정태권(1952년생)의 고향은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초·중·고도 고향에서 졸업했습니다. 노래가 널리 알려지면서 정태권은 “고향이 제주도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문산종고를 졸업한 1970년 8월 친구들과 무전여행을 떠났는데, 대천, 목포를 거쳐 생전 처음으로 제주항에 도착한 정태권은 해질녁의 제주 풍경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고 그가 본 절경과 느낀점을 적었습니다. 1971년 봄, 제주도 서귀포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흥을 노랫말로 만들어 유니버샬레코드사 전속작곡가인 유성민에게 작곡을 의뢰해 그 당시 7살이던 오은주가 앳띤 목소리로 취입해서 1972년 8월 발매한 ‘오은주 스테레오특선집 Vol.2의 타이틀곡이〈내 고향은 서귀포〉였습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1972년 태풍으로 인해서 대부분의 LP와 마스터 테잎까지 침수되는 바람에 노래가 사장될 위기에 처했으나, 이듬해 작곡가 유성민이 오아시스레코드사에 스카웃되면서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가수였던 조미미가 다시 음반을 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노래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서귀포를 아시나요〉는 각 방송국 인기차트에서 3주〜4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음반판매량도 10만〜20만 장만 팔려도 대성공이라 했을 때 100만장 가까이 판매가 됐습니다. 2008년 ‘서귀포 70리 시(詩)공원’에 세워진 노래비는 천지연폭포의 절벽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밀감 향기”로 시작하는〈서귀포를 아시나요〉는 조미미의 애수 어린 아름다운 음성에 실려 독특한 느낌으로 전국에 울려퍼지면서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자, 제주도와 서귀포는 196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감귤농사의 확대와 맞물려서 홍보 효과를 아주 톡톡히 봤습니다.」
보너스 하나〈정화〉, 뉴스아이신문 애독자님들께서 잘 모르실 수도 있는 노래일 것입니다.
1977년 신봉승 작사, 이복윤 작곡, 이미자 선생님이 부르신 MBC-TV 연속극 주제가입니다.
–〈정화〉– 신봉승 작사, 이복윤 작곡, 이미자 선생님(1978년 지구레코드사)
1절. 한라산 허리에 감도는 구름은 / 가신 님 그리는 비바리 한 있네
가면 가고 말면 말지 다시 오마 기약 마오 /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승에서 맺은 인연 저승엔 들 볼리 있어 /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2절. 서귀포 나루에 뱃고동 소리는 / 떠난 님 부르는 비바리 원 있네
내 한숨은 바람되고 내 눈물은 구름되어 /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님 계신데 내려주소 /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1972년 MBC 수사반장에 출연했던 제주 출신 신인탤런트 고두심이 1977년 마침내 첫 주연인 연속극에 출연을 했는데, MBC-TV에서 1977년 1월 31일∼8월 27일까지 탤런트 고두심, 김무생, 김영애, 김상순, 오미연, 고영준, 정윤희, 한인수, 김호영, 김용림, 박규채, 김애경, 정한영, 고영준, 이경순 등이 출연한 일일연속극 ‘정화’로 조선 정조때 의인 김만덕의 일대기를 담은 연속극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고두심은 지금까지「김만덕사업회」를 이끌며 ‘제주의 의인 김만덕’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1977년 1월 29일자 경향신문 보도내용,「MBC 새 大河(대하) 史劇(사극) ‘情火(정화)’ 31일부터 방영(放映), 의녀(義女) 만덕의 파란만장 一代記(일대기). 李朝(이조)의 야담·說話(설화) 곁들여 펼쳐… MBC TV는 8시 35분 일일극 ‘거상 임상옥’을 끝내고 후속으로 오는 31일부터 대하연속사극 ‘情火(정화)’를 새로 내보내게 됩니다.
李相泫(이상현) 극본 柳興烈(유흥렬) 연출로 방송될 이 연속극은 이조 영(英)·正祖(정조) 시대에 제주도에 살던 유명한 기생 만덕의 애기로 펼쳐집니다. ‘철거지악’이니 ‘삼정지의’니 하는 이조 여성 모럴속에서 용기있고 아름답세 살아간 한 여인의 일대기. 모든 신하들의 반대를 무렵쓰고 正祖(정조)는 제주기생 만덕을 서울로 불러 올립니다. 그의 공적에 상을 내리고 그녀를 만인의 귀감으로 삼겠다는 것. 만덕은 한양으로 가는 뱃머리에서 파란만장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원래 양민의 딸이던 그녀는 약혼자 김세영에게 배신을 당하고 기생이 됩니다. 복수일념으로 살아가던 그녀앞에 걸객 이도원이 나타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로부터 만덕은 천재적인 상술을 발휘해 이조 유일의 여성 갑부가 됩니다. 그런데 어느 해 태풍으로 제주도가 생지옥이 돼버리는데 그녀는 피눈물로 모은 전 재산을 흔쾌히 털어 주민들을 구합니다. 그 뒤 義女(의녀)로서의 그녀의 궁중생활과 탈속, 입산하기까지의 얘기가 이조의 갖가지 야담과 설화를 곁들여 전개됩니다. 만덕역은 인기 탤런트 高斗心(고두심)양이 맡으며 김무생 한인수 김호영 김영애 오미연 김용림 박규채 등 인기탤런트들이 총출연합니다.」 ‘정화’ 후속작은 ‘타국’이었습니다.
고두심은 1951년 제주시 이도동에서 출생, 1972년 MBC 공채5기 탤런트로 출발해 1982년부터 2002년까지 ‘전원일기’에서 맏며느리로 출연했고, 1989년 KBS ‘사랑의 굴레’에 출연해 당시 아이들의 유행어인 “잘났어 정말, 고두시임!”을 전국 골목골목 퍼지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방송 3사 연기대상 수상(총 6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까지 수상한 배우는 고두심이 유일합니다. 독자가 중학교 3학년 때 연속극 ‘정화’를 본 기억이 아주 조금 있습니다. 비록 흑백 TV였지만 고운 자태가 드러나는 고두심은 아주 예뻤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극 속 여주인공과는 달리 지략과 용맹이 뛰어났고 여러 사람들이 그녀의 말 한마디에 분주하게 움직였으며, 남자 주인공과는 애정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았습니다. 필자는 35년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이미자 선생님의〈정화〉를 듣는 순간 거짓말처럼 저도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8년 전 동료들을 인솔해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저녁식사 후 노래방에 들렸습니다. “제주도에 왔으니까 내가 여러분들이 들어본 적이 없었을 노래 한 곡 불러줄게 하며 노래방 책자에서〈정화〉를 찾는데 없었습니다. 아니, 제주도 노래방에는 있어야 되는게 아닌감…” 결국 반주없이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화〉오늘 한 번 들으면서 따라 불러보세요.
그밖에 제주를 노래한 대중가요는,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선생님의 1966년〈님없는 성산포〉1967년〈석양의 밀감밭〉〈제주 뱃사공〉1968년〈서귀포 바닷가〉1978년〈여객선〉등이 있고, 1941년 남일연의〈제주도 아가씨〉1942년 이해연의〈제주 뱃사공〉1943년 남인수의〈서귀포 칠십리〉1952년 황금심의〈삼다도 소식〉1958년의〈제주 비바리〉1958년 송민도의〈서귀포 사랑〉최갑석의〈서귀포 나그네〉1961년 고봉산의〈제주가는 연락선〉1966년 박옥희의〈제주도 섬처녀〉1969년 김소연의〈제주 아가씨〉1970년 조미미의〈제주 아가씨〉1978년 혜은이의〈감수광〉1992년 김지애의〈말테우리〉2004년 성시경의〈제주도 푸른 밤〉2014년 김서울의〈내 고향 서귀포〉2016년 혜진의〈제주 아가씨〉등 민요는〈둥그레 당실〉〈이어도 사나〉가수로는 백난아, 혜은이, 문성재, 진시몬, 은희, 김희진, 한서경, 양지은 등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서울특별시 대중가요〈서울의 찬가〉〈덕수궁 돌담길〉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