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79 1940년〈산팔자 물팔자〉,〈화류춘몽〉 (2022.09.26.)
오늘은 1940년도입니다.
1940년의 전통가요는 고운봉〈남강의 추억〉(무적인=이재호/이재호), 남인수〈울며 헤진 부산항〉(조명암/박시춘), 백난아〈갈매기 쌍쌍〉(처녀림=박영호/이재호), 백년설〈번지없는 주막〉과 〈산팔자 물팔자〉(처녀림/이재호), 백년설〈나그네 설움〉(조경환/이재호), 이난영〈선부의 안해〉(김용호/박시춘)〈울어라 문풍지〉(박영호/김해송), 이인권〈꿈꾸는 백마강〉(조명암/임근식), 이화자〈화류춘몽〉, 〈화륜선아 가거라〉(조명암/김해송), 진방남〈마상일기〉(고려성/홍갑득), 〈불효자는 웁니다〉(김영일/이재호), 〈잘있거라 항구야〉(천아토/이재호) 등입니다.
이 해에는 1월 23일 중앙선 죽령터널 개통, 2월 11일「조선영화인협회」창설, 5월 15일 미국 나일론 스타킹 판매, 맥도날드 개업, 5월 아우슈비츠수용소 개설, 7월 안동「훈민정음」원본 발견, 8월 11일「조선일보」「동아일보」강제 폐간, 9월 17일「한국 광복군」창설, 탄생 인물은 1월 1일 아나운서 황인용,
2월 25일 탤런트 여운계, 4월 8일 야구감독 김응용, 5월 6일 탤런트 김세윤, 6월 7일 배우 박근형, 6월 15일 탤런트 최불암, 6월 17일 가수 차도균, 7월 15일 배우 김지미, 10월 9일 비틀즈 존 레논, 10월 14일 가수 클리프 리처드, 10월 23일 축구선수 펠레, 10월 24일 코메디언 이주일, 11월 27일 배우 이소룡 등입니다.
–〈산팔자 물팔자〉– 처녀림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1940년 태평레코드사)
1절. 산이라면 넘어주마 강이라면 건너주마 / 화류계 가는 길은 산길이냐 물길이냐
흑싸리 한 장에도 담지 못할 풋사랑 / 인심이나 쓰다가자 소원이나 풀어주자
2절. 얼라며는 얼어주마 녹으라면 녹아주마 / 화류계 가는 길은 얼고 녹는 장난이냐
분접시 하나에도 차지 못할 행복을 / 장난이나 치다가자 알심이나 알아주자
3절. 울라며는 울어주마 웃으라면 웃어주마 / 화류계 가는 길은 울고 웃는 쌍갈래냐
뜬 세상 초록꿈에 왔다가는 인생이 / 넋두리나 하다가자 꿈이나 꾸어보자
〈산팔자 물팔자〉는 1940년 백년설이 부른 노래로서 9월에〈눈물의 백년화〉(박영호/전기현)과 함께 태평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1967년 이미자 선생님〈산팔자 물팔자〉(전우/박시춘)은 다른 노래입니다. 〈산팔자 물팔자〉는 화류계 여인들의 한을 풀어 읊은 것으로 기생들의 삶을 표현한 곡이지만 당시 남녀 모두가 이 노래를 좋아했는데, 특히 기생집의 여인들은 물론 변두리의 작은 작부집, 여염집 여인들 조차도 힘든 여인의 삶의 하소연으로 듣고 이 곡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당시 서울에는 ‘한성권번’ ‘대정권번’ ‘한화권번’ ‘경화권번’ 등 4대 기생권번이 있었는데, 기적(妓籍)을 둔 기생수가 약 2,000여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해질 무렵이면 기생들은 실은 인력거가 끊임없이 왕래하고 밤마다 파란등을 단 기생촌은 차양막을 걷어 올리고 인력거에 앉은 기생들이 내려 옅은 세모시 치마를 하늘거리면서 지나가며 남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던 것은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기생들은 권번이 운영하는 기생학교에서 춤과 노래, 시, 그림 등을 배웠는데, 기생 출신 가수 제1호는 영화 ‘해어화’의 모티브가 된 왕수복이었답니다.
백년설이 부른 곡은 가사가 없어 2007년 가요무대에서 주현미가 부른 영상을 올립니다.
☞ 한성권번(漢城券番) : 1909년 9월 기생·창기 단속령이 발표되자 10월 서울 광교에 최초의 기생조합 한성기생조합을 만들어 1910년 무교동으로 이전 후 1918년 1월부터 한성권번으로 개칭했고, 1947년까지 궁중가무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을 수용했습니다.
–〈화류춘몽〉–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이화자(1940년 오케레코드사)
1절. 꽃다운 이팔 소년 울려도 보았으며 / 철 없는 첫사랑에 울기도 했더란다 /
연지와 분을 발라 다듬는 얼굴 우에 / 청춘이 바스라진 낙화 신세 / 마음 마저
기생이란 이름이 원수다
2절. 점잖은 사람한테 귀염도 받았으며 / 나 젊은 사람한테 사랑도 했더란다 /
밤늦은 인력거에 취하는 몸을 실어 / 손수건 적신 적이 몇 번인고 / 이름 조차
기생이면 마음도 그러냐
3절. 빛나는 금강석을 탐내도 보았으며 / 겁나는 세력 앞에 아양도 떨었단다 /
호강도 시들하고 사랑도 시들해 진 / 한 떨기 짓밟히운 낙화 신세 / 마음 마저
썩는 것이 기생의 도리냐
〈화류춘몽〉은 1940년 인천 기생출신 가수 이화자가 부른 노래로 〈화륜선아 가거라〉와 함께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작곡가 김해송은 이화자에게 악보를 건냈으나 19살 때부터 화류계에서 살았던 자신의 인생을 비유해서 만든 것처럼 생각돼 한동안 주저하자, 김해송은 이 노래는 꼭 당신이 불러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해 녹음을 했습니다. 화려해 보이는 기생들의 삶 이면 속에 숨어있는 애환과 애절한 삶의 질곡을 애절한 창법과 이화자 특유의 흐느끼는 목소리로 음반이 발매되자 전국의 길거리와 레코드 가게마다 〈화류춘몽〉이 울려 퍼졌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듣고 난 후에 가사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1935년 여름 어느날, 경기도 부평 어느 술집에 노랫가락을 잘 부르는 작부가 있다는 소문이 서울 장안에까지 입소문이 퍼지자 가수 김정구의 형인 작곡가 김용환이 가요예술인 몇 명과 함께 한 허름한 술집을 찾으니 두다리를 쩍 벌리고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서 무료한 표정으로 태극문양 부채질을 하고 앉아 먼산을 바라보고 있는 이화자(1916년∼1950년)에게 술상을 차려달라고 주문해서 술잔을 기울이다 노래 한 곡조를 불러 달라고 요청을 해 간드러지면서도 기가 막히게 한 곡조를 부르니 일행들의 입이 딱 벌어지면서 내일 당장 서울로 올라오라 설득하여 1936년 뉴코리아레코드사 전속 신민요가수로 데뷔시켜〈초립동〉을 발표하자 전국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이어〈포리돌레코드사〉, 〈오케레코드사〉로 스카우트되어〈아즈랑이 콧노래〉, 〈노랫가락〉, 〈꼴망태 목동〉 등 발표되는 노래마다 연속으로 히트해 인기 상한가 최고의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평소 담배를 좋아했던 그녀는 〈화류춘몽〉발표 이후 아편에 조금씩 손을 대다 중독증세를 보였고, 광복후 종로의 단성사 뒷골목 단칸방에서 고독과 생활고를 겪다 한국전쟁 때 홀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미자 선생님은 1999년 〈화류춘몽〉이 담긴 앨범을 발매했고, ‘미스트롯’에서 불렀던 송가인도 2020년 3월 5일〈화류춘몽〉을 리메이크해서 음원으로 발매하여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 특별한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2022년 1월 9일 공연예술 전문단체 ‘인천콘서트챔버’에서 ‘인천 용동권번 예인 이화자 다시 부르기’ 음반에〈화류춘몽〉, 〈어머님 전상백〉, 〈월미도〉등 9곡을 수록했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 진방남(1940년 태평레코드사)
1절.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 원통해 불러 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 엎드려 빕니다
2절. 손발이 터지도록 피 땀을 흘리시며 /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 그리운 어머니
3절. 북망산 가시는 길 그리도 급하셔서 / 이국에 우는 자식 내 몰라라 가셨나요
그리워라 어머님을 / 끝끝내 못 뵈옵고 산소에 엎푸러져 / 한없이 웁니다
2013년 정두수 선생님의 노래따라 삼천리‘에서 발췌「1936년 어느 봄날. 스무살 청년 박창오(예명 진방남, 필명 반야월)은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비내리는 마산역에서 어머니의 눈물을 뒤로하고 서울로 상경해 양복점에 취직후 1938년 조선일보사와 태평레코드사 공동주최 노래 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불효자를 웁니다〉취입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모친 별세’라는 전보를 보고 끓어 오르는 슬픔을 누르고 녹음을 끝냈다. 밖에서는 고려성, 백년설, 선우일선, 신카나리아, 고운봉, 나성례 등 동료 가수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장면「1978년 2월 어느날 진방남은 작곡가 박시춘과 함께 서울 인현동 단골 술집에서 한 잔 술을 기울이다 TV를 통해서 서울 국립극장에서 진행 중인 ‘조총련계 재일동포 귀성단 환영식’을 보고 있었다. 구자춘 서울시장 인사말과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 환영사에 2,000여 명의 재일동포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여흥 프로에서 코미디언 겸 가수 김희갑이 구성지게 슬프디 슬픈 노래〈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자 진방남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다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박시춘이 화장실로 가보니 그는〈불효자를 웁니다〉를 목 놓아 부르고 있었다.」
다음에는 1941년〈선창〉〈아리랑 낭랑〉〈진달래 시첩〉〈아주까리 등불〉을 올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