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85. 1951년∼1953년〈향수〉,〈한강〉(2022.11.07.)
오늘은 1951년부터 1953년까지입니다.
1951년 전통가요는 신세영〈전선야곡〉(유호/박시춘, 14회차),황정자〈삼다도 소식〉(유호/박시춘, 29회차)가 있고, 이 해에 일어난 소사로는 1월 4일 1.4후퇴, 1월 11일 삼성물산 설립, 3월 14일 서울 재수복, 7월 10일 개성 휴전 회담 개시, 8월 16일 서울↔부산 전화 개통, 탄생한 인물은 1월 2일 가수 김추자, 1월 20일 가수 이미배, 1월 25일 가수 방주연, 3월 31일 가수 김민기, 5월 13일 가수 은희, 5월 22일 탤런트 고두심, 8월 20일 탤런트 한혜숙,
9월 9일 가수 배인숙, 10월 11일 탤런트 김자옥, 11월 5일 김종학 PD, 12월 14일 가수 어니언스 이수영, 12월 20일 가수 오승근, 12월 26일 가수 임창제, 월일 미상 가수 문정선, 작고한 인물은 1월 5일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 소설가 김동인, 6월 20일 시인 김상용 등입니다.
1952년의 전통가요는 금사향〈님계신 전선〉(손로원/박시춘, 15회차), 박단마〈슈샤인 보이〉(이서구/손목인), 심연옥〈아내의 노래〉(유호/손목인, 15회차), 현인〈인도의 향불〉(손로원/전오승, 66회차) 등이 있습니다.
15회차 아래를 터치하시면 해당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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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에는 2월 1일 재향군인회 창설, 2월 6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4월 25일 시·읍·면 지방의회의원 선거, 8월 5일 제2대 대통령 선거, 8월 28일 일본과 독도 분쟁 발생, 9월 1일 국군의 징병제 실시, 10월 15일 백마고지 전투 승리, 탄생한 인물은 1월 1일 배우 안성기, 1월 25일 가수 이수미, 2월 2일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4월 1일 코메디언 이용식, 5월 8일 영화배우 이덕화, 5월 11일 가수 정훈희, 5월 22일 가수 백영규, 6월 1일 코메디언 배연정, 6월 18일 SM엔터대표 이수만, 6월 27일 가수 이용복, 7월 21일 방송인 강석, 7월 22일 탤런트 박정수, 8월 13일 가수 양희은, 10월 5일 수영 국가대표 조오련, 10월 6일 가수 조항조, 10월 31일 개그맨 임하룡, 12월 3일 영화배우 김명곤·탤런트 백준기 등입니다.
–〈슈샨보이〉– 이서구 작사, 손목인 작곡, 박단마(1952년 스타레코드사)
1절. 슈샨 슈샨보이 슈샨 슈샨보이 / 슈슈슈슈 슈샨보이 슈슈슈슈 슈샨보이 /
헬로 슈샤인 헬로 슈샤인 / 구두를 닦으세요 구두를 닦으세요 구두를 닦으세요 /
아무리 피난터에 허둥거려도 / 구두 하나 깨끗하게 못 닦으시는 / 주변 없고 배짱
없는 고림보 샌님은 / 요사이 아가씨는 노 노 노 노굿이래요
2절 슈샨 슈샨보이 슈샨 슈샨보이 / 슈슈슈슈 슈샨보이 슈슈슈슈 슈샨보이 /
헬로 슈샤인 헬로 슈샤인 / 구두를 닦으세요 구두를 닦으세요 구두를 닦으세요 /
아무리 돈벌이에 뼈가 빠져도 / 구두 하나 깨끗하게 못 닦으시는 / 게으름뱅이
안달뱅이 깡노랭이는 / 요사이 아가씨는 노 노 노 노굿이래요
3절. 슈샨 슈샨보이 슈샨 슈샨보이 / 슈슈슈슈 슈샨보이 슈슈슈슈 슈샨보이 /
헬로 슈샤인 헬로 슈샤인 / 구두를 닦으세요 구두를 닦으세요 구두를 닦으세요 /
아무리 머슴살이 목이 메어도 / 구두 하나 깨끗하게 못 닦으시는 / 약아버린
앵두같은 처량한 길손 / 요사이 아가씨는 노 노 노 노굿이래요
〈슈샨보이〉는 1952년 박단마(1921년∼1992년 개성 출생)이 부른 노래로서 이예성〈전선의 소야곡〉(호동아/손목인)과 함께 1954년 7월 스타레코드사에서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그 당시 살기 위해 남녀노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생활 전선을 뛰어 다녔는데, 구두를 신은 사람도 많지 않던 시절이라 구두 닦던 사람은 주로 미군들이었다 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해맑게 자라나는 슈샨보이들과 힘겹게 살아가는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고, 기를 살려준 노래가 은쟁반에 옥구슬을 구르는 박단마〈슈샨보이〉였습니다.
1953년의 전통가요는 남인수〈이별의 부산정거장〉(호동아=유호/박시춘, 17회), 박재홍〈경상도 아가씨〉(손로원/이재호, 16회)〈향수〉(배석영/이재호), 백설희〈봄날은 간다〉(손로원/박시춘), 심연옥〈한강〉(손로원/최병호), 이인권〈미사의 노래〉(임영일/이인권, 42회), 장세정〈샌프란시스코〉(손로원/박시춘, 66회), 한정무〈에레나가 된 순이〉(손로원/한복남), 현인〈굳세어라 금순아〉(강사랑/박시춘, 16회) 등이 있습니다. 이해에는 1월 9일 다대포 여객선 창경호 침몰, 5월 29일 뉴질랜드 애더먼드 힐러리경 에베레스트 첫 등정, 6월 2일 영국 웨스트민스터사원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7월 27일 휴전협정, 10월 11일 항공기 ‘부활호’ 제작, 탄생한 인물로는 1월 22일 피아니스트 정명훈, 1월 24일 제19대 대통령 문재인, 1월 29일 가수 등려군, 3월 13일 가수 김수희, 4월 5일 가수 태진아, 4월 23일 바둑기사 조훈현, 5월 22일 축구선수 차범근, 6월 28일 영화배우 안인숙, 8월 18일 가수 배철수, 코메디언 엄영수, 11월 10일 가수 강은철, 12월 13일 배우 독고영재, 작고한 인물은 4월 19일 독립운동가 이시영 등이 있습니다.
–〈향수〉– 배석영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1953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부모형제 이별하고 낯설은 타관에서 / 어머님의 자장가를 노래하던 그 시절이 /
슬픔 속에 눈물 속에 흘러갑니다 / 기적소리 울 적마다 기적소리 울 적마다 그리운 내 고향
2절. 고향산천 이별하고 차디찬 타관에서 / 어머님의 사랑 속에 자라나던 그 시절이 /
구름 속에 바람 속에 흘러갑니다 / 쌍고동이 울 적마다 쌍고동이 울 적마다 그리운 내 고향
〈향수〉는 1953년 박재홍이 부른 노래로〈물방아 도는 내력〉과 함께 도미도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으로, 부산 아미동에서 도미도레코드사를 운영하던 한복남은 어느날 국제시장 국밥집에서 일하던 한 소녀로부터 예쁜 쪽지를 전달 받아 읽어보니 부모 없이 계모와 살았는데, 껌장사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계모도 도망쳐 이제는 부모형제도 없고, 고향도 없는 홀로된 신세를 한탄한 내용이라 작곡가 이재호에게 곡을 부탁해 완성되자 국밥집을 찾았으나 소녀가 없어져 작사가를 문예부로 표기해서 박재홍이 취입했습니다.
–〈한강〉– 손로원 작사, 박병호 작곡, 심연옥(1953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한많은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는 / 어제밤 이슬비에 목메어 우는구나 /
떠나간 그 옛님은 언제나 오나 / 기나긴 한강 줄기 끊임없이 흐른다
2절. 나루에 뱃사공 흥겨운 그 옛노래는 / 지금은 어디가서 물새만 우는구나 /
외로운 나그네는 어데로 갔나 / 못 잊을 한강수야 님을 싣고 흐른다
〈한강〉은 1953년 심연옥이 부른 노래로 남해남〈총각 뱃사공〉과 함께 도미도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으로, 1947년 최병호 작사·작곡인 노래를 1952년 가사 일부를 개사해 불러 히트한 노래입니다.
그 당시 한강변에 늘어선 버드나무 아래에서 장기를 두시던 할아버지들 모습이 그려지고, 어머니의 고운 손길과 치맛자락이 한없이 그리워지게 만드는 대중가요〈한강〉은 맑으면서도 가냘픈 소리와 꾸미지 않고 힘차게, 자연스럽게, 청아한 심연옥의 음색이 어우러져 저절로 한강가에 서 있는 듯한 감흥에 젖게 합니다.
2011년 1월 1일 발행『문공회보』통권 50호 특집호에 실린 최병호의 글「내가 작사 작곡한〈한강〉이야기. 지난 날 서울 근교에 있는 뚝섬 유원지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넓은 백사장에 수양버들, 버드나무 등 많은 수목으로 운치가 있었습니다. 그 곳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수영인파와 놀이배 타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간혹 뗏목이 유유히 흘러가는 것을 볼 때면 낭만적인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비극이 시작됐고, 1951년 1.4후퇴 때에는 ‘아름다운 서울, 정든 서울’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한강 인도교가 끊겼기에 결빙된 마포강을 건너는 피난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서울 방송국 소속 공무원으로 한강교 폭파전에 정부에서 마련한 마지막 열차를 타고 부산에 갔습니다. 부산방송국은 지방방송국 기능으로 중앙방송국 역할을 하게 되었고, 저는 방송국 뒷 마당에 판자집을 마련하여 피난 생활을 시작했으며, 당시 이런저런 생각들이 끊이지 않았지만은 추억속의 아름다운 서울을 자주 떠 올리게 됐습니다. 그 무렵 1952년 제가 작사·작곡한〈한강〉이 재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에서 피난온 방송국 전속 가수들에게〈한강〉곡을 주어 시켜 봤지만 가수들이 곡을 적절히 소화하지 못해 고민하던 저는 어느날 대구「문화극장」에서 방송 공연을 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심연옥을 만나 방송 실연공연에 출연시키자 (1953년) 예상했던 대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반주 공군경음악단) 그때부터〈한강〉은 심연옥이 부르게 되었습니다.」
–〈에레나가 된 순희〉– 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한정무(1953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그날 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캬바레에서 / 보았다는 그 소문이 들리는 순이 /
석유불 등잔 밑에 밤을 새면서 / 실패 감든 순이가 다홍치마 순이가 / 이름 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이 순이 /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드냐
2절. 그 빛깔 드레스에다 그 보석 귀걸이에다 / 목이 메어 항구에서 운다는 순이 /
시집 갈 열아홉살 꿈을 꾸면서 / 노래 하는 순이가 피난 왔던 순이가 / 말 소리도
이상하게 달라진 순이 순이 / 오늘 밤도 양담배를 피고 있드냐
〈에레나가 된 순희〉는 1953년 한정무가 부른 노래로〈신라의 칼〉과 함께 도미도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입니다.
음반 발매 후 대중들의 반응이 없자 작곡가 한복남이 1961년 안다성에게 재취입 시켜 히트한 곡입니다. 안다성의 노래가 크게 히트하자 대중들은〈에레나가 된 순희〉원창자가 안다성으로 알려졌지만,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의 증언으로 원창자가 한정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어서 음반도 발견이 되었습니다.
한편 2절 마지막 부분의 원래 가사 “오늘 밤도 양담배를 피고 있드냐”를 1961년 당시 정부의 양담배 단속 시책에 맞추어 “오늘 밤도 파티에서 웃고 있더라”로 바뀌었습니다.
전쟁이 남겨 놓은 상흔이 어둡게 드리워진 그 시절 당시, 꽃다운 나이에 행복한 혼인을 준비하던 시골 처녀가 집안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낮설은 타향 역전 앞, 항구 등지에서 웃음을 파는 에레나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누이들의 비극적인 삶을 담아낸 노래로 경쾌한 탱고 리듬으로 멜로디를 붙혀 불러 더욱 애절하게 느껴집니다. 발매 당시 제목은〈에레나가 된 순희〉였는데, 곡 심의 과정에서 제목를 변경할 것을 요구 받아〈잊지 못할 순희〉로 바꿨다 또다시〈에레나가 된 순희〉로 발매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유행가연구원 유차영 원장의 글에서 발췌하면「〈에레나가 된 순이〉노래에서, 에레나는 그 황막하던 시절 주한 외국군을 상대로 접객을 하던 여성, 양공주의 애칭이다. 이들은 그 시절 전쟁통에 핍박해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한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6.25 전쟁 중에 발생한 20만 미망인, 전쟁 고아 10만, 이산가족 1천만 여 명의 목숨 줄 상당 부분이 이들의 생계 활동에 매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중략) 1953년의 시대상을 엮어 낸 노래가 〈에레나가 된 순이〉다. (중략) 이 노래는, 1959년 안다성(1930~청주 출생)이 리메이크하여 더욱 유명세를 탄다.
이 때 노래 오프닝 대사가 낭송된다. 「전쟁의 뒤안길엔 비극도 많았지 / 이런 눈물겨운 해후도 있었더란다 / 헬로우 헬로우~ 헬로우 하이~ / 하이 순희 순희 날 몰라 보겠어? / 사람을 잘못 봤지예? / 흐흐흐흐흐 하하하하하 니가 웃겼찌비 하하하 / 나는 에레나가 아이겠소 하아 하하하하」
오늘은 보너스 하나를 더 올리겠습니다.
지난 3일(목) 오후 2시 30분∼4시 40분까지 일산 JTBC-TV 일산 스튜디오에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선생님께서 국가유공자를 위한 ‘이미자 특별 감사 콘서트’를 녹화했습니다. 소개글을 보면「시대의 애환을 노래하는 단 하나의 목소리, 이미자!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주신 시청자 여러분과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신 영웅들을 위해 준비한 특별 감사 콘서트」
방영은 12월부터 TV조선 ‘내일은 미스트트롯2’ 방영 기념으로 11월 말경 예정입니다. 필자를 비롯한 ‘엘레지여왕 이미자 팬클럽’ 동백꽃 회장과 회원 10명은 특별 초청을 받아 오후 1시에 현장에 도착해 스튜디오 바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30분 전 입장할 때 길게 늘어선 방청객들 틈에서 질서 정연하게 입장하여 A구역 89번 자리에 앉아서 녹화가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2시간 10분 동안 차분하게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필자는 10여 차례 이미자 선생님 공연장을 찾았지만, 국가애도기간이라 공연은 아주 차분하게 진행됐으며, 방청객들도 한결같이 차분한 마음으로 공연을 지켜보았습니다. 이미자 선생님께서 선정하신 노래도 조용하게 부르시는 곡들이었고, 게스트로 출연한 조항조, 영탁, 김용임도 차분하게 부르는 곡을 선정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자는 공연을 꼼꼼히 적어봤습니다. 14:30 김철수 지휘자와 이미자 선생님 오케스트라 40여 명이〈동백아가씨〉등 3곡 연주와 무용이 함께 펼쳐집니다. 이어서 이미자 선생님께서 무재에 나오셔서〈동백아가씨〉를 부르시고, 사회자 임성훈이 등장해 간략한 인사말을 한 후 다시〈여로〉〈아씨〉〈울어라 열풍아〉를 부르신 후 퇴장. 파독 광부와 간호사 4분의 인터뷰 영상 방영 후, 조항조〈고맙소〉에 이어〈남자라는 이유로〉 1절을 부르자 이미자 선생님께서 무대로 나오셔서 2절을 부르신 후〈황혼의 부르스〉,〈황포돛대〉,〈서울이여 안녕〉을 부르신 후 임성훈이 등장해 두분께서 전통가요 이야기를 나눈 후〈봉선화〉,〈황성옛터〉,〈전선야곡〉을 부르신 후〈모정〉 1절을 부르시자 영탁이 등장해 듀엣으로 2절을 부르시고, 영탁은〈이불〉을 부르고 퇴장.
이어서 연평해전·천안함·철책선 지뢰 폭발 사고·6.25와 월남전 참전 국가유공자들의 인터뷰 영상 방영에 이어서 김용임이 무대로 등장해〈훨훨훨〉과 함께 인사말을 하고,〈노래는 나의 인생〉1절를 부르자 이미자 선생님께서 무대로 나오셔서 2절을 듀엣으로 부르신 후〈여자의 일생〉,〈기러기 아빠〉,〈내 삶의 이유 있음은〉을 부르시고 나자 임성훈이 또 등장해 인터뷰 질문 “괜찮으세요 지금?” 이미자 선생님 “용을 쓰고 있어요.” 답변과 동시에 두 분과 악단, 방청객들 모두가 웃음… 인터뷰가 끝난 후에 마지막으로 데뷔 60주년 기념곡인〈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를 부르자 임성훈이 등장〈섬마을 선생님〉을 권유하자 공연 사상 처음으로 방청객과 함께 부르자고 제안하시고, 1절을 부르신 후 방청석으로 내려오셔서 국가유공자들의 손을 잡아 주시는 가운데 방청객들은 2절을 계속 부릅니다.
다음엔 1954년〈남원의 애수〉,〈고향의 그림자〉,〈고향은 내 사랑〉글을 올리겠습니다.
*상시 컬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