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37. 충청남도편〈백마강〉〈서산 갯마을〉〈칠갑산〉(2021.11.15.)
지난주 7일(월)에는 KBS1-TV ‘가요무대 1724회’에서는 ‘배호 50주기 특집편’이 방송됐습니다.
출연진은 진성〈안개낀 장충단 공원〉,민수현〈두메산골〉,김혜연〈능금빛 순정〉,문연주〈당신〉,삼총사〈비 내리는 명동〉,박우철의〈누가 울어〉,우연이〈파도〉,공훈〈만나면 괴로워〉,최예진〈황금의 눈〉,더블레스〈안갯속에 가버린 사람〉,배금성의〈돌아가는 삼각지〉,정정아〈영시의 이별〉,강소리〈파란 낙엽〉,주영국〈굿바이〉,서지오〈마지막 잎새〉,이은하〈안녕〉이었습니다.
오늘은 충청남도를 주제로 한 대중가요인 허민〈백마강〉이인권〈꿈꾸는 백마강〉박경원〈만리포 사랑〉이미자 선생님〈서산 갯마을〉주병선〈칠갑산〉등 5곡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충청남도는 조선의 26대 임금 고종 황제 33년 1896년에 칙령 제 36호로 탄생한 도(道)입니다.
충청남도(忠淸南道), 대한민국 중서부에 있는 도(道)입니다. 동쪽으로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북도, 서쪽으로는 황해(서해), 남쪽으로는 전라북도, 북쪽으로 경기도와 접하고 있습니다. 위치는 동경 127°38’∼125°32′, 북위 35°58’∼37°03′ 입니다. 면적은 8,203.89㎢, 인구수는 2,120,995명(2020년말 현재)이며. 충청남도의 도청 소재지는 홍성군 홍북읍 충남대로입니다.
충청남도의 지형은 대체로 낮고 평평합니다. 도 전체의 평균 고도가 100m로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낮은 지형을 이루고, 평균 600m 이하로 낮은 차령산맥의 대표적인 산은 오서산(791m), 칠갑산(561m), 광덕산(699m) 등이 있고, 대표적인 강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강인 금강(錦江)이 있는데 금강은 금산·공주·청양·논산·부여·서천을 거쳐 장항에서 서해로 흘러갑니다.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서산 방조제·아산만 방조제·삽교 방조제·대호 방조제 등 대형 방조제와 해안사구가 발달해 만리포· 연포·몽산포·대천·무창포 해수욕장 등이 있는 낭만 가득한 땅입니다.
필자는 2000년부터 3년간 10월 2일 무창포, 남당항을 찾아 새조개, 대하 먹방 사냥을 했습니다.
필자 부부의 혼인기념일은 2월 21일입니다. 1999년 큰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둘째 딸이 네 살이었습니다. 어느 날 필자는 중·고등학생 때 ‘지리’ 시간에 학교 건너편 ‘원진 레이온’이 책자에 실린 것을 선생님께 배운 기억이 문득 생각이 나서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곳곳을 다니면서 경험해야 친구들하고, 이야기할 때 이야기꺼리가 되겠다고 생각해 경주로 1박 2일 가족 여행을 갔었고, 이듬해 2000년 충청남도 공주와 부여를 다녀왔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부소산장에 숙소를 정하고 백제 성왕 16년(서기 538년) 웅진(熊津, 공주)에서 천도한 백제의 도성(都城) 부소산성(扶蘇山城)을 오르면서 네 살된 둘째 딸을 업고, 때론 무등을 태우고 길을 걷는데 힘들더군요. 궁궐은 간데 없고 터만 남아있는 부소산성은 대한민국 사적 제5호로 사비성(泗泌城)·소부리성(所夫里城)이라고도 기록돼 있습니다. 백제와 함께 사라진 것을 백제의 후예들이 고려 시대에 중창(1028년)한 고란사(皐蘭寺, 충남문화재자료제98호, 고란정, 고란초)와 삼천 궁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바위 절벽 위 낙화암(落花巖, 충남 문화재 자료 제110호)를 지나 백마강 강가를 두루두루 탐방을 하고, 공산성과 공주 박물관 등을 다녀왔던 아름다운 추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백마강〉– 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허민(1954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아 /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아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2절.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아 /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쳐 울면
계백장군 삼척검은 / 님 사랑도 끊었구나
아아아 오천 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허민이 1954년에 부른 곡으로 도미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페루샤 왕자/백마강’ 딱 두곡만 수록된 앨범에 실려있습니다. 허민의 3대 히트곡에는〈마음의 부산항〉이 포함됩니다.
가수 허민(1929년〜1974년)의 본명은 허한태,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마산 방송국 합창단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고려대학교 문학과를 다니던 중 6.25로 인해 대구를 거쳐서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했습니다. 어느날 형님 친구의 혼인식장에 갔다가 기가 막힌 목소리로 축가를 부르니 당시 도미도레코드사 대표였던 작곡가 한복남에게 발탁돼 도미도레코드사 전속 가수가 되었습니다.
유명 작사가 손로원이 노랫말을 쓰고 한복남이 작곡한〈페루샤 왕자〉를 불러서 당시 현인〈굳세어라 금순아〉,신세영〈전선야곡〉,이인권의〈미사의 노래〉가 부산을 휩쓸던 시절에 일약 신진 스타가 됐고, 이어서〈백마강〉으로 인기 가수가 됐으며, 또한 부산 아미동 판자촌에서 망해가던 도미도 레코드사도 기사회생 했습니다.
이 노래〈백마강〉은 필자가 철원에서 군복무할 때 처음 들었는데,
당시 철원에선 KBS1-TV만 유일하게 시청이 가능해서 가장 인기있던 프로그램이 ‘백분쇼’와 ‘전국노래자랑’이었는데, 1984년 ‘전국노래자랑’ 연말결선에 출연한 택시기사가 불러 대상을 수상해 필자도 그 때에 배웠습니다.
☞ 한복남(1919년〜1991년 본명 한영순)은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일광양복점’을 운영하다 1946년 월남 1947년 KPK악단에서 자작곡〈빈대떡 신사〉,〈저무는 충무로〉로 데뷔. 부산 피난시절 국제시장에 처음으로 녹음기를 선보였고, 박재홍〈물방아 도는 내력〉과 금사향〈홍콩 아가씨〉를 제작하면서 부산 아미동에 도미도레코드사를 설립했고, 그의 레코드 회사가 성공을 거두자 임정수는 부산 남부민동에 미도파 레코드사(지구레코드사 전신)를 설립했습니다.
가수로서 대표곡은〈빈대떡 신사〉,〈엽전 열닷냥〉,〈한많은 대동강〉,〈전복타령〉등이 있으며, 작곡가로 대표곡은 1955년〈앵두나무 처녀〉1956년〈오동동 타령〉1958년〈봄바람 님바람〉,〈처녀 뱃사공〉,〈코리안 맘보〉,〈한많은 대동강〉1960년〈불국사의 밤〉, 1963년〈님〉 등..
–〈꿈꾸는 백마강〉– 조명암 작사, 임근식 작곡, 이인권(1940년)
1절.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고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2절.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 듯 /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으리
백제(百濟, 기원전 18년〜660년). 시조인 온조왕부터 제31대 의자왕(재위 641년〜660년)까지 678년간 우리나라 서남부 지방을 다스렸던 고대국가입니다. 고구려 동명성왕의 적자인 예씨부인 소생인 유리명왕이 졸본성으로 오자 소서노는 아들 온조와 비류를 데리고 남하해 위례성에 십제(十濟)를 건국했고, 몇 년 후 온조왕은 국호를 백제라고 했습니다. 백제는 도성(都城)을 위례성(BC18년〜475년), 웅진성(475년〜538년), 사비성(538년〜660년) 순으로 천도했습니다. 최고 번성기가 제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 시대로 재위기간은 346년부터 375년까지였습니다.
필자의 기억속 백제 관련 용어는 김제 벽골제, 무녕왕릉, 왕인박사, 무왕과 선화공주의 서동설화, 성왕, 계백장군과 황산벌, 상좌평 성충과 윤충장군 형제, 흑치상지장군, 칠지도 등이 있습니다.
☞ 이인권(1919년〜1973년) 본명 임영일.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청진을 방문한 ‘오케레코드 그랜드쇼단’ 이철사장과 단장 박시춘의 오디션을 받고 가수 남인수 대역가수로 활동했습니다.
1938년〈눈물의 춘정〉으로 정식가수 데뷔, 가수로 대표곡 1946년〈귀국선〉1949년〈선죽교〉군예대 위문공연 중 폭사한 부인을 그린 자작곡〈미사의 노래〉등. 작곡한 대표곡은 1960년 송민도〈카츄사의 노래〉1962년 최무룡〈외나무 다리〉1959년 현인〈꿈이여 다시 한번〉1965년 이미자 선생님〈살아있는 가로수〉1970년 조미미〈바다가 육지라면〉1972년〈단골손님〉등..
충청남도 논산에 위치한 육군훈련소는 1951년 11월 1일 논산시 연무읍 일대에 창설된 육군제2훈련소 일명「연무대」당시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 1 훈련소에 이어 설립돼 1999년 2월 1일 ‘육군 훈련소’로 명했다고 합니다. 독자의 훈련소 입대는 1982년 10월 27일, 군번 ‘13325888’대한민국 군번 제1호 이형근(1920년〜2002년, 공주 출생)은〈잘 있어요〉가수 이현의 부친.신병들의 한결같은 말 한마디 “제대하면 논산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 지금은 안 그렇죠?
필자는 충청남도를 정겹게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장모님의 고향이 서산이고, 중학교 동창인 강병철과 삼태기 원년멤버인 가수 나일강도 서산, 또 동네 형님의 부인인 형수님 고향은 서천, 그리고 구리전통시장 족발집 주인할머니와 그랑프리 안경점 대표인 친구 유광열의 고향은 당진, 그때 그 다짐(?)은 사라진지 오래인 논산 출신은 구리시 남양시장 인근에서 〇〇약국을 경영하는 사람 좋은 前 김희섭 구리시의원, 특히 풍양철물건재를 경영하며 부인과 아들, 딸을 위해 평생을 황소처럼 일하고 있는 조범구 사장님, 조범구사장님은 2009년 3월 14일 발족된 집수리 전문봉사단체인 ‘구리시 목민봉사회’(회장 윤재근 윤서병원 행정원장)과 함께 집수리 자재를 여러 곳의 자재 판매업소를 다니면서 구입해 현장으로 전달해 주고, 때때로 전문기술을 발휘해 직접 봉사도 하고 계십니다.
그의 부인 유성연님은 구리시목민봉사회 부회장이며, 구리시재향군인회여성회장을 거쳐 2017년 2월 23일 경기도여성단체협의회 구리시지회장으로 취임하여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부부가 노블리제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저도 장모님 영향을 받아서 “그려!”를 잘 말하고 있는데, 지난번 주말 연속극 ‘광자매’를 보면서 탤런트 윤주상의 “이건 아니라고 봐”, “아닌건 아녀” , 아주 구수해서 잘 쓰고 있습니다.(^^)
–〈만리포 사랑〉–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경원(1956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똑딱선 기적 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그립고 안타까워 울던 밤아 안녕히 / 희망의 꽃구름도 둥실둥실 춤춘다
2절. 점 찍은 작은 섬을 굽이굽이 돌아서 / 구십리 뱃길 위에 은비늘이 곱구나
그대와 마주 앉어 불러보는 샹송 / 노젓는 뱃사공도 벙실벙실 웃는다
3절. 수박빛 선그라스 박쥐양산 그늘에 / 초록빛 비단 물결 은모레를 만지네
청춘의 젊은 꿈이 해안선을 달리면 / 산호빛 노을 속에 천리포도 곱구나
〈만리포 사랑〉박경원이 1956년에 부른 노래로서 음반은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했습니다.
〈만리포 사랑〉노래비는 1994년 8월 15일 만리포해수욕장에 세워졌습니다.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에 있는 ‘만리포 해수욕장’은 1955년 당시 소원면의 박노익 면장이 이름을 지었고, 그해 7월 3일 개장된 해수욕장입니다. ‘만리포(萬里浦)’는 ‘많고 크고 풍족한 포구’라는 뜻입니다. 충청남도의 태안반도(泰安半島)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백화산(해발 933m)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風光)은 한마디로 그림같습니다. 북쪽은 가로림만, 남쪽에는 천수만을 거느리고 있는 ‘해안국립공원’이고, 태안에서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이 ‘만리포 해수욕장’입니다.
☞ 박경원(1931년∽2007년)은 인천 신포동에서 태어나 신흥초등학교, 인천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 경제과 2학년때 1942년 백난아〈찔레꽃〉을 작곡한 김교성이 경영하던 ‘계림극장 주최 전국 남녀 가요 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후 가수 나애심의 오빠인 작곡가 전오승에게 픽업돼서 명국환과 함께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가수로 1954년〈비애 부르스〉로 데뷔했습니다.
〈비애 부르스〉나레이션「혜숙 : “여기서 헤어져야만 하는군요?” 경호 : “음! 헤어져야지” “가로등 밑에 이 갈림길이 원망스러워요” “그래?” “경호씨!” “응” “이제 우리 그냥 같이 살아요. 헤어지지 말고요.” “글쎄” “가을부터는 같이 살자고, 하지만 이제 가을이 다 가고 있잖아요.” “내가 언제 그랬던가?” “어머나, 그럼…” “나 이제부턴 좀 바빠서 혜숙일 자주 만날 수 없게 될 거야” “네에!” “나도 이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야겠어.” “아니 그럼 이제까진 비정상적이었단 말이예요?” “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 그럼 난 갈테야” “경호씨!!!” “혜숙이 잘가요.”」
박경원이 들려주는〈이별의 인천항〉취입 동기는 “제가〈비애 부르스〉를 취입했을 때 전오승(1923년∼2016년)씨 밑에서 명국환이 하고 같이 데뷔했습니다. 명국환군은 그때〈백마야 울지마라〉그 뒷판이〈비애 부르스〉거든요. 그리고 나서 여름에 전오승 선생님을 인천 작약도에 한번 모셨어요. 한 이틀 동안 지내다가 거기서 전오승씨가〈이별의 인천항〉이라는 곡을 거기서 작곡을 하셔서 이거를 아마 경원이가 불러야 할거다. 그래서 내가 불렀는데 어떻게 운이 좋다 그럴까 인천 출신이 불러서 히트가 됐는지 모르지만 다행히 히트가 됐습니다. 그것이 아주 선전이 돼서 그때는 레코드사 앞에다 가사를 다 적었어요. 확성기로 막 틉니다.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악기점 앞에서 그 가사를 보면서 그 레코드를 들으면서 같이 합창하고 그랬어요.”
그 밖에 대표곡은 1954년〈비애 부르스〉(세고천/전오승),〈바타비아의 여정〉(고명기/김부해) 1955년〈이별의 인천항〉(남천아/전오승) ,1957년〈나포리 연가〉(반야월/이봉룡)〈남성 넘버원〉(반야월/박시춘), 1962년〈청춘은 산맥을 타고〉(고명기/조춘영) 등 150여 곡이 있습니다.
–〈서산 갯마을〉– 김운하 작사, 김학송 작곡, 이미자 선생님(1966년, 조미미 1969년)
1절. 굴을 따랴 전복을 따랴 서산 갯마을 / 처녀들 부푼 가슴 꿈도 많은데
요놈의 풍랑은 왜 이다지 사나운고 / 사공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구나
2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서산 갯마을 / 쪼름한 바닷 바람 한도 많은데
요놈의 가난은 그 언제나 풀리려나 / 아낙네들 오지랖이 마를 날이 없구나
〈서산 갯마을〉이미자 선생님께서 1966년에 부르신 노래로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김학송 작곡집 우룩님 / 그이와 이 밤을’ 앨범 Side 1면에 두 번째로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1. 이미자 선생님〈우룩님〉,〈서산 갯마을〉,〈병실에 숙이〉,후랑크백〈내 사랑 안녕〉,남상규〈밤 깊은 죽령고개〉,〈안개낀 경인가도〉Side 2. 박재란〈그이와 이 밤을〉,〈오솔길〉,진송남·박재란〈청춘교서〉백설희〈추억은 영원히〉,〈봄날의 청춘시〉,후랑크백〈울고 싶은 밤〉등 12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미자 선생님〈서산 갯마을〉과 1969년 조미미가 리바이벌한 〈서산 갯마을〉개사 부분은, 2절 ‘요놈에 가난은 그 언제나 풀리려나’를 1절에 있는 ‘요놈의 풍랑은 왜 이다지 사나운고’를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그 당시 이미자 선생님은〈동백 아가씨〉,〈섬마을 선생님〉,〈황포돛대〉,〈울어라 열풍아〉,〈지평선을 말이없다〉등 워낙 인기곡이 많아 빛을 못보다가 조미미가 불러 대중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아 첫 히트곡이 됐고, 그 후에〈바다가 육지라면〉,〈선생님〉,〈단골 손님〉,〈동창생〉,〈연락선〉등의 인기곡이 연달아 발표됐습니다.
2010년 6월 25일 서산 지곡면 중왕2리 왕산포구에〈서산 갯마을〉노래비가 세워졌고 왕산포구를 찾는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나자 이듬해부터 ‘지곡 왕산포구 갯마을 축제’를 열었습니다. 지곡면 중왕2리는 유명한 낙지마을입니다. 그러나〈서산 갯마을〉탄생지는 서산 간월도입니다.
–〈칠갑산〉– 조은파 작사·작곡, 주병선(1982년 서라벌레코드사)
1절. 콩밭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 무슨 설움 그리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2절.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칠갑산〉주병선이 1987년 가수로 데뷔해 7월 1집 음반 세 번째에 실려 있는 노래로 그의 대표곡입니다. 주병선하면〈칠갑산〉한곡만이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곡자는 가수 윤상일로 1980년 서라벌레코드사를 통해서 ‘윤상일 가요모음’ 데뷔 앨범과 1982년 2집 앨범에 실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하자 1992년 예명을 버리고 본명인 윤희상으로 독집 앨범 타이틀곡인〈카스바의 여인〉을 발매 인기가수 반열에 올라 2004년 3집에 다시 올렸습니다.
조운파의 본명은 조대원. 1943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난 오아시스 레코드사 문예부장 출신으로, 1978년 김상희의〈나 외롭지 않네〉로 데뷔해 지금까지 약 800여 곡을 만들었습니다. 〈칠갑산〉을 만든 계기는,「어느 날 조운파는 고향인 부여에서 버스 편으로 서울로 상경하던 도중 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조운파는 차창에 맺히는 비를 보고 눈을 돌려 저 멀리 비에 젖는 칠갑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주러르르 흘러내렸다고 합니다. 그 순간 영감이 떠올라 바로 메모를 했고, 상경해 가사를 다듬어〈칠갑산〉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어머니와 누이들이 살아온 질곡의 사연들이 가사에 고스란히 담겨진〈칠갑산〉은 음반 발매 후 별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당시 뮤지컬배우인 진주의 어머니가 ‘주부가요열창’에서〈칠갑산〉으로 3주 연속 1위를 차지해 알음알음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가수 주병선이 TV에 출연〈칠갑산〉을 애처로우면서도 탁트인 국악풍의 특유한 목소리로 방송을 타자 폭발적인 인기곡으로 등극, 단숨에 주병선을 인기가수 반열에 올려놓아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했습니다.
가수 주병선은 1964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추계예술대학 국악과에 재학 중이던 1988년 ‘제12회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자작곡〈고인돌〉(필자의 필명과 같네요.^^)로 금상을 수상한 후 이듬해 1집 음반에 세번 째 곡으로〈칠갑산〉을 올렸다고 합니다. 주병선이 어느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이 노래 한 곡으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의 원창자는 전라남도 완도가 고향인 가수 윤희상(1955년〜2017년). 1979년 데뷔 1980년 서라벌레코드사에서 타이틀 곡으로 음반을 발매했으나 큰 반응을 받지 못했고, 무명가수로 지내다 1992년〈카스바의 여인〉이 국민들의 큰 호응을 받아 대히트를 했습니다.
주병선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반도음반의 가수로 발탁하고, 1992년〈난 알아요〉를 발표해서 대박을 터트렸고, ‘서태지와 아이들’은 10대들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당시를 회상한 주병선은, “부산에서 DJ를 하던 친구 유대영이 테이프 하나를 들고 찾아왔어요. 다른 회사에서 퇴짜를 맞고 마지막으로 찾아왔다고 음반사 대표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걸 한번 들어보자고 했죠. 획기적이고 재기 발랄해 음반 발매를 제안했는데, 대표가 난색을 표해 나는 손해를 본다면 내 음반 인세에서 감하라고 해서 음반이 출시되었어요. 앨범 출시 후 혹평이 쏟아졌고, 어느 TV 신인 발굴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역대 최하 점수로 곤혹을 치뤘는데, 방송이 나가자 회사는 이제 망했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나 방송이 나간 후 다음날부터〈난 알아요〉는 음반 매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으로 앨범이 팔려나갔죠.”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 . 내일은 어찌 될지 모릅니다.
다음엔 김해가 고향인 가수가 부른〈홍도야 울지마라〉,〈이름없는 새〉,〈애모〉글을 올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