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31-1. 구리시 시민의 날 〈구리시가〉, 〈구리 아리랑〉(2021.10.07.)
다가오는 10일은 제36주년「구리시민의 날」입니다. 1986년 1월 1일 남양주군(南楊州郡)에서 승격(昇格)된 ‘구리시(九里市)’가 20만 시민들과 함께 웃고, 울고, 기쁨을 함께 나누던 세월이 벌써 36년 성상(星霜)의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오늘을 조금이나마 기념하기 위해서 ‘트로트, 세월 따라 사연 따라’ NO. 31-1.호(號)를 긴급히 ‘특별호(特別號)’로 올립니다.
「구리시(九里市)」를 백과사전에서 요약해 놓은 것을 보면.「경기도 중앙부에 있는 시(市) 조선시대의 도시로 발달한 지역이다. 구지면(九龜面)과 망우리(忘憂里面) 2개 면의 앞 글자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서울시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과 퇴계원을 연결하는 국도가 시의 북서부를 지난다. 중앙선과 경춘선이 시내를 통과한다. 농업 비중은 낮으나 근교 농업이 행해졌다. 인창동에 있는 동구릉이 유일한 관광자원이다. 면적 33.31㎢, 인구 197,608(2020).」
구리시는 1914년 조선의 양주목 구지면과 한양 망우리면을 합하면서 ‘양주군 구리면’, 1973년 ‘양주군 구리읍’, 1980년 ‘남양주군 구리읍’, 1986년 ‘구리시’로 행정구역명이 변경되었습니다.
-〈구리시가〉- 한명희 작사, 최동선 작곡, 구리시민(1986년)
1절. 아차산 양지녁에 서기 어리고 / 한강 벌 푸른 들에 무지개이니
어진 이웃 오순 도순 이 곳에 모여 / 내 고장 새 역사를 가꾸어 가네
아아아 그 이름 다정스런 나의 구리시 / 아아 그 이름 자랑 자랑스런 우리 구리시
2절. 동구릉 솔바람에 영기가 들고 / 왕숙천 맑은 물의 정기 서리니
백의 형제 도란 도란 이 곳에 모여 / 내 고장 새 문화를 일구어 가네
아아아 그 이름 영광스런 나의 구리시 / 아아 그 이름 영원 영원하리 우리 구리시
〈구리시가(九里市歌)〉는 지난 6월 7일, NO-14.〈전우야 잘자라〉〈전선야곡〉〈비목〉편에서, 「〈비목(碑木)〉의 노랫시(詩)를 지으신 한명희선생님께서는 1981년 분군된 남양주군 군민헌장과 남양주군가 가사(歌詞)와 1986년 시로 승격된 구리시의 시민헌장과 구리시가 가사(歌詞)를 만드셨다고도 하셨습니다. 6살 터울의 사모님께서도 구리여자중학교·퇴계원중학교·덕소중학교에서 미술선생 님으로 재직하셨다 하셨습니다. 두 분께서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구리시가〉탄생 배경에 대해서는 지난 5월 21일 오전 11시 30분에 한명희 선생님 자택을 방문해서 직접 들은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소위로 화천 백암산의 소초장으로 근무할 때 백암산 기슭을 수색하다가 십자나무만 세워진 돌무덤을 발견하고 조국을 위해 죽어간 군 선배인 젊은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서 비목(碑木) 시(詩)를 지었지, R.O.T.C. 장교 제대 후에 TBC방송국 음악부에 근무할 때 알고 지내던 작곡가 장일남 선생이 곡을 만들어 1969년부터 가곡으로 불리게 되었어요. 1974년부터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 터를 잡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여기가 전부 그린벨트(G.B, 개발제한구역)이었지 그때에 와부읍 개발계에 근무하던 이광렬 계장이 1980년 어느 날 찾아와 양주군에서 남양주군이 분군되는데 선생님께서 남양주군의 군가(郡歌)와 시민헌장(市民憲章)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정중하게 부탁을 해 내가 바로 승낙을 했어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 구리시에서 근무한다고 하면서 구리시의 시가(市歌)와 시민헌장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또 만들어 주었지. 그로부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두 분이 찾아와 그때를 회상하니 너무 좋아요.” “네! 선생님 이렇게 훌륭하신 분을 직접 뵙게 되어 너무나 영광입니다. 저는 2년 전부터 선생님을 찾아 뵙고 밥 한끼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었는데 누가 될까봐 차마 연락도 못드렸는데, 흔쾌히 뵐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고 영광입니다. 이제 제가 점심 한끼 사드릴테니 근처 좋은 식당 있으면 가시죠?”
필자는 그날 식대를 계산하려고 좀 일찍 일어났지만, 한명희 선생님께서는 들어오실 때 이미 계산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탈북여성인 음식점 대표는 선생님은 항상 그러신다고 말했습니다.
필자는 한명희 선생님께 “다음엔 꼭 제가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올해 연세가 만 83세이시지만 사모님과 함께 정정하신 모습이 떠오르는데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한명희(韓明熙) 1938년 청주출생. 서울대 음대 국악과 졸업, 1964년부터 2년간 R.O.T.C. 장교로 군복무를 하셨고, 그 후 TBC 방송국 근무, 1997년부터 3년간 서울시립대 교수와 국립국악원장을 역임하셨으며, 14개 대학에서 음악개론과 서양음악사에 대한 강의를 하셨습니다. 1974년부터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어룡마을에 터를 잡고 지금까지 살고 계십니다. ‘궁노루 다정(茶亭)’
-〈구리 아리랑〉- 김구영 작사, 국악인 명창 조진식(2017년)
1절. 아리 아리랑 구리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 아리랑 구리 아리랑 노다 가세
님의 발길 재워 놓은 왕숙의 물은 / 굽이 굽이 흘러 흘러 한강을 이루네
아리 아리랑 구리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 아리랑 구리 아리랑 노다 가세
장자못에 휘늘어진 능수버들 / 맘씨 고운 아낙네의 머릿결 같구나
2절. 아리 아리랑 구리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 아리랑 구리 아리랑 노다 가세
조선 왕조 얼이 서린 동구릉의 숨결 / 우리 고을 여기 저기 두루 살펴 주시네
아리 아리랑 구리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 아리랑 구리 아리랑 노다 가세
온달장군 평강공주 애타는 사연 / 아차산에 올라서서 만나 보리라
아리 아리랑 구리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 아리랑 구리 아리랑 노다 가세
구경 가세 구경 가세 구리 구경을 가세 / 함께 가세 함께 가세 구리랑 아리랑
구경 가세 구경 가세 구리 구경을 가세 / 함께 가세 함께 가세 구리랑 아리랑
〈구리 아리랑〉은 구리시에서 자란 김구영이 작사·작곡을 하고 또한 구리시 토박이 국악명창 조진식이 부른 구리시 아리랑으로 ‘구리구경(九里九景)’을 배경으로 제작된 동영상은 한국자유총연맹 구리시지부장과 재경 구리·남양주 경상도민회장을 역임한 미디어주노 신동영 대표의 연출로 만들어져 보급이 되었습니다. 필자는 삼육중·고등학교 앞 식당 ‘아리랑 갈비’에서〈구리 아리랑〉을 볼 수가 있었는데,〈구리 아리랑〉과 ‘아리랑 갈비’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네요.
2018년 9월 10일 ‘뉴스라이프’지 기사를 보면,「제목, 천재작곡가 이채현 학생의 “구리 아리랑” 아리랑에 숨어 있던 흥을 발견하다. 본문, 국립국악원 작곡 공모전에서 국립국악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15살 이채현 학생이 우리의 소리 아리랑을 새롭게 편곡해 ‘구리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해 화제가 되고 있다. 구리 아리랑은 우리 선조들의 한이 서려 있던 아리랑을 경쾌한 리듬으로 재해석하고 다양한 악기와 보조를 맞추어 아리랑에 숨어 있었던 흥을 요즘 시대에 맞게 작곡했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가면서 작곡을 했다는 사실은 놀라울 정도다. 이후 대금, 해금, 가야금과 타악기로는 북과 장구를 추가하고 서양악기와 함께 편곡을 했다고 한다. 신명나는 우리의 소리,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든 곡으로 자꾸 듣다 보면 어느새 빠져드는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곡으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이채현 학생은 2013년 ‘대한민국 인성영화제’ 주제가인〈고잘미〉를 작사·작곡해 직접 불렀고, 2018년에는〈구리 아리랑〉을 동요버전으로 편곡을 해서 국립국악원 공모전에 출품을 했던 것 같습니다.
☞ 구리구경(九里九景)은 1경 ‘동구릉(東九陵)’ 2경 ‘장자호수공원’ 3경 ‘아차산’ 4경 ‘구리한강시민공원’ 5경 ‘자원회수시설’(토평교), 6경 ‘곤충생태관’(토평교), 7경 ‘농수산물 도매시장’(동구동) 8경 ‘돌다리 곱창골목’(구리전통시장), 9경 ‘광개토태왕비(碑)/동상’(구리경찰서 앞)
-〈고잘미=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 이채현 작사·작곡, 이채현(2013년 건원초교 3학년
1절. 오늘은 꼭 말을할꺼야 고맙다 잘했다 미안한다 / 오늘은 꼭 대답 할거야 고맙다 잘했다
사랑한다 / 우리가 함께하는 세상 다 같이 행복한 세상 / 평화로운 세상 속에
우리는 하나가 된다 / 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 / 고맙다 잘했다 사랑한다
2절. 오늘은 꼭 말을할꺼야 고맙다 잘했다 미안한다 / 오늘은 꼭 대답할 거야 고맙다 잘했다
사랑한다 / 우리가 함께하는 세상 다 같이 행복한 세상 / 평화로운 세상 속에 우리는
하나가 된다/ 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 고맙다 잘했다 사랑한다/ 고맙다 잘했다 사랑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구리시는 ‘대한민국 인성영화제’의 본산입니다. 대표적인 동요〈고잘미〉는, 2015년 7월 6일 ‘남양주투데이’ 기사 중 일부를 옮겨보겠습니다. 「기사 제목. ‘세상을 바꾸고 있는 10살 천재 소녀의 노래’-‘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 고잘미 운동으로 의식 계몽에 활용’ 본문. 10살 천재 소녀가 작사 작곡한 노래 한 곡이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을 바꿔나가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 지극히 평범한 단어이고, 누구나 이 단어들을 사용해야 할 순간들을 수시로 마주하면서도 정작 사용에는 인색한 단어들이다. 그런데 최근 10살배기 소녀가 이 세 단어를 노랫말로 만들어 부르면서 범 사회적으로 국민계몽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 노래는 (사)평생교육컨텐츠협회 이병철 회장이 학교폭력예방과 법질서 지키기 ‘찾아가는 법교육’을 진행하던 2013년 9월 26일(목) 구리시 동인초등학교 학예회 재능발표장에 참석했다가 한 어린이가 부르는 것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국민계몽 노래로 발전됐다. 당시 이 회장은 이 학교 3학년 이채현(당시 10세, 건원초교 5학년)양이 직접 작사.작곡해 부른 ‘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 노래를 듣는 순간 ‘이 세 마디 말이면 세상의 갈등이 사라지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며, 학생의 부모를 만나 (고잘미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가수 이창휘씨와 시인 강재현씨 사이에서 태어난 채현양은 지금까지 직접 제작한 노래만 100 여곡이 넘을 정도로 천재적인 음악성을 보이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이채현양의 노래를 활용해서 ‘고잘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한 후 2014년 8월 (사)평생교육컨텐츠협회, (사)한국영상예술협회, 미디어에스트(대표 신동영), 구리시립소년소녀합창단 50명(단장 신계화), 서울삼육고합창단 120명(단장 장영일), 구리남양주교원합창단 50명(단장 김정순) 및 전국 공모를 통해 참여한 연기자 20명, 제작진 등 3백여 명의 후원과 재능기부를 통해 (사)한국영상예술협회 신동영회장과 함께 보급용 뮤직비디오가 수록된 음악 CD를 제작했다.
아울러 법무부와 전국 광역교육청, 정계 등을 찾아다니면서 고잘미운동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한 결과 300여개 이상의 학교에서 인성교육용노래로 활용되고 있으며, 예식장이나 병상에서도 불려지고 있고, 군 내무반에서도 구성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 기타곡으로 보급을 추진하는 등 국민적 인성 계몽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필자도 구리시민으로서 정말 고맙고, 잘했으며 자랑스럽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