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61. 이미자 선생님 영화주제가〈갯마을〉(2022.05.02.)
다가오는 5월 10일은 대한민국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일입니다. 국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선진 대한민국이 되는 주춧돌을 놓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은 농협에서 오리고기 소비 촉진을 장려하기 위해 지정한 ‘오리데이’이고, 농촌진흥청에서 오이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향기 좋고, 몸에 좋은 오이 먹는 날로 정한 ‘오이데이’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이 있는 가정의 달 행복하세요.
이미자 선생님은 우리나라 대중가요계의 ‘엘레지의 여왕’이시고, ‘영화·연속극 주제가의 여왕’이기도 하십니다. 1962년 영화 ‘갈매기 우는 항구’에서의 주제가〈몸조심 하세요〉를 시작으로 1963년 ‘미녀와 도적’의〈그리운 마음〉,〈이토록 못잊어서〉‘양자강’의〈기나긴 양자강〉,〈백년한〉‘아내의 심판’의〈어디로 향하리까〉‘행복한 고독’의〈잘 있거라 나는 간다〉,〈축자의 노래〉‘식모’의〈햇빛 없는 그림자〉1964년 ‘모녀기타’의〈가버린 사랑아〉,〈그대를 믿었기에〉,〈동백아가씨〉,〈벽오동 심은 뜻은〉,〈사랑이 메아리치면〉‘도심의 향가’의〈서러운 서울〉,〈어머니 울지마세요〉
‘딸의 훈장’의〈저 하늘 끝까지〉와〈황포돛대〉1965년〈가짜 여대생〉,〈갯마을〉,〈나룻터 처녀〉,〈두아빠〉,〈뒷골목 아가씨〉〈모녀비곡〉,〈바람아 말하여다오〉,〈밤에 핀 해바라기〉,〈부부전쟁〉,〈산천도 울었다〉,〈살아있는 가로수〉,〈성난 독수리〉,〈세엄마〉,〈숙부인〉‘들국화’의〈슬픔은 어린 가슴에〉,〈아름다운 눈동자〉‘아빠 돌아와요’의〈엄마의 노래〉와〈아빠 돌아와요〉,〈여자이기 때문에〉‘여정’의〈여정〉과〈여정에 첫눈이 내릴 때〉,〈영화마마〉〈왕과 상노〉,〈외동딸〉,〈울면서 한 세상〉‘열풍’의〈울어라 열풍아〉,〈저 강은 알고있다〉,〈정동 대감〉,〈제3의 운명〉,〈출가외인〉,〈홍콩의 왼손잡이〉1966년〈그대 옆에 가련다〉‘0번 상해돌파’의〈내 이름은 린다이〉와〈님 떠난 군산항〉,〈맨발의 연인〉,〈명월관 아씨〉,〈민검사와 여선생〉,〈밤길〉,〈빙점〉,〈섬색시〉,〈성황당 고갯길〉,〈소문난 여자〉,〈울며헤진 염천교〉,〈여자의 낮과 밤〉‘이별의 강’의〈월선의 노래〉‘순애’의〈이별의 순애〉,〈잊을 수없는 연인〉,〈절망은 없다〉,〈지평선은 말이없다〉,〈평양 기생〉,〈한많은 대동강〉1967년〈갈망〉,〈강명화〉,〈그리움은 가슴마다〉,〈두견새 우는 사연〉,〈미워도 다시 한번〉,〈밀월〉,〈섬마을 선생님〉,〈수진의 노래〉,〈순정산하〉,〈어느 여배우의 고백〉,〈엘리지의 여왕〉,〈열정〉,〈울지도 못합니다〉‘남매’의〈은아의 노래〉,〈임금님의 첫사랑〉,〈청사초롱〉,〈칠부열녀〉1968년 ‘청등홍등’의〈날두고 가시긴 가요〉‘사랑아 나는 통곡한다’의〈망울진 내사랑〉,〈방랑대군〉‘난풍’의〈비련2〉,〈사랑했는데〉,〈산울림 칠때마다〉,〈상감마마 미워요〉,〈서울이여 안녕〉‘아네모네 마담’의〈아네모네〉‘하얀까마귀’의〈애수의 눈동자〉,〈여자의 일생〉,〈자주댕기〉‘흑화’의〈첫눈 내린 거리〉,〈태자바위〉‘고안’의〈행복하세요〉,〈현해탄 연락선〉,〈화초기생〉,〈황혼의 부르스〉1969년 ‘비 나리는 고모령’의〈고모령을 넘을 때〉,〈논개〉,〈떠나도 마음만은〉‘여선장’의〈사랑을 않으리〉‘아빠품에’의〈엄마 그리워〉,〈여자 하숙생〉,〈요화 장록수〉,〈첫날밤 갑자기〉,〈한번준 마음인데〉,〈황진이의 첫사랑〉,〈흑산도아가씨〉1970년〈기러기 아빠〉,〈남 몰래 흘린 눈물〉,〈대답해 주세요〉‘비에 젖은 두 여인’의〈비에 젖은 여인〉,〈아씨〉,〈지하여자대학〉,〈천사여 옷을 입어라〉‘홍콩의 애꾸눈’의〈타향의 별〉1971년〈동백꽃 피고 지고〉‘홍콩 부르스’의〈리리의 노래〉,〈못 잊을 당신〉,〈밤은 외로워〉‘홍콩서 온 철인박’의〈임은 내사랑〉1972년〈여로〉,〈잠들면 떠나주오〉1974년〈아빠의 이름은〉등 500여 편의 영화와 TV·라디오연속극 주제가를 불렀습니다.
–〈갯마을〉–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선생님(1965년 지구레코드사)
1절. 조각배 오고가는 동해 바닷가 / 가신 님 그리움에 한숨을 짖는 / 갯마을 아낙네의
사모친 설움 / 사랑을 새겨 놓고 떠나버린 그대를 / 왜 이다지 애를 태우나
2절. 내 님을 빼앗아간 바다이련만 / 밀리는 파도소리 왜 못잊는가 / 갯마을 뒤에 두고
떠난 아낙네 / 눈앞에 아롱대는 바닷물이 그리워 / 그리워서 다시 또 왔네
〈갯마을〉은 1965년 이미자 선생님께서 부르신 동명의 영화주제가로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백영호 작곡집 영화주제가 갯마을 / 저 강은 알고 있다’ 앨범에 수록된 노래입니다.
음반 에는 SIDE 1면. 이미자 선생님〈갯마을〉〈저 강은 알고 있다〉〈장남하지 마세요〉진송남〈이사벨라공주〉안다성〈비오는 밤의 로망〉백설희〈추억은 밤비에 실어라〉SIDE 2면. 문정숙 계약결혼 주제가〈영옥의 노래〉이미자 선생님〈추억은 내 가슴에〉남일해〈심야의 기적소리〉이미자 선생님·남일해〈계약 결혼〉백설희〈애수의 에레지〉등 10곡이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 대사가 있는 앨범에 수록된〈갯마을〉은 1963년 DBS 방송국 공채 성우 1기로 데뷔한 사미자(1940년 서울 출생)의 나레이션이 담겨있습니다. “한달 가고 두달 가고 일년 가고 이년 가고 외로운 갯마을에 동백꽃도 피고 지고 오늘도 가는 배 오는 배는 드나 들건만, 기다리는 그대를 태운 배는 어느때나 오려나 돈 벌어 어머님 모시고 뭍에가서 살자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꽃같은 내 청춘을 어이하란 말이요? 예이 여보 무심도 하구려!” 낭랑한 대사가 정말 애처롭습니다.
영화는 제작 대양영화사(호현찬). 원작 오영수, 각본 신봉승, 감독 김수용, 주연배우 고은아, 신영균, 황정순, 이낙훈, 이민자, 조용수, 전계현, 김정옥, 전옥, 정득순 등이 출연해서 1965년 11월 19일 서울의「명보극장」에서 개봉돼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줄거리는,「동해 바닷가 작은 갯마을. 고기잡이 나간 배가 돌아오지 않는 일이 잦아지면서 언제부터인가 이 마을에는 유달리 과부들이 많아졌다. 마을에서 가장 예쁜 해순(고은아)는 성구(조용수)에게 시집온 지 석달만에 만선의 꿈을 안고 남편과 시동생 성칠(이낙훈), 순임(전계현)의 남편 등 마을 남자들을 태운 고깃배가 출항을 한다. 배가 돌아올 무렵 거센 폭풍우가 불자 마을 아낙들은 성황당에 모여 무사귀환을 빈다. 하지만 살아 돌아온 성칠은 형이 풍랑을 만나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무당(전옥)을 통해 혼백을 건진다. 청상과부가 된 해순은 그때부터 개펄에 나가 조개며 소라, 미역을 따서 시어머니(황정순)과 시동생(이낙훈)을 부양하며 남편 없는 나날을 쓸쓸하게 보내고, 과부들은 모이기만 하면 사내 이야기뿐이다. 스물세 살의 해순은 뭇 사내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그녀는 오로지 생업에만 매달린 채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도 미역 바리를 하고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압박감에 못이겨 잠이 깬 해순은 한 사내의 옷자락을 힘껏 부여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 사내는 남편이 아니라 그녀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던 떠돌이 상수(신영균)이였다. 이후 상수와의 관계가 파다하게 소문이 나자 시어머니와 시동생은 해순을 마을에서 멀리 떠나 보내기로 한다. 해순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상수와 함께 길을 나선다. 그렇게 새 삶을 시작하게 된 해순은 상수와 함께 채석장과 산중을 떠돌면서 살아가게 되지만, 떠돌이 생활에 지친 해순은 해가 지기만 하면 바닷가 갯마을을 그리워하면서 눈물짓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상수가 심마니 친구를 따라 산으로 갔다 심마니의 술책에 말려 산삼을 빼앗기자 그를 찔러 죽이고 상수도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한다. 또 다시 혼자가 된 해순은 남편의 두 번째 제삿날, 그립던 갯마을로 시어머니를 찾아가자 마을의 아낙네들과 시어머니는 해순을 반갑게 맞아들이지만 실성한 그녀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위에 올라가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돌아올 줄 모르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 당시 홍익대학교 공예과 2학년이던 19살 고은아(본명 이경희 1946년 부산 출생)는 영화의 애정신 촬영을 위해 상대역인 신영균 등으로부터 특별 과외수업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1978년 합동영화사(곽정환)에서는 당시 조감독이었던 김수형 감독을 기용해 장미희, 이영하, 유영국, 한은진, 윤인자, 한우리 등을 출연시켜서 ‘갯마을’을 리메이크 제작 1978년 8월 6일 서울「중앙극장」에서 개봉 138,856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 1953년『문예』제19호에 발표된 오영수(吳永壽 1909년〜1979년)의 단편소설인 ‘갯마을’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무대는 경상남도 동해군(현재 부산 기장군) 일광면 학리항으로 어민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조그마한 해변마을을 배경으로 갯마을의 풍경을 아름다운 향토색으로 그리고 있고, 바다에 대한 사랑을 ‘해순’이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갯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서민적인 정취를 애잔하고 온화하게 담은 대표적 고전 수작으로 1965년 개봉된 영화는 제5회 대종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촬영상’, ‘편집상’과 여우조연상(황정순)을 수상했고, 제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신영균) 수상했으며, 제9회 부일영화상에서는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음악상’, 여우조연상(황정순), 우수신인상(고은아, 이낙훈)을 수상했습니다. ‘갯마을’ 촬영지였던 일광 학리포구와 ‘오영수 문학비’ ‘강송정’ 여행을 강력 추천합니다.
–〈강명화〉– 조흔파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선생님(1967년 지구레코드사)
1절. 금이야 옥이야 곱게 자라서 / 달처럼 해처럼 밝게 살다가 / 사랑을 알고는 눈물도 배웠오 / 못다한 인연일랑 묻지를 마오 / 막혀진 인정은 말하지 마오 / 웃으며 떠난 여인 그 이름은 강명화
2절. 그대를 위하여 태어난 이름 / 꽃다운 스물둘 젊은 나이에 / 찢어진 넋두리 혼자서 달랬오 / 깨여진 맹서일랑 묻지를 마오 / 무너진 사랑은 말하지 마오 / 조용히 떠난 여인 그 이름은 강명화
영화 ‘강명화’는 원작 조흔파, 감독 강대진, 배우 윤정희, 신성일, 최남현, 허장강, 이낙훈, 윤인자 등이 출연해 1967년 5월 17일 서울「국제극장」에서 개봉돼 10만 명의 관객이 찾은 흥행작입니다. 배우 윤정희의 3번째 영화로 당시 “윤정희를 위한 윤정희에 의한 윤정희의 영화”라고 극찬했으며, 한 영화평론가는 “윤정희가 동기(童妓)로 분하여 춤을 추는 대목이 있었다. 특히 그녀의 목에서 어깨로 흐르는 선의 아름다움은 찬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생끗생끗 교태섞인 미소를 흘리며 춤추는 자태에서 요염한 맛을 흠씬 풍겨댔던 것이다.”라고 평했습니다. 1967년 1200:1의 경쟁률을 뚫고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윤정희(1944년 본명 손미자, 부산 출생)은 ‘까치소리’에 이어 세 번째 영화 출연작인 ‘강명화’를 통해 톱스타 반열에 올라 문희, 남정임과 함께 제1대 트로이카 여배우가 됐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어느 날, 당대에 이름을 떨치던 명월관의 기생 강명화가 귀갓길에 일본사람에게 희롱을 당한다. 그때 마침 영남갑부의 아들이자 동경유학생인 장병천이 지나가다 강명화를 구해주게 된다. 이를 인연으로 두 사람은 어느덧 열렬하게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렇지만 그들 사이에는 기생과 갑부집 외아들이라는 너무나도 현격한 신분의 벽이 있었다. 마침내 강명화는 맺지 못할 사랑을 비관한 끝에 그와 함께 온양온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장병천의 행복을 빌면서 자결로써 인생의 막을 내린다.」
☞ 강명화(康明花, 본명 강도천), 1900년 평양에서 태어나 11살에 기생이 되어 17살에 서울 대정권번 기생으로 명창이었고, 영남갑부 아들 장병천과 1919년에 만나 사랑을 맺지 못해 괴로워 하다 1923년 온양에서 23살로 생을 마감하자 4개월 후에 장병천도 강명화의 뒤를 따랐습니다. 두 사람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는 당시 최고 스캔들로 대다수 신문에 보도돼 전국에 알려졌고, 1924년 ‘강명화 실기’, 1925년 ‘강명화전’, ‘강명화의 설움’, 1927년 ‘여의괴 강명화전’, 1935년 ‘절세미인 강명화전’ 1964년 ‘강명화의 죽엄’등으로 출간이 되었으며, 일본에서는 1924년 영화 ‘비련의 곡’이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 윤정희 주요 작품으로는, 1967년 ‘청춘극장’, ‘강명화’, ‘그리움은 가슴마다’, ‘안개’, 1968년 ‘가로수의 합창’ ‘감자’, ‘낙조’, ‘난풍’, ‘단발 기생’, ‘소라의 꿈’, ‘순애보’, ‘아빠 안녕’,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옥비녀’, ‘파란 이별의 글씨’, ‘팔도 기생’, ‘화초기생’, ‘황혼의 부르스’, ‘이조 여인 잔혹사’, ‘당신’, ‘독짓는 늙은이’, 1969년 ‘사랑은 눈물의 씨앗’, ‘여선장’, ‘첫날밤 갑자기’, ‘한번준 마음인데’, ‘흑산도 아가씨’, 1970년 ‘기러기 아빠’, ‘범띠 가시내’, ‘비에 젖은 두여인’, ‘아빠 품에’, ‘임 그리워’, ‘천사여 옷을 입어라’, 1971년 ‘떡국’,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짚세기 신고왔네’, 1972년 ‘궁녀’, 1973년 ‘고향에 진달래’, 1975년 ‘태백산맥’ 1981년 ‘자유부인’ 201년 ‘시’ 등 300여 편이 있습니다.
–〈첫눈 내린 거리〉– 이용일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선생님(1968년 지구레코드사)
1절. 꽃 피는 시절에 둘이서 가던 길을/ 눈내리던 계절에 나홀로 걸어가네/ 사랑한다고
변치 말자고 맹세하던 그 님은 어디로 가고/ 첫눈 내린 이 거리에 슬픔만 가득 찼네
2절. 새 울던 언덕을 둘이서 걸어가며/ 변함없이 살자고 기약한 그 사람아/ 언제까지나
함께 살자던/ 믿고 믿은 그 마음 어디로 가고/ 첫눈 내린 이 거리를 나홀로 걷게 하나
〈첫눈 내린 거리〉는 1968년 7월 5일 서울「동아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흑화(黑花)’의 주제가로 같은 시기에 개봉한 ‘미워도 다시 한번’에 밀려 상영한지 1주일만에 관객수 2만명을 기록하며 종영됐지만 이미자 선생님의 영화주제가〈첫눈 내린 거리〉은 그해 겨울내내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고, 지금까지 올드팬들에게 첫눈이 오는 날이면 불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방송에 나왔던 내용「1971년 11월 어느날. TBC 라디오 ‘동아의 메아리’ 신입 여성 아나운서가 이동 방송차로 서울 원남동의 한 대중식당 앞길에서 김장하시는 아주머니들을 찾아가 신청곡을 묻자 이구동성으로 신청한 곡입니다.」
영화 ‘흑화’는 임원직 감독, 배우 김지미, 남궁원, 문정숙, 한은진, 최길호 등이 출연해 ‘아이가 없는 부부와 대리모의 갈등’을 다룬 영화로, 여성관객들을 울리는 최루성 눈물의 멜로영화’였습니다. 줄거리는「화목한 가정의 부부에게 한가지 고민은 부인(문정숙)이 아기를 낳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평소에 도움을 주며 알고있던 현자(김지미)에게 아기를 낳아 달라고 부탁을 하자 현자는 평소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남궁원)과 현자는 만남이 잦아지자 어느새 정이 들어 아이도 낳게 된다. 그러자 현자는 아내의 자리까지 노리게 되어 두 여인은 갈등한다. 그러나 현자는 생각을 바꾸어 당초 약속대로 아기를 부인에게 넘겨주고 부인이 주선한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대답해 주세요〉–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선생님(1970년 지구레코드사)
1절.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내 어이 사랑했나 / 상처준 그 님을 이렇게도 애태우며 /
사랑하고 있어요 언제까지나 사모하고 있어요 영원토록 / 당신곁에만 있게 해주세요 / 옛날엔 당신이 나를 사랑했다고 대답해 주세요
2절.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내 어이 믿어왔나 / 돌아선 그님을 꿈에서도 잊지 못해서 /
그리면서 살아요 마음 다바쳐 기다리고 있어요 언제까지나 / 당신 곁에만 있게
해주세요 / 옛날엔 당신이 나를 사랑했다고 대답해 주세요
〈대답해 주세요〉참 애절하죠? 2013년 3월. 경기도 광주 어느 횟집에서 작사가이신 故 정두수 선생님께서 필자에게 물었습니다. “안과장!” “네” “안과장 이미자의〈대답해 주세요〉아나?” “네, 선생님” “그 노래 이미자의 청혼가야 청혼가” “네에!!!” “노랫말을 잘 음미해 봐” “네!” “어때 음미해 보니 청혼가 맞지?” “네 순정을 다바친 청혼가네요”
〈대답해 주세요〉는 영화주제곡입니다. 1970년 5월 22일 서울「동아극장」부산「제일극장」에서 개봉된 나연숙·유동훈 극본, 나한봉 감독(나한숙의 오빠), 배우 윤정희, 남궁원, 황정순, 이낙훈, 정혜선, 박병호, 사미자, 한은진, 고지훈 출연의 신파 통속 멜로영화입니다.
줄거리는,「하얀 눈이 가득한 설산, 그 산골에 사는 설녀(윤정희)는 서울에서 사냥을 왔다 쓰러져 있는 청운(남궁원)의 목숨을 구해준다. 짧은 순간의 사랑으로 하룻밤을 보낸 청운은 서울로 떠나고 임신한 사실을 알게된 설녀는 청운을 찾아 서울로 오지만 그는 유부남이었다. 설녀는 청운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게되고 그의 아내(정혜선)은 두 사람 관계를 알게 된다. 설녀가 아들을 낳자 시어머니(황정순)은 아이만 뺏고 그녀를 집에서 쫒아낸다. 그 후 화류계의 여왕이 되지만 아들을 잊지못해 눈물로 나날을 보내며 평생을 떠돌이 생활만하다 살인혐의로 법정에 서게되고, 설녀는 판사가 된 아들(고지훈)에게 사형선고를 받는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청운이 설녀의 변론에 나서면서 법정은 눈물 바다가 되고 설녀는 무죄로 풀려난다. 그러나 아들이 어머니를 찾아가는 순간에 설녀는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윤정희의 열연과 함께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었던 영화는 개봉관 보다 변두리 극장에서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다음에는 필자의 구리시 정착 50년을 맞아 〈고모령을 넘을 때〉등 글을 올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