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평화통일의 방향에 대하여
혁명은 그 자체로 괄목상대이다.
제 2차 산업혁명은 생산력에 있어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터닝 포인트를 제공해줬다.
증기기관의 힘은 이제 인간의 힘을 대체할 새로운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잠실벌에 있는 롯데 월드타워의 건설을 목격하였고, 가까이는 중부 제2 고속도로의 건설도 그렇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한국 건설업만 보더라도 이제는 삽질의 시대를 넘어 자연의 힘과 대적할만한 거대한 힘을 소유하게 된 것은 확실하다.
이런 과학의 발달을 인간 연구의 정수인 성리학의 눈으로 볼 때는 자연의 판도라를 연 잡술에 불과하다며 문을 닫고 귀를 막은 결과 서구 오랑캐들의 말발굽에 놀아나고 말았다. 적어도 조선의 지배층들은 도도한 세계사적 흐름을 보지 못하였고 양반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근대화 체계를 온몸으로 맞서는 것 뿐이었다.
성리학으로 연대한 중국과 조선의 운명이 어쩌면 그리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는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역사는 되풀이 되고 도전에 대한 응전이다.
조선의 패망은 어찌 보면 임진전쟁 이후가 더 “자연스럽다”라는 학자들의 이야기도 있다.
일제의 패망이후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에 대하여 운명의 한판 승부가 있었다. 박헌영의 길, 김구의 길. 이승만의 길 등 크게 대별할 수 있었는데 한국은 이승만의 길을 선택하였고, 파이널 전이라고 할 수 있는 6.25 전쟁에서 승부를 내지 못하고 김일성의 길과 이승만의 길로 나뉘게 되었다.
김일성의 길은 북한 사람에겐 남한의 박정희와 김구를 담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처음에는 승승장구하였으나 사회주의라는 차의 한계로 말미암아 미래로 향하지 못하고 운전사만 바꿔 돌려 막는 고려 말 무인정권의 길을 가고 있다. 미국을 악마화한 반미의 빵을 먹으면서 말이다. 그 이후 고려의 말처럼 육룡이 나르샤 조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형국이다.
이승만의 길은 건국의 길이었다. 정조는 사도세자를 죽인 관료들과 야합하여 화성에 새로운 도읍지를 건설한 것처럼, 일제 부역자들과 야합하여 한국건국의 기틀을 잡았다. ‘사회주의 차’대신 ‘자유의 배’를 타고 해양으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주린 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의 정신으로 세계 10대 나라의 대열에 올랐다.
김일성의 길과 이승만의 길은 지금도 향해 중이다. 김일성은 대륙을 향하여, 이승만은 바다를 향하면서 아직도 체제 전쟁 중에 있다. 최근 북한은 미완의 해방 전쟁을 완전한 해방전쟁으로 이끌어 내겠다며 핵 무력 사용을 공식화했다. 마지막 전쟁을 동귀어진(同歸於盡)으로 삼겠다는 신물나는 벼랑 끝 전술이다.
한국은 비핵화 전략 속에 핵전전쟁을 막아낼 전술을 고심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현실적으로 전술핵보단 나토식 핵 공유뿐이다. 핵확산 금지의 전략을 지키며 거기다가 미국 전략자산의 대한반도 근접배치까지 함께 담아야만 한다. 안보의 포트폴리오는 만일의 사태에 맞추어 대비해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
김일성의 길과 이승만의 길은 향후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다. 3대 세습과 핵 무력 사용이라는 미답의 길을 가는 북한과 지지고 볶아도 자유의 길을 가는 남한이 함께 공조하기보다는 자유와 민주에 대한 가치연대를 통하여 선진대한민국을 향하여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뿐이다. 예맨식 연방제 통일의 길을 기대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우리의 갈 길은 보편적 가치의 길에 조용히 복무할 뿐이다. 중국식 길도 아니란 걸 명토박아둔다.
*상기 컬럼은 본자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