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77. 1938년〈눈물 젖은 두만강〉, 〈장전바닷가〉 (2022.09.12.)
지난주 9월 9일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한가위 추석 연휴기간이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한가위 추석명절은 잘 보내셨죠?
항상 추석날 같은 마음으로 ‘트로트, 세월따라 사연따라’를 사랑해 주시고 건강하고 멋진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1938년도입니다. 1938년의 전통가요로는 1938년 김정구〈눈물 젖은 두만강〉(김용호/이시우), 〈바다의 교향시〉(금능인/손목인), 〈왕서방 연서〉(김진문/박시춘), 남인수〈꼬집힌 풋사랑〉(조명암/박시춘), 남인수·장세정, 〈장전 바닷가〉(김진문/박시춘), 박단마〈나는 열일곱〉(이부풍/전수린),〈맹꽁이 타령〉(이부풍/형석기), 박향림〈오빠는 풍각쟁이〉(박영호/김송규), 황금심〈알뜰한 당신〉(조명암/전수린), 장세정〈토라진 눈물〉(조명암/양상포) 등이 있습니다.
이 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20년이 되는 해로 1월 4일 채만식 장편소설「탁류」조선일보 연재, 1월 15일 일제 지원병제도 발표, 2월 20일 안익태 아일랜드 더블린「한국 환상곡」초연, 3월 22일 삼성그룹의 전신「삼성상회」설립, 4월 9일「경성음악전문학교」설립, 7월 19일 현진건 장편소설「무영탑」동아일보 연재, 10월「덕수궁미술관」개관, 12월 12일 진주 약령시 설치, 탄생한 인물은 2월 28일 패티김, 3월 19일 현대그룹 정몽구, 음력 7월 29일 필자 어머니, 8월 29일 가수 쟈니리, 9월 27일 만화가 고우영, 11월 4일 작사·작곡가 신중현, 11월 25일 아나운서 김동건, 12월 15일 탤런트 박규채, 작고하신 인물은 3월 10일 도산 안창호선생님 등입니다.
오늘은〈눈물 젖은 두만강〉, 〈장전바닷가〉, 〈나는 열일곱살〉 3곡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 김용호 작사, 이시우 작곡, 김정구(1938년 오케레코드사)
1절.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 언제나 오려나
2절.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울면 / 떠나간
그 님이 보고 싶구나 /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 언제나 오려나
3절. 님 가신 강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 추억에
목메인 애달픈 하소 /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 언제나 오려나
2013년 정두수선생님이 편찬한 ‘노래따라 삼천리’에서 발췌「1935년 늦가을 동포들이 많이 사는 선양, 하얼빈, 연변, 연길, 목단강, 흑룡강 일대를 순회공연하던 악극단 예원좌의 단원들은 투먼의 여관에 투숙했는데, 지휘자 이시우는 옆방에서 흐느껴 울던 여인의 사연을 듣고 답답한 마음에 두만강 나루터에 걸터앉아 가을 찬바람에 지나가는 나룻배를 보고서 상념에 잠겨있다가 나라 잃은 민족의 한과 설움을 그려 나갔다. 당시 OK레코드사 사업부장이던 김용호는 울면서 민족의 서사시를 한 줄 한 줄 피눈물로 썼다. 일제의 학정에 시달리다 고향 땅을 등지고 두만강을 건넜던 아픈 과거가 묻혀있다.」
1973년 5월 29일 당시「예원좌」소녀배우 장월성의 구술 “1930년대 중엽 용정 등지에서 순회공연을 하던 중 투먼의 단풍나무 두 그루가 서있는 여관에 여장을 풀었는데, 그날 늦은 밤 작곡가 이시우(1913년∼1975년 본명 이만두, 경남 거제 출생)은 옆방에서 한 여인의 비통하고 처절한 울음소리를 듣고 다음 날 여관 주인에게 물으니 독립투사 문창학(1882년∼1923년 함북 온성 출생)의 부인(30세)으로 남편을 찾아 10여 년을 찾아다니다 친분이 있던 주인으로부터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바로 그날이 남편의 생일날이라 생일제를 지내다 오열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이시우는 가슴속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두만강을 바라보면서 나라 잃은 슬픔을 통탄했습니다.” 조선족 시인 한명천에게 사연을 들려주었더니 즉석에서 1절 가사를 만들어 주어 두만강 물소리를 들으면서 작곡을 해 장월성에게 부르게 하니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목메이는 여인의 통곡소리는 빼앗긴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순회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이시우는 작사가 김용호(1908년∼1967년)에게 사연을 전하며 2절과 3절 가사를 다듬었고, 김정구(1916년∼1998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에게 부탁해 오케레코드사(사장 이철)을 통해 발표하자 대중들에게 급격히 유행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눈물젖은 두만강〉이 울려퍼졌으나 1943년 대한국민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이유로 음반 판매가 금지되었으며, 1964년 KBS라디오 ‘김삿갓 북한방랑기’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는 등 지금까지 이산가족들의 대표적 애창곡, 국민가요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장전 바닷가〉– 김진문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장세정(1938년 오케레코드사)
1절. (南) 이 몸은 바람따라 흐르는 신세 / 물 위에 천방지축 떠도는 신세 / 고향을
떠나온 지 몇몇 해련고 / 아 꿈에도 가고 싶은 장전 바닷가
2절. (張) 검푸른 저 바다에 물결이 이네 / 아낙네 가슴에도 물결이 이네 / 남편을
멀리 보낸 젊은 아낙네 / 아 애태며 기다리는 장전 바닷가
3절. (南) 고향을 떠나올 때 뱃전을 잡고 / 잘 다녀오라 하며 울던 그 모양 / 포구는
안개 속에 아득하건만 / 아 그 모양 아리아리 눈에 어린다
4절. (張) 우리 님 떠나실 때 남기신 말씀 / 나리꽃 필 때면은 오시마 드니 / 나리꽃
피고 진지 몇몇 해던고 / 아 떠난 님 소식조차 알 길도 없네
5절. (南·張) 흰 돛배 들고 나는 장전 바닷가 / 뱃머리 뜰때마다 이별도 많다 / 에헤야
어야디야 닻 감는 소리 / 아 님 실고 뜨는 밴가 떠나는 밴가
NO. 13의 연장입니다.
〈장전 바닷가〉를 듣다 보면 일제강점기 징용으로 끌려간 님을 그리는 젊은 부인들의 애절함과 당시 일제에 대한 분노가 느껴져 가슴이 먹먹합니다.
필자는 2016년 1월 18일 방송된 가요무대 1450회 ‘가요산맥 시리즈 歌姬 장세정’ 편에서 11남매 중 막내인 경기민요 이수자 가수인 정수빈과 가수 배금성이 함께 부르는 장면을 보고부터 즐겨 듣는 곡입니다. 부르지는 못하지만 흥얼거리는 정도까지 됩니다.
남인수 장세정 콤비가 함께 부른 또 다른 노래는 1938년〈사랑이 천만근〉, 〈향수〉, 〈외로운 아가씨〉, 1940년〈경성 룸바〉, 1959년 화장품CM송〈ABC행진〉등이 있습니다.
장전(長箭)은 금강산 비로봉에서 바라보면 훤히 보이는 해금강의 포구입니다. 금강산 관광객이 묵었던 해금강호텔이 있는 곳이라 하는데, 일제강점기때는 수탈의 아픔을 겪었고, 지금은 북한의 해안포기지가 설치되었다는 기사도 보도된 바가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장전입니다. 통일이 되어 장전바닷가의 옛날 풍경을 찾아 남인수와 장세정을 그리면서〈장전바닷가〉를 질퍼득하니 한번 불러보고 싶은 욕망이 주체할 길 없습니다.
–〈나는 열일곱〉– 이부풍 작사, 전수린 작곡, 박단마(1938년 빅타레코드사)
1절.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요 /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살이예요 /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조리로 / 파랑새 꿈꾸는 버드나무 아래로 / 가만히 오세요
2절. 나는 얼굴이 붉어졌어요 / 가르쳐 드릴까요 열일곱살이예요 /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조리로 / 언제나 정다운 버드나무 아래로 / 가만히 오세요
3절. 나는 가슴이 두근 거려요 /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살이예요 /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꼬불 산으로 / 파랑새 꿈꾸는 버드나무 아래로 / 가만히 오세요
〈나는 열일곱살〉은 1938년 17살의 박단마가 부른 노래로 7월 빅타레코드사를 통해 발매한 음반에 실려있는 곡입니다. 첫 제목은〈나는 열일곱살〉이었으나 1972년 발매된 ‘그리운 노래 가요반세기 1집’에 이미자 선생님의〈나는 열일곱살〉이 실린 후 황금심, 신카나리아, 남강수, 조미미, 하춘화, 김연자, 문희옥 등이〈나는 열일곱살이예요〉로 제목을 바꾸어 취입을 했던 것입니다.
박단마(1921년∼1992년)은 개성에서 태어나 13살 때 경성방송국에 출연해 노래를 불렀고, 1937년 빅타레코드사에서〈상사 구백리〉, 〈날두고 진정 참말〉두 곡을 취입 가수로 데뷔 후 1938년 〈나는 열일곱살이예요〉와〈아이고나 요 맹꽁=맹꽁이타령〉을 발표해 인기가수가 되었습니다. 당시 빅타레코드사에는 개성 출신으로 박단마와 함께 작곡가 전수린과 가수 이애리수가 활동했습니다. 그 후 군예대 활동과 1952년〈슈샤인 보이〉, 1956년〈아리랑 목동〉등을 발표했습니다.
다음에는 1939년〈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목포의 추억〉〈두견화 사랑〉편입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