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88. 1956년〈소녀의 꿈〉,〈청포도 사랑〉 (2022.11.28.)
오늘은 1956년입니다.
1956년의 전통가요는, 금사향〈소녀의 꿈〉(손석우 작사·작곡), 나애심〈백치 아다다〉(홍은원/김동진)〈세월이 가면〉(박인환/이진섭), 남인수〈무정열차〉(반야월/이재호)〈산유화〉(반야월/이재호)〈이별의 소야곡〉(한산도/백영호), 도미〈청포도 사랑〉(이화촌/나화랑), 방운아〈마음의 자유천지〉(손로원/백영호), 손인호〈비 내리는 호남선〉(손로원/박춘석), 송민도〈여옥의 노래〉(유호/김광수), 송민도 안다성〈청실 홍실〉(조남사/손석우) 안정애〈대전 부르스〉(최치수/김부해), 이해연〈단장의 미아리고개〉(반야월/이재호) 황정자〈오동동 타령〉(야인초/한복남) 등이 있고, 이 해에는 3월 3일 한국증권거래소 발족, 5월 8일 어머니 날 제정, 5월 12일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국인 대한방송(HLKZ) 개국, 7월 25일 동양제과 재창립, 9월 5일 서울특별시의회 첫 개회, 9월 14일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 9월 15일 제1회 AFC 아시안컵 우승, 10월 6일 한미우호통상조약 체결, 12월 23일 극동방송 개국 등이 있습니다.
태어난 인물로는 1월 6일 가수 강인원, 1월 16일 연극배우 윤석화, 1월 27일 배우 유지인, 2월 21일 가수 장현, 배우 임성민, 3월 18일 코메디언 서세원, 6월 18일 탤런트 유동근, 8월 17일 가수 이주호, 8월 19일 가수 혜은이·탤런트 김영란, 10월 2일 탤런트 이경진, 10월 20일 배우 정성모, 11월 11일 가수 나미(본명 김명옥), 12월 27일 배우 정승호, 작고한 인물은 3월 20일 시인 박인환, 5월 5일 정치인 해공 신익희, 9월 6일 화가 이중섭 등이 있습니다.
오늘은 금사향〈소녀의 꿈〉도미〈청포도 사랑〉방운아〈마음의 자유천지〉남인수〈이별의 소야곡〉4곡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소녀의 꿈〉– 손석우 작사·작곡, 금사향(1956년, 1957년 박신자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무슨 꽃잎이 피어 있을까 / 딸이 뜨면은 해가 지면은 꽃은 외로워 울지 않을까 /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 나비와 같이 훨훨 날아서
나는 가고파 에이야호
2절.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산새 정답게 지저귀겠지 / 피리 불면서 노래 부르면
나도 즐겁게 같이 놀고파 /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 푸른 하늘에 날개를 펴고
나는 가고파 에이야호
3절.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누가 사는지 찾아가고파 / 그림책 속에 왕자님 같이
젊고 씩씩한 님이 살겠지 /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 금빛 찬란한 마차를 타고
나는 가고파 에이야호
〈소녀의 꿈〉은 1956년 금사향(1929년∼2018년 본명 최영필, 평양 출생) 이 부른 노래로, 음반 발매는 1957년 박신자가 리메이크 해 부른 곡을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최숙자〈꼭두각씨〉와 함께 발매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방송사 전속가수와 음반사 전속가수가 구분되어 있어 방송에서 부른 가수와 음반으로 발표하는 가수가 종종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2013년 1월 5일 오후 5시, 서울대입구역 ‘7080 가요무대’에서 열린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의 토크콘서트–원로가수 금사향’편에 직접 출연해〈소녀의 꿈〉을 부르셨습니다. 경북 성주 출생 작곡가 나화랑(1921년∼1983년 본명 조광환, 필명 탁소연)의 맏형인 작사가 고려성(1910년∼1956년 본명 조경환)은 “증류수로 걸러낸 목소리”라는 평을 받던 그녀에게 ‘거문고를 울려서 나는 교향악’이라는 뜻으로 금사향(琴絲響) 예명을 지어주었습니다. 옹달샘에서 솟아나는 샘물 소리 같고, 꾀꼬리 소리와 같은 맑고 고운 소리로 부른〈소녀의 꿈〉은 당시 꿈 많은 소녀들의 풋풋한 마음 속에 간직한 언젠가 만나게 될 낭군을 기다리는 기쁜 마음을 잘 표현해 부른 것 같습니다. 금사향의 본명은 최영필(崔英弼)로 1929년 평양에서 태어나 2018년 작고하셨습니다. 1946년 상공부 영문 타이피스트로 근무하다 럭키레코드사 주최 ‘조선 13도 전국 가수 선발대회’에서 1등으로 선발돼 1947년〈첫사랑〉을 취입했고, 1948년 KBS라디오방송국 제2기 전속가수로 선발됐으며, 1948년 오리엔트레코드사 전속가수로 1949년〈안개낀 부두〉(고려성/나화랑), 1952년〈님계신 전선〉(손로원/박시춘), 1953년 도미도레코드사〈홍콩아가씨〉(손로원/이재호), 1955년 빅토리레코드사〈남국의 처녀〉(박금호/백영호) 등을 발표한 가수입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군예대’에서 활약한 국가유공자였습니다.
박신자(1931년 전라남도 순천 추정)는 가수 주현미의 큰어머니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1953년 오리엔트레코드사 전속가수로〈달보고 별보고〉데뷔, 1954년〈거리의 천사〉(강사랑/박시춘), 1957년 신세기레코드사, 1959년 아세아레코드사 전속가수였습니다.
대표곡은 1959년〈땐사의 순정〉(김영일/김부해)이 있고, 1958년〈홍등가의 여인〉1959년〈단풍처녀〉(양류상/벽호=라음파), 1960년〈애수의 일기〉〈허바허바 부루스〉(이성우/김부해), 1961년〈명동루쥬〉(고명기/김부해), 1962년〈슬픈 서커스〉1964년〈정말 딱해요〉(김진경/벽호), 1965년〈무운을 비옵니다〉(최규남/고봉산) 등이 있습니다.
–〈청포도 사랑〉– 이화촌(나화랑) 작사, 나화랑 작곡, 도미(1956년 킹스타레코드사)
1절.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어여쁜 아가씨여 손잡고 가잔다 / 그윽히
풍겨주는 포도 향기 달콤한 첫 사랑의 향기 / 그대와 단 둘이서 속삭이면 바람은
산들바람 불어준다네 /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 그대와 단둘이서
오늘도 맺어보는 청포도 사랑
2절.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어여쁜 아가씨여 손잡고 가잔다 / 파랗게
익어가는 포도 열매 청춘이 무르익은 열매 / 희망은 하늘 높이 핀 무지개 구름은
꿈을 싣고 두둥실 떴네 /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 그대와 단 둘이서
오늘도 맺어보는 청포도 사랑
〈청포도 사랑〉은 1956년 도미(1934년∼2010년 본명 오종수, 경북 상주 출생)이 부른 노래로, 음반은 1957년 송민도〈목숨을 걸어 놓고〉(반야월/나화랑)과 함께 킹스타레코드사를 통해 발매한 곡입니다. 밝고 희망찬 노랫말과 흥겨운 리듬이 어우러져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전후 복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점차 안정을 찾아가면서 국민들은 마음에도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당시 청춘 남녀들도 연애와 여가활동에 바빠지면서 서울은 뚝섬유원지나 정릉 골짜기 등과 더불어 근교의 딸기밭과 포도밭 등 과수원이 데이트 장소로 가장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청춘남녀들이 버스나 기차를 타고 그곳에 내려 다정히 손을 꼭 잡고 흔들었고 자연을 벗하며 내일의 행복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매년 7월이 되면 생각나는 시(詩)는 총칼 대신 펜을 휘둘렀던 애국지사 시인 이육사(1904년∽1944년 안동 출생)의「청포도」일 것입니다.
이육사의 본명은 원록(源祿)→원삼(源三)→활(活). 퇴계 이황의 14대손입니다. 아호 ‘육사(陸史)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죄수번호 264번을 빌려 ’대구이육사(大邱二六四)를 호로 썼다가, 불행한 역사를 뒤엎겠다는 의지로 ‘죽일 육, 역사 사’를 사용 육사(戮史)로 바꾸었으나, 집안 어른께 일제의 감시를 받을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높고 평평한 산의 꼭대기를 뜻하는 육(陸)자를 사용해 육사(陸史)라 호를 지었습니다.
☞「청포도」(靑葡萄)는 1939년『문장』지 8월호에 발표한 이육사의 자유시, 서정시로 주제는 청포도를 통해서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미래 세계의 소망을 노래합니다.
시, 청포도-이육사「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오늘은 1991년 4월 22일 가요무대에 출연〈청포도 사랑〉을 부르는 영상을 올립니다.
–〈마음의 자유천지〉– 손로원 작사, 백영호 작곡, 방운아(1956년 빅토리레코드사)
1절. 백금에 보석 놓은 왕관을 준다 해도 / 흙냄새 땀이 젖은 배적삼만 못하더라 /
순정에 샘이 솟는 내 젊은 가슴속엔 / 내 맘대로 버들피리 꺾어도 불고 / 내 노래
곡조 따라 참새도 운다
(2절. 높다란 벼슬자리 걸상을 준다 해도 / 밤이면 새끼꼬는 사랑방만 못하드라 /
청춘의 꽃이피는 내 젊은 가슴속에 / 내 맘대로 갈 수 있는 주막도 있고 / 내 사랑
꿈을 따라 샛별도 뜬다.)
3절. 세상을 살수 있는 황금을 준다 해도 / 보리밭 갈아 주는 얼룩소만 못하더라 /
희망에 싹이 트는 내 젊은 가슴 속엔 / 내 맘대로 토끼들과 얘기도 하고 / 내 담배
연기따라 세월도 간다
〈마음의 자유천지〉는 1956년 방운아(1931년∼2005년 본명 방창만, 경산 출생)이 부른 노래로 백설희〈비의 부르스〉와 함께 빅토리레코드사를 통해서 발표한 곡입니다.
어느날 미도파레코드사의 자회사인 빅토리레코드사를 운영하던 작곡가 백영호(1920년∽2003년)에게 작사가 손로원(1911년∽1973년)이 전후 복구에 힘든 삶을 살고 있던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드리고자 만든 향수 어린 노랫말을 보내오자 바로 멜로디를 만들어 방운아에게 녹음을 시키니 그의 맑고 담백한 목소리가 전해지는〈마음의 자유천지〉는 ‘물질적으로 윤택한 삶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마음의 자유와 평화를 느끼지 못하면 모두 헛된 것이다.’라는 삶의 철학이 담겨져 있는 듯합니다. 그 당시 한국전쟁 이후 시련과 아픔속에서 생활하던 수많은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고, 특히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버리고 피난을 가거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돈벌이를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언젠가 다시 고향에 돌아가 부모형제, 고향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고 싶은 망향의 노래이기도 해서 더욱 가슴에 닿았을 것입니다.
2010년 10월 29일〈마음의 자유천지〉노래비가 고향 경산의 남매공원에 세워졌습니다. 필자도 12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 따라 타향 구리에 정착해 수해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식아동으로 학창시절의 추억은 미미할지라도 언제나 마음은 자유천지로 살아왔습니다. 오늘은 1988년 1월 24일 가요무대에 출연해〈마음의 자유천지〉를 부르는 영상입니다.
–〈이별의 소야곡〉–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남인수(1956년)
1절. 아 웬말이냐 이별이 웬말이냐 / 정들대로 정든 지금 이별이 웬말이냐 / 헤어질
운명인 줄 몰랐던 탓에 / 내 마음 송두리째 내 마음 송두리째 / 바친 것이 원수다
2절. 아 꿈이었네 야속한 꿈이었네 / 행복하게 살자하던 맹서는 꿈이었네 / 나 혼자
버려 두고 떠나간 님아 / 차라리 내 신세가 차라리 내 신세가 / 가엾기만 하구나
〈이별의 소야곡〉1956년 남인수가 부른 노래로 1960년 미도파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남인수 걸작집 제3집, 추억의 소야곡’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 〈추억의 소야곡〉〈이별 슬픈 푸랫트홈〉〈님의 통곡〉〈한 많은 누님〉SIDE B면.〈모른체 하네〉〈이별의 소야곡〉〈운명의 캬라반〉〈석류꽃 피는 고향〉등 8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87회차에서〈추억의 소야곡〉〈애수의 소야곡〉과 함께〈이별의 소야곡〉이 가요황제 ‘남인수 3대 소야곡’이라고 글월을 올린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음에는 1957년〈하룻밤 풋사랑〉,〈시골버스 여차장〉,〈모녀기타〉등 5곡을 올립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