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81. 1942년〈낙화유수〉,〈뗏목 이천리〉,〈꽃마차〉(2022.10.10.)
오늘은 제37회 구리시민의 날입니다. 오후 4시 ‘행복 나눔 걷기대회’를 시작으로 5시 기념식에 이어, 초청가수 축하공연, 불꽃 쇼 등을 펼치니 하루의 행복을 누리길 바랍니다.
오늘은 1942년도입니다. 1942년의 전통가요는 남인수 〈낙화유수〉(박남포/이봉룡), 백난아〈찔레꽃〉(김영일/김교성) , 백년설〈고향설〉(조명암/이봉룡), 이난영〈목포는 항구다〉(조명암/이봉룡), 이해연〈뗏목 이천리〉(유도순/손목인), 〈소주 뱃사공〉(조명암/손목인) , 진방남〈꽃마차〉(반야월/이재호), 〈넋두리 20년〉(반야월/김교성) 등이 있습니다.(^^)
이 해에는 4월 1일 조선마사회 설립, 6월 5일 미드웨이 해전 발발, 6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 12월 20일 최초로 노기남 주교 임명, 탄생한 인물은 1월 8일 스티브 호킹 박사, 1월 9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1월 17일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2월 6일 국악인 신영희, 2월 21일 탤런트 정혜선, 4월 24일 가수 배호, 6월 17일 가수 현철, 6월 18일 비틀즈 폴 메카트니, 8월 1일 가수 차중락, 11월 20일 미국 제46대 대통령 조 바이든, 11월 23일 성우 유강진, 작고한 인물은 소설가 가산 이효석 등이 있습니다.
오늘은〈낙화유수〉〈뗏목 이천리〉〈꽃마차〉3곡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낙화유수〉– 박남포 작사, 이봉룡 작곡, 남인수(1942년 오케레코드사)
1절.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 새파란 젊음 꿈을 엮은 맹서야 / 세월은 흘러가고
청춘도 가고 / 한 많은 인생살이 꿈같이 갔네
2절. 이 강산 흘러가는 흰구름 속에 / 종달새 울어 울어 춘삼월이냐 / 봄버들 하늘하늘
춤을 추노니 / 꽃다운 이 강산에 봄맞이 가세
3절. 사람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 오면은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 영춘화 야들 야들
곱게 피건만 / 시들은 내 청춘은 언제 또 피나
〈낙화유수〉는 1942년 남인수가 부른 노래로 5월〈남매〉와 함께 오케레코드사를 통해 발매한 곡입니다. 1929년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발매된 이정숙의〈낙화유수=강남달〉과는 다른 노래입니다. 1942년 남인수〈낙화유수〉가 발매되자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세월의 무상함을 담담하게 담아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여 대중들의 공감을 받았습니다. 남인수는 돈이 많아서 “돈인수” 여복도 많아서 “여인수”로도 불린 가요황제였답니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가요산맥이신 작사가 정두수(1937년∼2016년 본명 정두채, 경남 하동 출생) 선생님의〈낙화유수〉에 대한 평은,「낙화유수! 인생무상, 세월은 덧없이 무상하다. 그렇다고 신세만 한탄 할 수 있겠는가. 지는 꽃에도 정이 있고, 흐르는 물에도 정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풍류와 서정은 인생의 시가 아니겠는가. 하늘이 베푼 축복 속에서 자연과 인생은 어우러져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무지개 같은 꿈을 찾아 설레는 가슴을 안고 인생은 출발한다. 나루에 배를 띄워서 사랑을 구가하고 청춘을 예찬한다. 이 뿐만 아니라 행복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꿈과 사랑, 행복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고독과 고통, 비애와 비통함이 인생살이에서는 더 길기 때문이다. 이 모든 감정을 담은 남인수 노래는 신기에 가까웠다. 라디오가 없는 시절, 녹화를 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가수 나일강과 함께 정선생님을 모시고 처음 하동에 갔을 때, “안과장, 내가 말이야 스승인 남인수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동래고 다닐 때인데 나를 무척이나 이뻐해 주셨지. 고향이 진주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는 하동이야! 하동!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가요황제이지. 그분이 부르는〈낙화유수〉를 들으면 기가 막혀 정말 기가 막혀, 아주 낭랑하지.”
그날 저녁을 먹고〈인생 계급장〉의 하동의 장현주 가수는 본인이 운영하는 노래방으로 모셨는데 취기가 오르자 직접〈낙화유수〉를 부르시는데 아주 기가 막히게 부르시더군요. 나일강이 휴대전화로 촬영했는데 잘 간직하고 있겠지. 정선생님의 귀한 영상자료인데...
영화는 1969년 제작. 이지용, 각본 이두형, 조길현 감독, 배우 김진규, 문정숙, 최성호, 이빈화, 박암, 이경희, 성소민, 한은진 등이 출연했던「이 강산 낙화유수」는 7월 3일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한「세기극장」에서 개봉되어 7년전 작고한 남인수를 기렸습니다.
줄거리「청년 남인수(김진규)는 오케레코드 강부장(박암)에 의해 픽업되어〈애수의 소야곡〉을 취입해 스타가 된다. 〈목포의 눈물〉가수 이난영(문정숙)과 알게되면서 사랑에 빠지지만 난영은 자신을 가수로 키워준 작곡가 김선생(최성호)과 혼인한다. 낙담한 인수는 여전히 지방순회공연을 다니는 가운데 밤마다 술을 마시며 자신을 학대한다. 술집에서 알게된 하루꼬(이빈화)는 그를 위로하지만 인수는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일본으로 떠난다. 한편 조선악극단원으로 일본공연을 온 난영은 남편 김선생과 함께 행방이 묘연한 인수를 찾아 도쿄의 밤거리를 헤맨다. 어느날 하루꼬가 난영에게 연락해 인수와 난영은 재회하게 된다. 인수는 하루꼬와 동거하고 있는데 매일 술로 자신을 학대하다 폐병에 걸려있는 상태. 그러던 중 해방이 되고 인수도 귀국해 가수로 활동을 재개한다. 인수와 재회한 난영은 혼인을 권유하고 인수는 어머니가 소개한 여자(이경희)와 혼인하지만 난영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여전히 방황하자 아내는 자신이 자격이 부족하다 느끼고 그의 건강을 빌며 그의 곁을 떠난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난영의 남편 김선생은 전쟁통에 실종된다. 아이들과 살 길이 막막해진 난영은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미군부대 무대에 세운다. 이를 인수는 강부장을 통해 통장을 그녀에게 건네고 이후 난영과 함께 살게 된다. 그 후 아이들이 장성해 ‘김시스터즈’를 결성 가수로 미국에 진출하게 되자 인수에게 난영을 부탁하며 떠난다. 지병을 갖고 있던 인수는 무대에서 쓰러져 급히 병원에 실려 간다. 인수는 난영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는다.」
–〈뗏목 이천리〉– 유도순 작사, 손목인 작곡, 이해연(1942년 콜럼비아레코드사)
1절. 눈 녹인 골째기에 진달래 피고 / 강가에 버들피리 노래 부르니 / 어허야 어허야
어야디야 아아 오오오 / 압록강 이천리에 뗏목이 뜬다
2절. 물 줄기 구비 구비 끝없이 머니 / 낯 설은 물새들도 벗이 되었네 / 어허야 어허야
어야디야 아아 오오오 / 압록강 이천리에 뗏목이 쉰다
3절. 그리워 못 잊은 듯 신의주 오니 / 인조견 치마감에 가슴 뛰노나 / 어허야 어허야
어야디야 아아 오오오 / 압록강 이천리에 뗏목 닿었네
〈뗏목 이천리〉는 1942년 이해연(1924년∼2019년 황해도 해주 출생)이 부른 노래로 1942년 콜럼비아레코드사를 통해 발매한 곡입니다.
백두산에서 신의주까지 장장 이천리(803.30km)를 도도히 흐르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긴 강 압록강(鴨綠江, 일명 아리나례 阿利那禮)에 겨우내 얼어 붙었던 산골짝에 새봄이 오면 뗏목을 압록강에 띄워 벌목한 나무를 싣고 낮설은 산과 들, 물새들 벗을 삼아서 끝없는 물길을 따라 신의주를 향해 가는 힘든 뗏목생활을 콧노래 부르면서 떠나는 장면을 정감있게 잘 표현한 노래입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이해연 부군은 대니김, 자식은 김트리오, 여동생 가수 백일희
-〈꽃마차〉-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진방남(1942년 태평레코드사)
1절. 노래하자 꽃 서울 춤추는 꽃 서울 / 아카시아 숲 속으로 꽃마차는 달려간다
하늘은 오렌지색 꾸냥의 귀거리는 한들 한들/ 손풍금 소리 들려온다 방울소리 들린다
2절. 울퉁불퉁 꽃 서울 꿈꾸는 꽃 서울 / 알곰삼삼 아가씨들 콧노래가 들려온다
한강물 출렁출렁 숨 쉬는 밤하늘엔 별이 총총/ 색소폰소리 들려온다 노래소리 들린다
3절. 푸른 등잔 꽃 서울 건설의 꽃 서울 / 뾰족 신발 바둑길에 꽃 양산이 물결친다
서울의 아가씨야 내일의 희망 안고 웃어다오/ 멘돌린 소리 들려온다 웃음소리 들린다
〈꽃마차〉는 1942년 진방남(1917년∼2012년 필명 반야월, 경남 마산 출생)이 부른 노래로 4월〈넋두리 20년〉(반야월/김교성)과 태평레코드사를 통해서 발표한 곡입니다. 원곡은〈노래하자 하루삔〉으로 1939년 태평레코드사 전속 작곡가·가수들이 만주일대를 순회하며 공연할 때 하얼삔에 들렸다가 그 곳의 활기찬 분위기와 이국적인 정서에 매료돼 노랫말을 지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중에 가사 중 ‘하루삔→ 꽃서울’, ‘송화강→ 한강물’, ‘이국의 아가씨→ 서울의 아가씨’, ‘대정금→ 멘돌린’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 1절에 있는 ‘꾸냥’은 고낭=姑娘으로 아가씨를 뜻하는 당시 중국말이었다고 합니다.
다음엔 1943년∽45년〈서귀포 칠십리〉,〈아주까리 선창〉,〈울산 아가씨〉올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