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82. 1943년〈서귀포 칠십리〉,〈울산 큰 애기〉(2022.10.17.)
오늘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로 태평양전쟁(1941년 12월 7일∼1945년 8월 15일)과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시기로서 1944년부터 대중가요 보급이 중단되어서 1943년 전통가요만 올리겠습니다. 남인수의〈서귀포 칠십리〉(조명암/박시춘), 문일화〈꿈에 본 내 고향〉(박두환/김기태), 차홍련〈아주까리 선창〉,황금심〈울산 큰 애기〉(고마부/이면상) 등이 있습니다.
1943년 탄생한 인물은 1월 18일 탤런트 윤문식, 1월 27일 극작가 김수현, 3월 1일 탤런트 주현, 12월 5일 염수정 추기경, 작고한 인물은 4월 25일 소설가 현진건, 10월 24일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등이 있고, 1944년에는 1월 학병 징집, 2월 징용 실시,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8월 23일 프랑스 파리 해방, 탄생한 인물은 3월 19일 첼로연주가 정명화, 4월 27일 배우 임동진, 6월 10일 탤런트 백일섭, 6월 13일 반기문 UN사무총장, 작고한 인물은 1월 16일 시인 이육사, 6월 29일 시인 한용운 등이 있습니다.
1945년에는 3월 10일 도쿄 공습,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 자결, 5월 7일 독일 항복, 8월 6일 히로시마 일본 원폭 투하,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8월 15일 대한민국 해방, 9월 2일 도쿄만 미주리호 함상 일본 항복 조인식, 9월 9일 미 군정 실시, 조선방송협회 ‘KBS’로 명칭 변경, 10월 24일 세계 각국 유엔(UN) 가입 시작, 탄생한 인물은 1월 8일 가수 서유석, 2월 10일 LG그룹 구본무, 3월 30일 영국가수 엘릭 클랩튼, 4월 12일 WHO 사무총장 이종욱 박사, 6월 19일 미얀마 아웅산 수치, 9월 27일 국민가수 남진, 10월 17일 소설가 최인호, 12월 31일 탤런트 임현식, 작고하신 인물은 2월 16일 시인 윤동주, 3월 12일 ‘안네의 일기’ 실존 인물 안네 프랑크 등이 있습니다.
오늘은〈서귀포 칠십리〉,〈아주까리 선창〉,〈울산 큰 애기〉 3곡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서귀포 칠십리〉–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1943년 오케레코드사)
1절. 바닷물이 철썩 철썩 파도 치는 서귀포 /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휘파람도 그리워라 쌍돛대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물새가 운다
2절. 자갯돌이 철썩 철썩 물에 젖는 서귀포 / 머리 빨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저녁달도 그리워라 저녁 별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졌다
3절. 모래알이 철썩 철썩 소리치는 서귀포 / 고기 잡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모래알도 그리워라 자개알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맹서가 컸소
〈서귀포 칠십리〉는 1943년 가요황제 남인수(1918년∼1962년 경남 진주 출생)이 부른 노래로 6월〈대지의 사나이〉(조명암/박시춘)과 함께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곡입니다. 2013년 정두수 선생님 ‘노래따라 삼천리’에는「1942년 봄 작사가 조명암이 서귀포를 찾았을 때 한적한 어촌마을, 철썩이는 파도에 조약돌이 부서지고 백사장은 물새 발자국으로 가득했다. 저녁 노을 곱게 물든 칠십리 해안선 너머로 돛단배가 떠있는 정경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작사가는 목가풍의 서정시에 풍경을 담은 서경시를 썼다. “지금 서귀포를 써두지 않으면 안돼. 서귀포는 언젠가 훼손되고 말거야. 자연 경관이 모조리 파손되고 말거야.” 당시 일제는 서귀포에 은밀히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노랫시는 단짝 작곡가 박시춘에게 전해져 곡이 완성돼 25살 청년가수 남인수가 불러 일제강점기 피폐한 삶과 억눌림 속에서 살아가던 국민들에게 끝없는 향수와 애절한 그리움에 대한 갈망이 전해져 큰 인기를 얻었던, 조명암·박시춘·남인수 트리오의 역작 중 한곡입니다.
‘서귀포 칠십리 공원’에 있는〈서귀포 칠십리〉노래비 설명,「‘서귀포 칠십리’의 어원은 조선조 정의현청에서 서귀포까지의 거리를 나타낸다. 이 노래비는 시인 조명암이 1930년대 말 제주를 여행하면서 ‘서귀포 칠십리’라는 노래를 작사하였다.
이 노래는 1943년 박시춘 작곡, 남인수의 노래로 불리면서 일제 억압기에 나라를 잃고 고향을 떠난 설움을 그리는 국민가요로 승화되면서 일본에 항거하는 대표적인 저항가요가 되었고, 서귀포 칠십리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서귀포시에서는 온 국민이 즐겨부르며 서귀포의 이상향으로 승화된 ‘서귀포 칠십리’의 서경을 모든 분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1997. 4월 외돌계 동쪽 해안에 노래비를 건립했으나, 2003년 9월 태풍(매미) 내습으로 파손이 되자, 2004년 8월 ‘서귀포’가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 재건립하였다.〈Description of the song-monument in Seogwipo Chilsimni〉」(^^)
–〈아주까리 선창〉– 처녀림 작사, 김용환 작곡, 차홍련(1943년 태평레코드사)
1절. 아주까리 선창 우에 해가 저물어 / 천리타향 부두마다 등불이 피면 /
칠석날 찾아 가는 젊은 뱃사공 / 어서가자 내 고향 어서가자 내 고향 / 아주까리 섬
(대사) 사공님, 오시마는 날짜가 오늘이 아닙니까? 아주까리 선창에 칠석달이 둥그렇게
올랐소. 열두 척 나룻배에 꽃초롱을 달고 / 오시마는 날짜가 정녕 오늘입니다. 동해
바다에 섬도 많고 꽃도 많지만 / 이 아주까리 선창으로 어서오세요. 네?
2절. 뱃머리에 흔들리는 피마주 초롱 / 동백기름 비린내가 고향을 안다 / 열두 척
나룻배에 망어를 싣고 / 어서가자 내 고향 어서가자 내 고향 / 아주까리 섬
☞ 망어(芒漁)는 고등어과에 속하는 등푸른 생선으로 길이 1m까지 자라는 물고기입니다.
〈아주까리 선창〉은 1943년 가수 차홍련이 부른 노래로 9월〈북경재〉(김다인/이재호)와 함께 태평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입니다. 차홍련은 권번 출신 기생으로 1942년 태평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무의도 사랑〉(처녀림/이재호)로 가수 데뷔를 했습니다.
그해 9월 태양도 빛을 잃고 있던 암흑기 모든 것이 황폐해져 있을 때 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작사가 처녀림(본명 박영호)는 원산 앞바다에서 펼쳐지는 방어잡이 광경을 보고 노랫시를 짓습니다.
「칠월칠석 무렵이면 어선 뱃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으로 ‘피마주 초롱’ 등잔불을 밝히고 펼쳐지는 열두 척 방어잡이 배에 청년 뱃사공이 커다란 방어를 가득 싣고 선창으로 오기만를 기다리는 동백기름 바른 머리를 곱게 빗은 젊은 아낙네의 심정은 빼앗긴 조국의 광복을 애타게 기다리는 대한국인의 마음을 담았다 하겠습니다.」 동해안 통천이 고향인 작사가 박영호와 원산이 고향인 작곡가 김용환(가수 김정구 형)과 함경도가 고향인 가수 차홍련이 잘 조합된〈아주까리 선창〉은 참 애절한 명곡입니다.
–〈울산 큰 애기〉– 고마부 작사, 이면상 작곡, 황금심(1943년 빅타레코드사)
1절. 동해나 울산은 잣나무 그늘 / 경개도 좋지만 인심이 좋구요 / 큰 애기 마음은
열두 폭 치마 / 실백잣 얹어서 전복쌈일세 / 에에 에에 에헤라 울산은 좋기도 하지
2절. 울산의 큰 애기 거동 좀 보소 / 님 오실 문전에 쌍초롱 달구요 / 삽살개 재 놓고
문 밖에 서서 /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다네 / 에헤에에 울산의 큰 애기 좋기도 하지
3절. 동해나 울산의 큰 애기들은 / 유정도 하지만 알뜰도 하지요 / 하룻밤 정든 님
이별이 설워 / 칠성단 모시고도 축원이라네 / 에헤에에 에헤라 울산은 좋기도 하지
〈울산 큰애기〉1937년 황금심이 부른 노래로 1943년 1월 빅타레코드사에서 박단마〈대장군 고개〉와 함께 발매했던 곡입니다. 〈울산 큰 애기〉는 울산의 수려한 경치와 동해의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사람 살기 좋고, 인심도 넉넉하며, 심성 좋고, 마음 씀씀이도 예쁘고 풍성한 큰 애기(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를 칭함)를 잘 표현한 노래입니다.
1933년 어느 날. 울산이 고향인 고복수(1911년∼1972년)는 이면상(1908년∼1989년 본명 이운정, 함경남도 함주 출생)이 작곡하고 있는 노래가 고향 울산을 노래한〈울산 큰 애기〉라는 것을 알고 “이 노래 금심이에게 주면 좋겠네”라고 말하자 두 사람이 연인 관계인 것을 알고 있던 이면상은 흔쾌히 승낙했고, 노래까지 히트하자 둘 사이는 더욱 가까워져 1941년 혼인을 했습니다. 고복수와 황금심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는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62년 어느날 KBS 교향악단 지휘자 작곡가 김희조에서 울산에서 어느 여학생이 보낸 테잎 한 개가 전해졌는데, 반주도 없이 불렀다는 전통민요〈울산 아가씨〉라고 적혀 있었고, 노래의 선율이 아주 신선하다고 느껴 연주곡, 합창곡으로 편곡해 방송을 타면서 국민들에게 알려졌으며, 리틀엔젤스의 국외공연과 각종 행사 등에서 불려졌습니다.
필자는 소프라노 강혜정 계명대 교수가 부른 영상을 즐겨 보고 있지만, 오늘은 2018년 4월 23일 가요무대에 출연한 국악인 김세윤이 부른 노래를 올려드리겠습니다. 또 다른 가요은 1965년 김상희〈울산 큰애기〉가 있습니다.
다음에는 1946년∽1948년〈귀국선〉〈럭키 서울〉2곡에 대한 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