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리더쉽을 공부하자!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가 mb 아바타”이냐고 문재인에게 묻는 안철수의 경직된 얼굴을 말이다. 네가티브가 얼마나 생명력을 깎아 먹고 인간 존엄을 유린하는지를 두 눈 똑똑히 기억한다. 그럼에도 그런 아수라장 같은 데서 살아남는 자가 지도자라는 세간의 인식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는 마치 혹독한 고문에 제풀에 지쳐 쓰러진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고 무경험의 관념론자의 자기 독백일 뿐이다. 아수라를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오류와 과오를 곱씹어보려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오늘 모 신문의 칼럼에서 퀀텀 리더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려운 말이다. 양자물리학적인 리더쉽이라고 이해하자. 대선이라는 중요 정치일정을 보내고 있는데 한가하게 리더쉽 이야기를 하느냐고 타박하지 말아 달라. 세계가 빠른 속도로 과학기술의 사회 속으로 접어들고 있는데 한국정치의 리더쉽은 아직까지 결정론적 진영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와 네가 다르다는 차별론에서 시작하여 선과 악이라는 부족주의 결정관을 따르기 때문이다. 중세 마녀사냥에도 그러했고 친일과 반일 그리고 멸공과 죽창으로 한국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지긋지긋한 한국현대사를 설명하는데 진영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과연 네가 거세 되어야 내가 살 수 있는 것일까? 우리 마음 또한 한곳에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유기체설을 고정되게 관념화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동양 철학에서도 음과 양이 서로 배반되지 않고 서로 의존하고, 서로 대립을 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죽을 때까지 한 마을에서 살아가면서 눈이 많이 온다고 겨울을 없애겠다고, 폭우가 오더라도 여름을 지워버리지는 않는다. 때론 순응하면서 때론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들의 태도와 자세이다.
과학기술은 끊임없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바로 그것을 실감 있게 웅변하고 있다. 감기 바이러스에 순응하기보다 통제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우리는 목전에서 보고 있다. 바이러스와 전쟁에서 승리를 점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냥 감기 바이러스에 순응하는 태도는 더더욱 아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끊임없이 창조하는 인간들의 노력일 뿐이다. 아무튼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유독 정치의 영역에서는 퇴행의 깃발만 나부낀다. 노무현이 죽으니 속이 편한가? 박근혜. 이명박을 장기간 구속하는 게 마음 편한지 묻고 싶다. 멸공한다고 죽창을 든다고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진영만 선명할 뿐이다. 결국은 선과 악만 남을 것이며, 그 누구도 악의 편에 서지 않겠노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쥔다.
21세기의 리더쉽은 퀀텀리더쉽이 되어야 한다는 칼럼리스트의 지적이 백번 옳다. 매 사안마다 좌우를 넘나들고 국민적 합의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리더쉽이 과학적 가치와 더욱 상통한다. 중세적 리더쉽에 더 이상 환호하지 말고 박수도 치는 말자. 이 세계의 주인은 바로 나이고 너이니까 말이다. 나와 네가 서로 의존하면서 혹은 서로 대립하면서 함께 가는 공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미래 담론을 만들어보자꾸나!
오히려 진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윤석열 후보가 아쉽다. 국민이 불러낸 후보가 진영 속으로 빠져 들어가 허우적대는 모습이 안타깝다. 빨리 국민들과 함께 공정과 상식의 부름에 응답하길 바란다. 이재명 후보는 진영과 과학적 가치를 논하기에 너무 함량 미달이지 싶다.
상선약수!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노자의 가르침은 요즘의 과학적 가치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보편적인 것은 과학적이다” 그 말에 새삼 실감한다. 물 같은 안철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불편하고,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고 뭐니뭐니 해도 너와 네가 서로 의존하며 때론 대립하는 과학적 가치를 몸소 실천하고 있지는 않나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카리스마 넘치고 화끈한 리더쉽이 우리의 마음을 오래 동안 지배하고 있다. 이는 지식정보가 한정된 중세봉건시대의 리더쉽이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짜증지대로인데,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조정하고 균형 잡는 양자역학적인 리더쉽이 현대의 리더쉽이고 리더쉽의 최고의 형태란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병든 독일을 유럽 최고로 올려놓은 리더쉽이 바로 진영간 대립을 끝내고 통합한 리더쉽이고 그 뒤를 이어서 이젠 한국이 실천할 차례이다. 안철수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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