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3. 1946년∼1948년〈귀국선〉,〈럭키 서울〉(2022.10.24.)
오늘은 1946년부터 1948년까지입니다.
1946년의 전통가요는 손석봉〈귀국선〉(손회몽/이재호)가 있고, 이 해에는 5월 15일 부산대학교 개교, 9월 20일 제1회 칸 영화제 개막, 10월 6일 경향신문 창간, 탄생한 인물은 2월 16일 배우 고은아, 3월 9일 가수 윤복희, 5월 10일 피아니스트 백건우, 5월 9일 가수 송대관, 6월 14일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7월 6일 미국 제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 8월 19일 탤런트 노주현, 미국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 9월 1일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9월 27일 가수 남진, 10월 16일 시인 김남주, 11월 13일 작가 한수산, 12월 18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이 있고, 1947년 전통가요는 김용대〈청춘의 꿈〉(김용대/김용대), 송민도〈고향초〉(조명암/ 박시춘), 한복남〈빈대떡 신사〉(한영순/양원배), 현인〈신라의 달밤〉(유호/박시춘)이 있고, 이 해에는 3월 12일 트르먼 독트린 발표, 6월 21일 대한민국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입, 9월 18일 미국 중앙정보국(CIA) 발족, 탄생하신 인물은 1월 14일 코메디언 배일집, 2월 2일 가수 송창식, 2월 11일 가수 나훈아, 3월 23일 배우 김희라, 3월 25일 비틀즈 앨튼 존, 6월 19일 배우 윤여정, 7월 16일 배우 문희(본명 이순임), 8월 28일 방송인 이상벽, 9월 25일 지휘자 금난새, 10월 19일 탤런트 홍세미(도홍숙), 11월 19일 가수 윤형주, 작고한 인물은 7월 19일 정치가 몽양 여운형 등이 있습니다.
1948년 전통가요는 가요황제 남인수〈가거라 삼팔선〉(이부풍/박시춘), 박재홍〈울고넘는 박달재〉(반야월/김교성), 장세정〈울어라 은방울〉(조명암/김해송), 현인〈럭키 서울〉(유호/박시춘), 〈비내리는 고모령〉(유호/박시춘)이 있고, 이해에는 4월 3일 제주 4·3사태 발발, 5월 10일 제헌국회 구성 총선거일, 7월 17일 대한민국 제헌 헌법 공포,
7월 24일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년∼1965년 황해도 평산) 취임, 8월 4일 제헌 국회의장 신익희, 부의장 김약수 선출, 8월 5일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인준, 8월 7일 초대 정부 11부 4처 66국 기구 결정,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9월 5일 대한민국 육군·해군 발족, 10월 19일 여수·순천 사건, 탄생한 인물은 3월 26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5월 18일 문학인 이문열, 7월 15일 가수 김세환, 7월 25일 DJ 김기덕, 8월 1일 가수 김국환, 8월 13일 탤런트 박혜숙, 9월 26일 올리비아 뉴턴 존, 12월 18일 가수 조경수, 12월 21일 가수 배인순, 작고한 인물은 1월 30일 인도 마하트마 간디, 8월 16일 미국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 등이 있습니다.
오늘은〈귀국선〉,〈럭키 서울〉2곡을 올립니다. 〈청춘의 꿈〉(55회), 〈빈대떡 신사〉(68회), 〈신라의 달밤〉(24회), 〈가거라 삼팔선〉(13회), 〈울고넘는 박달재〉(33회), 〈울어라 은방울〉(65회), 〈비내리는 고모령〉(62회)는 괄호 안 회차를 참고하시고, 먼저 1970년경 이인권이〈귀국선〉을 부르는 영상을 올립니다.
아래의 url을 터치하시면 해당 컬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청춘의 꿈〉(55회)
독자논단, “고인돌의 트로트 세월따라 따라”
〈빈대떡 신사〉(68회)
독자논단, ” 고인돌의 트로트, 세월따라 사연따라”
〈신라의 달밤〉(24회)
독자논단,”교문2동 고인돌의 트로트, 세월따라 사연따라’
〈가거라 삼팔선〉(13회)
독자논단, “교문2동 고인돌의 트로트, 세월따라 사연따라”
〈울고넘는 박달재〉(33회)
독자논단, “고인돌의 트로트, 세월따라 사연따라”
〈울어라 은방울〉(65회)
독자논단, “고인돌의 트로트 세월따라,사연따라”
〈비내리는 고모령〉(62회)
독자논단, “고인돌의 트로트 세월따라 사연따라”
–〈귀국선〉– 손회몽 작사, 이재호 작곡, 손석봉(1946년 음반 1949년 오리엔트레코드사)
1절.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 산천 찾아서 /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깃발을 /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은 크다
2절. 돌아오네 돌아오네 부모 형제 찾아서 / 몇 번을 울었던가 타국 살이에 / 몇 번을
불렀던가 고향노래를 / 칠성별아 빛나라 달빛도 흘러라 / 귀국선 고동소리 건설은 크다
3절. 돌아오네 돌아오네 백의 동포 찾아서 / 얼마나 싸웠던가 우리 해방을 / 얼마나
찾었던가 우리 독립을 / 흰구름아 날라라 바람은 불어라 / 귀국선 파도위에 새날은 크다
〈귀국선〉은 1946년 손석봉이 부른 노래로 음반은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이인권에게 취입시키고자 했으나 그를 찾지 못해 신세영이 녹음 1947년 9월 음반을 발매했고, 그 후 이인권이 녹음 1949년 오리엔트레코드사를 통해 발표돼 히트했으며, 손회몽은 작사가 손로원의 필명이고 손석봉은 1939년 ‘오케전선콩쿠르대회’를 통해서 데뷔한 가수입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오는 많은 사람들의 벅찬 감격을 생생한 노랫말로 표현해 국민들에게 심금을 울린 곡입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와 징용으로 동남아 등지로 끌려갔던 동포, 식민지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낯설고 물설은 이국만리로 떠났던 동포들이 부산항, 인천항 등으로 향하는 귀국선에 몸을 싣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벅차고 감격적인 장면들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1945년 작사가 손로원은 부산항 제 1부두로 들어오는 귀국선을 본 느낌을 가을 어느날 오선지에 노랫말을 쓰고, ‘동양의 슈베르트’라는 이재호가 곡을 붙였습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던 이 노래는 광복 이후 최초의 히트곡이지만 기술과 물자 부족 등으로 음반 제작 환경이 열악해 1947년 신세영이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첫 음반을 제작 발표했고, 광복절 기념식 등에서 불리워지면서 1949년 이인권이 재취입해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 1945년 10월 16일 이승만 박사, 11월 23일 김구 주석 등 임정요인이 귀국했습니다.
–〈럭키 서울〉–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1948년 럭키레코드사)
1절. 서울의 거리는 사랑의 거리 / 사랑의 거리에는 희망이 솟네 / 타이프 소리로
해가 저무는 / 빌딩가에서도 웃음이 솟네 / 너도 나도 부르자 사랑의 노래 /
다 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 S.E.O.U.L S.E.O.U.L 럭키 서울
2절. 서울의 거리는 명랑한 거리 / 명랑한 거리에는 건설이 있네 / 타이프 소리로
해가 저무는 / 빌딩가에서도 웃음이 솟네 / 너도 나도 부르자 사랑의 노래 /
다 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 S.E.O.U.L S.E.O.U.L 럭키 서울
(3절. 서울의 거리는 명랑한 거리 / 명랑한 거리에는 행운이 있네 / 비둘기 나는
지붕 위에는 / 오색빛 무지개가 아름답구나 / 너도 나도 부르자 행운의 노래 /
다 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 S.E.O.U.L S.E.O.U.L 럭키 서울)
〈럭키 서울〉은 광복 이후 처음 음반을 발표한 대한민국 가수 제 1호인 현인(1919년∼2002년 본명 현동주, 부산 영선동 출생)이 1948년 부른 노래로 1949년 8월 옥두옥〈남원 소식〉(김초향/박시춘)과 함께 럭키레코드사를 통해서 음반을 발매하였습니다. ‘럭키 서울’ 제목을 영국 담배 ‘럭키스트라이크(LUCKY STRIKE)’에서 착안한 작사가 유호(1921년∼2019년 본명 유해준, 필명 호동아, 황해도 해주)은 상당한 애연가였습니다.
1992년 정두수 선생님 글,「1948년 봄. 신문기자였던 작사가 유호는 작곡가 박시춘과 친분때문에 박씨가 세운 럭키레코드사 문예부장도 겸해야 했다. 현인의〈신라의 달밤〉이 크게 히트하는 바람에 럭키레코드사까지 창립한 박시춘은 이때 신보를 내기 위해서 서둘렀다. “이왕에 회사를 차렸으니 신보를 한꺼번에 2장을 내기로 합시다. 〈비내리는 고모령〉,〈서울야곡〉,〈고향만리〉,〈낭랑 18세〉,〈선죽교〉등은 잘됐지만, 딱 한 곡이 부족하니 어서 가사를 써주시오.” SP시절이라 레코드 한 면에 2곡이 들어갔다. 그러니 2장의 레코드를 내려면 8곡이 필요한데 한 곡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호는 당시 필동에 살던 박시춘 집에서 작사에 골몰했지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술만 퍼마셔 댔다. 그러던 어느날, 모두 퇴근해 버린 신문사 편집국에 홀로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작사를 구상하던 유호의 눈길이 무심코 창밖 조선호텔의 외국인들에게로 갔다. “우리 서울에도 이젠 외국인들이 찾아서 오는구나. 그렇다면???” 유호는 순식간에 ‘서울’을 떠올렸다. 해방 이후 환희와 활기에 찬 서울의 노래를 만들자는 생각이 솟구쳤던 것이다. 때마침 그가 피우던 담배 이름이 ‘럭키 스트라이크’에서 ‘럭키’라는 어휘도 빌려〈럭키 서울〉로 노랫말을 정리했다. 이 때 그의 귓전에는 영자 타이핑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 유호 대표곡 〈신라의 달밤〉,〈고향만리〉,〈비내리는 고모령〉,〈낭랑 18세〉,〈서울야곡〉,〈전우야 잘자라〉,〈전선야곡〉,〈이별의 부산정거장〉,〈맨발의 청춘〉,〈님은 먼 곳에〉
☞ 옥두옥(1926년 본명 김문찬)은 1947년 김백희, 이예성, 원방현, 이계운과 8월 1일 합류한 송민도, 금사향, 고대원과 함께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전속가수1기로 선발돼 1948년 박재홍과 듀엣으로 오케레코드사를 통해서 발표한〈눈물의 오리정〉(김초향/박시춘)으로 데뷔 1948년〈남원 소식〉(김건=김초향/박시춘), 1949년〈목장의 노래〉(유호/박시춘)〈애수의 네온가〉(김초향/박시춘)〈청춘 블루스〉(김초향/박시춘) 등이 있습니다. 특히 재미교포 2세와 혼인 후 미국으로 건너가 1956년 예명 ‘Kim Moon’으로 현인〈고향만리〉를 리메이크 한〈EAST OF MAKE BELIEVE=동쪽나라〉와 장세정〈역마차〉를 영문으로 리메이크 한〈KANDA KANDA〉음반을 발매한 최초의 한류스타였습니다. 이 두 곡은 1958년 유니버샬레코드사를 통해 국내에서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1989년 8월 14일, 12월 25일 가요무대 2개 영상을 올리겠습니다. 즐감하세요.
다음에는 1949년∼1950년〈금박댕기〉,〈무영탑 사랑〉,〈약산 진달래〉를 올리겠습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