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43. ‘구리시 홍보대사’ 대중가수들의 대표곡(2021.12.27.)
이제 2021년 신축년(辛丑年) 올해도 마지막 한주(一週)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올해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묘서동처(猫鼠同處)’ 즉 ‘고양이 묘, 쥐 서,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 ‘사람이 도둑과 한패거리가 됐다’는 뜻이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나 지방정부의 위정자(爲政者)들이나 공직자들은 엄정한 책임의식과 공정한 법 집행, 그리고 이를 감시할 막중한 책무(責務)가 있으니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과 한 통속이 되어서 이권에 개입하거나 연루되는 불행한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2위는 ‘인곤마핍’(人困馬乏) 삼국지에서 유비(劉備)가 조조군에 대패해 긴 여정의 피난길에 “백성과 말이 모두 지쳐서 기진맥진 했다.”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올해 “코로나19를 피해 다니느라 온 국민도, 나라도 피곤한 한해였다.”는 의미라 합니다.
경기도 구리시(九里市)는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면적이 가장 적은 시(市)입니다.
면적은 33.31㎢ 이전 도량형인 평수로는 딱 10,000,000평, 인구수 197,608명(2020년말 현재)
경기 동북부의 사통발달인 교통요충지역으로서 수도권의 신흥도시로 계속 부각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격전지로 백제·고구려·신라가 돌아가며 차지한 지역이고, 고려 983년 양주목, 1308년 한양부, 1410년 양주목, 조선시대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양주목 구지(龜旨)면’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왔습니다. 1914년 4월 1일 강제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 명칭 ‘구리(九里)’가 이때 생겨났는데, 구지면의 10개리인 사노리, 인장리, 수택리, 백교리, 토막리, 동창리, 이문리, 평촌리, 아차동, 우미천리와 망우리면의 15개 리인 묵동리, 신현리, 능후동, 방축리, 직곡리, 봉황동, 내동리, 능내동, 양원리, 입암리, 봉현리, 상리, 중리, 하리, 능곡리, 그리고 노원면의 장기리와 갈매동, 미음면의 수변리, 석도리 각 일부, 진관면의 배양동 일부, 별비면의 퇴계원리 일부를 병합 구지(龜旨)의 ‘구(龜)’를 구(九)로, 망우리 ‘리(里)’자를 따 구리면이라 했습니다. 인구 변천사는 1961년 22,697명, 1970년 23,067명, 1980년 66,541명, 1990년 109,418명, 2000년 170,000명, 2017년말 20만 돌파, 2020년말 현재 197,608명입니다.
구리시의 강(江). 남쪽으로는 민족의 젖줄인 한강이 흐르고, 동쪽엔 왕숙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산(山)은 서쪽으로 서울특별시와 경계를 이루는 아차산(峨嵯山 해발 316m)과 용마산(龍馬山 해발 348m), 검암산(儉巖山 일명 구릉산, 해발 178m)이 있는 전통적인 임산배수(臨山背水) 지역으로 연평균기온 11.9℃, 연평균 강수량 1.109mm의 살기 좋고 인심 좋은 자족도시입니다. 중요유산으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의 왕들과 왕비들의 9릉 17위로 이루어져 있는 ‘동구릉’(사적 제193호)을 비롯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기록인 ‘병자록’을 저술한 ‘나만갑선생 신도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조선 태종의 후궁인 ‘명빈 김씨의 묘’(사적 제364호)와 ‘아차산성’(사적 제234호)가 있습니다. 유일한 관광자원은 ‘동구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동구릉(東九陵)의 9릉은「1408년 조선 태조고황제 ‘건원릉(建元陵)’을 비롯해 제5대 현종과 현덕왕후 ‘현릉(顯陵)’, 제14대 선조와 의인왕후·인목왕후 ‘목릉(穆陵)’, 제16대 인조의 장렬왕후 ‘휘릉(徽陵)’,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 ‘숭릉(崇陵)’, 제20대 경종의 단의왕후 ‘혜릉(惠陵)’, 제21대 영조와 정순왕후 ‘원릉(元陵)’,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효정왕후 ‘경릉(景陵)’, 제23대 순조의 세자인 추존왕 익종과 신정왕후 ‘수릉(綏陵)’을 말합니다. 학창시절 단골 소풍장소였음.
동구릉의 명칭은 조선시대 ‘동삼릉’,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 고종황제 때 ‘동구릉’이 됐고,
동구릉은 문화재청에서 ‘조선왕릉 40기’를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해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를 거쳐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잔치국수〉– 조영창 작사, 홍성욱 작곡, 나일강(2016년)
1절. (경사났네 경사났네 / 경사로다 경사로다) / 잔치국수 한 사발에 웃음이 돈다 경사났네
우리 동네 경사가 났네 / 앞집 총각 철이와 옆집 처녀 꼭지가 암탉 장닭 묶어 놓고
꼬꼬재배 울린다네 / 연지곤지 분단장에 너무 예쁜 꼭지 처녀 / 사모관대 갈아입고 의젓하다
철이 총각 / 마당에는 구경꾼들 양가 친척 다 모이고 우리 동네 경사 났네 경사가 났네 /
잔치국수 돌아가고 막걸리도 넘쳐나네 / 에헤라 경사로다 에헤라 경사로다
2절. (경사났네 경사났네 / 경사로다 경사로다) / 연지곤지 분단장에 너무 예쁜 꼭지 처녀
사모관대 갈아 입고 의젓하다 철이 총각 / 마당에는 구경꾼들 양가 친척 다 모이고
우리 동네 경사났네 경사가 났네 / 잔치국수 돌아가고 막걸리도 넘쳐나네
에헤라 경사로다 에헤라 경사로다 / 잔치국수 돌아가고 막걸리도 넘쳐나네
에헤라 경사로다 에헤라 경사로다 (경사가 났네)
가수 나일강은 1961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나 1978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작곡가 김학송님을 찾아가 조경수〈아니야〉나훈아〈애정이 꽃피던 시절〉을 불러 오디션에 합격해 가수로 연수를 받고서 ‘노벨극장과 아마죤’ 등의 밤무대가수로 활동하다 김학송 사무실에서 대한민국 가요산맥 작사가 정두수 선생님을 만나 그 분으로부터 “너! 내 양아들 해라”는 제의를 받고서 작고하실 때까지 아버지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강병철과 삼태기’의 강병철을 소개해 주셔서〈고려청자〉〈가을 나그네〉등이 수록된 LP음반을 방송국에 돌리며 창단멤버로 활동했습니다.
그후 활동을 접고 개인사업을 했지만 화재로 망연자실해 있을 때 정두수 선생님께서 찾아와 1백만원을 주시며 “꼭 재기해서 성공해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라고 필자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 솔로 데뷔곡〈일센치〉등을 발표한 후 2015년 8월. 독일교민협회에서 주최한 ‘광복 70주년 기념행사’ 축하무대에 올라 1만 6천여 명의 초대박 관객 앞에서 노래하면서 40여 년만에 공연무대에 선다는 부담감을 덜고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2019년부터는 가수를 포함해 전체 연예인 중 유일하게 대형버스(사진 참조)를 이용해 자신을 홍보하면서 전국을 누비며 공연활동을 하고 있고, 또한 재능기부 공연 활동도 열심히하고 있으며, TV·라디오방송과 각종 행사를 통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형면허를 따 홍보버스를 직접 운전하면서 전국을 누비고 다닙니다. 코로나-19가 빨리 회복돼 왕성한 공연을 해야 될텐데… “나일강 파이팅!!!”
2015년 3월 24일〈거기 지금 누구인가〉의 국민가수 김명상이 운영하는 ‘7080콘서트라이브’ 클럽에서 개그맨 겸 가수, MC 구수한의 사회로 가수 나일강이 ‘나일강 1집 쇼케이스’ 행사가 열렸습니다. 필자는 친구들 5명과 함께 그 자리에 참석해 축하해 주었습니다. 1977년 강병철과 삼태기 멤버로 가요계에 발을 디딘 화려한 경력 때문인지 많은 팬들이 홀을 가득 메웠습니다.
나일강의 인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 장안동 신답극장에서 일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그때 인연을 맺은 가수가 ‘트로트 4대천왕 설운도’. 설운도도 혹독한 무명가수 시절이 있었죠.
필자는 2013년 11월 28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뮤지엄홀에서 정두수 선생님의 ‘노래따라 삼천리-남인수에서 조용필까지’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는데, 가수 설운도와 조항조, 작곡가 이호섭, 故 성우 박일, 이동순 영남대 교수, 그리고 고향 하동의 축하인사들이 참석해 성대히 열린 행사장에서 필자는 나일강과 함께 잔심부름을 했습니다.
1부는 박일의 사회로 의식행사가 열렸고, 2부는 이호섭님의 사회로 가수들의 축하의 무대가 펼쳐졌으며, 우리 두사람은 접수된 방명록을 정리하느라 다른 홀에 있었는데, 설운도가〈노량대교〉를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행사후 필자는 나일강과 설운도, 조항조 세 사람 사진도 찍어줬습니다. 또 나일강과 설운도의 만남은 정두수 선생님 장례식장에서도 이뤄졌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멋쟁이 설운도는 대스타답게 40년짜리 중고 신인가수 나일강을 적극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제3집〈나일강의 기적〉도 직접 만들어 줬고, 필자에게 홍보용 대형버스도 구입해 선물해줬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몇번이나 자랑을 했습니다. 나일강의〈나일강의 기적〉을 취입하게 된 동기도 두 사람의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합니다. 나일강은 설운도 형에게 “형! 우연이도 우연히로 떴는데 나일강인 나도 나일강으로 뜰 수 있게 만들어줘요. 그랬더니〈나일강의 기적〉을 만들어 줬어요. 기적이 일어난 것이죠.” 그리고 정두수 선생님께서 2016년 8월 13일 작고하시기 전에 “네가 만약 가요계에 컴백하려면 설운도를 찾아가라. 믿을만한 사람은 운도 밖에 없다.”며 유언을 했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지난 8월 9일 24회 ‘가요산맥 작사가 정두수님 5주기를 맞이하여…’와 11월 8일 NO 37. ‘충청남도’편에서 가수 나일강과의 인연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정두수 박물관’과 하동 ‘정두수 가요제’에 힘을 쏟고있는 나일강! 앞으로 많이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표곡에는, 2015년〈일센치〉, 〈사랑맥〉, 〈시모네〉, 2016년 〈잔치국수〉 , 〈세월을 잡아다오〉, 2019년 〈나일강의 기적〉, 2020년 〈사랑의 욕심〉, 〈남자도 순정이〉, 〈길손 인생〉 등이 있습니다.
나일강의 최고 히트곡〈잔치국수〉는 2020년 5월 4일 ‘임영웅의 정규앨범’에도 실려있습니다.
–〈파초의 꿈〉– 윤혁민 작사, 김강섭 작곡, 문정선(1970년 유니버샬 레코드사)
1절. 낙엽이 나부끼던 어느 날인가 / 눈보라 밤새 일던 어느 날인가
세월의 뒤안길을 서성이면서 / 한 많은 외로움에 울던 그 사람
언젠가 땅을 딛고 일어서겠지 / 태양의 언덕 위에 꿈을 심으면
파초의 푸른 꿈은 이뤄지겠지
2절. 세월의 뒤안길을 서성이면서 / 한 많은 외로움에 울던 그 사람
언젠가 땅을 딛고 일어서겠지 / 태양의 언덕 위에 꿈을 심으면
파초의 푸른 꿈은 이뤄지겠지
문정선(1951년 출생)은 1951년 대전 유성에서 태어나 유성 최고부자였던 아버지는 7남매를 모두 서울로 유학을 보냈는데, 덕성여고 2학년 때 나이를 부풀려서 ‘KBS 라디오 노래자랑’에 언니의 옷을 입고 출연 당당히 1등을 차지해 당시 KBS 음악단장인 작곡가 김강섭에 의해서〈나의 노래〉(김강섭 작사·작곡)과 1951년 발표된 가곡인〈보리밭〉(박화목/윤용하) 등으로 음반을 제작 발매했는데,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합니다. 1970년〈파초의 꿈〉(윤혁민/김강섭)으로 정식 가수로 데뷔해 TBC 7대가수 선정과 신인가수상을 수상했고,〈그 얼굴에 햇살을〉(김강섭 작사·작곡)〈꽃이야기〉(하중희/김강섭)〈오라 오라 오라〉(하중희/김강섭) 등으로 국민가수가 됐습니다. 문정선은 노래를 부를 때 허스키한 목소리에 수수한 외모와 시원시원한 가창력, 그리고 패기발랄한 몸짓 등으로 인해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인기를 반영하듯이 ‘청춘극장’ ‘딸’ ‘갈대의 노래’ ‘낮과 밤’ 등 드라마 주제곡 90% 이상을 불렀습니다.
문정선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제가 데뷔했을 당시는 이미자 선생님, 나훈아, 남진 등 트로트 가수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저는 발라드 가수였어요. 그 점이 신선해서였는지 드라마 주제곡을 많이 부른 것 같아요. 그러나 인기가 얼마나 멋진 것인 줄 그 때는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데뷔곡〈파초의 꿈〉이 큰 인기를 모으면서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내 생활이 없어지더라고요. 그 후엔 도망 다니면서 방송했어요. 당시는 좋은 조건에서 가수활동을 하면서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며 그때는 인기가 행복인 줄 몰랐다”고도 했습니다. 문정선은 1980년 혼인과 함께 연예계를 떠났다가 24년이 지난 2004년 8월 9일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서〈파초의 꿈〉을 부르면서 방송활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현재 구리시 수택2동 모아파트에서 살고 계시는데, 매년 봄과 가을에 구리한강시민공원 잔디밭 특설무대에서 펼쳐지는 구리시 ‘유채꽃 축제’와 ‘코스모스 축제’에 초청가수로 매번 출연하셨는데, 작년부터는 코로나-19 관계로 축제가 취소되어 뵐 수 있는 기회가 없어져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거기 지금 누구인가〉– 강인원 작사·작곡, 김명상(1992년 서울음반)
1절. 거기 지금 무엇인가 내가 떠나버린 저 새벽 끝에서 / 조용히 움직이는 것들
야윈 꿈들이 하나 둘 움트는가 / 거기 지금 누구인가 / 애써 지우려 했던
내 기억속에서 또 다시 움직이는 것들 / 잊혀진 이름 그리운 사람들
내 아버지와 같은 저 넓은 대지와 / 내 어머니와 같은 저 푸른 강물 보며
떨리는 가슴에 갈 길은 멀지만 / 어둠 속 끝까지 뛰어가야 해 / 거기 지금 누구인가
2절. 거기 지금 무엇인가 / 내가 떠나버린 저 새벽 끝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것들
잊혀진 이름 그리운 사람들 / 내 아버지와 같은 저 넓은 대지와
내 어머니와 같은 저 푸른 강물 보며 / 떨리는 가슴에 갈 길은 멀지만
어둠 속 끝까지 뛰어가야 해 / 거기 지금 무엇인가
거기 지금 누구인가 / 거기 지금 누구인가
‘가수 김명상’ 온화하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 이 형님을 만나면 언제나 친근하고 포근합니다. 성냄은 없고 웃음만 있는 형님! 만난 지는 5년 밖에 안됐지만 20년〜30년은 된 것 같습니다.
1992년〈추억 만들기〉〈모래위의 욕망〉으로 데뷔해 1993년 강인원, 전인권, 권인하와 함께 ‘느티나무언덕 1기’로 활발한 가수활동을 했습니다. 필자는 2018년 11월 7일 오전 11시 경, 영화배우 故 신성일의 추도식이 경상북도 영천 자택에서 열리는 것을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많이 낮익은 얼굴들이 보였는데, 어라! 김명상 형님이 추도곡을 부르시는 것이었어요. 패티김〈초우〉와 이장희〈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두 곡이었는데, 처량하게 가랑비가 보슬 보슬 내리는 가운데 추도식에서 울려퍼지는 나지막하고 촉촉한 노랫소리가 더욱 슬픔을 배가 시켰지요. 끝까지 굿굿하게 지켜보던 부인 엄앵란도 김명상의 노랫가락에 그만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더군요. 그 모습을 보자 필자의 가슴도 촉촉해졌습니다. 그날 밤 형을 보기 위해 형님이 운영하는 ‘콘서트’를 방문했는데, 밤 11시가 넘어서야 오시더군요. 추도식 끝마치고 부지런히 온 것이 지금이라면서… “전날 추도곡을 불러 달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내가 대스타인 신성일의 추도식에서 추도곡을 부른다. 나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에 밤새 한숨도 못자고 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형! 그 노래 불러주세요.” “지금? 피곤한데” “아이 형님! 플리스” 휴대폰 동영상에 담았고, 김명상표〈초우〉〈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USB에 저장해 보관중입니다.
코로나-19로 ‘콘서트’를 안 가본지도 벌써 2년째… 김명상 형님을 뵌지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구리시 홍보대사’ 가수 김명상의 대표적인 노래는, SBS-TV 주말드라마 ‘모래위의 욕망’ OST〈거기 지금 누구인가〉, 〈사랑도 아픔까지도〉, KBS 2-TV 주말드라마 ‘내 사랑 누굴까’ OST〈널 사랑하니까〉, 〈사랑이 다시 올 때〉와〈그 집 앞〉, 〈나쁜 여자〉, 〈내 임의 사랑은〉, 〈내 한 사람의 이름으로〉, 〈다시 만나도〉, 〈딱보면 알아요〉, 〈미안합니다〉, 〈비가 내리네〉, 〈살아 볼만한 세상〉, 〈인생 역전〉, 〈추억을 그대 삼아〉, 〈합정역 5번 출구〉 등이 있습니다.
–〈난 바람 넌 눈물〉– 신현대 작사·작곡, 신현대·백미현(1988년 아세아레코드사)
1절. 난 바람이라면 넌 눈물인가 봐 / 난 이슬이라면 넌 꽃잎인가 봐
부르지도 마 나의 이름을 이젠 정말 들리지 않아 / 생각지도 마 지난 일들을 돌아 누운
우리 사랑을 / 난 사랑이라면 넌 이별인가 봐 / 난 하늘이라면 넌 구름인가 봐
2절. 부르지도 마 나의 이름을 이젠 정말 들리지 않아 / 생각지도 마 지난 일들을
돌아 누운 우리 사랑을 / 난 사랑이라면 넌 이별인가 봐
난 하늘이라면 넌 구름인가 봐 / 넌 구름인가 봐
〈난 바람 넌 눈물〉신현대·백미현님이 1988년 부른 노래로 아세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가수 백미현님의 데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스플릿 음반에 수록된 곡입니다. 음반에는 A면. 백미현, B면. 인제섭의 노래가 실려 있고 백미현님 곡 가운데 4곡이 신현대가 작사·작곡 했는데,〈난 바람 넌 눈물〉은 두분이 함께 불렀습니다. 음반에서 가장 히트한 곡으로서 백미현님은 연말 각 방송사 가요 시상식에서 ‘신인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1989년에 발매한 ‘백미현 제2집’에도 필자가 좋아하는〈하늘만 보면〉과 함께, 1990년 제3집에는〈눈이 내리면〉,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등과 실렸습니다. 백미현님은 2009년 9월부터 ‘구리장자호수공원 공연장’에서 매월 마지막주 일요일 오후 2시에 음악봉사단체 ‘더 나누리’ 무료공연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과 년 1회 유료 ‘나눔콘서트’ 수익금으로 어려운 가정 중·고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구리시 인창동에서 사시다가 남양주시 다산동으로 이사했는데, 내년 1월엔 또다시 강원도 인제로 떠나신다고 하네요. 내일(화) 밥한끼 먹기로 했어요.(^^)
☞ 위의 네분의 가수는 ‘구리시 홍보대사’로 지난 10일 오후 4시 구리시청 대강당에서 개최된 「2021 송년음악회」에서 재능기부로 코로나-19에 지친 시민들에게 큰 힘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구리시와 연고가 있는 가수는 삼육중학교에 다녔던 ‘보아’, 인창고등학교를 다녔던 ‘린’, YG 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트레져’ 보컬 도영(본명 김동영)은 구리시에서 출생해 토평초등학교·구리중학교·토평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의 형인 배우 공명(본명 김동현)도 같은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필자는 요즘의 젊은 가수들은 잘 몰라서 죄송합니다.(^^)
가수 보아는 1998년 돌다리 소재 〇〇백화점 댄스경연대회에 찬조출연해 15개 기획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이수만 대표의 SM 엔터테인먼트를 선택 연습생을 거쳐 톱가수로 성장했습니다.
구리시 아치울마을에는 유명인들이 거주했거나 지금도 거주하는 분들이 많은데, 역사학자 故 이이화 선생님과 소설가 故 박완서 선생님, 화가 이성자, 판화가 최지숙, 한복디자이너 허영, 가수 조성모, 박진영, 배우 박해미, 혼인설이 있는 현빈·손혜진, 오연서, 탤런트 주현님 등입니다.
다음에는 대전역 개통 117주년 기념 안정애의〈대전 부르스〉등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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