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33. 충청북도편 〈울고넘는 박달재〉, 〈처녀농군〉(2021.10.18.)
충청북도(忠淸北道), 대한민국의 중앙부에 위치한 바다가 접하지 않은 유일한 광역행정구역.
동쪽으로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서쪽은 충청남도, 남쪽은 전라북도, 북쪽은 강원도와 경기도에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8°38’∼127°16′, 북위 37°15’∼36°00’이다. 면적은 7,407.19㎢이고, 인구는 158만 3952명(2021년 9월말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시 8개 군이 있습니다. 도청 소재지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주요 산으로는 소백산맥에 소백산(小白山, 1,439m)· 두솔봉(兜率峰, 1,314m)· 월악산(月岳山, 1,093m)· 주흘산(主屹山, 1,075m)· 조령산(1,017m)· 속리산(俗離山, 1,058m)· 황학산(黃鶴山, 1,111m)· 민주지산(珉周之山, 1,242m) 등이 분포하며 죽령(689m)·이화령(548m)·추풍령(221m) 등의 고개가 있다. 그리고 차령산맥엔 백운산(1,087m)·십자봉(985m)·오갑산(梧甲山 609m)·국망산(國望山 770m) 등이 있습니다.
하천은 오대산에서 발원한 한강이 단양·수산·청풍을 지나 단양천·매포천·제천천·광천과 합류하나 뚜렷한 하곡평야의 형성은 못하고, 음성에서 발원한 미호천은 미호평야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통행금지령(通行禁止令) 또는 통금(通禁)은 중국 당나라의 장안, 조선의 한양 등지에서 주로 치안과 화재예방을 위해 시행되었는데, 조선의 통금시간은「초경(밤 8시)에 인경종을 33번 치면 관원과 이속 외에는 거리를 나다니지 못하고 5경(새벽 4시)이 되어 파루종이 33번 울리면 통금이 해제됐습니다. 단, 정월 초하루와 정월 대보름에는 행사를 위해 통행을 허가했습니다.」
광복 후 1945년 9월 7일 서울과 인천에서만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실시됐으며, 1954년 7월 5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단축되었다가, 그후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4시간 동안 실시했습니다. 당시 통행금지는 신정 연휴기간과 부처님 오신 날, 광복절, 크리스마스 이브날 일시적으로 해제됐는데, 통행금지시간에 통행하려면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했으며, 이를 위반하면 즉결심판에 처해지고, 경찰서 보호소에서 밤을 꼬박 보내야 했습니다. 통행금지 해제는 1964년 제주도와 울릉도가 해제됐고, 1965년 충청북도와 일부 관광지·도서지방에서 해제됐으며, 1982년 1월 5일에야 전방 휴전선 부근지역과 일부 해안 취약지구 등 안보치안상 특수한 지역인 총 52개군의 292개 읍·면 지역을 제외하고 일제히 해제가 됐습니다.
1982년 통금이 해제될 때까지 경기도 이천 등지에서 술을 마시고 통금시간이 가까워지면 적발을 면하기 위해 충청북도 음성으로 넘어가 술을 한잔 더 했다는 일화도 빈번했다 합니다.(^^)
‘박달재’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해발 504m, 길이 500m입니다. 천등산과 마주해 천등산 박달재라고도 합니다. 고려시대 1217년 김취려 장군이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곳으로, 주변엔 금남루·팔영루·청풍향교·한벽루·덕주사 마애불상 등이 있습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가수 박재홍이 1950년에 발표한 노래입니다.
1985년 11월 4일 첫 방송된 KBS 가요무대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신청된 곡 중 한곡입니다.
1절은 남녀 간 이별 장면을 담았고, 2절은 박도령과 금봉낭자의 비련의 전설을 담은 곡입니다.
노래를 부른 가수 박재홍은 당시 22세였는데, 노래가 발표된지 1달만에 6.25전쟁이 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에 담긴 서민적인 정서가 공감대를 얻어서 오랫동안 국민가요가 됐습니다.
가수 ‘박재홍’은 1924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함흥에서 자랐고, 1989년에 작고했습니다. 1947년 가수선발대회에서 당선돼 1948년 옥도옥과 부른〈눈물의 오리정〉으로 데뷔했습니다.
〈경상도 아가씨〉〈물방아 도는 내력〉〈유정천리〉〈자명고 사랑〉〈향수〉〈휘파람 불며〉등
–〈울고 넘는 박달재〉–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재홍(1950년 고려레코드사)
1절.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2절.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 주며 /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울고 넘는 박달재〉정말 좋은 노래입니다. 흥겹고 부르기도 쉽고 전국민들의 애창곡입니다.
박달재 전설에서 보면,「옛날 옛적에 경상도 청년 박달도령이 서울로 과거을 보러 가던 길에 이 고개에 있는 주막집에 유숙을 하다가 주막집 딸인 금봉낭자에게 한 눈에 이끌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박달도령은 과거에 급제해 돌아와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언약하고 한양으로 길을 나섰고, 금봉낭자는 도토리묵을 싸서 박달도령의 허리춤에 매달아주며 눈물로 이별을 한다. 하지만 한양에 당도한 박달은 과거시험에 낙방을 하고, 3년이 지난 후 과거에 낙방한 박달도령이 슬픔에 잠긴 채 돌아와 금봉이 집을 찾는데, 금봉은 박달도령을 기다리다 지쳐 3일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에 박달도령은 식음을 전폐하고 울다가 어느 날 고갯마루를 바라보는데, 그때 꿈에도 그리던 금봉이가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고개 쪽으로 가는 것을 보게되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서 금봉을 잡으려고 했으나 손이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박달도령은 간신히 고개 위에서 금봉낭자를 끌어안았으나 금봉낭자는 이내 사라지고 박달의 몸은 허공으로 날려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1217년 김취려(1172~1234)장군이 거란군 10만 명을 격퇴한 전적지이기도 합니다.
2013년 정두수 선생님의 ‘노래따라 삼천리’에는 반야월이〈울고넘는 박달재〉가사를 쓰게된 사연이 나옵니다.「1948년 어느 가을날. 반야월 순회 공연단원들은 박달재를 넘다가 트럭이 멈췄다. 고장을 일으킨 것이었다. 운전수와 조수가 트럭을 손보는 동안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기다려야만 했다. 그들의 일행 중에는 그 당시 악극배우 김진규, 이예춘, 허장강 등이 있었다.
반야월은 ‘떡 입을 벌리고 떨어지는 알밤과 굴러 떨어지는 도토리를 보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에 그는 한 곳을 응시한다. 산 중턱에서 젊은 부부가 이별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낭군님의 허리춤에 도토리묵을 싸서 달아주는 여인. 먼 길에 요기라도 하라는 것일 게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반야월은 이 광경을 숙소에서 노래시로 썼다. 낭자의 마음이 되어. 그런데 여기서 ‘박달재의 금봉’이가 누구인가? 이광수의 소설 ‘사랑’에 나오는 여주인공이다. 반야월은 문학도, 그는 문학 서적을 탐독하면서 노래를 공부했다. 그런 그가 사랑의 주인공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리라. ‘박달재와 물항라 저고리’ , 그리고 ‘궂은비’와 ‘왕거미’. 이 어휘는 토속적이면서도 무속적이다. 향토성이 물씬 풍겨나는 서정미는 소박하다 못해 질박(質朴)하다. 특히 2절에서의 부엉이 우는 산골은 깊은 산속? 그래서 성황당 돌탑이 있다. 고개에서 소원성취를 손 모아 비는 마음은 간절하다 못해 눈물 날 만큼 애달픈 것이었다. 이 노래의 백미는 ‘금봉아 불러 보면 산울림만 외롭구나’의 시구(詩句). 산울림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산울림이 왜 외로운지를 터득했으리라. 아무렇지 않게 쓴 것 같아도 아무나 쓸 수 없는 것을 반야월은 쓴다. 세련미와 노련미를 때에 따라 부리고 안 부린다. 이건 타고난 문재(文才)만이 할 수 있는 것.」
☞ 김교성(1904년〜1961년 서울 출생), 대중가요 작곡가, 이왕직양악대 출신, 1932년 데뷔
〈능수버들〉〈사막의 애상곡〉〈마도로스박〉〈넋두리 20년〉〈찔레꽃〉〈자명고 사랑〉등.
〈처녀농군〉김일영 작사, 이철혁 작곡, 민요가수인 최정자가 1968년 발표했던 인기곡입니다.
이 노래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인구의 약 70%가 농촌에서 살았고, 국민 대부분의 고향은 산 좋고 물 맑은 농촌. 생활은 궁핍하지만 “자식들은 낳으면 자기 먹고 살 것은 타고난다.” 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가정마다 적게는 1남 3녀, 많게는 1남 7녀, 심지어 11남매, 13남매 등이 빼곡이 앉아 있으니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으리라. 이때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과감하게 천리타향으로 나선 자식들이 장남과 맏딸 등등. ‘도시로 도시로’, ‘서울로 서울로’ 먹고 살기 위해서 찾았던 대표적인 직업이 ‘구로공단 근로자’와 ‘버스 안내양’ 지금은 ‘서울디지틀국가산업단지’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당시 ‘구로공단’은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년 간 수출산업공단으로 조성됐는데, 약 11만 명의 근로자들이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필자의 육촌 누님도 고향에서 천리가 떨어진 ‘구로공단’에서 일했는데, 필자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매형과 인사차 집에 찾아오니 떡하니 차려진 저녁상에서 한끼를 해결한 기억이 새록 납니다. 딸 아들 낳고, 손주보면서 잘 살고 계십니다.(^^) 문주란의〈동숙의 노래〉사연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고향의 부모님을 모시고 굳굳하게 고향인 농촌을 지켜내었던 ‘처녀농군’도 있었습니다.
–〈처녀농군〉– 김일영 작사, 이철혁 작곡, 최정자(1969년 그랜드레코드사)
1절. 홀 어머니 내 모시고 / 살아 가는 세상인데
이 몸이 처녀라고 / 이 몸이 처녀라고 / 남자 일을 못 하나요
소 몰고 논밭으로 이랴 어서가자 / 해뜨는 저 벌판에 이랴 어서가자 / 밭갈이 가자
2절. 홀로 계신 우리 엄마 / 내 모시고 사는 세상
이 몸이 여자라고 / 이 몸이 여자라고 / 남자 일을 못 하나요
꼴망태 등에 메고 이랴 어서가자 / 해뜨는 저 벌판에 이랴 어서가자 / 밭갈이 가자
2016년 7월 1일 대중음악평론가 이동순 교수님이 농민신문에 연재한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 「언젠가 이른 새벽 라디오방송을 통해 들었던 한 처녀농군의 과거 회고는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습니다. 충북 영동에서 살고 있는 문순분 할머니의 사연으로, 어려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가 농사를 이어받았지요. 소녀는 자라서 어엿한 처녀가 되자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직접 지게 지고 소를 몰면서 마치 남정네처럼 농사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억척스럽게 일해 주변에선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키도 크고 인물도 좋고 일도 잘한다고 해서 혼처가 줄을 이었지요. 그 가운데서 가장 마음이 끌렸던 오빠 친구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하지만 액운이란 느닷없이 당도하는 것. 서방님이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여러 자녀를 거느리는 가장이자 농군 역할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젠 늙고 병들어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이 소처럼 일해왔던 들판만 종일 멍하게 바라다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연을 듣노라니 가수 최정자가 1968년에 발표했던 노래 ‘처녀 농군’의 장면들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소 몰고 논밭으로 분주히 쏘다니던 풍경이 어찌 이리도 가사 내용과 할머니의 처지가 서로 닮아있는지요. 아직까지 우리 주변에는 처녀 가장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용기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이 노래를 보내고자 합니다.」
☞ 최정자(1944년〜1987년 개성 출생) 민요가수, 1965년〈월남에서 보내주신 오빠의 편지〉1967년〈초가삼간〉1968년〈고향산천〉1969년〈꽃섬 아가씨〉〈일편단심〉〈항구의 심청이〉 등.
충북 충주시 수안보(水安堡), 동쪽으로는 제천시, 남서쪽으로는 괴산군과 접해있는 온천지대입니다. ‘수안보 온천’ 여러분께서도 한 두번 가보신 적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지만 1990년대까지만 하여도 좀 망설여졌었죠. 온천 관광과 신혼 여행지로도 각광을 받았던 수안보! ‘맑은 물과 공기, 시원한 바람, 인심 좋은 주민들…’ 신혼부부가 희망찬 미래를 꿈꾸었고, 관광객들은 먹고, 마시고, 놀기가 좋아서 낭만과 추억을 만들었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단지 수안보는 장기적인 불경기로 직격탄을 맞아 쇠락의 길을 접어들었는데, 다행히도 충주시에서 20여년 간 방치됐던 ‘와이키키 리조트’를 내년 8월까지 복합휴양시설로 리모델링을 해 옛 영화를 되찾고자 한다니 다시 한번 여행해야겠습니다.
–〈수안보 여인〉–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최숙자·이미자 선생님(1976년 지구레코드사)
1절. 수안보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왔는가 / 문경새재 재를 넘어 아득한 저 하늘
이름 모를 여인아 이름 모를 여인아 / 구름이 멎는다고
사랑의 푸른 추억 부여 안고 / 이렇게도 쓸쓸한 수안보로 왔는가
2절. 수안보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왔는가 / 태백산맥 굽이치는 아득한 저 하늘
이름 모를 여인아 이름 모를 여인아 / 발길이 멎는다고
말 못할 그리움을 새기면서 / 이렇게도 외로운 수안보로 왔는가
최숙자(1941년〜2012년)는 1957년 신성레코드사에서 천지엽 작사, 김화영 작곡〈개나리 처녀〉로 데뷔했던, 당시 백설희, 박재란, 황정자 등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최고의 여가수였습니다. 1958년〈모녀기타〉1959년 백설희와의 듀엣곡〈가는 봄 오는 봄〉1960년〈그러긴 가요〉1962년〈나룻배 처녀〉1964년〈눈물의 연평도〉1965년 김세레나와 듀엣곡〈갑돌이와 갑순이〉1966년〈강원도 처녀〉등이 대표곡으로 아직도 국민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1971년 가수활동을 중단했다가 1976년 이미자 선생님과〈수안보 처녀〉를 취입했던 것인데, 두 분은 1964년〈동백 아가씨〉취입 관련 일화가 있고, 나이도 동갑이라 더욱 친했다고 합니다. 이 곡을 끝으로 1977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고, 1988년 5월 9일 방송된 ‘가요무대’ LA공연 때 출연하셨으며, 일시 귀국한 1989년 9월 18일 ‘가요무대’에 출연 히트곡인〈개나리 처녀〉〈눈물의 연평도〉두 곡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연평도(延平島)는 1968년 이전까지 조기잡이로 유명했는데, 1958년까지는 조기 풍어기인 매년 4월 중순부터 6월 초순까지 고깃배 위에서 생선을 파는 ‘조기 파시(波市) 시장(市場)’이 열렸습니다. 당시 연평도에서 나돌았던 풍문은 ‘갈매기는 조기 떼를, 어부들은 갈매기 떼를, 색시들은 어부들을 따랐다.’고 했을 만큼 돈이 많이 풀리던 포구였습니다. 1959년 태풍 ‘사라호’때 희생된 어부들을 추모하기 위해 1964년 발표한〈눈물의 연평도〉노래비는 2001년 옹진 당섬선착장, 2010년 연평도 등대공원에 세워졌습니다.
작사가 정두수님이 필자에게 하신 말씀 “안과장! 최숙자가 가수활동을 중단하고 지낼 때 이미자가 최숙자와 함께 부를 노래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든 노래가〈수안보 처녀〉야. 몰랐지? 그때 수안보에서는 매일 이 노래가 반복해서 흘러나왔지. 이미자는 최숙자를 무척 좋아했지.”
「지난 5월 9일 KBS1-TV ‘진품명품’에선 1651년 이후에 조정이 아닌 민간인이 제작한 지도 ‘동국팔역산천일통지도’가 출품됐는데, 조선팔도 각 현(縣)의 진산(鎭山)과 강(江)을 표기한 지도로 인천 인천지역에 자연도(紫燕島)라는 지명이 표기된 곳이 현재의 영종도(領宗島)라고 합니다. 자연도(紫燕島), 자줏빛 자(紫), 제비 연(燕), 섬 도(島), 독자님 여러분? 제비 燕자가 들어가 있으니 어떤 유래가 담겨 있을지 잘 아시겠죠? 조상님께서 말씀하시길 “3월 삼짓날이 되면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이 땅에도 봄이온다데…”, 여기서 말하는 강남(江南)은 중국 호남(湖南) 즉, 동정호(洞庭湖)의 동쪽인 양자강(揚子江) 이남을 강남이라고 합니다. 삼국지에 보면 손책과 손권이 다스렸던 오(吳)나라 지역에 속했었죠. 우리나라의 제비는 겨울이 되면 멀리 필리핀이나 심지어 뉴질랜드까지 날아가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날이 오면 돌아온다고 합니다. 자연도(紫燕島)는 강남으로 이동하기 위해 제비가 잠시 머물렀던 중간 기착지였습니다. 강남 갔다 돌아올 때도 잠시 머물렀던 곳이죠. 영종도라 불리운 것은, 조선의 19대 숙종(재위 1674년〜1720년)임금 때에 붙혀진 이름으로 ‘주변에는 북도와 용유도(龍游島)를 거느리고 있다 하여 영(領)자를, 동쪽엔 인천을 머리에 이고 서쪽엔 신불도(薪佛島)가 양 옆으로 받치고 있다 하여 종(宗)자를 사용해 ‘긴 마루의 뜻을 가진 영종(領宗)’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단양팔경〉– 이창희 작사, 백봉 작곡, 권윤경(2000년)
1절. 단양이라 연단조양 삼각관계 도담상봉 / 고향 기생 흘린 눈물 도담봉에 얼룩 젖소
울지마라 울지마라 옥순봉에 우는 새야 / 상선암에 두고온 님 생각이 나면
소백산에 바람이 분다
2절. 백두대간 소백산맥 곳곳마다 기암 절경 / 바보온달 평강공주 그 사연을 누가 아랴
불지마라 불지마라 연화봉에 비 바람아 / 님을 위해 피어 있는 꽃잎이 지면
구인사에 범종이 운다 / 불지마라 불지마라 연화봉에 비바람아
님을 위해 피어 있는 꽃잎이 지면 / 구인사의 범종이 운다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 옛부터 중국의 소상팔경 보다 더 아름답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단양팔경(丹陽八景)은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이고, 신(新)단양팔경은 ‘북벽’ ‘온달산성’ ‘다리안산’ ‘칠성암’ ‘일광굴’ ‘금수산’ ‘죽령폭포’ ‘구봉팔문’으로
48세 단양군수 퇴계 이황(1501년〜1570년)과 19살 관기(官妓) 두향과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깃들어 있는 단양군은 2000년 필자가 49년째 살고있는 구리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입니다.
–〈청풍명월〉– 최상식 작사, 최강산 작곡, 금잔디(2000년)
1절. 남한강 구비 구비 그림 같은 청풍호 / 물안개 핀 강물에는 억새가 춤을 추네
대나무 옥순봉아 거북이 구담봉아 / 붉게 물든 저녁노을 호수에 띄워 놓고
아름다운 꽃봉오리 / 청풍호에 빠져 있네
2절. 수륙길 백 삼십리 그림 같은 청풍호 / 은빛 파도 황금 물결 여기가 청풍일세
단풍 옷 갈아 입고 님 맞을 청풍 아가씨 / 석류 같이 빨간 사랑 가슴에 물들이고
월악산에 걸린 달빛 그대 품에 안겨주리 / 아름다운 꽃봉오리 / 청풍호에 빠져 있네
금잔디(본명 박소희, 박수연) 노래〈청풍명월〉은 2014년 3월에 발매한 올라엔터테이먼트의 ‘금잔디 2.5집’ 미니 앨범에 타이틀곡〈여여〉와 함께 수록된 곡입니다. 충북 제천시(堤川市)는 청풍명월(淸風明月), 즉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고장이며, 살기 좋은 풍요로운 철도 중심도시로 제천 의림지, 충주호 유람선, 월악산국립공원이 있고 매년 여름 ‘제천국제음악제’가 열립니다.
봉양역 뒷편 산자락 ‘쌈밥집’은 식당 앞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재료를 사용하는 웰빙식당입니다.
다음에는 경상남도편〈처녀 뱃사공〉〈삼천포 아가씨〉〈내고향 진주〉글을 올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