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60. 영원한 가객(歌客) 배호〈돌아가는 삼각지〉(2022.04.25.)
모레는(27일)은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진 지 54년째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1874년〜1926년)이 붕어하셨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소설가 이상화(1901년〜1943년),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저자 현진건(1900년〜1943년)이 작고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독자칼럼은 요절한 대중가수 중 한 분인 영원한 가객(歌客) 배호(裵湖, 1942년〜1971년)의 노래 5곡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본관은 경북 성주, 본명은 배만금(裵晩今)에서 중1때 배신웅(裵信雄)으로 개명했고, 아버지가 광복군인 관계로 중국 산둥성 지난에서 출생했으며, 해방후 귀국해 인천, 서울, 부산 등지에서 살다 1956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악단장인 외삼촌 김광수를 찾아가서 음악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63년 MBC 문화방송 초대 악단장인 김광빈 악단과 김인배 악단에서 예명을 ‘배호’로 작명해 드럼을 치며 가수로 활동했고, 1964년 12인조 밴드 ‘배호와 그 악단’을 결성해서 서울 낙원동 ‘프린스 카바레’ 등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1966년 신장염에 걸렸고, 1971년 10월 23일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 집으로 가다 비를 맞고 감기에 걸려 신장염이 재발해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11월 7일 29살의 젊은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던 배호는 1981년 실시된 MBC 특집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에 선정되었고, 2005년 광복 60주년 KBS 가요무대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가수 1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팔촌동생이며〈돌아가는 삼각지〉를 시작으로 조카인 배호와 함께 음악활동을 한 작곡가 배상태(1939년 성주 출생)은 “배호의 목소리는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목소리다”라고 추억했으며, 작곡가 박시춘(1913년〜1996년)님도 배호를 가리켜서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가수”라고 극찬을 한바 있습니다.
배호는 1963년〈굿바이〉,〈사랑의 화살〉로 데뷔 , 1964년〈두메산골〉1966년〈대청도 아가씨〉, 〈안녕〉, 〈황금의 눈〉, 1967년 〈누가 울어〉, 〈돌아가는 삼각지〉, 〈비 내리는 왕십리길〉, 〈비오는 남산〉, 〈안개낀 장충단공원〉,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람〉, 1968년〈십자로〉, 〈해당화 피는 마을〉, 〈황토 십리길〉, 1969년〈능금빛 순정〉, 〈당신〉, 〈만나면 괴로워〉, 1970년 〈막차로 떠난 여자〉, 〈비 내리는 명동〉, 〈비 내리는 밤길〉, 〈아빠 품에〉, 〈역에 선 가로등〉, 〈오늘은 고백한다〉, 〈태양은 가득히〉, 〈태양의 저편〉, 〈파란 낙엽〉, 1971년 〈내 고향 남촌〉, 〈마지막 잎새〉, 〈비내리는 경부선〉, 〈영시의 이별〉, 〈조용한 이별〉 등 300여곡의 노래를 남겼습니다.
1971년 11월 11일 서울 예총회관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소복을 입은 젊은 여인들이 수백미터까지 늘어섰다고 합니다. 양주시 장흥 신세계공원묘지에 어머니, 누이와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전국에 설치된 배호 노래비는 서울 용산구〈돌아가는 삼각지〉,경기 양주시〈두메산골〉, 경북 경주시〈마지막 잎새〉, 강원 강릉시〈파도〉, 인천 〈비 내리는 인천항 부두〉 등 5개가 있습니다.
또한 2000년 11월 용산구에 ‘배호길’과 2001년 12월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이 결성됐고, 1997년부터 서울 중구를 중심으로 장충단공원, 구민회관 등에서 ‘배호 가요제’가 열리고 있으며,
2007년 5월 21일에는 인천 월미도 야외무대에서도 ‘제1회 인천 배호가요제’가 개최됐습니다.
대중예술평론가 박성서님은 우리나라 대중가요에는 세가지 창법이 있다고 했는데, 첫번째가 ‘남인수 창법’ 두 번째가 ‘이미자 창법’ 그리고 세 번째가 ‘배호 창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배호는 가요황제 남인수와 가요여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선생님과 같은 반열에 있습니다.
배호는 가수 하춘화를 아주 귀여워하고 예쁘했다 합니다. 이미자 선생님과도 아주 절친이어서
이미자 선생님은 1974년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석양〉을 발표해 배호를 그리워했습니다.
–〈돌아가는 삼각지〉– 이인선 작사, 배상태 작곡, 배호(1967년 아세아레코드사)
1절.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 하며 / 비에 젖어
한숨 짖는 외로운 사나이가 /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가는 삼각지
2절. 삼각지 로타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 하며 / 눈물 젖어
불러 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 남 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1967년 2월 아세아레코드사에서 발표한〈돌아가는 삼각지〉는 배호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대표적인 곡이었지만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작곡자 배상태는 노량진에서 전차를 타고 충무로까지 출퇴근하면서 ‘삼각지’라는 지명에 흥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비가 내리는 어느날, 작사가 이인선은 삼각지에서 연인과 이별한 사내가 홀로 쓸쓸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노랫말을 만든〈돌아가는 삼각지〉를 무명작곡가 배상태가 1963년 곡을 완성해 노래를 불러줄 가수를 찾아 다녔지만 3년동안 가수를 찾지 못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 남일해는 바쁜 스케줄 때문에 연습만 몇 번을 했고, 금호동은 “이런 구닥다리 노래를 왜 부르느냐”며 거절했으며, 잘나가던 신인 가수 남진도 취입을 못해 결국 무명 가수인 김호성이 처음 녹음했지만 음반은 제작되지 못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배상태는 천지카바레에서 노래하던 배호를 떠올리면서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청량리 성바오로병원 뒷편 허름한 사글셋방을 찾아가 악보를 건넸으나 거동조차 힘들었던 배호는 처음에는 사양했다가 쓸쓸한 노랫말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낀 뒤에 마음을 바꿔 병상에서 취입을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이 없자 건강이 회복된 후에 다시 녹음해 발표했기 때문에 초판과 재판 두가지 버전이 있는 것입니다.
음반 초판에서는 사진이 흑백으로 장식됐지만, 재판에선 중절모를 근사하게 쓴 컬러 사진으로 바꿨습니다. 재취입한 노래는 4개월 후 KBS 대구방송 가요차트 8위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했고, 5개월동안 정상을 차지하였습니다. 불멸의 가수 배호의 독특한 저음의 매력과 정열적인 창법이 곡과 어우러져 대중들을 매혹시키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일약 배상태를 인기 작곡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노래가 한참 인기 절정에 이를 무렵 삼각지로타리에 입체교차로가 생겼다고도 합니다. 〈돌아가는 삼각지〉노래비는 1971년 배호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신세계공원묘원과 2001년 서울 용산의 삼각지로타리에 건립되었습니다.
영화 ‘돌아가는 삼각지’는 1970년 12월 4일 서울의 명동「코리아극장」과 충무로「서울극장」청량리「동일극장」그리고 12월 5일 서소문「뉴서울극장」종로5가「동대문극장」에서 동시에 개봉된 박종호 감독의 영화로 배우 문희, 장동휘, 김희라, 최길호, 추송웅, 김신재, 박동용, 손전 등이 출연한 영화의 줄거리는,「마음씨 착한 소녀인 혜숙(문희)는 고아인 민수(김희라)를 좋아한다. 하지만 혜숙의 부모는 그들의 만남을 극심히 반대하자 혜숙과 민수는 10년 후에 서로 성공한 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그로부터 10년 후, 민수는 혜숙의 기대를 저버리고 깡패로 전락하고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민수는 혜숙만은 잊지 못해 하고 있었다. 이에 혜숙은 민수에게 착한 사람이 되어줄 것을 눈물로써 호소한다. 한편 그동안에도 민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던 형사주임(장동휘)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면서 마침내 민수는 악의 소굴에서 발을 씻고 진실하게 살아가리라고 다짐하기에 이른다.」
–〈안개낀 장충단공원〉– 최치수 작사, 배상태 작곡, 배호(1967년 아세아레코드사)
1절. 안개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
지난 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렸이 남은 이 글씨 / 다시한번 어루만지며 떠나가는 장충단공원
2절.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만 있을까 /
가버린 그 사람의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 있는데 / 외로움을 달래가면서 떠나가는 장충단공원
1967년 배호의〈돌아가는 삼각지〉가 공전의 히트를 하자 진흙 속에서 진주를 캐낸 아세아레코드사 최치수 사장과 작곡가 배상태는 후속곡으로〈안개낀 장충단공원〉을 만들어서 작곡가 정민섭의 편곡을 거친 배상태는 7월 22일 MR을 녹음해 녹음기를 들고 청량리 성바오로병원에 입원해 있던 배호를 찾아갔습니다 . 병원에선 병실에서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 한소절 한소절 힘겹게 연습을 했습니다. 마침내 1절과 2절을 완창하자 병원에 있던 환자들은 감탄의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이에 배호는 차츰 몸이 회복이 되어가자 배상태에게 전화를 해 “형, 녹음하러 가겠습니다.”고 했습니다. 배상태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서 병원으로 가 배호를 태우고 장충동에 있던 아세아레코드사의 녹음실로 직행하여 녹음을 완료하였습니다. 그 해 8월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임을 두고 떠난 목포를 그리워하는 노래〈기타에 노래 싣고〉와 사랑을 찾아 유랑하는 사내의 서글픈 심정을 담은 노래〈사랑 찾어 천리길〉, 어린 나이에 수양대군에 의해 궁궐을 나와 한강을 거슬러 첩첩산중인 강원도 영월땅으로 유배를 떠나는 단종의 비애를 다룬 역사물〈영월의 애가〉와 함께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안개낀 장충단공원〉원곡은 1967년 8월 8일 녹음했으며, 재취입곡은 1967년 10월 8일 녹음을 하였다고 합니다.
영화 ‘안개낀 장충단공원’은 1971년 서울의「코리아극장」「뉴서울극장」「한일극장」「동일극장」에서 동시 개봉한 영화로 감독 남한, 배우 최무룡, 김창숙, 문오장, 최성희, 사미자, 최불암 등이 출연한 멜로와 액션이 적절히 배합된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진우(최무룡)와 우미(김창숙)는 가난 때문에 약식으로 혼인을 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후 진우가 월남으로 파병되어 떠나자 우미는 고아원 친구 문옥의 집으로 가서 사는데 어느날 문옥의 남편 고전무에게 겁탈을 당하고 만다. 이에 우미는 자신을 자포자기해 Bar걸이 되어 좌절과 자학의 생활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진우의 귀국 소식을 듣고 번민하던 우미는 자신의 애인을 위해 강도 행각을 한 탁과 만나서 그에게 매달리고자 한다. 그러나 탁은 감옥에 가게되고 귀국한 진우는 고생 끝에 탁을 만나 사정을 듣고는 우미를 찾아가 원망하고 멸시하나 그래도 그녀를 사랑한다. 자신에게서 떠나려는 우미를 억지로 데려와 자신들이 꿈꾸던 집을 보여주나 우미는 진우가 바라는 여자가 되어 살겠다고 하며 그의 곁을 떠나간다.」 주제가〈안개낀 장충단공원〉은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매혹적으로 흘러나옵니다.
☞ 장충단공원(奬忠壇公園)은 서울 중구 장충동에 있는 공원으로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 때 순국한 충신인 내부대신 이경직과 연대장 홍계훈을 비롯한 호위 장졸 열사들을 제사(祭祀)하기 위한 목적으로 1900년 11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이들의 위패를 모신 ‘장충단’ 사당을 세워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다가 1910년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습니다. 그러다 1919년 장충단공원으로 격하되었다가 1984년 9월 22일, 건설부고시 제 374호 근린공원이 되어서 현재는 남산공원의 일부로 흡수·합병되었습니다. 지금 이곳 장충단 공원에는 ‘광장’과 ‘놀이터’, ‘분수대’ 등 공원시설과 ‘석호정’, ‘장충단 비석’, ‘이준열사 동상’, ‘사명대사 동상’ 등이 설치돼 있습니다.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 전우 작사, 나규호 작곡, 배호(1966년 뉴스타레코드사)
1절. 사랑이라면 하지 말 것을 / 처음 그 순간 만나던 날부터 / 괴로운 시련 그칠 줄 몰라 /
가슴 깊은 곳에 참았던 눈물이 / 야윈 두 뺨에 흘러 내릴 때 /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람
2절. 괴로운 시련 그칠 줄 몰라 / 가슴 깊은 곳에 참았던 눈물이 / 야윈 두 뺨에 흘러내릴 때 /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
배호가 1967년〈돌아가는 삼각지〉작곡가 배상태를 만나기 전에 작사가 전우와 작곡가 나규호 콤비가 있었습니다. 나규호(1938년〜2011년 본명 나수성)의 고향은 함경북도로 1961년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했으며, 1964년 MBC PD로 입사 ‘가요 산맥’, ‘사랑의 화원’ 을 연출했고, ‘톱 싱거 대회’, ‘10대 가수쇼’, ‘MBC 대학가요제 1~3회’, ‘MBC 국제 가요제’ 등 주로 음악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출한 음악전문 PD로 근무하다 MBC 성우인 부인 이정자님과 1980년 미국 LA로 이민을 갔습니다.
나규호가 대학을 졸업하고 5년 정도 지났을 무렵 당시 유명 작사가 전우(1936년〜1978년 본명 전승우)는 대중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그에게 작곡을 해 보라고 끈질기게 권유 하자 나규호는 최초로 가요곡을 만들어 전우에게 노랫말을 붙여 달라 요청해서 탄생한 곡이〈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입니다. 그 후 배호, 전우, 나규호 콤비는〈안녕〉, 〈누가 울어〉, 〈당신〉, 〈다시 올 그날에는〉 등 꾸준하게 배호의 마지막까지 활발하게 함께한 동료 가요인이었습니다.
영화 ‘안개속에 가버린 사람’은 1968년 변장호 감독, 배우 김지미, 오영일, 정민, 태현실 주연의 영화로 제작돼 1969년 2월 6일 서울의「서울극장」「동일극장」「용산극장」「코리아극장」「동대문극장」「뉴서울극장」에서 동시에 개봉된 영화로 줄거리는,「정조를 유린당한 여주인공인 나영(김지미)가 10년의 세월이 흐른후, 정조를 유린한 중년남자 부현(정민)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간다. 그녀는 부현의 아들 강진(오영일)을 유혹해 약혼자(태현실)과 파혼에까지 이르게 하면서 드디어 나영의 정체가 밝혀지고, 이에 자책감을 느끼고 강진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부현도 죽음에 이르자 나영은 미련도 후회도 없이 집을 떠나간다.」 당시에 흔한 통속적인 멜로영화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주제가는 빅히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5월 15일〜26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배호 40주기를 맞아 뮤지컬 ‘천변카바레-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 배호’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줄거리는「두메산골 출신 춘식은 서울의 공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배호가 출연한다는 천변카바레에 놀러 간다. 무대에 눈을 떼지 못하던 춘식은 얼떨결에 ‘촬스’란 가명을 갖게 되었고, 그곳에서 웨이터 생활을 시작한다. 동경하던 배호와 밤무대 가수 미미를 만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지만, 배호는 병에 걸려 일찍 생을 마감하고 미미는 조지를 따라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실망에 빠져있는 춘식에게 들어온 가짜 배호 행세로 그는 ‘짝퉁 배호’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당신〉– 전우 작사, 나규호 작곡, 배호(1969년 신세기레코드사)
1절. 보내야 할 당신 마음 괴롭더라도 / 가야만 할 당신 미련 남기지 말고 / 맺지 못할 사랑인
줄을 알면서도 사랑한 것이 / 싸늘한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의 상처 되어 / 다시는 못올
머나 먼 길을 떠나야 할 당신
2절. 루루루 루루 뚜루루루 루루루 뚜루루 뚜루루 뚜루루 루루루 / 맺지 못할 사랑인 줄을
알면서도 사랑한 것이 / 싸늘한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의 상처 되어 / 다시는 못올 머나 먼
길을 떠나야 할 당신
1968년 조선일보 인기 연재소설이었던 전병순(1929년〜2005년) 원작의 ‘또 하나의 고독’을 이성구 감독이 ‘당신’이라는 제목으로 제작한 영화의 주제가로 만든 곡이 배호의〈당신〉입니다.
1969년 2월 16일 설날 특선으로 서울의「국도극장」에서 개봉해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 대성공한 영화입니다. 주연배우로 신영균, 윤정희, 문정숙이 출연했고 김창숙, 사미자, 강부자, 김신재, 이일웅과 아역 전상철·이지연 등이 출연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유부남인 영재(신영균)은 여자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수진(윤정희)를 사랑하고 있고, 수진 역시 영재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은 ‘불륜’이라는 사회의 눈초리를 두려워하면서 지낸다. 그러던 어느날 영재의 처(문정숙)이 둘의 사이를 눈치채자 수진은 영재의 가정을 위해 미련 없이 영재와 이별한다.」 영화는 1960년대 당시 유행한 전형적인 멜로영화였지만 세련되고, 감각적인 연출로 멜로영화의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수작으로 평가되었다고 합니다. 영화가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고, 홍콩, 일본, 말레이시아 등에 수출됐습니다. 또한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수상과 제15회 아시아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제13회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출품했던 영화였습니다. 덩달아 영화주제가〈당신〉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영시의 이별〉– 이철수 작사, 배상태 작곡, 배호(1971년 지구레코드사)
1절. 네온 불이 쓸쓸하게 꺼져가는 삼거리 / 이별 앞에 너와 나는 한없이 울었다 / 추억만
남겨 놓은 젊은 날의 불장난 / 원점으로 돌아가는 영시처럼 사랑아 안녕
2절. 밤안개가 자욱한 길 깊어가는 이 한밤 / 너와 나의 주고 받는 인사는 슬펐다 / 울기도
안타까운 잊어야 할 아쉬움 / 원점으로 돌아가는 영시처럼 사랑아 안녕
〈영시의 이별〉은 배호가 1971년 11월 7일 하늘의 별이되어 떠난지 1주일이 지난 11월 15일 발매된 배호의 마지막 앨범 ‘영시의 이별’ 타이틀곡으로 Side A면에〈마지막 잎새〉, 〈찾아온 서울거리〉, 〈향수〉, 〈울기는 왜 울어〉와 함께 실려있습니다.
이별에 대한 절절한 노랫말과 멜로디, 배호 특유의 호소력 있는 중저음 목소리가 아주 잘 표현된 곡입니다. 29세로 요절한 비운의 가수 배호가 부른 마지막 곡으로 더욱 애정이 가는 곡입니다. 그러나〈영시의 이별〉은 발매가 되자마자 ‘영시의 이별은 통행금지 위반이며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팬들과의 헤어짐을 직감한 배호는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준 팬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합니다.
“팬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러나 이젠 틀린것 같습니다.” 21살인 1963년〈굿바이〉로 첫 앨범 녹음을 했고, 29살인 1971년〈0시의 이별〉, 〈마지막 잎새〉를 마지막 앨범에 녹음한 배호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이별의 냄새가 묻어나는 곡들이 유난히도 많습니다.
다음에는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선생님의 영화주제가〈갯마을〉등에 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