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42. 성탄절〈미사의 노래〉〈미사의 종〉(2021.12.20.)
다가오는 25일은 ‘하늘엔 영광, 땅에는 축복’ 온 세계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인 ‘크리스마스’(Christmas) 즉, ‘성탄절(聖誕節)’입니다. “행복과 축복이 넘쳐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1953년 데뷔곡〈밤의 탱고〉를 비롯〈미사의 종〉,〈과거를 묻지마세요〉,〈백치 아다다〉,〈세월이 가면〉을 불렀던 가수인 나애심(1930년∼2017년)님이 태어나신 날입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올해를 뒤돌아 보고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맞이하는 온 국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미사의 종〉과 가수 이인권〈미사의 노래〉사연을 올리겠습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가슴을 울리는 구세군의 종소리와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아름답게 온누리에 퍼지며 가진 것은 부족해도 나눔을 실천하는 따뜻한 마음이 우리들을 기쁘게 합니다.
‘기독교’는 천주교회(카톨릭교회)와 개신교, 정교회로 크게 나누어 집니다. 천주교회, 정교회, 개신교의 성공회가 예배 드리는 장소는 ‘성당’(聖堂),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에서 예배 보는 장소를 ‘예배당’(禮拜堂)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예배당을 주로 ‘교회’라 하고, 개신교와 구별하기 위해 천주교회를 성당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성당’이라하니 ‘성당’이라 하겠습니다.)
구리시에 소재한 천주교회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구리성당·인창성당·토평성당 3곳이 있습니다.
개신교회는 아주 많지만 필자가 손꼽는 교회는 성광교회, 밀알교회, 두레교회, 교문제일교회, 아천동교회, 신광교회. 그리고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딸기원에 있는 성산교회, 현재 살고있는 교문2동 목양교회가 있습니다. 천주교회와 성공회교회는 ‘신부님’이 계시고, 개신교회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개신교는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성도로 구성되어 있다합니다. 우리나라 추기경님은 3분. 2009년 선종하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지난 4월 27일 선종하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이 계시었고, 지금는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께서 계십니다.
-〈미사의 노래〉- 임영일(이인권) 작사, 이인권 작곡, 이인권(1952년 오리엔트레코드사)
1절. 당신이 주신 선물 가슴에 안고서 /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어둠을 걸어가오
저 멀리 니콜라이 종소리 처량한데 / 부엉새 우지마라 가슴 아프다
2절. 두 손목 마주 잡고 헤어지던 앞뜰엔 / 지금도 피었구나 향기높은 다알리아
찬서리 모진 바람 꽃잎에 부지마라 / 영광의 오실길에 뿌려 보련다
3절. 가슴에 꽂아주던 카네이션 꽃잎은 / 지금은 시들어도 추억만은 새로워
당신의 십자가를 가슴에 껴안고서 / 오늘도 불러보는 미사의 노래
〈미사의 노래〉이인권이 노랫말을 짓고, 작곡을 해서 직접 1952년 부른 노래로서 신세영의〈정열의 하와이〉와 함께 오리엔트레코드사를 통해서 발표한 곡입니다. 노래가 탄생한 배경,
「한국전쟁 때 군예대 소속으로 가수인 아내와 국군장병 위문공연을 다니던 어느 날 공연을 하던 도중 어디선가 포탄이 날아와서 공연장 무대 부근에 떨어져 아내는 그 자리에서 운명을 달리했고, 이인권은 다리에 큰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피란시절에 대구 ‘계산동성당’(1886년 건립) 인근에서 셋방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자신의 과오로 아내를 잃게됐다는 깊은 상실감과 죄책감에 우울증세를 보였고, 음악 작업도 멀리하고서 방황의 나날을 보내면서 계산동성당을 다니게 됐는데, 어느 날 성당에서 울리는 미사의 종소리가 들리자 이불을 뒤집어 쓴채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천국에 먼저 간 아내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노래시를 썼고, 곡을 붙혀 친구인 이병주가 운영하던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본인이 직접 노래를 녹음해 발매했습니다. 당시 대구에선 오리엔트레코드사를 중심으로 작곡가 박시춘, 이재호와 작사가 강사랑, 손로원 등 음악인들이 2층 오리엔트다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생활을 했는데,〈미사의 노래〉는 당시 피난민들의 안식처인 부산에서〈전선야곡〉〈굳세어라 금순아〉와 함께 빅 히트를 했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음색이 묻어나는〈미사의 노래〉는 탱고 리듬에 애조 띤 멜로디로 한 구절 한 구절마다 대중들의 가슴을 여미게 하였던 것입니다. 항상 단정한 신사의 품위를 지키며 생활했던 싱어송라이터 이인권은 조미미의〈바다가 육지라면〉〈단골 손님〉등을 작곡한 후 갑작스럽게 지병으로 작고하셨습니다. 54세에 우리들의 곁을 떠났지만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서 불려지고 있는〈꿈꾸는 백마강〉,〈무영탑 사랑〉 광복의 기쁨을 노래했던〈귀국선〉과 당신의 슬픔과 간절함, 그리움에 사무친 곡〈미사의 종〉은 오늘도 대중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습니다.
☞ 1절의 ‘니콜라이 종소리’에서 ‘니콜라이’는 이탈리아 동로마제국 시대 미라(Myra) 지역의 성직자인 ‘성(聖) 니콜라우스’(Saint Nicholas of Myra 270년〜341년)으로 뛰어난 성덕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위해 헌신하다 선종했습니다. 이후 아랍이 침공한 1087년에 그의 유해를 바리(Bari)로 옮겨와 경당을 세워 니콜라우스를 기린다는 소문이 전 유럽으로 전달돼 소외된 사람들의 순례지가 되자 이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바로 대성당 건축에 들어가 1197년 ‘성 니콜라우스 대성당’이 완성되었습니다. 네덜란드어로 ‘신터 클래스’(Sinter Claes)를 영어 발음으로 하니까 바로 ‘산타클로스’(Santa Claus)입니다. 그의 자선과 사랑을 기리는 뜻에서 크리스마스 때 당시 주교가 입었던 빨간색 복장으로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주고있는 것입니다.
–〈미사의 종〉– 박대림 작사, 전오승 작곡, 나애심(1958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빌딩의 그림자 황혼이 짙어갈 때 / 성스럽게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
걸어 온 발자국 마다 눈물 고인 내 청춘 / 죄 많은 과거사를 뉘우쳐 울 적에
아아 싼타마리아의 / 종이 울린다
2절. 흰 눈이 나릴 때 미사가 들려오면 / 가슴 깊이 젖어드는 아베 마리아
흰 눈 위에 발자국 마다 눈물 고인 내 청춘 / 죄 많은 과거사가 나를 울릴 적에
아아 싼타마리아의 / 종이 울린다
〈미사의 종〉나애심이 1958년 부른 노래로 금호동〈영원한 여인상〉과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되었습니다. 또한 1959년 발매한 ‘박춘석 작편곡, 대중가요 걸작집 제1집, 젊은 날의 순정 / 미사의 종’ 앨범 B면 타이틀곡으로, 음반 A면에는 백일희〈젊은 날의 순정〉〈꽃피는 어린 천사〉안다성〈서울의 소야곡 〉〈추억의 정자나무〉B면에는. 나애심〈미사의 종〉최갑석〈평안도 사나이〉금호동〈영원한 여인상〉권혜경〈첫사랑의 화원〉이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농업방송 ‘NBS 그 시절 그 노래’ 136회 ‘미사의 종 나애심’편에서 사회자 김성환의 멘트, “나애심의〈미사의 종〉은 아주 시원한 목소리와 원죄 의식을 자극하는 가사의 매력으로 아주 상당한 히트를 했는데요. 〈미사의 종〉에 가사는 과거를 후회하고 회한을 느끼는 마음을 천주교와 접목한 이야기로 구성을 하고 있는대요.
자! 이 곡에는요. 비단 천주교인이 아닌 평범한 일반인도 이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아주 묘한 매력이 담겨져 있는 노래입니다. 나애심의 시원한 목소리는 성당의 종소릴 들으며 죄를 뉘우치는 듯한 느낌도 들게하는데요. 자! 어떤 노래인지 한 번 직접 들어 보시죠.” -노래- “〈과거를 묻지마세요〉 자아! 1950년에서 6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가수이자 배우 나애심의 본명은 전봉선입니다. 1930년 평남 진남포 출신인 나애심은 이국적인 외모와 이 허스키한 음색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백치 아다다〉,〈돌아오지 않는 해병〉등 100여 편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필자는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면 언제나 마음이 평안해 져 저절로〈미사의 종〉을 나지막히 부르기도 합니다.
–〈과거를 묻지마세요〉– 정성수 작사, 전오승 작곡, 나애심(1959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
끝 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 아아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 많고 설움 많은 / 과거를 묻지 마세요
2절. 구름은 흘러가고 설움은 풀려 / 애달픈 가슴마다 햇빛이 솟아
고요한 저 성당에 종이 울린다 / 아아 흘러간 추억마다 그립던 내 사랑아
얄궂은 운명이여 / 과거를 묻지 마세요
정성수는 “38선이란 장벽이 하루 빨리 무너지고 북녘 땅에서도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져서 어둡고 괴로웠던 과거를 서로 묻지 말고, 앞으로 평화롭게 함께 살자”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했습니다. 이 노래는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의 희망이고, 아픈 역사의 증언이며, 우리 민족의 넋두리인 것입니다. 노래의 히트와 더불어 한때〈과거를 묻지마세요〉라는 제목은 남녀관계를 비유하는 말로 비화되어 한동안 유행어로 대중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1998년 4월 28일 서울 구의동 어린이대공원 후문 근처에 노래비가 세워졌습니다. 성탄절날 ‘명동성당의 종소리’를 들어보세요. 그리고 어둡고 괴로웠던 코로나19가 빨리 사라지면 과거를 묻지마세요.
정성수님 작사곡은〈사랑에 우는 밤〉〈아카시아 꽃잎 필 때〉〈푸른 날개〉〈황금의 눈〉등.
☞ 작사가 정성수(1924〜1998년 함남 신흥 출생), 작곡가 전오승, 가수 나애심. 세 사람은 모두 한국전쟁 때 월남했고, 가사에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외에도 월남인으로 살며 받은 설움 이야기. 휴전선이 무너지고 괴로운 세월도 흘러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 작곡가 전오승(본명 전봉수)는 가수 나애심의 큰 오빠이며, 1961년 김진규, 김지미, 전영선 주연의 영화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역의 깜찍한 아역배우인 전영선이 그의 딸입니다. 1923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5남 4녀 중 맏이로 태어나 진남포 봉정공립보통학교 때 선생님의 기타 연주에 감명 받아 기타에 푹 빠져 부모님의 눈을 피해 매일 기타를 연습했다고 합니다. 해방 후 홀로 서울로 와〈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님에게 작곡기법을 배웠고, ‘HLKA방송국 경음악단’과 박시춘의 ‘럭키레코드사’에서 기타리스트로 일했습니다. 이 무렵 본격적인 작사·작곡을 했는데, 작곡가 예명 전오승(全吾承)은 “모두 나를 따르라!”는 뜻이고, 작사가 예명은 “세상을 향해서 천개의 북을 울린다.”는 뜻으로 세고천(世鼓千, 세고석)이라 정했다고 합니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첫 히트곡은 1953년 현인〈인도의 향불〉해방 후 홀로 월남했지만 ‘인천상륙작전의 날’ 1950년 9월 15일 오빠를 찾아 동생 나애심이 월남해 다음날 극적으로 상봉을 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1.4후퇴 때 피난온 가족들과도 상봉한 후 군예대에서 ‘군번 없는 용사’로 활동했습니다. 이때의 ‘전오승 사단’ 3인방이 동생 나애심, 명국환, 박경원이었습니다. 그는 1978년 LA로 이민 2016년 93세의 연세로 타계하셨습니다. 전오승이 작곡한 대표적 노래는 대구 피난시절 1953년 나애심 데뷔곡〈비의 탱고〉를 비롯, 김상희〈경상도 청년〉, 김용만〈효녀 심청〉,나애심〈미사의 종〉,〈과거를 묻지마세요〉,〈백치 아다다〉,〈아카시아 꽃잎 질 때〉, 명국환 데뷔곡〈백마야 울지마라〉,〈내고향으로 마차는 간다〉,〈방랑시인 김삿갓〉,〈아리조나카우보이〉, 박경원 데뷔곡〈비애(悲哀)부르스〉,〈이별의 인천항〉, 박재란〈럭키모닝〉,〈푸른 날개〉,박재홍〈휘파람 불며〉,여운〈과거는 흘러갔다〉,〈삼일로〉, 한명숙〈사랑의 송가〉, 현인〈인도의 향불〉, 황금심〈장희빈〉 등 전오승이 마지막으로 작곡한 곡이 1978년 허성희〈전우가 남긴 한마디〉입니다. 전오승 작곡 노래비는〈과거를 묻지마세요〉,〈방랑시인 김삿갓〉,〈이별의 인천항〉이 세워져 대중가요에 기여한 공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1954년 발표된 명국환의 데뷔곡〈백마야 울지마라〉에 담겨진 재미있는 일화 이야기 하나는, 「1953년 명국환은 샛별악극단에 입단해 나애심을 만났고, 오빠인 작곡가 전오승에게 소개돼 1954년〈백마야 울지마라〉로 정식 데뷔를 했습니다. 데뷔 동기(同期)가 가수 박경원, 발매된 음반 뒷면에 박경원 데뷔곡〈비애 부르스〉가 실려있습니다. 〈백마야 울지마라〉는 ‘한국전쟁 직후 국민들에게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백의민족으로써 내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자.’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전오승은 첫딸인 전영선이 1954년 백말띠 해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것을 기념해서 지었다는 에피소드가 회자 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전영선의 고모 나애심도 1930년 말띠 해에 태어났으니 말띠 전성시대! 였군요.」
☞ 나애심(본명 전봉선)은 1930년 평안남도 진남포서 출생해 가수 한명숙도 5년 후 진남포서 태어났습니다. 진남포여고를 졸업하고 1950년 인천상륙작전이 있던 날 큰오빠 전오승을 찾아 홀로 월남해서 다음 날 이들 남매는 극적으로 상봉했고, 1951년 1.4후퇴 때 고향에 남아있던 가족들도 월남해서 함께 대구로 피난해 살던 중, 그 곳에서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성우 구민, 가수 현미 등과 오페라 ‘아리아’ 무대에 서기도 했으며, 가수 현인의 부인인 김미정, 영화배우 이경희, 3살 터울의 막내 동생인 가수 전봉옥과 함께 ‘아리랑시스터즈’를 결성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53년 작곡가 한복남이 지어준 “나는 내 마음을 사랑한다.”는 뜻을 가진 예명 나애심(羅愛心)으로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밤의 탱고〉를 녹음해 발표하면서 가수로 데뷔해서 300여 곡을 취입한 가수였지만 10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한 배우이기도 했습니다. 공연무대와 스크린을 동시에 접수해 한 시대를 풍미한 여걸이라고 할 수 있죠. 배우로 출연한 영화는 ‘구원의 애정’ ‘백치 아다다’ ‘과거를 묻지마세요’ ‘미사의 종’ ‘아카시아 꽃잎 필 때’에서 주제가도 불렀고, ‘구원의 애정’에서 첫 주연을 맡아 주제가〈물새 우는 강 언덕〉도 불렀습니다. 그러나 음반은 가수 백설희가 냈습니다. 또한 1956년 ‘백치 아다다’의 주제가는 홍은원 작사, 김동진 작곡으로 나애심 대표곡 중 한 곡입니다. 출연한 영화로는 1955년 ‘미망인’ ‘물레방아’를 필두로 ‘단종애사’ ‘청춘극장’ ‘자매의 화원’ ‘돌아오지 않는 해병’ ‘쌀’ 육체의 고백’ ‘감자’ ‘쌀’ ‘동백아가씨’ ‘추풍령’ ‘들국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등이 있습니다. 나애심 회고담(談). “술집마담 역할에 출연했을 때 3살난 딸이 젓가락 장단을 두드리며 엄마의 영화 장면을 흉내내 놀고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딸이 1989년 예쁘장한 외모와 발랄한 춤으로 혜성같이 등장해〈D.D.D〉로 MBC 10대가수가요제 신인가수상을 받았던 가수 김혜림입니다.
나애심은 당시로선 큰 키(162cm)와 이국적인 외모, 그리고 글래머 몸매 등으로 인해 한국의 ‘안나 카시피’로 불렸는데, 안나 카시피(1934년〜2015년)는 인도출신의 세계적인 배우였습니다. 비사(祕史) 하나,「한국전쟁 직후 서울로 돌아온 문화예술인들은 명동에 위치한 카페나 다방을 찾아 문화적인 교류을 활발하게 전개했던 그때를 ‘명동의 시절’이라 했습니다. 1956년 현인이 취입한〈세월이 가면〉은 어느 날.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1926년∼1956년)이 즉석에서 가사를 쓰고, 극작가 이진섭(1922년∼1983년)이 바로 곡을 붙힌 것을 현장에 함께 있었던 나애심이 처음 불렀다고 하는데, 그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답니다.」 나애심은 “공연무대에서 노래하고, 영화에 출연하는 생활에만 몰두해서 세상물정을 모르고 살았다.”고도 했는데, 병원에서 ‘골다공증’ 진단이 나왔을 때 ‘골고다의 언덕’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던 나애심, 아니 전봉선님은 2017년 12월 20일 1년 전에 먼저 천국으로 가신 큰오빠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의 가수 나애심에 대한 평(評) “정열적인 눈과 이지적인 마스크로 등장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노래하는 스타, 즉 ‘싱잉스타(Singing star) 시대‘를 열었습니다.”
필자가 청년시절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12월이 되면 거리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졌는데, 언제부터인가 거리에서 캐롤송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연말연시 기분이 나지 않는 것은 아쉽습니다. 당시 울려 퍼지던 대표적인 캐롤송은〈징글벨〉,〈산타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화이트 크리스마스〉,〈탄일종〉,〈창 밖을 보라〉,〈루돌프 사슴코〉,〈기쁘다 구주 오셨네〉,〈저 들밖에 한 밤중에〉,〈실버벨〉,〈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등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보너스 한곡은, 1942년에 어빙 벌린(irving berlin)이 작사·작곡해서 빙 크로스비(Bing Crosby 1903년∼1977년)이 불렀던〈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가 되겠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어빙 벌린 작사·작곡, 빙 크로스비(1942년 데카레코드사)
1절.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 Just like the ones I used to know
Where the treetops glisten And children listen / To hear sleigh bells in the snow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 With every Christmas card I write
May your days be merry and bright / And may all your Christmases be white
2절.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 Just like the ones I used to know
Where the treetops glisten And children listen / To hear sleigh bells in the snow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 With every Christmas card I write
May your days be merry and bright / And may all your Christmases be white
「꿈 속에 보낸 화이트 크리스마스 또 다시 돌아왔구나 / 방울소리 처량하게도 흰눈 속을
썰매는 간다 / 꿈 속에 보낸 화이트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어 보내네 / 메리 크리스마스
평안하라 복 주시네 거룩한 밤에 / 메리 크리스마스 평안하라 복 주시네 거룩한 밤에」
〈화이트 크리스마스〉1942년 5월 29일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의 가수 겸 배우 빙 크로스비가 데카레코드사에서〈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녹음했고, 영화 ‘홀리데이인’에 출연해 부른 삽입곡으로 음반은 세계적으로 2억 장 이상이 팔린 초대박 상품으로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았습니다. 법학을 공부했지만 연예계를 지망했던 그는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발라드의 달인으로 통합니다.
1977년「그는 노래를 좀 할 줄 아는 보통 남자였다.」라는 묘비명을 스스로 새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배우, 가수, 코메디언 등에서 손꼽히는 스타였지만 또한 악동이었다 합니다.
다음엔 올해 마지막 독자논단, ‘구리시’에 살았거나 거주하는 가수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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