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파소성모(婆蘇聖母)
설과 단오와 함께 추석은 우리민족의 3대명절로 꼽힌다. 추석은 신라 개국 초 부터 궁중의 왕족들과 백성들이 함께 어울려 펼친 축제일이었다. 추석에 햇곡식으로 하늘과 조상께 감사드리는 제사를 지낸다. 축제놀이의 하나로 7월16일부터 여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길쌈 경쟁을 시켜 8월15일 보름날에 우열을 가려 진편에서 술과 음식을 내고 함께 어우러져 춤과 노래로 여러 가지 유희를 즐겼다.
신라에선 이런 기회를 이용해 남자들에게 무예훈련, 여자들엔 길쌈기능 장려, 전승(戰勝)기념 등을 포함한 국민축제 적 가치를 고양했던 것이다. 단군조선 마지막 고열가 등극 기념일 추석은 농촌을 본위로 하는 시대의 명절문화이다. 그러나 마한, 진한 등 남쪽지역 기후와 흑룡강성을 포함한 동북3성 등 북쪽의 부여지역은 기후가 서로 달라 곡식의 추수기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전민족의 명절로 지켜 왔을까. 최남선이 일찍이 《조선상식(朝鮮常識)》<풍속 편>에서 “신라의 추석명절은 이러한 계절과 기후 이외의 특수한 유래를 지니고 있다”고 언급한바 있다.
왜 하필이면 8월15일 일까. 이에 대해 《환단고기(桓檀古記)》 《동국역대(東國歷代)》 《단기고사(檀奇古史)》 《단서대강(檀書大綱)》 등 문헌에선 “이날이 단군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제47세 고열가(古列加)단군이 왕위에 등극한 날로서 원래 이를 기리는 축제일 이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신라본기>에 신라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와 6부 촌장들을 ‘조선유민(先始於 朝鮮遺民)’이라고 했다. ‘조선’은 물론 단군조선이다. 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개국한지 1908년 되는 해(BC 425년) 제44세 구물(丘勿)단군이 국호를 대부여(大扶餘)로 바꿨다. 그래서 부여조선 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조선유민이란 단순히 조선의 백성을 뜻하는 말이 아니고 고조선 부흥의 신념을 품은 중신, 귀족, 왕족을 포함한 뜻이라고 봄이 옳을 듯하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 부터 진한(辰韓) 땅에 내려와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나라이름이 없었다. 그것은 임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혈통이 없는 임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왕후장상유종(王侯將相有種)이란 풍토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를 지니고 있다. 나정우물에 표주박 모양의 알이 있었고, 왕만이 탈 수 있는 용마가 무릎을 꿇고 지켰다는 것은 박혁거세가 왕의 혈통임을 증명해 준다. 그렇다면 박혁거세는 조선왕실과 어떤 혈연적 관계가 있었을까.
이에 대해『삼한비기(三韓秘記)』<구지(舊誌)>에는 “박혁거세의 생모는 본래 부여 제실(扶餘 帝室)의 여자(공주)다”고 했다. 즉 “사로(斯盧: 신라)의 시왕(始王)은 선도산(仙挑山: 경주) 성모(聖母)의 아들인데, 옛 부여 제실(왕궁)의 여자 파소(婆蘇)가 남편 없이 처녀 잉태하여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게 되자 눈수(嫩水: 흑룡강성에 인접한 강, 송하강의 지류)로부터 동옥저에 이르러 또 다시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내을촌(柰乙村)에 이르러…거서간(임금)이 되고, 서라벌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진한 또는 사라(斯羅: 신라)라 칭하였다.” 또 김교헌(金敎獻)의 《신단실기(神壇實記)》에는 “부여제실의 여자 동신성모(東神聖母)인 파소(婆蘇)가 남자와 혼인하지 않은 채 잉태하여…진한 땅에 와서 혁거세를 낳았다…계림서악(鷄林西岳)에 성모사(聖母祠)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성모는 지선(地仙) 되고 혁거세는 천선(天仙)이 되었다고 한다.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의 처녀 잉태 설을 연상케 한다. 《동국여지승람》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이적》에도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경우 파소 성모의 잉태지역이 부여가 아닌 중화(中華) 또는 한실(漢室)로 적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오기(誤記) 아니면 왜곡이다. 즉 당시 우신관(佑神館)에서 관반학사(館伴學士)로 위장한 북송(北宋) 제6대 황제 신종(神宗)의 대신 왕보(王輔)의 흉계에 의한 왜곡날조 일 수 있다는 말이다. 왕보는 김부식이 접한 인물이다. 사학계에 연구과제로 넘긴다. 혁거세의 생모가 축제로 계승 아무튼 경천홍익을 이념으로 하는 고조선을 이은 부여 역시 천제의식이 계승 됐으리라 보며, 또한 왕실에서 제천 국중대회를 익히며 자란 파소 성모가 아닌가. 시조 혁거세의 어머니로서 이 같은 전통을 계승하지 않았을 리 없다. 조선의 유민 6부촌장과 파소 성모의 절대적 영향 아래 계승된 이 고열가단군의 8‧15등극기념 축제가 신라인의 추석축제로 재현된 것이라 본다. 신라에서 추석놀이 때 삼 삼기에 진편의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회소 회소…’라 부르는 ‘회소곡(會蘇曲)’은 구슬픈 탄식조의 노래이다. 일설에 의하면 ‘회소’는 ‘아소(아소서, 知)’로 풀이 된다고 한다. 작자는 미상이며 가사 역시 전하지 않는다. 즐겁고 화려한 축제마당에서 흘러나오는 탄식조의 노래 소리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북부여를 일으킨 해모수에 의해 고조선의 문을 닫은 고열가단군은 비극의 임금이다.
이미 패망한 나라를 탈출하여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천신만고 끝에 진한에 와서 왕족의 혈통을 낳아 파소성모 즉, 신라시조의 왕모(王母)가 된 그가 어찌 통한의 마지막 임금 고열가단군의 등극일인 8월15일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 등극 일에 행해 졌던 기념축제가 ‘조선유민’이던 신라인들에게 향수어린 추석축제로 굳어져 내려온 연유가 아닐까.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