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75. 1935년∼1936년〈사막의 한〉, 〈짝사랑〉 (2022.08.29.)
지난 8월 18일. 안방극장의 구수한 역할의 배우 이병철(1949년생)이 하늘나라의 별이 되셨지만, 애도의 글도 남기지 못했는데, 늦게나마 삼가 고인의 명복(冥福)을 빕니다.
오늘은 1935년도부터 1936년까지입니다.
1935년의 전통가요는 고복수〈사막의 한〉(김능인/손목인), 이난영〈목포의 눈물〉(문일석/손목인), 〈봄 아가씨〉(남풍월/손목인)입니다. 이 해에는 2월 27일 부산 ↔ 절영도(영도) 간 전차 개통, 3월 18일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 전화교환기 설치(나진우편국), 3월 25일『고종실록』과『순종실록』완성, 4월 27일 경성마라톤대회 손기정 2시간25분14초 비공인 세계신기록 수립,
5월 소설가 계용묵 소설「백치 아다다」『조선문단』에 발표, 5월 31일 미국「20세기 폭스사」설립, 7월 경성방송국→ 중앙방송국으로 개칭, 8월 13일 심훈 소설「상록수」동아일보 현상소설 당선, 9월 신사참배 강요, 9월 21일 부산방송국(JBSK) 개국, 9월 29일 조선육상경기협회「제1회 전조선육상선수권 개최」10월 4일 최초의 발성영화「춘향전」단성사 개봉, 10월 17일 조선일보사 월간『조광』창간, 11월 1일 서울↔나진 간 철도 개통 등이 있고, 탄생 인물은 1월 1일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
1월 5일 배우 김복희, 1월 8일 미국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2월 10일 기상 전문가 김동완, 7월 4일 소설가 송기숙, 7월 6일 제 14대 티벳 달라이 라마, 9월 1일 시인 송백헌, 9월 8일 김옥숙 여사, 9월 20일 배우 조춘, 9월 21일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10월 1일 대전·전주·광주읍→ 부로 승격, 10월 12일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11월 8일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 12월 1일 가수 한명숙과 미국 영화감독 우디 앨런. 작고한 인물은 독립운동가 길선주 목사. 민족잡지「삼천리」1월∽10월까지 전국의 남녀 10,130명 인기투표 결과 여자가수부문 1위 왕수복(1,903명), 2위 선우일선(1,166명), 3위 이난영(873명), 4위 전옥(377명), 5위 김복희(348명), 남자가수 1위 채규엽(1,844명), 2위 김용환(1,335명), 3위 고복수(674명), 4위 강홍식(468명), 5위 최남용(333명). 김용환은 가수 김정구 친형입니다.
–〈사막의 한〉– 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1935년 오케레코드사)
1절. 자고나도 사막 길 꿈 속에도 사막 길 / 사막은 영원의 길 애달픈 나그네 길
낙타 등에 꿈을 싣고 사막을 걸어가면 / 황혼의 지평선에 석양도 애달퍼라
2절. 저 언덕 넘어갈까 끝없는 사막의 길 / 노을마저 지면은 둘 곳 없는 이 마음
떠나올 때 느끼며 눈물 뿌린 그대는 / 오늘 밤 어든 곳에 무슨 꿈을 꾸는고
3절. 사막에 달이 뜨면 천지는 황막한데 / 끝없는 지평선도 안개 속에 쌓이면
낙타도 고향 그려 긴 한숨만 쉬우고 / 새벽 이슬 촉촉이 옷깃을 적시우네
〈사막의 한〉은 1935년 고복수가 부른 노래로 음반은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아픔과 젊은이들의 절망과 비애, 암담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노래입니다. 1927년까지 만주로 쫒겨간 이 땅의 농민들은 1백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1934년 오케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타향살이〉(김능인/손목인)와〈이원애곡〉(김능인/손목인) 두 곡이 수록된 음반은 1달 만에 무려 5만 장 이상 팔려 단번에 대중들의 애창곡이 되었고, 이듬해 발표한〈사막의 한〉또한 대박을 터트렸다고 합니다. 쓸쓸한 애조의 목소리와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물 흐르듯 부르는 창법의 가수 고복수(1911년∼1972년)은 당시 환상의 짝꿍인 작곡가 손목인(1913년∼1999년)과 작사가 김능인(1910년∼1937년) 세분은 함께 ‘손금고(孫金高) 트리오’라 불렸습니다. 고복수는 2살이 어린 손목인을 평생 ‘선생님’이라고 호칭했고, 작고하기 1년 전 병상을 찾은 손목인의 두 손을 꼭 붙잡고서는 “선생님, 보고 싶었습니다.”라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가수의 꿈을 안고 잡화상을 하던 집 금고에서 60원을 몰래 꺼내 상경한 후 고생 끝에 성공해 떠나온 고향집을 찾아 용서를 빌고 송아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열었던 고복수는 1940년 황금심과 혼인해 잉꼬부부로 살았지만,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납치돼 끌려가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했고, 1957년 서울「시공관」에서 열린 은퇴공연 후 악극단과 동화예술학원, 운수회사 경영, 영화제작 등이 잇따라 실패해 어려운 생활환경에 고생하던 눈물과 설움의 한(恨)은 그의 노래〈사막의 한〉과 닮음꼴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별이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를 기억하고 있는데,
1991년 울산 북정공원, 용인 천주교공원묘원과 2000년 경기도 광주 삼성공원묘원, 2009년 서울 상계동 당현천공원에 세워진〈타향살이〉노래비와 2014년 울산 입화산 입구에 세워진〈짝사랑〉노래비, 그리고 당현천공원 ‘고복수·황금심 부부 동상’이 있고, 1987년부터 울산에서 개최되는 ‘고복수 가요제’와 2018년 조성된 ‘고복수 음악관’과 ‘청춘 고복수길’이 있는 것입니다. 맏아들은 가수 고영준, 둘째아들 고영민은 카톨릭 복음가수이고 부인은 1983년 강변가요제에서〈이름 없는 새〉를 불러 대상을 수상한 가수 손현희, 셋째아들 고병준은 작곡가로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봄 아가씨〉- 남풍월 작사, 문호월 작곡, 이난영(1935년 오케레코드사)
1절. 봄 아가씨 웃음에 꽃이 피고 봄 아가씨 가슴에 달이 지네 / 버들피리 소리만
삐삐리 삐리 삐삐리 삐리리리 / 봄 아가씨 가슴은 싱둥 생둥 싱둥
2절. 왜 왔느냐 이 봄아 원수의 봄 / 피지마라 저 꽃아 밉상의 꽃 / 시냇물 소리만
졸조졸조졸 졸조르 졸졸졸 / 봄 아가씨 가슴은 갈팡 질팡 갈팡
3절. 봄 아가씨 당기는 다홍당기 봄 아가씨 아양은 꽃빛 아양 / 진달래 노래만
삐삐리 삐리 삐삐리 삐리리리 / 봄아가씨 가슴은 하늘 하늘 하늘
〈봄 아가씨〉는 1935년 이난영이 부른 노래로 9월〈목포의 눈물〉과 함께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화사한 봄을 맞이하는 아가씨들의 들뜬 마음을 잘 표현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1960년에는 박남포(반야월)이 개사를 하고, 이봉룡이 편곡을 해서 동레코드사를 통해서 음반이 재발매 되기도 했습니다. 노랫말은 1절에서는 ‘웃음에→ 가슴에’ ‘가슴에→ 한숨에’ ‘싱둥 생둥 싱둥→ 생둥 생둥 생둥’으로, 2절과 3절은 바꿔 배치하고 개사했는데, 2절은 ‘당기는 다홍당기→ 댕기는 다홍댕기’ ‘아양은 꽃빛 아양→ 첫사랑 싹트건만’ ‘진달래 노래만→ 참새들 소리만’ ‘하늘 하늘 하늘→ 땡동 땡동 땡동’ 3절은 ‘밉상의 꽃→ 진달래꽃’ ‘시냇물→ 참새들’ ‘졸조졸조졸 졸조르 졸졸→ 삐삐리 삐리 삐삐리 삐리리’ ‘갈팡 질팡 갈팡→ 땡동 땡동 땡동’으로 개사했는데, 2016년 4월 13일 개봉된 박흥식 감독, 한효주(정소율), 천우희(서연희), 유연석(김윤우) 주연 영화 ‘해어화’를 구리롯데시네마에서 어부인과 함께 재미있게 본 추억이 있습니다. 관람 후 점심으로 중국음식을 시켰는데 처형의 딸과 남자친구(남편)도 음식을 먹고 있어 사준 기억도 나는군요. 현재 처형의 딸은 유연석 소속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뽑은 가장 압권인 장면은 소율과 연희가 함께〈봄아가씨〉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1936년의 전통가요는 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짝사랑〉과 왕평 작사, 형석기 작곡, 선우일선〈대한팔경=조선팔경가〉입니다. 이해에는 3월 14일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뤼순감옥서 순국, 5월 김동리(1913년∼1995년)「무녀도」『중앙』김유정(1908년∼1937년)「동백꽃」을『조광(朝光)』에 발표, 6월 안익태〈애국가〉작곡, 6월 3일 장항제련소 준공, 7월 20일 경춘철도 개통, 8월 9일 손기정(1912년∽2002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8월 25일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 9월 이상(1910년∽1937년) 심리주의소설「날개」10월 가산 이효석 단편소설「메밀꽃 필 무렵」『조광』에 발표, 10월 23일 한강 인도교 개통, 탄생한 인물은 3월 5일 희극인 남보원, 3월 20일 영화배우 엄앵란, 7월 23일 연출가 김재형PD, 12월 19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등입니다.
–〈짝사랑〉– 박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1936년 오케레코드사)
1절.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 여울에
아롱 젖인 이즈러진 조각달 /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2절. 아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 잃어진 그 사랑이 나를 울립니다 / 들녘에
떨고 섰는 임자 없는 들국화 / 바람도 살랑살랑 맴을 돕니다
3절. 아아 단풍이 휘날리오니 가을인가요 / 무너진 젊은 날이 나를 울립니다 / 궁창을
헤메이는 서리 맞은 짝사랑 / 안개도 후유 후유 한숨 집니다
〈짝사랑〉은 1936년 고복수가 부른 노래로 오케레코드사를 통해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곧 다가올 가을! 젊은시절 짝사랑의 아련한 추억과 세월의 덧없음을 달래며 불러보고 싶은 노래 고복수〈짝사랑〉은 필자가 어린시절 가을만 되면 무작정 부르던 노래로 ‘으악새’는 으악새는 ‘억새’가 아닌 ‘왁새(왜가리)’가 변형되어 부르는 말인 것 같습니다. 당시 손목인은 박영호에게 으악새가 무슨 새냐고 물으니 “고향 뒷동산에 오르면 ‘으악’ ‘으악’하고 우는 새 울음소리가 들려 그냥 ‘으악새’라고 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합니다.
고복수(1911년∼1972년 울산)과 황금심(1922년∼2001년 부산 동래)는 짝사랑이 아닌 찐사랑을 나눴습니다. 1936년 오케레코드사 오디션에 참가한 황금심을 본 총각 고복수는 한 눈에 반해 1938년 반도악극단에서 순회공연을 할 때 고복수가 사랑을 고백 하면서 싹트기 시작한 원앙의 꿈은 1940년 ‘옥중 춘향전’ 공연 때 이도령과 ‘춘향’을 맡으면서 활짝 피었습니다. 그러나 친정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가출과 임신 8개월 몸으로 버틴 끝에 겨우 허락을 받아 1941년 혼인으로 이어져 우리나라 스타부부 제1호로서 소문난 잉꼬부부로 평생을 함께 했습니다. 사업에 실패 후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 생활이 힘들었지만 어질고 순한 남편과 현모양처의 표상인 부인의 사랑만큼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1933년 콜럼비아레코드사를 통해 가수의 길로 들어선〈타향살이〉의 가수 고복수와 1936년 오케레코드사 사무실에서 사장 이철, 작곡가 손목인, 가수 고복수 심사위원으로 열린 오디션에서 특등으로 선발돼 데뷔한 부산 출신이지만 어린시절부터 서울 청진동에서 살았던 목소리 좋은 무명의 소녀 황금자(본명 황금동)은 1937년 빅타레코드사 전속가수로 옮기면서 작사가 이부풍이 지어준 예명 ‘황금심’으로 부른〈알뜰한 당신〉이 빅히트를 해 “은쟁반에 옥구슬 굴리듯 청아한 목소리”라는 평을 듣는 가수가 됐습니다.
1933년 콜럼비아레코드사가 조선일보사 후원으로 개최한 ‘명가수 선발 음악대회’에서 2위로 입상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자, 손목인이 오케레코드사(사장 이철)로 옮겨줘 계약금은 1,000원, 월급은 그 당시 교사의 2배인 월 80원으로 전속계약을 맺었습니다.
☞ 우리나라의 가수선발 오디션의 시초는 1933년 10월 콜럼비아레코드사가 주최하고 조선일보사가 후원한 ‘명가수 선발 음악대회’입니다. 서울을 시작으로 평양, 신의주, 함흥, 원산, 대구, 군산, 청주 등 10개 지역에서 2∼3명을 선발 1934년 2월 17일 서울 소공동 ‘경성공회당’에서 최종 결선을 치뤘습니다. 1, 2, 3부로 진행된 결과 1위〈수부의 아내〉(水夫)를 부른 전남 대표 정일경, 2위〈사랑은 구슬퍼〉고복수, 3위〈멕시코 야곡〉함북 대표 조금자가 차지를 했습니다. 1934년 2월 19일 조선일보「선발가수 대성황, 물밀 듯 하는 청중은 정각 전에 대만원을 이룬 대성황이었다. 각 가수가 차례로 등단하자 연달아 재청을 청하는 등 근래에 드문 인기를 끌었다.」 1933년 11월 4일 조선일보「콜럼비아가수(歌手) 연주회성황(演奏會盛况)【군산(群山)】지방에 숨어 잇는 명가수를 차저내여 홀융한 소리판을 만들겟다는 뜻으로 콜럼비아축음긔회사에서 지방 순회를 한다함은 임이 보도한 바 어니와 지난 삼십일일 군산 희소관(희소관(喜笑舘))에서 그 예선을 하엿는데 십여명의 수혐자 중에서 군산비정(만정(灣町))에 거주하는 정일경(정일경(鄭日敬))(이(二)〇)양이 당선되엿다. 양은 일즉 평양녀고 시대부터 성악에 대한 천재적 소질이잇서 일반으로부터 매우 칭찬을 바더 오든바 금번의 당선은 양의 압날을 개척함에 잇서 실로 천재일우의 긔회라고 일반은 대단 유망시하고 잇다.」글자가 좀 다르죠?
–〈조선팔경가=대한팔경〉– 왕평 작사, 형석기 작곡, 선우일선(1936년 포리돌레코드사)
1절. 에헤 금강산 일만이천 봉마다 기암이요 / 한라산 높아 높아 속세를 떠났구나
에헤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다 / 명승의 이 강산아 자랑이로구나
2절. 에헤 석굴암 아침경은 못보면 한이 되고 /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해라
에헤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다 / 명승의 이 강산아 자랑이로구나
3절. 에헤 캠프의 부전고원 여름의 낙원이요 / 평양은 금수강산 청춘의 왕국이라
에헤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다 / 명승의 이강산아 자랑이로구나
4절. 에헤 백두산 천지가에 선녀의 꿈이 짙고 / 압록강 여울에는 뗏목이 경이로다
에헤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다 / 명승의 이 강산아 자랑이로구나
〈조선팔경가〉는 1936년 선우일선의 노래로 음반은 포리돌레코드사에서 발매했습니다.
작곡가 형석기(1911년∼1994년)는 금강산을 여행하다 매력에 빠져 보름동안 머물며 우리나라 명승고적의 자부심을 담은 노래를 만들겠다는 다짐하고 유학을 떠나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고 귀국해 폴리돌레코드사를 찾아 유명 작사가 왕평(1907년∼1940년)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후렴구에 “에헤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아 명승의 이 강산아”를 들려주자 왕평은 흔쾌히 이에 동의하고 가사를 썼습니다. 그는 경주에서 여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석굴암의 일출에 도취되어 곡상(曲想)을 얻었다고 합니다.
보너스로 올린〈마라손 제패가〉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손기정(1912년∼2002년 평북 신의주 출생) 선수와 동메달을 획득한 남승룡(1912년∼2001년 전남 순천 출생)을 축하하기 위해 이하윤이 가사를 지었으나 작사가 문예부로 채규엽이 콜럼비아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입니다. 태평레코드사에서도 이고범 작사, 이기영 작곡, 리라〈마라손 왕〉이 발표되기도 했고, 1949년 보스톤마라톤대회 우승자인 서윤복 선수를 위한〈마라손 제패가〉도 있습니다.
다음엔 1937년∼1938년〈백만원이 생긴다면〉, 〈해조곡〉, 〈아시나요〉글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