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78. 1939년〈두견화 사랑〉, 〈목포의 추억〉(2022.09.19.)
오늘은 1939년도입니다.
1939년의 전통가요는 이서구 작사, 김준영 작곡, 김영춘〈홍도야 울지마라〉, 남일연〈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있고, 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 김정구〈수박타령〉등이 있으며, 남인수가 부른 전통가요는 강해인 작사, 박시춘 작곡〈감격시대〉김운하 작사, 박시춘 작곡〈항구의 청춘시〉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부풍 작사, 이면상 작곡, 박단마〈날라리 바람〉, 백년설의 천아토 작사, 전기현 작곡〈두견화 사랑〉박영호 작사, 전기현 작곡〈유랑극장〉등이 있고, 이난영의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다방의 푸른 꿈〉문일석 작사, 이봉룡 작곡〈목포의 추억〉이 있으며, 조명암 작사, 엄재근 작곡, 장세정〈항구의 무명초〉와 박영호 작사, 이재호 작곡, 채규엽〈북국 5천키로〉이부풍 작사, 전수린 작곡, 황금심〈외로운 가로등〉등이 있습니다.
이 해에는 3월 10일 조선악극단장 이철 일본공연에 태극기 사용으로 검거, 4월 숙명여자전문학교 설립, 7월 최초의 사립공과대 동아공과학원(한양대학교) 설립, 7월 22일 경춘선 개통, 8월 1일「부여박물관」개관,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0월 29일「조선문인협회」결성, 탄생한 인물은 1월 26일 소설가 김주영, 2월 6일 코미디언 백남봉, 3월 1일「비목」작사가 한명희, 3월 5일 배우 오지명, 3월 23일 영화배우 양택조, 4월 27일 영화감독 변장호, 8월 8일 탤런트 전원주, 8월 9일 소설가 이청준, 11월 18일 가수 오기택, 사망 인물들은 1월 28일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예이츠, 2월 10일 교황 비오 11세입니다.
오늘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두견화 사랑〉, 〈목포의 추억〉3곡을 올리겠습니다.
☞ 이서구(1899년∼1981년 호(號) 고범, 서울 출생), 김준영(1907년∼1961년 황해도 옹진), 김영춘(1918년∼2006년 경남 김해), 남일연(1919년∼미상, 예금 울금향, 충남 논산), 조명암(1913년∼1993년 본명 조영출, 충남 아산), 손목인(1913년∼1999년 본명 손득렬, 경남 진주), 김정구(1916년∼1998년 함경남도 원산), 남인수(1918년∼1962년 본명 강문수, 경남 진주), 강해인(미상∼1985년 타 예명 강사랑, 전남 여수), 박시춘(1913년∼1996년 본명 박순동, 경남 밀양), 김운하(1914년∼1978년 함경북도 웅기), 이부풍(1916년∼1981년 본명 박노홍, 충남 부여), 이면상(1908년∼1989년 필명 이운정, 함경남도 함주), 박단마(1921∼1992년 개성), 백년설(1914년∼1980년 본명 이창민, 경북 성주), 전기현(1909년∼미상), 박영호(미상∼1953년 필명 처녀림, 불사조), 이난영(1916년∼1965년 본명 이옥례, 배우자 김해송 전남 목포), 김해송(1911년∼1950년 본명 김송규, 배우자 이난영 평안남도 개천), 문일석(본명 윤재희), 이봉룡(1914년∼1987년 본명 이봉용, 누이동생 이난영 전남 목포), 엄재근(딸 엄앵란 동생 엄토미, 함경북도 어대진), 장세정(1921년∼2003년 평양), 이재호(1919년∼1960년 본명 이삼동, 경남 진주), 채규엽(1906년∼1949년 함경남도 함흥), 전수린(1907년∼1984년 본명 전수남, 개성), 황금심(1921년∼2001년 본명 황금동, 부산 동래)(^0^)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이서구 작사, 김준영 작곡, 남일연(1939년 콜럼비아레코드사)
1절. 거리에 핀 꽃이라 푸대접 마오 / 마음은 푸른 하늘 흰구름 같소 / 짓굳은 비바람에
고달퍼 우다 / 사랑에 속았다오 돈에 울었소
2절. 사랑도 믿지 못할 쓰라린 세상 / 무엇을 믿으리까 아득하구려 / 억울한 하소연도
설운 사정도 / 가슴에 쓸어 담고 울고 살리까
3절. 계집의 고운 뜻이 꺾이는 날에 / 무엇이 아까우랴 거리끼겠소 / 눈물도 인정조차
식은 세상에 / 때 아닌 시달림에 꽃은 집니다
(다른 가사) 2절. 열여덟 꽃봉오리 피기도 전에 / 낙화란 왠말이요 야속하구려 /
먹구름 가시면은 달도 밝겠지 / 내 어린 이 순정을 바칠 길 없소.
3절. 사랑도 믿지 못할 쓰라린 세상 / 무엇을 믿으리까 아득하구려 / 눈물도 인정조차
설운 사정도 / 가슴에 주서 담고 울고 가겠소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1939년 남일연이 부른 노래로 김영춘〈홍도야 우지마라〉(이서구/김영주)와 함께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려 있는 곡으로서 〈홍도야 우지마라〉가 크게 히트하면서 10만 장 이상의 음반이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임선규가 쓴 신파희곡(新派戲曲)「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일명「홍도야 우지마라」는 1936년 7월 25일부터 31일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극장인 동양극장 전속극단「청춘좌(靑春座)」에서 초연되어서 장안의 화제를 모은 최고의 공연 작품이었습니다.
당시 악극 공연의 주요 관객이 여성과 기생들인 점에 맞추어 만든 멜로극으로 내용은 「어릴시절 부모를 여윈 남매의 여동생 홍도(紅桃 차홍녀)는 오빠 철수(황철)을 공부시키기 위해 기생이 된다. 홍도는 오빠의 동창생 광호(심영)과 사랑에 빠지게 되나 그는 이미 명문가 규수인 혜숙과 약혼을 한 사이였다. 두 사람이 동거생활을 시작하자 남자 집안에서는 소동이 벌어지나 두 사람의 사랑 앞에 홍도를 며느리로 맞아들인다. 그러나 남편이 유학을 떠나자 시어머니와 시누이 봉옥은 홍도를 기생며느리라며 박대를 하고, 부정한 여자로 누명을 씌워 쫒아낸다.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자 홍도는 시댁으로 찾아가나 남편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 약혼녀를 선택하자 순간 너무 억울해서 분노가 치민 홍도는 그 순간 제 정신을 잃고 약혼녀를 과도로 찔러 살인을 하게 된다. 뒤늦게 달려온 순사가 된 오빠는 절규하며 기구한 운명에 처한 동생 홍도에게 수갑을 채우고 눈물에 얼룩진 채 연행하면서「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극은 막을 내린다.」
기생이 주인공인 화류비련(花柳悲戀)의 전형적 신파극으로 온 장안의 화제를 모으며,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무명 작가였던 임선규를 일약 스타 작가로 만들었으며,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 남매역 황철과 차홍녀도 최고의 배우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임선규가 쓴 원제는「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나 당시 동양방송 연출가 박진이 “내가 싫어하는 신파극이 다 들어있다.”며 내팽개쳤으나 사장 홍순언이 원고를 보고서 공연을 해보자 제의하자 박진은 심술이나 제목을「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바꾸어 무대에 올렸는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공연된 3년 동안 연일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기폭발로 신파극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악극을 본 장안 기생들은 울음바다를 이루었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한강에서 투신 자살하는 기생도 여러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1938년 설날「부민관」악극 공연, 1939년 3월 17일 동명 영화 개봉.
연출가 박진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공연을 보러온 기생, 바람둥이, 시골 사람들 때문에 극장 유리가 모조리 깨졌다. 서대문 마루턱이 막혀 전차가 못 다닐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무명 작가에서 이 작품 하나로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오른 임선규(1912년∼1970년 본명 임승복, 충남 논산 출생)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 문예봉(1917년∼1999년)과 혼인을 했고, 영화의 주제곡은〈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와 삽입곡은〈홍도야 우지마라〉였습니다. 당초 희곡을 쓸 때 극단 대표 배우 황철, 차홍녀를 모델로 해 배역도 철수, 홍도입니다.
영화.「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제작 고려영화협회·동양극장 영화부(최상덕·이창용), 각본 임선규, 기획 최상덕, 음악감독 김준영, 감독 이명우. 주연배우 황철, 차홍녀, 심영, 변기종 등이 출연해서 1939년 3월 17일 서울의「부민관」(1935년 설립→ 1950년「국립극장」→ 1954년「국회의사당」→ 1961년「서울시민회관」→ 1976년「세종문화회관 별관」→ 1991년「서울시의회」)에서 상영돼 10,000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1965년 한국예술영화주식회사(박원석), 기획 서학원, 각본 박운학·전용택, 전택이 감독, 배우 신영균, 김지미, 이수련, 노경희, 최남현, 윤인자, 박암, 황정순, 윤일봉, 남미리, 이용, 김의향, 양훈, 복혜숙, 최성호, 서영춘, 조석근, 하룡, 박현철, 남춘택, 박옥초, 박남규, 아역 전영선 등이 출연한 영화「홍도야 우지마라」로 리메이크 제작 개봉되었습니다.
☞ 황철(1911년∼1961년)은 충남 청양군수 아들로 태어나 1930년∼1940년대 최고의 배우로 당시 차홍녀(1915년∼1940년 경기 동두천 출생)와 애뜻한 사랑을 뒤로하고서 극작가 양백명 아내인 배우 문정복과 혼인했습니다. 문정복은 영화배우 문정숙(1927년 ∼2000년 평안북도 선천 출생)의 언니이며 탤런트 양택조(1939년) 어머니라고 합니다.
☞ 차홍녀(車紅女)는 1919년 경기도 동두천에서 태어나 동양극장 전속 극단 ‘청춘좌’에서 대표 배우로 활약했으나, 1940년 철원에서 공연을 마치고 쓰러져 병마와 싸우다 그해 12월 24일 스물 한 살의 나이로 요절(夭折)해 하늘나라의 별이 되었다고 합니다.
–〈두견화 사랑〉– 천아토 작사, 전기현 작곡, 백년설(1939년 태평레코드사)
1절. 꽃가지 쓸어 안고 훼파람을 불어서 / 이 가슴을 전할 손가 / 이슬비 소리없이
느껴우는 한 많은 봄 밤에 /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 웁니다
2절. 옥비녀 죽절비녀 님께 바친 첫 선물 / 버리지나 않았을까 / 낯설은 지붕 밑에
님을 불러 목메는 이 몸이 / 가엾어 가엾어 가엾어 웁니다
3절. 눈물로 엮은 사랑 여울에나 던져서 / 괴로움을 잊을 게나 / 흐르는 기적소리
처량하다 꿈 젖은 베개가 / 서러워 서러워 서러워 웁니다
〈두견화 사랑〉은 1939년 백년설이 부른 노래로 2월〈은어알 사랑〉과 함께 태평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린 곡입니다. ‘두견화(杜鵑花)’는 ‘진달래꽃’의 한자말로 요즘은 다이아반지, 목걸이 등을 연인에게 전해주는 선물이나 당시는 옥비녀, 죽절비녀로도 사랑의 증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두견화 사랑〉으로 인해 백년설은 기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합니다.
그의 젠틀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에 인간적 신뢰를 가졌던 심연옥은 1957년 재혼인 백년설과 혼인해 1남 1녀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목포의 추억〉– 문일석 작사, 이봉룡 작곡, 이난영(1939년 오케레코드사)
1절. 고하도 등대불이 깜빡이는 선창서 / 목놓아 몸부림쳐 자즈러질 때 / 윤선은
칼섬으로 돌아 나갔소 / 이것이 악착한 사랑의 판결이라 / 아아아 그대로 순종하고
내 고향 땅을 버렸소
2절. 어차피 가서 본들 별수 없는 고장이나 / 눈물의 타국에서 내 울 때마다 / 갓바우
뜨는 달이 뒤께 지면은 / 굴캐는 아가씨 노래에 잠이드는 / 아아아 남쪽의 저 하늘가
고향 목포에 가고파
☞ 고하도(高霞島) :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는 뜻=보화도(寶化島), 칼섬
〈목포의 추억〉은 1939년 이난영이 부른 노래로 1월 남인수〈인생 간주곡〉과 함께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1916년 목포 양동에서 태어난 이난영(본명 이옥례)는 1932년 유랑극단 막간가수로 데뷔한이래 한시도 고향인 목포를 잊었던 적이 없었고, 1935년 9월〈목포의 눈물〉(문일석/손목인)로 ‘조선의 가희’가 된 이후에도 언제나 고향 목포를 그리워하면서 1937년 12월 굽도리가 나오는〈해조곡〉(이노홍/양상포), 1939년 1월 고하도(高下島)와 갓바우가 실린〈목포의 추억〉(문일석/이봉룡), 1942년 5월〈목포는 항구다〉(조명암/이봉룡) 등 목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목포 유달산에 올라 이난영〈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를 실컷 불러보고 싶습니다.
다음엔 1940년〈산팔자 물팔자〉〈화류춘몽〉〈불효자는 웁니다〉3곡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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