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89. 1957년〈하룻밤 풋사랑〉,〈모녀기타〉(2022.12.05.)
오늘은 1957년입니다.
1957년의 전통가요는, 권혜경〈산장의 여인〉(반야월/이재호), 김정애〈닐리리 맘보〉(탁소연=나화랑/나화랑), 방운아〈부산 행진곡〉(야인초/박시춘), 손인호〈물새야 왜 우느냐〉(김운하/한복남),〈울어라 기타줄〉(무적인=이재호/이재호)〈청춘 등대〉(천봉/한복남)〈하로밤 풋사랑〉(이재현/이재현), 송민도〈하늘의 황금마차〉(김문응/나화랑), 심연옥〈시골버스 여차장〉(윤부길/한복남), 원방현〈꽃중의 꽃〉(서일수/황문평), 이해연〈울어라 대동강〉(고명기/이재호), 조민우〈잘있거라 황진이〉(박두환/나화랑), 최숙자〈모녀기타〉(조진구/손목인), 황금심〈뽕따러 가세〉(반야월/나화랑)이 있고,
이 해에는 1월 5일 연세대학교로 변경, 7월 29일 국제원자력기구 설립, 9월 15일 AFKN-TV 방송 개시, 9월 26일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미오와 줄리엣」첫 공연, 10월 9일 한글학회「우리말 큰사전」전 6권 30년만에 완간, 탄생한 인물은 1월 3일 가수 최진희, 1월 10일 탤런트 송승환, 2월 1일 가수 배일호, 4월 2일 가수 노사연, 4월 5일 가수 인순이, 4월 7일 가수 김수철, 탤런트 김갑수, 4월 25일 가수 이용, 6월 29일 배우 안해숙, 8월 11일 소프트뱅크사 손정의, 8월 12일 가수 김학래, 9월 8일 가수 이재성, 9월 29일 코메디언 장두석,
11월 12일 가수 진추하, 11월 30일 가수 나미, 12월 8일 배우 장미희, 12월 12일 아나운서 이숙영, 12월 31일 탤런트 김보연, 가수 선우혜경, 작고하신 분은 1월 15일 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 등이 있습니다.
–〈하로밤 풋사랑〉– 현인남 작사, 이재현 작곡, 손인호(1957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하룻밤 풋사랑에 이 밤을 새우고 / 사랑에 못이 백혀 흐르는 눈물 / 손수건 적시며
미련만 남기고 말없이 헤어지던 / 아아 아아 아아아 하룻밤 풋사랑
2절. 하룻밤 풋사랑에 행복을 그리며 / 가슴을 움켜 안고 애타는 심정 / 이 밤도 못잊어
거리를 헤매며 눈물을 벗을 삼는 / 아아 아아 아아아 하룻밤 풋사랑
〈하로밤 풋사랑〉은 1957년 손인호(1938년∼2016년 평안북도 창성)이 부른 노래로 나애심〈성종의 비가〉(成宗, 현인남/이재현)와 함께 오아시스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입니다. 지금은 제목을 〈하룻밤 풋사랑〉이라고 합니다.
작사가인 현인남은 이재현의 필명입니다. 손인호의 부드럽고 안정적인 기교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하룻밤 풋사랑〉은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 있는 곡입니다. 1954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정비석(1911년∼1991년)의 소설「자유부인」은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로서 1956년 한형모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이나 도시에서 온 총각 손님과 시골 처녀, 섬 처녀와의 하룻밤 풋사랑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씁쓸하지만, 필자는 1985년 말년휴가를 나왔다 김준규&주현미 ‘쌍쌍파티 1집’을 구입하여 반복해 들었는데 총 21곡 중 손인호〈청춘등대〉,〈물새야 왜 우느냐〉,〈하룻밤 풋사랑〉을 가장 많이 들르며 배웠습니다. 제대 후 7월 26일 첫사랑이자 끝사랑인 지금의 어부인과 첫데이트를 한 후 급속도로 가까워졌는데, 한달정도 지난 어느날 저녁 왕숙교를 걸으며 데이터하다가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하룻밤 풋사랑〉을 불렀더니 다시는 그 노래 부르지 말라고 하더군요.(ㅋ)
-〈시골버스 여차장〉- 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 심연옥(1957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오라이 스톱 마즈막 뻐습니다 / 빨리 빨리 타세요 차례 차례로 / 나는요 시골버스
차장이구요 / 그 이는 제대 장병 운전수야요 / 뿌붕뿡 덜컹 덜컹 타이야가 빵꾸 /
시골버스 여차장은 수줍구만요
2절. 오라이 스톱 두시간 연착이요 / 차속에서 여손님 옥동자 났소 / 황소가 길을 막아 늦은데다가 / 빵꾸로 마차 시켜 끌고 왔지요 / 뿌붕뿡 덜컹 덜컹 기어가는 차지만 /
시골뻐스 여차장은 친절하당께
3절. 오라이 스톱 읍네가는 뻐습니다 / 멀미하는 할머니 창옆에 가고 / 친정가는
떡동구리 선반에 놔요 / 족도리 사모관대 신랑 각시는 / 뿌붕뿡 덜컹 덜컹 흔들리면
싱글벙글 / 시골버스 여차장은 명랑하구만
〈시골버스 여차장〉은 1957년 심연옥이 부른 노래로 남백송〈죄많은 인생〉(월견초/한복남)과 함께 도미도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입니다. 1956년 당시 가수 윤항기, 윤복희 아버지인 작사가 윤부길(1912년∼1957년 충남 보령 출신)은 악극단을 이끌고 전국을 다니면서 공연을 했는데, 어느날 전라도 어느 곳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이동하다가 여차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를 착상해 노랫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노래를 따라 부르시며 느끼겠지만 그 당시 버스에는 군대 운전병으로 제대한 기사님을 사랑하는 여차장의 즐거운 하루일과를 직접보는 듯한 생생한 광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루에 한 두번 버스가 배차되던 시절인 당시의 사실적 정겨운 풍경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차장(女車掌)을 어학사전에서 찾아보면「기차나 버스, 전차 따위에서, 찻삯을 받거나 승객이 타고 내리는 일을 보살피는 여자 승무원」으로 돼있습니다. 1961년 교통부에서 공식적으로 여차장제도를 도입해서 등장한 이래 평균나이는 스무살 전후로 새벽 5시에 기상해 2시간 여 근무하면 하루 7∼8번 정도 자정까지 서서 근무를 하였다고 합니다. 수많은 시련과 아픈 설움을 참고 견디며, 가족들 생활비와 동생들 학비를 마련했던 우리들의 누님들… 필자도 학창시절 보았던 여차장 누님들의 삶의 현장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녀 기타〉– 조진구 작사, 손목인 작곡, 최숙자(1957년 신세기레코드사)
1절. 정처 없이 하염 없이 뜬구름 따라 / 굽이 굽이 흘러온 길 아득하구나 / 부여잡은
어머니 손 하도 갸날퍼 / 돌아보니 그 얼굴에 눈물 고였네 / 모녀기타가 모녀기타가
울며 갑니다
(대사) 우리 어머니는 그동안 모진 고생을 하셨어요. 그래서 전과같이 노래를 못 부르
시나 봐요 어머니 기타를 잡으세요. 제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노래를 불러 보겠어요.
2절. 서글프게 해가 지는 저녁 노을을 / 피 눈물로 적시면서 산을 넘었소 / 어머니가
퉁겨 주는 기타 소리에 / 그 노래를 울며불며 뜨내기 평생 / 모녀기타가 모녀기타가
울며 갑니다
〈모녀 기타〉는 1957년 최숙자(1941년∼2012년)이 부른 노래로서 음반은 1963년 신세기레코드사를 통해 발매한 곡입니다. 〈모녀기타〉는 1964년 강찬우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어 1964년 5월 9일 서울「을지극장」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출연 이민자, 태현실, 신영균, 김희갑, 허장강, 황해, 양훈, 남일해, 주란지, 특별 출연 이미자 선생님, 송해, 손목인, 황정자, 안정애, 김용대, 김현미, 카-니홍 등이고, 삽입 주제곡은 남일해, 백설희, 황해, 이남순이 불렀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악극단 가수 난정(이민자)은 악단장 아버지(허장강)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표(신영균)과 혼인해 옥희(태현실), 금희 두 딸을 둔다. 인표가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취직하자 옥희는 악극단의 떠돌이 생활을 그만두고 네 식구가 함께 단란하게 살아갈 꿈에 젖는다. 그러나 인표가 짓던 건물에서 금희가 떨어져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난정은 입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옥희만 데리고 악극단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 인표는 일제에 징용병으로 끌려가고, 난정은 인표와 금희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한다. 그로부터 십여년 후, 난정은 옥희와 함께 술집을 떠돌아다니며 어렵게 살아간다. 난정이 기타를 치면 옥희가 노래를 불러서 손님들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다. 어느날 난정 모녀는 한 여대생의 생일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도록 초대되는데, 그 집은 바로 인표의 집이었다. 난정과 헤어진 후 인표는 사업가로 성공했고, 사장의 여동생과 혼인도 했던 것이다. 착한 인표의 부인은 금희를 친딸처럼 키웠다. 인표로부터 과거를 들은 난정은 인표의 도움을 거절하고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하지만, 이를 안 옥희는 아버지에게 간다. 난정은 옛동료의 도움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공연 도중 옥희를 발견한 난정이 노래를 중단하면서 관객들의 야유를 받는다. 이를 본 옥희는 무대로 뛰어 올라가 난정에게 기타를 들도록 한 다음에 모녀의 사연을 담은〈모녀 기타〉를 함께 부른다.」 처절하고 애절한 감정이 실린 노래를 듣는 순간 관객들의 손에는 손수건이 들리어 지고 하염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는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밤비의 부르스〉– 김부해 작사·작곡, 안정애(1957년 신세기레코드사)
1절. 어느 땐가 그 언젠가 비 오던 그날 밤 / 그대와 단 둘이서 우산을 같이 받고 /
헤매던 그날 밤에 헤매던 그날 밤에 흘러간 로맨스 / 이 밤도 눈물에 젖는 비의 부르스
2절. 어느 땐가 그 언젠가 추억은 애달퍼 / 비오는 거리에서 행복을 서로 빌며 /
헤어진 그날 밤에 헤어진 그날 밤에 흘러간 로맨스 / 이 밤도 가슴에 젖는 비의 부르스
〈밤비의 부르스〉1956년 안정애가 부른 데뷔곡으로 1957년 신세기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전형적인 부르스 곡입니다. 안정애의 풍부한 감정 표현이 잘 나타난 이 곡은 비 오던 그날 밤, 사랑하던 연인과의 잊을 수 없는 흘러간 로맨스는 애절한 사랑의 추억으로 남아 한 여인의 몸에 젖어 들고, 가슴까지 적시면서 슬픈 추억을 남기고 있습니다. 발매 당시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1959년〈대전 부르스〉가 빅히트하면서 덩달아〈밤비의 부르스〉도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면서 이 두 곡으로 인해서 침체기를 겪던 신세기레코드사는 오아시스레코드사와 함께 녹음실을 갖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1936년 경상남도 하동 부잣집에서 태어난 안정애(본명 안순애)는 가수가 하고 싶어 무작정 상경해 고복수가 운영하던 동화예술학원에서 노래 수업을 받고 작곡가 김부해에게 발탁돼〈밤비의 부르스〉로 데뷔, 1959년〈대전부르스〉가 빅히트해 국민가수가 됐습니다.
‘부르스의 여왕’ 안정애 부르스곡은 1961년〈순정의 부르스〉(이재현 작사·작곡),〈호남선 부르스〉(반야월/김부해), 1962년〈섬진강 부르스〉(월견초/김부해)와〈다방 부르스〉,〈도라지 부르스〉,〈비정 부르스〉,〈여인 부르스〉,〈연락선 부르스〉,〈자매의 부르스〉,〈청춘 부르스〉,〈카바레 부르스〉,〈탄식의 부르스〉등이 있습니다.
–〈밤비의 부르스〉– 정두수 작사, 나음파 작곡, 임선아(1969년 유니버샬레코드사)
1절. 그리운 그 얼굴을 나 혼자서 보고파도 / 밤비가 오는 사연 서러운 부르스 /
피였던 꽃잎마저 저버린 마음에 / 혼자서 남몰래 속삭여 달래보는 / 서러운 서러운
밤비의 부르스
2절. 사모친 그리움에 당신 곁에 가고파도 / 밤비에 젖은 이 몸 때늦은 부르스 /
애달픈 나를 두고 떠나간 사연을 / 혼자서 아무리 속삭여 달래봐도 / 외로운 외로운
밤비의 부르스
〈밤비의 부르스〉1968년 임선아가 부른 곡도 있는데, 1969년 유니버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나음파 작곡집, 그대 결혼식 날 / 무정한 연락선’ 앨범에 실려 있는 노래입니다. 1968년 파월장병 위문공연 ‘용사들 수고하십니다’편에서 부르는〈밤비의 부르스〉입니다.
다음에는 1958년〈첫사랑의 화원〉,〈딸 칠형제〉,〈젊은날의 순정〉 등 4곡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