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38.〈홍도야 울지마라〉〈이름 없는 새〉(2021.11.22.)
지난 주 17일은 ‘순국선열(殉國先烈)의 날’이었습니다.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찬탈당한 날인 11월 17일을 기억하기 위해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이날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정한 이후에 추모행사를 거행했고, 1955년부터 1969년까지는 정부 주관의 기념행사로, 이후 유족단체 주관의 기념행사만 거행했으며, 다시 1997년 규정을 개정 법정기념일로 다시 정부 주관행사로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난 가수인 김영춘과 손현희, 은가은이 부른 노래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백마강〉,〈페르샤 왕자〉를 부르신 허민도 있지만 다음 기회에 올리겠습니다.
김영춘은 1939년〈홍도야 우지마라〉를 불렀고, 손현희는 1983년〈이름 없는 새〉로 ‘제4회 MBC 강변가요제’에 참가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김해(金海)는 경상남도 남동부에 있는 시(市)로 1995년 김해시와 김해군이 통합돼 도농통합시를 이루었습니다. 북서부는 산지가 솟아있고 남부에는 김해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하고 북부의 산지가 겨울의 북서풍을 막아 전국에서 가장 기후가 온화하며, 낙동강 삼각주평야에 있어 영남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입니다.
면적 463.26㎢, 인구 542,350명(2020년말 현재). 김해 출신 가수 김영춘(어방동), 손현희(1962년)를 비롯〈내 마음 별과같이〉〈봉선화 연정〉의 현철(1945년 대저동, 본명 강상수), ‘미스트롯2’에 출연 현재 인기몰이 중인 김해시 홍보대사 은가은(1987년 대성동, 본명 김지은)과 성민지(2002년), 김은빈(2006년) 등이 있으며, 필자의 고향도 김해군입니다.
–〈홍도야 우지마라〉– 이고범(이서구) 작사, 김준영 작곡, 김영춘(1939년 콜럼비아레코드사)
1절.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2절. 구름에 쌓인 달을 너는 보았지 /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하늘이 믿으시는 내 사랑에는 / 구름을 걷어 주는 바람이 분다
〈홍도야 우지마라〉김영춘이 1939년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노래로, 1935년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 연극전용 상설극장인 ‘동양극장’(현 서대문 문화일보 자리) 전속 청춘좌극단이 1936년 7월 23일부터 31일까지 초연 공연을 해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임선규의 작품으로서 홍도역에 22살에 요절한 차홍녀, 오빠역에 황철이 주연을 맡았던 신파악극 4막 5장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 삽입되었던 노래입니다. 한국인의 영원한 누이 홍도를 통해서 가난하지만 정결했던 시대를 낭만적 감수성으로 떠오르게 하는 우리 민족 정서를 대변하는 부표와도 같은 연극이었습니다. 악극 원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첫 공연때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정했던 것으로, 광복 이전에 한국 연극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장안의 기생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자신들의 처지와 같은 악극을 보고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삼켰고, 관객들 또한 나라 잃은 슬픔에 홍도의 불행 앞에서 한 몸이 되어 눈물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악극을 보지 못한 사람들의 성화가 빗발쳐 재공연은 쉬임없이 계속되어 더욱 감명을 주었다고 합니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전통가요의 뿌리라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악극의 줄거리는,「가난한 남매가 일찍 부모를 여의고 자랐는데, 여동생 홍도는 오빠를 공부시키기 위해 기생이 되었고, 홍도는 우연히 오빠 동창생 영철과 알게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명문가의 아들 홍도의 연인인 영철은 명문인 박대감집 딸과 약혼한 사이였다. 그런데도 그는 홍도를 사랑한 나머지 동거생활에 들어가고, 그의 집안에선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완고한 그의 부모도 두 사람의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굴복을 하고 홍도를 며느리로 맞아들인다. 그러나 남편이 유학을 떠나자 시어머니는 기생 며느리를 박대하고 내쫓음으로써 극적 전환을 맞는데,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음모를 꾸며 며느리를 부정한 여자로 만든다. 그 때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자 홍도는 순사가 된 자기 오빠와 함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시댁으로 향한다. 그러나 시댁 식구와 남편은 그녀를 부정한 여자라고 박대하고, 남편은 전 약혼녀와 혼인하려고 한다. 너무 억울하고 분노가 치민 홍도는 순간 제 정신을 잃고 전 약혼녀를 과도로 찔러 살인을 하게 된다. 그때서야 그녀의 결백이 밝혀지면서 남편도 오해를 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는 순사인 오빠에 의해 손목에 수갑을 차고 끌려가지 않으면 안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다.」
‘세월따라 노래따라’에 수록된〈홍도야 우지마라〉대사곡은 홍도역에 성우 사미자, 오빠역은 유기현이 맡았습니다.「홍도: 오빠! 저 창문 좀 열어줘요. 오빠: 홍도야! 네가 또 영철이 생각을 하는구나. 그러니까 병이 낫느냐. 다 잊어버려라. 홍도: 오빠!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세상 사람들이 날 비웃고 천한 기생이라고 욕을 해도 그 양반만은 그렇지 않았어요. 오빠: 그런 사람이 왜 부잣집 규수에게 장가를 들었느냔 말이다. 홍도: 아니예요 오빠, 세월이 가면 다 아실 거예요. 그이는 꼭 제 품에 제 품에 돌아 오실거예요.〔노래 1절〕-간주- 오빠: 홍도야, 이 불쌍한 것아! 오빠의 학비를 대느라구 그 모진 고생을 했지 응, 홍도야, 이제는 안심해라. 그리구 하루 빨리 병이 나아서 새로운 광명의 길을 이 오빠와 함께 걸어 가자꾸나 응, 홍도야〔노래 2절〕구름에 싸인 달을 너는 보았지 /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 하늘이 믿으시는 내 사랑에는 / 구름을 걷어주는 바람이 분다. 3절. 홍도야 울지마라 굳세게 살자 / 진흙에 핀꽃에도 향기는 높다 / 네 마음 네 행실만 높게 가지면 / 즐겁게 웃을 날이 찾아 오리라.」 구슬프죠?
그런데, 또다른 홍도는 실존했던 인물로 밝혀졌는데,「정조대왕 재위기 절세가인(絶世佳人)에 시(詩)와 예(藝)에 능했던 홍도는 1778년 동도(東都, 경주일원)에서 태어나 12세에 시(詩)와 서(書)에 능하고 14세에 예(藝)에도 뛰어났으며, 그 미모가 절세가인이었습니다. 20세에 궁으로 들어가 예원(藝院)에서 재직(상궁)하다가 39살이나 많은 임금의 장인 박준원의 눈에 들어서 그의 소실이 되었습니다.(물론 정조대왕이 승낙했겠죠.) 박준원이 세상을 떠나자 홍도는 고향 경주로 돌아와 교방 기생들의 대모 노릇을 하다가 45세에 요절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비문이 세상에 나타나고 1990년 8월 15일자 모 조간신문에 ‘홍도는 실존인물이었다’는 기사가 실렸다고 합니다. 현재 홍도의 묘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경북 경주시에서는 김동리의 단편소설 ‘무녀도’의 배경지인 금장대에 홍도공원을 만들고 홍도의 비와 비문을 새로 만들어서 그녀를 추모하고 있다고 합니다. 본명 최계옥, 홍도(紅桃)는 정조대왕께서 하사(下賜)하신 별호(別號)라고 하는데, 당시 묘비명에는 동도명기홍도지묘(東都名技紅桃之墓)라고 되어 있었다 합니다.
1992년 10월 3일부터 1993년 5월 9일까지 저녁 8시부터 50분간 64부작으로 방영된 MBC 주말드라마 ‘아들과 딸’(아들 최수종, 딸 김희애, 어머니 정혜선, 고두심, 오연수, 채시라, 한석규, 종말이역 곽진영 출연)에서 시골 흙길을 양복에 백구두만 신고다니던 아버지 역할의 백일섭이 술에 취하면 “홍도야 울지마라. 아 글씨! 오빠가 있다”하면서 부르던 모습이 기억들 나시나요?
☞ 김영춘(1918년〜2006년 본명 김종재), 김해 동광보통학교와 김해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살 때 당시 조선일보사와 콜럼비아레코드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신인가수선발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콜럼비아 전속가수로 1937년〈항구의 처녀설〉(처녀림 작사, 김송규 작곡)으로 데뷔했고, 1939년 발표한〈홍도야 우지마라〉로 인기가수 대열에 합류합니다. 콜럼비아사는 부산항과 경성역을 왕래하는 직원들의 숫자를 늘려야 했을 정도로 대 히트했다고 전해집니다.
김영춘은 1986년 11월 17일 KBS1-TV ‘가요무대’에 출연〈홍도야 울지마라〉를 불렀습니다.
2009년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 작사자 이서구 묘소에〈홍도야 울지마라〉노래비가 세워졌으며,
1998년 11월 20일 김해시문화체육관에서 가수 데뷔 60 주년 기념공연을 열었는데, 그의 데뷔곡은 1938년〈항구의 처녀설〉이었습니다. 그리고 데뷔 60주년 기념 감사패도 전달받았습니다.
필자가 강원도 철원 6사단 76포병대대 ‘C(챨리)포대’ 사격지휘소(FDC) 선임병으로 복무하던 198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분과대항 장기자랑대회가 있었는데, 필자가 기획, 연출한 ‘홍도야 우지마라’ 연극에서 김중배 역할을 맡아 준우승을 차지해 부상으로 건빵 10봉지를 받은 추억이 있습니다. 그때〈이름없는 새〉의 가수 손현희의 크리스마스 카드도 받았습니다.
–〈이름 없는 새〉– 김승덕 작사·작곡, 손현희(1983년 지구레코드사)
1절. 나는 한 마리 이름 없는 새 / 새가 되어 살고 싶어라
아무도 살지 않는 곳 그 곳에서 살고 싶어라 / 날 부르지 않는 곳 바로 그 곳에서
나는 한 마리 이름 없는 새로 살리라 / 길고 기나긴 어둠 뚫고서 / 날아가리라 하늘 끝까지
나는 한마리 이름 없는 새 / 새가 되어 살고 싶어라
2절. 아무도 살지 않는 곳 그 곳에서 살고 싶어라 / 날 부르지 않는 곳 바로 그 곳에서
나는 한 마리 이름 없는 새로 살리라 / 길고 기나긴 어둠 뚫고서 / 날아가리라 하늘 끝까지
나는 한마리 이름 없는 새 / 새가 되어 살고 싶어라
나는 한마리 이름 없는 새 / 새가 되어 살고 싶어라
1983년 여름. 경기도 가평 청평유원지 야외특설무대에서는 처음 TV로 생중계된 젊음의 상징 대학생들의 가요 경연대회인 ‘제4회 MBC 강변가요제’가 열렸습니다. 이날 예선을 거쳐서 본선에 참여한 30개팀이 열기 가득한 경연을 펼친 끝에 중앙대학교 불문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손현희가〈이름 없는 새〉로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가수 김승덕이 작사·작곡한 밝고 경쾌한 곡조의 노래는 손현희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와 잘 어우러져 대상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노래에 담겨진 특별한 사연은 없고 아무도 살지 않고 누구에게도 속박받지 않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심정을 담은 노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이 자유롭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노래를 들으면서 애독자님들께서 생각하시는 이상향을 향해서 한번 달려가 보시기 바랍니다.
1983년 8월 10일자 경향신문 보도「MBC 강변가요제 손현희(孫賢姬)양 대상 차지, 지난 8일 하오 청평 안전유원지에서 열린 MBC 주최 제4회 강변가요제 결선대회에서〈이름없는 새〉를 열창한 손현희양(중앙대)가 영예의 그랑프리를 차지, 상금 70만원과 컬러TV 1대를 부상으로 받았습니다. 모두 12개팀이 열띤 경쟁을 벌인 이 대회에서 6인조그룹 백마들(충남대)가〈오늘같이 좋은 날〉로 금상을, 7인조그룹 진(한양대)가〈너무 하잖아〉로 은상을, 김명숙양(효성여대)가〈벗에게〉로 동상을 각각 차지했습니다. 이밖에 오규록군(원광재)가〈비와 바람의 입맞춤〉을 불러 장려상을 받았으며 김상우군(계명실업전문대)가〈비익조〉를 열창,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손현희는 원로가수 고복수와 황금심의 둘째 아들인 고영민과 혼인한 후 남편과 함께 복음성가 가수로 음악을 통해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수 고영준이 시아주버니, 따님 중 둘은 2014년 데뷔한 걸그룹 ‘칠학년일반’ 보컬·댄스 고유화(1997년생)와 고은실(1999년생)입니다.
필자는 군복무 중 1983년 첫휴가를 나왔을 때에 아웅산테러 사태가 발생해 이틀만에 자진해서 부대에 복귀했습니다. 그때 철원 동송에서 내려 부대로 가는 길 철원평야에서 베어진 벼 밑둥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면서 이 노래〈이름 없는 새〉를 혼자서 부르던 쓸쓸함이 문득 생각나는군요.
“나는 한 마리 이름없는 새 새가되어 날고 싶어라…” 그리고 1년이 지난 12월 어느 날, 가수 손현희님에게 필자의 고향도 김해라고 밝히며, 엄청난 눈이 수북하게 내려 군인들이 제설작업을 하고 연병장에 쌓아 둔 눈뭉치들을 보니 히말라야 14좌 같다는 내용의 펜팔 편지를 보냈는데 198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내무반에서 필자는 소포를 하나 받았습니다. 놀랍게도 손현희가 보낸 카드와 옴니버스 카세트테잎이 들어 있었습니다. 난리 났었죠. 그날부터 부대 에서는 매일 2번 이상 카세트테잎을 틀었는데,〈이름없는 새〉와 길은정〈소중한 사람〉그리고 김승덕의 노래를 주로 들었습니다. 카드는 군대 ‘추억록’에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
당시 손현희님이 보내온 카드 내용, 「축 성탄 새해, 기쁜 성탄과 새해를 맞아 보다 밝고 복된 안병장님의 해가 되시길 빕니다. 항상 감사하며 발전을 빕니다. 1984. 12. 19. 손현희 드림」
필자가 제대 후 구리농협 행사에 초청가수로 손현희가 왔는데 저는 행사장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 MBC강변가요제(1, 2회는 ‘MBC FM 강변축제’) 1979년 경기도 가평군 소재 청평유원지에서 제1회 대회를 개최된 후 2001년까지 매년 7월과 8월사이에 청평유원지, 남이섬, 춘천 등에서 개최된 대학생 중심의 가요 경연대회였습니다. 역대 주요 수상자는 제 1회 금상 홍삼트리오〈기도〉, 제2회 장려상 인삼뿌리 2기(중앙대 주현미 등), 〈이 바다 이 겨울 위에서〉제3회 대상 천국의 이방인〈태양의 예언〉, 제4회 대상 손현희〈이름 없는 새〉, 제5회 대상 4막5장(이선희 임성균), 〈J에게〉, 장려상 덧마루(한석규 이정황 감독), 〈길잃은 친구에게〉, 제6회 대상 마음과 마음〈그대 먼 곳에〉, 금상 어우러기〈밤에 피는 장미〉, 장려상 박미경〈민들레 홀씨되어〉, 제7회 대상 유미리〈젊음의 노트〉, 동상 바다새〈바다새〉, 제8회 대상 문희경(배우·탤런트)〈그리움은 빗물처럼〉, 은상 여운〈홀로된 사랑〉, 제9회 대상 이상은〈담다디〉, 금상 이상우〈슬픈 그림같은 사랑〉, 가창상 박성신〈비오는 오후〉, 제10회 은상 박선주(미스트롯2 심사위원), 〈귀로〉, 참가곡 진시몬〈캠퍼스에도 외로움이〉, 제11회 대상 권성연〈한 여름 밤의 꿈〉, 참가곡 김영호(배우), 〈눈먼 사랑〉, 제12회 대상 박숙영〈노래하는 인형〉, 제13회 대상 이후종〈왜 내게 널〉, 제14회 칼라〈후회하고 있는거야〉, 제15회 대상 이재혁〈재미있는 세상〉, 제16회 대상 김우진〈너에겐 미안해〉, 금상 육각수〈흥보가 기가 막혀〉, 제17회 배연희〈소중한 너에게〉, 참가곡 동대문 남대문(개그맨 이수근)〈동대문 남대문〉, 제18회 대상 네이머스〈겨울이 끝나는 날〉, 제19회 대상 안문식〈나와 같은 눈물을 흘릴거야〉, 제20회 대상 장윤정〈내 안에 넌〉, 제21회 대상 시너지〈그녀의 여름〉, 특별상 이영현(MC)〈확인〉, 제22회 대상 김세진〈아리랑〉, 주요MC는 이수만·이문세 4회, 이택림·임예진 1회(1982년), 박소현·노사연·김현주 2회, 정혜정 1회 등이었습니다.
1988년 사회 이수만 “지금 제일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냐?” 대상 이상은 “마이클 잭슨”이라 외쳤다.
-〈애모〉- 유영건 작사·작곡, 은가은(2021년 ‘미스트롯2 나의 인생곡’ 원창 김수희)
1절.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한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설 수 없는 사람아 /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
/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요
2절.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요
당신은 나의 남자요
〈애모〉가 발표된 당시 최고 인기그룹인 ‘서태지와 아이들’의〈하여가〉가 ‘KBS 가요톱 10’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해 골든컵을 눈앞에 뒀으나〈애모〉가 1위를 차지하면서 무산되었고, 그대신〈애모〉가 5주 연속 1위를 해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1993년 한국 노랫말 대상도 수상.
〈애모〉김수희가 1990년에 부른 노래로 김수희가 설립한 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7집 앨범 ‘서울여자’ B면 타이틀곡으로 발표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은 노래였지만, 1993년 신문에 탄생 비화가 실리면서 라디오를 통해 신청곡이 쇄도하여 1978년〈너무합니다〉,1982년〈멍에〉와 함께 김수희의 3개 명곡이 된 노래입니다. 노랫말을 짓고 곡을 붙인 유영건의 아련한 이별의 감정이 담겨 있는〈애모〉노랫말에 얽혀있는 탄생비화. 「1989년 어느 가을날. 유영건은 동해안 바닷가의 외진 기슭을 헤메고 다닌다. 옛 연인이었던 그녀와 자주 왔던 곳. 바다는 푸르고 하늘에는 흰 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구속과 속박을 당하는 건 나뿐이구나. 얼마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가 있나? 세월의 강 넘어 우리 둘의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이루지 못한 사랑은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유영건의 옛 연인에 대한 줄기찬 사랑은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그림자처럼 꼭 따라 다녔습니다. “나는 왜 동행자도, 동반자도 없이 나 혼자 뿐인가?”〈애모〉는 거기서부터 탄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과 사랑의 혼을 담았습니다. 그에게 옛 연인에 대한 간절한 연모가 가슴에 남아 있는 한 두사람의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노래가 방송 전파를 타고 전국에서 한창 열풍이 일어나고 있던 어느날 옛 연인과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찻집에서 뜨거운 찻잔을 사이에 두고서 그녀가 말했다고 합니다. “이 노래, 우리 이야기지요?”라는 말에 그는 멋적게 웃기만 했다고 합니다. 유영건의 사랑의 혼이 담긴 노래에 김수희의 절창은 더욱〈애모〉를 대중들에게 애절한 감동을 선사하였습니다. 김수희는〈애모〉를 만든 유영건을 부산의 노총각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 김수희(1953년 본명 김희수, 부산 동대신동) 생활이 어려웠던 김수희는 숙명여고 2학년 때인 1970년 미 8군 무대를 통해 가수활동을 시작해 1976년〈너무합니다〉,〈남포동 부르스〉, 〈정거장〉으로 대중가수로 데뷔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년후인 1978년〈너무합니다〉가 역주행 히트를 해서 인기가수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리고 그해 직접 작사·작곡한〈나를 두고 아리랑〉으로 가수 김훈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1982년 발표한〈멍에〉가 크게 히트를 하면서 혜은이, 이은하와 함께 1980년대 디바 트로이카를 형성했고, 1982년〈다시 한번 생각해줘요〉, 〈못잊겠어요〉, 1984년〈잃어버린 정〉, 1985년〈고독한 연인〉, 1986년〈지금은 가지마세요〉, 1987년〈남행열차〉, 1990년〈애모〉, 〈서울 여자〉 등을 발표해 당시 여자 조용필이라고 불렸습니다. 필자가 졸병(卒兵)으로 근무한 1983년 부대에선 〈멍에〉가 매일 반복해서 앰프를 통해 흘러나와 정말 지겹다고 생각했는데, 제대 후엔 김수희 팬이 됐습니다.(^^) 1984년 필자가 병장으로 사격지휘소 일명 벙커(FDC)장 고참일 때 손현희가 보내준〈이름 없는 새〉길은정〈소중한 사람〉을 부대원들이 매일 2번 이상 듣게 했으니…(히!)
☞ 은가은(1987년, 본명 김지은 대성동)은 2021년 3월 4일 방송된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2’ 12회 결선 2라운드 ‘나의 인생곡’ 미션에서 선정한〈애모〉를 불러 TOP 7에 선정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송민도님〈고향초〉, 〈카츄사의 노래〉, 〈여옥의 노래〉 등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자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