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호 칼럼
복(伏)날 개고기와 도식(道食)
강증산(姜甑山)은 선천시대의 소수 가진 자의 종교, 지배계급의 종교가 아닌 민중의 종교, 역사의 한 가운데서 버림받고 억눌린 농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는 종교를 찾았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그는 이 표어를 단순히 식량생산이라는 물질적 형이하가 아닌 형이상의 도(道)적인 벼리로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 농사하는 ‘도의 강령’임을 깨친 것이다. 그는 당시 피지배계층인 일반민중 즉, 농민들의 의식구조를 깊이 깨닫고 종교를 창시한 선각자였다. 그래서 그의 종교가 얼마나 농민 속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는 다음의 얘기에서도 알 수 있다.
농민이 즐긴 ‘上等사람’ 음식
어느 날 증산이 제자 공우(公又)에게 이른다.
“죽을 사람을 가려내라.”
공우가 이윽히 생각하다 답한다.
“도인으로서 표리가 같지 아니한 자가 먼저 죽어야 옳으니 이다.”
증산이 또 묻는다.
“살 사람이 누구이겠느냐.”
“들판에서 농사짓는 사람과 산중에서 화전(火田) 파는 사람, 남에게 얻어 맞고도 대항치 못하는 사람이 살아야 하겠나이다.”
“네 말이 옳으니 그들이 상등(上等)사람 이니라.”(《대순전경》 제3장55)
또 증산이 개고기를 즐기면서, “이 고기는 상등사람의 음식 이니라”고 했다. 종도들이 그 이유를 묻자 증산은 이렇게 말한다.
“이 고기는 농민들이 즐기나니 이 세상에 상등사람은 곧 농민이니라.”(《대순전경》 3장130)
증산 같은 큰 인격이 어찌 개고기를 탐식할리 있었겠는가. 그는 농민들과 한 마음이 되기 위해 개고기를 ‘도식(道食)’했던 것이다. 이는 후천개벽의 선경을 건설할 종교는 민중의 종교, 광제창생의 종교임을 깨닫고 그 뿌리를 그 시대의 민중인 농민들에게 뿌리박으려 했던 것이다.
증산이 민중인 농민들과 동심(同心)이 되기 위해 개고기를 도식했다는 것은 마치 예수가 억눌린 유대백성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포도주를 함께 마신 것과도 비교된다. 이는 단순히 포도주가 아닌 도주(道酒)였던 것이다.
개고기는 우리 조상들이 꽤나 즐기던 음식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고유음식의 하나로 개장국을 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개고기를 푹 고아서 국으로 끓인 것을 개장국이라 하는데 그 이름도 개장국 말고도 개장, 구장(狗醬), 지양탕(地羊湯) 또는 보신탕, 영양탕, 사철탕 등 다양하다.
주로 삼복(三伏)에 시식하는 이유는 음양오행설을 따라 개고기는 화(火)에 해당하고 복(伏)은 금(金)에 해당하여 복의 금 기운을 화 기운으로 억누름으로써 더위를 이겨내고, 또 더운 성질의 개고기를 이겨냄으로써 이열치열로 더위에 지친 몸을 회복시켜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개고기 효능에 대해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양도(陽道)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 시킨다”고 했다.
《부인필지(婦人必知)》엔 “누런 황구는 비위(脾胃)를 보하고 부인 혈분에 명약이며, 꼬리와 발까지 검은 흑구는 신경(腎莖)에 성약(聖藥)이라”했다.
戌日·정월엔 금하는 풍습도
또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에도 양기를 돕고 허약해진 몸을 회복시켜 준다고 효능을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조리서인 《규곤시의방》에는 개장국 누르미, 누런 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 고유한 개고기 요리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 《임원십육지》, 《해동농서》, 《고사십이지》, 《경도잡지》 등에도 개고기 요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개고기를 아무리 보신용으로 즐긴다 해도 여기엔 금도가 있었다. 《부인필지》에 개날인 술일(戌日)에는 개고기를 먹지 말라 했고, 제주도 풍속엔 정구불식(正狗不食)이라 하여 정월에 개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다며 금하는 풍습이 있다.
이처럼 개고기 문화에도 의학적 이유와 철학적 의미를 담았고, 금기 역시 지켜왔다. 삼복더위가 한창이다.
그런데, 요즘 식품 코너엔 데우기만 하면 곧 바로 먹을 수 있는 페스트푸드형 ‘즉석 보신탕’이 나와 개고기 식문화가 널리 확산될 것 같다. 정말 후천개벽의 ‘도식시대’가 열리려는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상업화를 막을 수는 없다. 하나, ‘도식(道食)’은 하되 ‘도식(盜食)’은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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