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51.〈외나무 다리〉〈사월이 가면〉〈이별〉(2022.02.21)
오늘은 필자가 어부인과 혼인한 지 3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첫사랑이자 끝사랑, 영원한 사랑!
흔히, 결혼식이라고 하는데 결혼은 일본식 표현이고, 우리나라 고유의 표기는 혼인(婚姻)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혼인식에 갈 때에는 축의금 봉투에 꼭 ‘축 혼인(祝 婚姻)’이라 적어서 드립니다.
우수(雨水)가 지난 지 이틀이 되었습니다. ‘우수·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말이 있듯이 눈이 녹아 비나 물이 되고, 날씨가 풀려 봄 기운이 돋아서 초목이 싹트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나흘 후(25일)은 배우 최무룡이 탄생한 지 96주년이 되는 날이고, 1주일 후(28일)은 패티김의 나이 만 84세가 되는 날입니다. 연예계의 전설인 두 가수의 대중가요에 대해서 올리겠습니다.
먼저, 고(故) 최무룡은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배우였고, 그리고 인기곡인 대중가요도 있습니다.
최무룡(崔戊龍) 1928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중앙대 법학과에 재학 중 제1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해 입상하고, 1948년 KBS 제2기 방송연기 연구생(성우)로 연기활동을 시작했으며, 부산 피난시절 최남현, 전옥, 강효실과 인연을 맺고 1954년 영화 ‘탁류’로 데뷔했습니다.
1955년 신상옥 감독의 ‘젊은 그들’에서 첫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최은희와 함께 신상옥 영화의 주연으로 단골로 출연을 했습니다. ‘장마루촌의 이발사’ , ‘꿈은 사라지고’, ‘오발탄’, ‘5인의 해병’ , ‘굳세어라 금순아’ , ‘카츄사’, ‘아들의 심판’, ‘외나무 다리’ , ‘돌아오지 않는 해병’, ‘빨간 마후라’, ‘남과 북’ , ‘특별수사본부’, ‘보통여자’ , ‘자유부인’ 등 주연 배우로 200여 편의 영화를 남겼습니다.
또한 1965년 ‘피 어린 구월산’으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해 ‘나운규의 일생’ ‘애수’ ‘계목’ ‘흑점’ 등의 영화를 제작했으나 실패를 했고, 1970년 ‘지하여자대학’을 끝으로 영화감독을 중단했으나 1983년 ‘이 한 몸 돌이 되어’ 1987년 ‘덫’을 마지막으로 영화 제작을 끝마쳤습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활동과 1999년 보관문화훈장 수상을 했으며, 1999년 하늘의 별이 됐습니다. 아들인 최민수가 아버지 최무룡의 뒤를 이어 영화배우로서 선이 굵은 연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대중가요는, 〈외나무 다리〉, 〈꿈은 사라지고〉, 〈단둘이 가봤으면〉, 〈원일의 노래〉,〈등대불〉, 〈동경 나그네〉, 〈모정〉, 〈심야의 종소리〉, 〈아들의 심판〉, 〈오월의 남산〉, 〈외아들〉 등입니다.
–〈외나무 다리〉– 반야월 작사, 이인권 작곡, 최무룡(1962년 미도파레코드사)
1절.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 고향 /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 다리 / 그리운 내 사랑아
지금은 어디 / 새파란 가슴 속에 간직한 꿈을 / 못잊을 세월 속에 날려 보내리
2절. 어여쁜 눈썹달이 뜨는 내 고향 / 둘이서 속삭이던 외나무 다리 / 헤어진 그날 밤아
추억은 어디 / 싸늘한 별빛 속에 숨은 그 님을 / 괴로운 세월 속에 어이 잊으리
〈외나무 다리〉최무룡이 1962년 부른 영화주제가로 미도파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외나무다리’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입니다. 음반 Side A면. 최무룡 〈외나무다리〉, 안여희 〈꽃파는 아가씨〉, 손인호 〈언젠가 한번은〉, 이해연 〈내가 마지막 본 평양〉, Side B면. 손인호 〈동백꽃 꺾은 죄로〉, 최숙자 〈홍도화〉, 방태원 〈섬진강 편지〉, 송민도 〈내 아내가 최고야〉 등 8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사랑과 만남, 이별의 추억을 ’외나무다리‘라는 상징물에 잘 접목시킨 동명의 영화 주제가를 주연배우 최무룡이 우수 어린 눈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직접 불러 아직까지 국민 애창곡입니다.
영화. 제작 한성영화사, 곽상문 각본, 강대진 감독, 최무룡, 김지미, 김승호, 엄앵란, 허장강, 황정순, 최남현, 김희갑, 방수일, 김동원 등이 출연해 1962년 10월 26일 서울의「국제극장」에서 개봉했으며, 그해 지방의 극장에서 추석 특선 영화로 상영되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두메산골에서 자라난 가난한 의학도(최무룡)은 고학으로 어렵게 공부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지역사회를 위해 살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사라 할지라도 빈손으로 내려가서는 소기의 목적을 다할 수 없었습니다. 돈을 마련하려 애쓰는 그의 사정을 알아 챈 은사이며 애인(김지미)의 아버지 윤박사(김승호)의 도움으로 최무룡과 김지미는 함께 의료기구와 의약품을 가지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 두메산골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그녀는 동네 건달(허장강)에게 겁탈을 당하고, 그와의 사랑이 깨어지자 그녀는 결국 수녀가 되어 말없이 그의 곁을 떠나갑니다. 운명의 장난으로 두 사람은 만나기로 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지 못한 최무룡은 그녀와 만나서 사랑을 불태웠던 추억과 헤어지면서 아쉬워 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방황을 합니다. 이를 눈치 챈 어머니(황정순)는 아들의 아픔을 달래도 봤지만 계속해서 낙담만한 채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아들을 업고서 외나무 다리를 건너 갑니다.」 시골을 계몽하려는 의도가 담긴 영화였습니다. 당시 영화를 보신 분의 회고 “1962년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겨울밤을 눈물로 적시게 한 강대진 감독의 작품 ‘외나무 다리’ 당대 최고의 배우 남주연에 최무룡, 여주연에 김지미. 영화가 끝나고 극장문을 나서는 젊은 여성들의 손에는 훌쩍 훌쩍 눈물을 닦았던 한 장의 손수건이 말해 주듯이 만인의 가슴에 애뜻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시사한 영화로 지금은 먼 옛 추억의 영화로 남아 있지만 최무룡씨가 부른 주제가는 아직도 그때로 돌아가고픈 마음에 한번 쯤 불러보는 노래이다. 어린 시절 대구 남산동 명덕사거리에 대한극장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절찬리에 ‘외나무 다리’ 영화가 상영되었다.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였다 하면 ‘외나무 다리’ 영화로 이야기꽃을 피우니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는 성격에 영화를 꼭 보기는 보아야겠고 집에 자식을 혼자두고 가려니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고, 데리고 가자니 극장표 두장을 사야하니 돈이 아깝고 며칠 장고를 하시더니 어느 날 아침 곱게 화장에 꽃단장을 하시더니 대한극장을 향해 가시더라고요. 어른표 두장을 사서 보무도 당당하게 극장에 들어가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승리자에게서 엿볼 수 있는 성취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훌쩍 훌쩍 우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린 마음에 영화를 보시다가 왜 저리도 슬피 우실까???. 요즘 처가 연속극을 보다가 눈물 글썽대며 우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 모습이 떠 오릅니다.” 남자들도 나이가 들어가면 저절로 그리됩니다.(^^)
우리들이 고향을 찾았을 때 고향 길목에서 만날 수 있는 정겨운 ‘외나무 다리’는 풋풋한 사랑과 갈등, 만남과 이별, 그리움의 장소로 충분한 곳이기에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을 것입니다. 필자가 직장생활을 할 때 상사 한 분이 이 노래를 너무나 좋아하셔서 노래방에 가면 저는 꼭〈외나무 다리〉를 예약해 드렸는데, 지금은 70대 중반이시니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이 노래를 나직하게 부를 경우가 있는데 첫 소절 “복사꽃 능금꽃이…”하면 천리길에 떨어진 고향에서 어릴적 큰집 복숭아밭에서 서리해 먹었을 때가 아련하게 생각나곤 했습니다.
〈외나무 다리〉노랫말을 지은 반야월은 노래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덕이라고 확인해 주었고, 영덕군에서는 2010년 9월 9일 영덕읍 삼각주공원에〈외나무 다리〉노래비와 조형물을 세웠으며, 인근 덕곡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 다리를 놓아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향수를 달래주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되어 올 여름에는 이천 장호원 ‘복숭아 축제’에 꼭 가보고 싶어요.
–〈꿈은 사라지고〉– 김석야 작사, 손석우 작곡, 최무룡(1959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뭉게 구름 피어나듯 사랑이 일고 / 끝없이 퍼져나간 젊은 꿈이
아름다워 /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 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2절. 귀뚜라미 지새 울고 낙엽 흩어지는 가을에 / 아아 꿈은 사라지고 꿈은 사라지고 /
그 옛날 아쉬움에 한없이 웁니다
1958년 9월부터 10월까지 매일 20분간 방송된 HLKA(현 KBS) 라디오 연속극인 ‘꿈은 사라지고’는 김석야(1929년〜2000년 본명 김형근 충남 천안 출생) 극본으로 방송을 타면서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아서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남자 주인공에 최무룡이, 여자 주인공에 문정숙이 맡았습니다. 당시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는 안다성이 KBS 합창단과 함께 불렀지만 영화주제가〈꿈은 사라지고〉는 최무룡이,〈나는 가야지〉는 여주인공 문정숙이 불렀습니다. ‘꿈은 사라지고’는 우리들에게 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꿈이 절실하다는 것을 강조한 드라마였습니다. 극작가 김석야의 연속극 최초인 영화 ‘꿈은 사라지고’에서 주제가를 부른 최무룡은 부드러운 미성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배우 뿐만 아니라 가수로도 주가를 한층 더 올렸고, 문정숙의〈나는 가야지〉도 함께 히트를 해 영화와 주제가가 흥행을 거두면서 당시 영화와 대중가요를 동시에 진행했던 전국의 극장 무대를 휩쓸었습니다. 특히 다정다감한 목소리와 수려한 외모의 영화배우 최무룡은 Singing-Star로 뭇여성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제작 황영빈, 원작 김석야, 각본 김강윤, 감독 노필, 배우 최무룡, 문정숙, 김승호, 엄앵란, 도금봉, 박암, 조해원, 이룡, 정애란, 김신재, 이빈화, 독고성, 장민호, 김동원, 특별출연 임택근 아나운서와 코메디언 곽규석 등이 출연해 1959년 2월 20일 서울의「명보극장」에서 개봉됐습니다. 타이틀 “HLKA 백만 여성청취자를 눈물의 바다로 만든 연속방송극의 이색편” 줄거리는「극동실업 사장(김승호) 비서이자 권투선수 박인철(최무룡)은 한국전쟁 때 부하였던 조명원이 성악가 학생인 애인이 즐겨 부르던〈꿈은 사라지고〉를 하모니카로 자주 부르곤 했는데 그가 전사하자 하모니카와 부하의 애인 사진만 간직한다. 어느날 그녀 송혜련(문정숙)을 만나 마음이 끌린다. 또한 여동생(엄앵란)의 친구이자 사장 딸 미숙(도금봉)은 인철을 사랑한다. 인철은 어느날 혜련이 댄스홀에서 에레나라는 이름으로〈꿈은 사라지고〉를 부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지만 홀로 남겨진 명원의 병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임을 알고는 오해를 풀고, 그녀를 극동실업 비서실에 취직을 시킨다. 사장딸 미숙은 이전무를 시켜 혜련을 괴롭히면서 추근되자 모욕감에 못이긴 혜련은 사표를 쓰고 명원의 어머니마저 생을 마감한다. 이에 격분한 인철은 전무에게 달려가는데, 미숙과 히히덕 거리고 있던 그는 도망을 가다 실족해 사망하고, 인철은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된다. 혜련은 질투와 분노로 함구하고 있던 미숙을 찾아가 설득해 법정에서 인철이 전무를 밀치지 않았다는 미숙의 극적인 증언으로 인철은 풀려난다.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한 인철은 세계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지만 혜련은 절대 흥분하면 안된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병실에서 결승전 중계방송을 보다 흥분하고 혜련은 생을 마감한다. 귀국한 인철은 쓸쓸하기만한 가을 숲을 거닐면서 혜련이 부르던〈꿈은 사라지고〉생각한다.」
당시로서는 다루지 않았던 권투선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서 신선한 충격을 준 영화입니다.
패티김(Patti Kim), 본명 김혜자.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956년 국무총리배 전국 판소리경연대회에서 입상했고, 1959년 미8군무대를 통해 데뷔했습니다. ‘패티’라는 예명은 당시 인기있던 미국 가수 ‘패티 페이지’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며 지은 것으로, 그녀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가수였습니다. 1960년 최초로 일본 공식 초청 ‘NHK-TV 콘서트’ 개최와 1962년 최초 개인 ‘패티김 리사이틀’(종로 피카디리극장), 1963년 한국가수 개인 최초 ‘미국 뉴욕·라스베가스 공연’ 1966년 한국 최초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주연(애랑 역), 1967년 최초 개인 이름 프로그램 TBC-TV ‘PATTI KIM SHOW’ 진행, 1978년 최초로 세종문화회관대극장에서 ‘패티김 리사이틀, 서울의 연가’ 공연, 1983년 한국대중가수 최초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 1985년 예술의 전당에서 ‘제1회 팝스콘서트’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대중가수의 최초 협연, 1989년 한국대중음악인 최초 ‘뉴욕 카네기 홀 콘서트’, 1990년 ‘네스카페 셀렉타 커피 CF 1·2편’ 한국 최초 프랑스, 이탈리아 유럽 현지촬영, 2005년 대중예술인 최초 서울특별시 시상 ‘서울사랑 시민상 수상’, 2008년 100년 대중가요사 최초 50주년 공연가수와 대중가수 최초로 ‘세계를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동안 패티김이 취입한 주요 대중가요는 〈서울의 찬가〉, 〈서울의 모정〉, 〈이별〉, 〈초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사랑하는 마리아〉, 〈못잊어〉, 〈그대없이는 못살아〉, 〈살짜기 옵서예〉, 〈태양이 뜨거울 때〉,. 〈연인의 길〉, 〈가시나무새〉, 〈사월이 가면〉, 〈하와이 연정〉,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등이 있고, 주요 수상은 1996년 화관문화훈장(5등급), 2013년 은관문화훈장(2등급)이 있습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작곡가와 가수 커플은 길옥윤과 패티김이 아닐까 합니다. 1966년〈사월이 가면〉으로사랑을 가꾸고〈사랑의 세레나데〉로 혼인하고, 1972년〈이별〉로 헤어져, 1974년〈그대 없이는 못살아〉로 영원한 음악의 동반자가 되었으니 정말로 부러운 두 분입니다.
–〈사월이 가면〉– 길옥윤 작사, 길옥윤 편곡, 패티김(1966년 지구레코드사)
1절. 눈을 감으면 보이는 얼굴 잠이 들면은 꿈속의 사랑 / 사월이 가면 떠나갈 사람
오월이 오면 울어야 할 사람 /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마라
날이 갈수록 깊이 정들고 헤어 보면은 애절도 해라
2절.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마라 / 사월이 가면 떠나야 할 그 사람
오월이 오면 울어야 할 사람
1966년 패티김은 박춘석과 앨범을 만들기 위해 미국에서 귀국했고, 길옥윤은 어머니의 병환때문에 일본에서 귀국해 각종 매체와 함께 인터뷰할 기회가 많았는데, 4월이면 패티김이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알게된 길옥윤은 패티김에게 전화를 걸어 노래를 선물한다며 전화기를 통해서〈사월이 오면〉을 들려줍니다. 봄비가 내리는 날 전화기를 타고 흐르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 실려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에 휘감기고 패티김이 먼저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어느날 전방부대 위문공연을 마친 후 군관계자와 담소를 나누다 버스를 놓치고 다음 버스를 탔는데 앞차가 전복돼 사상자가 나오는 대형사고가 나자 운명이라고 느낀 두 분은 6월 약혼을 하고 12월 워커힐호텔에서 혼인식을 올립니다. 답례품은 이 노래가 수록된 500장의 한정판 앨범.
신혼 여행 대신 파월장병 위문공연을 떠났을 정도로 잉꼬부부였으며 음악적 동지가 됐습니다.
길옥윤·패티김 혼인식 인사장에 실린 인사말씀, “지난 6월 7일 약혼을 피력한 후 오늘 결혼식에 여러분을 모시게 된 것을 무상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오늘날까지 저희들을 아껴주신 여러 어른들과 친지들에게 삼가 감사드립니다. 저희들 둘이 마음과 힘을 합하여 여러분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새삼 다짐합니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지도와 편달을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1966년 12월 10일 (토요일) 패티김/길옥윤”〈사월이 가면〉길옥윤 작사·작곡 패티김 노래〈사랑의 세레나데〉길옥윤 작사·작곡 패티김 노래. 지구레코드사 비매품
영화 ‘4월이 가면’은 정진우 감독, 배우 문희, 성훈, 안은숙, 양훈, 이빈화, 양훈, 김칠성 등이 출연해 1967년 5월 10일 서울의「아카데미극장」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줄거리는,「꽃바람이 부는 삼월, 한국전쟁에 참전한 프랑스인 듀퐁에게 입양돼 프랑스에서 자란 문(문희)은 약혼을 한달 앞두고 한국으로 도피 여행을 온다. 문은 공항에서 우연히 프랑스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성훈(성훈)과 마주친다. 가면무도회에서 다시 마주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문과 성훈은 함께 문의 옛 고향을 찾아가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러나 듀퐁 아들과의 약혼을 거부할 수 없는 문은 4월이 되면 다시 파리로 떠나가야 한다. 또 성훈에게 헌신적인 혜경(안은숙)의 존재가 문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문과 성훈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다가올 이별 생각에 한숨 짓는다. 그리고 4월의 첫날, 문은 성훈을 뒤에 남겨두고 프랑스로 떠난다.」
원곡은 1938년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콘스탄틴에서 스페인 출신 아버지와 프랑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샹송가수 앙리꼬 마샤스(Enrico Macias)의 1964년〈L’Amour C’est Pour Rien〉(사랑엔 이유가 없어요)로, 1968년 유주용〈사랑하는 마음〉은 이 곡의 번안곡입니다.
–〈L’amour, C’est Pour Rien〉– Enrico Macias(1964년)
1절. Comme une salamandre l’amour est merveilleux / Et renait de ses cendres comme
l’oiseau de feu / Nul ne peut le contraindre Pour lui donner la vie / Et rien ne peut
l’eteindre Sinon l’eau de l’oubli / L’amour, c’est pour rien Tu ne peux pas le vendre /
L’amour, c’est pour rien Tu ne peux l’acheter / Quand ton corps se reveille Tu te mets
a trembler / Mais si ton coeur s’eveille Tu te mets a rever / Tu reves d’un echange
avec un autre aveu / Car ces frissons etranges Ne vivent que par deux / L’amour, c’est
pour rien Tu ne peux pas le vendre / L’amour, c’est pour rien Tu ne peux l’acheter
2절. L’amour c’est l’esperance Sans raison et sans loi / L’amour comme la chance Ne se
merite pas / Il y a sur terre un etre Qui t’aime a la folie / Sans meme te reconnaitre
Pret a donner sa vie / L’amour c’est pour rien Tu ne peux pas le prendre / L’amour
c’est pour rien Mais tu peux le donner / L’amour c’est pour rien L’amour c’est pour rien
-〈이별〉- 길옥윤 작사·작곡, 패티김(1973년 신세계레코드사)
1절.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거야
/ 때로는 보고파 지겠지 둥근달을 쳐다보면은 / 그 날밤 그 언약을 생각하면서 지난 날을
후회 할거야 / 산을 넘고 멀리멀리 헤어졌건만 바다 건너 두 마음은 떨어졌지만 /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 잊을 수는 없을꺼야
2절. 산을 넘고 멀리멀리 헤어졌건만 바다건너 두 마음은 떨어졌지만 /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거야 / 잊을 수는 없을거야
1966년〈사월이 가면〉을 청혼곡으로 패티김과 혼인을 한 후 5년이 지난 1972년에 길옥윤은
〈이별〉과〈사랑은 영원히〉를 작사·작곡해서 패티김에게 건네 주면서 혼인생활을 마칩니다.
1994년 6월 19일 SBS-TV는 등촌동 공개홀에서 길옥윤의 49년 음악 인생의 마지막 무대인
‘이별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길옥윤의 음악적 동반자였던 패티김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차고
기름진 시간을 함께 했다. 헤어진 건 몸이었지 마음은 아니었다.”며〈사랑은 영원히〉를 청해 부른 후 마지막 곡으로〈이별〉을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투병 중인 길옥윤은 휠체어에 앉아서 만감이 교차한 듯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노래를 부르기 전 패티김은 그의 쾌유를 바라는 말을 합니다. “사실 저는 이별이라는 콘서트가 맘에 안들어요. 곡명 때문에요.” 길옥윤을 향해서 “빨리 회복 하십시오. 그 뭐 병 같은 걸 앓고 그러십니까? 좋은 곡을 아직도 많이 작곡하셔야 됩니다.” 면서도〈이별〉을 부르는 패티김의 모습이 어딘지 북받쳐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씩씩하게 1절을 부르고 “길선생님! 우리 모든 팬들이, 가수들이, 후배들이, 동료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길선생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노래를 듣고 있던 착잡한 길옥윤의 모습이 나오고 이윽고 눈물이 글썽입니다.) 빨리 회복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저희들 앞에 다시 서 주십시오.” 2절을 부르는 패티김 서서히 감정이 북받치고 울음을 꾹 참으며 노래를 이어갔고, 노래를 끝내는 순간 눈물을 글썽이면서 돌아섭니다. 길옥윤이 휠체어를 타고 도움을 받으며 무대위로 올라오자 패티김과 현미 등 많은 가수들이 꽃다발을 주면서 반깁니다. 그리고 길옥윤의 인사말 “정말 고맙습니다. 아까 내 친구인 김재순이 얘기 했듯이 이별이 아니고 다음에 컴백하기 위한 예고 콘서트라고 한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기다려 주십시오. 곧 일어나서 색소폰을 불고 노래를 부르고…” 콘서트가 모두 끝난 후 무대를 내려온 패티김은 분장실에서 소리내 울었습니다. 이듬해 3월 22일, 5일장으로 치뤄진 길옥윤의 영결식에서 패티김은 차마 끝까지 부를 수 없을 것 같다면서〈이별〉대신〈서울의 찬가〉를 울먹이면서 불렀습니다.
-〈그대 없이는 못 살아〉- 길옥윤 작사·작곡, 패티김(1974년 신세계레코드사)
1절. 좋아해 좋아해 당신을 좋아해 / 저 하늘에 태양이 돌고있는 한 당신을 좋아해 /
좋아해 좋아해 당신을 좋아해 /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한 당신을 좋아해
그대 없이는 못살아 나 혼자서는 못살아 / 헤어져서는 못살아 떠나가면 못살아
2절. 사모해 사모해 당신을 사모해 /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당신을 사모해
사모해 사모해 당신을 사모해 / 장미꽃이 비오기를 기다리듯이 당신을 사모해
그대 없이는 못살아 나 혼자서는 못살아 / 헤어져서는 못살아 떠나가면 못살아
3절 사랑해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 / 이 생명 이 마음을 다 바치고 당신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 / 영원히 영원히 변함이 없이 당신을 사랑해
그대 없이는 못살아 나 혼자서는 못살아 / 헤어져서는 못살아 떠나가면 못살아
그대 없이는 못살아 나 혼자서는 못살아 / 헤어져서는 못살아 떠나가면 못살아
나 혼자선 못살아 떠나가면 못살아 / 하하하하
혼인식 때 빠질 수 없는 축가(祝歌), 55년 전에 패티김이 부른〈그대 없이는 못 살아〉가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길옥윤과 패티김은 신혼 시절에도 명곡을 남겼는데, 그 중에 한 곡이 바로 이 노래 〈그대 없이는 못 살아〉, 그리고 1969년〈사랑하는 마리아〉, 1970년〈사랑이란 두 글자〉, 〈사랑하는 당신이〉였습니다. 패티김은 1992년 어느 한 방송에서 “길옥윤씨와 전 우리가 이혼을 하더라도 계속해서 우리들의 음악 생활은 계속하자고 했습니다. 5년 동안 발표한 곡이 너무나도 많았고 또한 대 작품이 많았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정말 기가 막인 팀이었는데,
그렇지만 부부 생활이라는 건 그렇지가 않더라고요.”라며 길옥윤과의 이혼 심경을 밝혔습니다.
우리시대 최고의 디바인 패티김은 2012년 은퇴 기념으로 전국 순회 콘서트를 진행했고, 또한 종합편성채널 JTBC 방송에서는 가요인생 54년의 여정을 총정리한 ‘패티김 이별콘서트’를 9월 부터 2013년 1월까지 4개월 동안 총 16회에 걸쳐 JTBC방송 1주년 기념 특별기획으로 고별 무대를 열었습니다. JTBC는 전신인 1966년 당시 TBC에서 우리나라 방송사상 최초로 패티김 이라는 개인 이름으로 진행한 일일 음악쇼 ‘패티김 쇼’를 방송한 인연이 있었던 방송국입니다. 길옥윤과 패티김 원없이 사랑했고, 이별도 해 봤지만 영원한 대중음악계의 부부별이었습니다.
다음엔 독자투고 1주년 기념으로 ‘2015 남이섬 이미자 선생님 특별 전시회’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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