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97. 1965년〈정동대감〉,〈내일 또 만납시다〉(2023.01.30.)
오늘은 1965년도입니다.
1965년의 전통가요는, 이미자 선생님〈갯마을〉(한산도/백영호),〈나룻터 처녀〉(한산도/백영호),〈다도해 아가씨〉(한산도/백영호),〈살아있는 가로수〉(월견초/이인권),〈울어라 열풍아〉(한산도/백영호),〈저 강은 알고 있다〉(유동일/백영호),〈정동대감〉(신봉승/나화랑),〈진도 아리랑〉(이서구/박춘석),〈포항 소야곡〉(반야월/이인권),〈한많은 흑산도〉(반야월/이인권),〈홍콩의 왼손잡이〉(한산도/백영호), 금호동〈내일 또 만납시다〉(전우/박춘석), 김상국〈불나비〉(김강윤/김강섭), 김상희〈울산 큰애기〉(탁소연/나화랑), 남미랑〈서산 아가씨〉(반야월/김성근), 남상규〈추풍령〉(전성범/백영호), 박재란〈산넘어 남촌에는〉(김동환/김동현), 성재희〈보슬비 오는 거리〉 (전우/김인배), 은방울자매〈무정한 그 사람〉(반야월/송운선)〈삼천포 아가씨〉(반야월/송운선)〈쌍고동 우는 항구〉(김영일/송운선), 조애희〈첫사랑〉(박춘석/박춘석), 최희준〈하숙생〉(김석야/김호길), 한명숙〈사랑의 송가〉(세고천/전오승) 등이 있습니다.(^^)
이 해에는 1월 24일 우리나라 최초의 연쇄점 ‘반도조선아케이트’ 개점, 2월 27일 광복회 발족, 3월 1일 충청북도 통행금지 해제, 3월 2일 뮤지컬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첫개봉, 3월 22일 천주교 원주교구 설립, 3월 24일 비둘기부대 월남 상륙, 4월 여성잡지『주부생활』창간, 5월 6일『신아일보』창간, 5월 16일 박정희 대통령 미국방문, 9월 18일 경인선 복선 개통, 9월 22일 중앙일보 창간, 10월 9일 청룡부대 베트남 도착, 10월 19일『금성출판사』설립.
태어난 인물은 2월 6일 개그맨 김국진, 2월 23일 가수 김종서, 3월 23일 가수 원미연, 3월 24일 배우 신혜수, 4월 12일 가수 김태원, 5월 2일 가수 박상민, 10월 16일 가수 한혜진, 10월 17일 가수 양수경, 11월 22일 가수 박미경, 12월 12일 가수 유영석, 12월 27일 가수 김용임, 작고한 인물은 1월 10일 수필가 전혜린, 1월 24일 영국 윈스턴 처칠, 4월 11일 가수 이난영, 7월 19일 제1∼3대 대통령 이승만, 7월 23일 작곡가 윤용하, 9월 16일 작곡가 안익태, 10월 4일 강재구소령 등이 있습니다.
오늘은〈정동대감〉,〈내일 또 만납시다〉,〈보슬비 오는 거리〉,〈사랑의 송가〉글입니다.
–〈정동대감〉– 신봉승 작사, 나화랑 작곡, 이미자 선생님(1965년 지구레코드사)
1절. 영을 넘고 강을 건너 남도 천리를 / 헤어져 그린 그 님 찾아가는데 / 철없이 따라
오는 어린 손이 차갑구나 / 자장자장 잘자거라 아가야 잠들어라 / 이슬 내려 젖은
길이 멀기만 하다
2절. 사랑 찾아 님을 찾아 운명의 길을 / 천리라도 만리라도 찾아가련다 / 등에 업힌
어린 자식 칭얼칭얼 우는데 / 자장자장 잘자거라 아가야 잠들어라 / 이슬 내려 젖은
길이 멀기만 하다
〈정동대감〉은 1965년 이미자 선생님께서 부르신 동명의 영화 ‘정동대감’ 주제가로 지구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입니다.
‘정동대감(貞洞大監)’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별칭. 한양 정동에서 살아서 그렇게 불렸습니다. 조광조(1482년∼1519년)는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조선 제11대 왕 중종(재위 1506년∼1544년)은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훈구대신(勳舊大臣)들을 견제하고자 조광조 등 신진 사림파를 등용 1518년 그를 대사헌(大司憲)으로 중용했으나 소격서(昭格署) 혁파 등 문제로 대립하게 되어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1519년 11월 11일 공신들을 탄핵하는 위훈삭제(偉勳削除) 문제로 공신 117명 중 76명의 공신호를 삭제하자 희빈홍씨(熙嬪洪氏, 1494~1581)의 아버지인 홍경주와 심정, 남곤 등 훈구대신들은 희빈홍씨를 통해 “나라의 인심이 모두 조광조에게 돌아갔다”고 과장하면서 그대로 두면 왕권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의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자를 나뭇잎에 적어 놓고 꿀을 발라 벌레들이 갉아 먹게한 후 중종이 이것을 보게해 사림파 조광조 등이 붕당을 만들어 국정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건의하자 12월 14일 기묘사화(己卯士禍)가 발생해 조광조는 전라도 화순 능주(綾州)로 귀향을 가 다음날 사약을 받고 사사(賜死)됐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상현동에는 문정공(文正公) 정암 조광조를 모시는 심곡서원과 정경부인 한산 이씨 합장묘와 신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심곡서원(深谷書院)은 조선 14대 왕인 선조 38년(1605년) 사액서원(賜額書院 왕의 서원명현판을 받은 서원)으로 세워졌습니다.
영화는 제작 이종벽, 원작 황호근, 기획 최현민, 각색 이장수, 음악감독 나화랑, 이규웅 감독, 영화배우 김진규, 김지미, 김승호, 황정순, 김혜정, 주선태, 박암, 방수일, 서영춘, 김희갑, 강미애, 김성원, 한은진, 조항, 이수련, 양훈, 김동원, 최봉 등이 출연해 1965년 9월 10일 서울의「국제극장」에서 추석 특선프로로 개봉되어 10만 명이 관람해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타이틀 “피로 점철되는 정동대감 조광조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줄거리는,
「조선 중종 때의 도학파 정객 조광조의 일대기를 그렸다. 조광조는 성균관의 유생을 이끌던 이상주의자로서 기묘사화의 제물로 희생된 공신이다. 폭군이었던 연산을 무너뜨린 중종 반정의 정국 공신 남곤·심정·홍경주의 일당이 일등공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국정의 실권을 휘두른다. 그러자 의혈 선비인 조광조는 보다 못해 오직 애국충의로 국왕 중종에게 직접 상소하지만 끝내 홍경주 일당의 세력쟁탈 간계(奸計)에 희생되고 만다.」
영화가 상영되면서 조광조가 귀향을 가자 몰래 유배지인 화순으로 찾아가는 부인 이씨는 어린 자식을 업고 걸리면서 령(嶺)을 넘어갈 때 이미자 선생님의 구슬픈 목소리를 타고〈정동대감〉이 흐르자 객석에서는 관객들의 흐느낌과 울음소리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영상은 1989년 이미자 선생님께서 ‘가요무대’에 출연〈정동대감〉을 부르는 모습입니다.
–〈내일 또 만납시다〉– 전우 작사, 박춘석 작곡, 금호동(1965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하루의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거리엔 사람의 물결 / 하늘엔 별이 하나 둘 반짝이면
가로등 하나 둘 꽃피네 / 허공을 스치는 바람은 차도 흐뭇한 마음은 애드베룬 /
가벼운 발길 헤어질 때 인사는 / 내일 또 다시 만납시다
2절. 하루의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거리엔 사람의 물결 / 하늘엔 별이 하나 둘 반짝이면
가로등 하나 둘 꽃피네 / 허공을 스치는 바람은 차도 흐뭇한 마음은 애드베룬 /
가벼운 발길 헤어질 때 인사는 내일 또 다시 만납시다 / 내일 또 다시 만납시다.
〈내일 또 만납시다〉는 1965년 금호동이 부른 노래로 오아시스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누는 정겨운 인사말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리를 지날 때 정겨운 풍경과 희망찬 내일을 담고있는 경쾌한 멜로디에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공감이 가는 노래입니다. 당시 퇴근무렵이면 각 전파상마다 틀어주던 단골노래로 DBS ‘가요앵콜’에서 9주간 1위를 하는 등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특히 옥수동, 금호동, 한남동 언덕길을 다닐 때 불렸는데, 지금도 부르기 좋은 곡입니다.
금호동(본명 서문석)은 1936년 일본에서 태어나 전남 광주에서 성장하다 어려서 서울로 올라와 구두점에서 일하던 시절 작곡가 박춘석에게 발탁돼 1957년 데뷔한 후 1964년〈고향 하늘은 멀어도〉로 가요계의 주목을 받았고, 특히 미성과 잘생긴 모습에 여성팬들의 극성스런 등살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1965년〈고교 3년생〉〈야간 졸업반〉1966년〈젊은 내고향〉등을 불렀는데 어느날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한 후 은퇴했습니다.
영상은 1986년 7월 28일 ‘가요무대’에 출연〈내일 또 만납시다〉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보슬비 오는 거리〉– 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 성재희(1965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보슬비 오는 거리에 추억이 젖어 들어 / 상처 난 내 사랑은 눈물뿐인데 / 아 아아
타버린 연기처럼 자취 없이 떠나 버린 / 그 사람 마음은 돌아올 기약 없네
2절. 보슬비 오는 거리에 밤마저 잠이 들어 / 병들은 내 사랑은 한숨뿐인데 / 아 아아
쌓이는 시름들이 못 견디게 괴로워서 / 흐르는 눈물이 빗속에 하염 없네
〈보슬비 오는 거리〉는 1965년 성재희가 부른 노래로 오아시스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으로 1969년 2월 개봉된 최은희 남동생 최경옥 감독 영화 ‘눈물의 여인’ 삽입곡입니다. 영화주제가〈눈물의 여인〉은 김하정이 불렀고, 국민엄마 김혜자의 영화 데뷔작입니다. 작사가 전우는 부인과 별거 중이던 어느날 사무실 ‘월간 아리랑’ 편집장실에서 창밖에 보슬비가 내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슬비에 촉촉히 젖으며 부인과의 사랑을 추억하는 노랫말을 지었고,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작곡가 김인배가 감상적인 멜로디에 실어 묵직하고 호소력 짙은 허스키보이스 신인가수 성재희가 불러 최고의 인기곡으로 떠올랐고, 성재희는 신인가수에서 일약 최고 가수 반열에 올라 월간 ‘아리랑’ 독수리대상에서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식에서는 다른 신인 문주란이〈보슬비 오는 거리〉를 불렀습니다. 1943년생 성재희는 20여 곡을 부른 후 이듬해 ‘성재희 독집’ 앨범만 남기고 일본에서 보석상을 하는 부군과 혼인한 후 가요계를 떠나 가정주부로만 생활하다가 2007년 이미자 선생님의 도움으로〈천의 바람 되어〉로 가요계에 복귀했습니다.
보실 영상은 1988년 2월 22일 잠시 귀국했을 때 가요무대에 출연해 부르는 모습입니다.
작사가 전우(1937년∼1978년)의 본명은 전승우. 함경도에서 출생해 경기중·고,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부인(안문희)은 이화여중 수석 졸업, 이화여고 전학년 우등 졸업생으로 경기고·이화여고 미팅에서 만나 혼인했지만, 술을 좋아해 별거까지도 했는데 월간잡지「아리랑」(1955년 3월∼1980년 7월) 편집장 시절 편집회의를 술집에서도 했다합니다.
전우 대표곡, 금호동〈내일 또 만납시다〉,배호〈안개속에 가버린 사람〉,〈누가 울어〉,〈당신〉,〈안녕〉,위키리〈저녁 한때 목장풍경〉,이석〈비둘기집〉,정원〈허무한 마음〉,이미자 선생님〈밤의 정거장〉,하춘화〈연포아가씨〉,박경희〈저 꽃속에 찬란한 빛이〉,윤복희〈웃는 얼굴 다정해도〉,박상규〈친구야 친구〉,박우철의〈천리 먼 길〉,조경수〈돌려줄 수 없나요〉등 대중가요와 1968년〈향토예비군의 노래〉1975년∼1978년까지 KBS-TV 소대장 나시찬 주연의 드라마인〈전우〉주제가 등 1,000여 곡을 남겼습니다.
1966년 전우는 단골술집 상호인 ‘문주란’을 신인가수 문필연의 예명으로 지어줬습니다.
–〈사랑의 송가〉– 전오승 작사·작곡, 한명숙(1965년 프린스레코드사)
1절. 바람 결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 지금은 그대의 마음 변했나 / 영원토록 변치
말자던 님의 말이 / 지금은 이슬같이 사라졌네 / 차라리 몰랐던들 몰랐던들 / 이 마음
그대 생각 않을 것을 / 이 마음 그대 사랑 않할 것을
2절. 차라리 몰랐던들 몰랐던들 / 이 마음 그대 생각 않을 것을 / 이 마음 그대 사랑
않할 것을
〈사랑의 송가〉는 1965년 한명숙이 부른 노래로 프린스레코드사에서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작사·작곡자 전오승(1923년∼2016년 본명 전봉수, 평안남도 진남포 출생)은〈과거를 묻지마세요〉,〈미사의 종〉,〈백치 아다다〉의 가수 나애심(1930년∼2005년 본명 전봉선, 진남포)의 오빠로 고향이 같은 진남포 출신 가수 한명숙에게 선물한 곡이〈사랑의 송가〉입니다. 대표곡은〈밤의 탱고〉,〈이별의 인천항〉,〈백마야 울지마라〉,〈과거는 흘러갔다〉,〈방랑시인 김삿갓〉,〈전우가 남긴 한마디〉등이 있습니다. 배우 전영선(1954년생)이 딸입니다. 올해도 벌써 1월 지나가고 있지만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지난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날아 온 비보에 필자는 잠시 윤정희(본명 손미자)를 떠 올렸습니다.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딸이 켜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꿈꾸듯 편안한 얼굴로 56년 영화인의 삶을 남기고 하늘나라 별이 된 윤정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해 전남여고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에 재학 중인 1967년 영화 ‘청춘극장’ 여주인공역 모집에 1,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돼 그해 대종상영화제 ‘신인상’과 청룡영화제 ‘인기여우상’을 받으며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한해 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각종 영화제에서 무려 25차례 여우주연상을 휩쓸었으며, 통통 튀는 발랄한 역의 배우 남정임(1945년∼1992년 본명 이민자, 경기도 광주)과 우수에 빠진 눈매로 비련의 여인을 연기했던 문희(1947년 본명 이순임, 서울)와 함께 지적인 매력으로 폭 넓게 연기한 윤정희는 대한민국 제1세대 트로이카 여배우 시대를 열었습니다.
마지막 작품이 된 영화 ‘시’(詩)에서 본명인 ‘미자’로 출연해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았고, LA영화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윤정희 주연 주요영화는 1967년 ‘청춘극장’ ‘강명화’ ‘안개’ 1968년 ‘내시’ ‘일본인’ ‘장군의 수염’ ‘절벽’ 1969년 ‘독 짓는 늙은이’ ‘지하실의 7인’ 1971년 ‘분례기’ 1972년 ‘무녀도’ ‘궁녀’ 1981년 ‘자유부인’ 1994년 ‘만무방’ 2010년 ‘시’ 등 300여 편이 있고, TV연속극은 TBC-TV ‘이조여인 500년사’ 1972년 ‘사모곡’ 1974년 ‘인목대비’가 있습니다.
영화에서〈그리움은 가슴마다〉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그리움은 가슴마다〉–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선생님(1967년 지구레코드사)
1절. 애타도록 보고파도 찾을 길 없네 / 오늘도 그려 보는 그리운 얼굴 그리움만
쌓이는데 / 밤 하늘에 잔별 같은 수많은 사연 / 꽃이 피고 지고 세월이 가도 /
그리움은 가슴마다 사무쳐 오네
2절. 꿈에서도 헤멨지만 만날 길 없네 / 바람 부는 신작로에 흩어진 낙엽 서러움만
쌓이는데 / 밤 이슬에 젖어 드는 서글픈 가슴 / 꽃이 다시 피는 새봄이 와도 /
그리움은 가슴마다 메아리 치네
1967년 영화를 통해 윤정희의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는 이미자 선생님〈강명화〉(조흔파/백영호)를 보너스곡으로 올립니다.
「1절. 금이야 옥이야 곱게 자라서 / 달처럼 해처럼 밝게 살다가 / 사랑을 알고는 눈물도 배웠소 / 못다한 인연일랑 묻지를 마오 / 막혀진 인정은 말하지 마오 / 웃으며 떠난 여인 그 이름은 강명화. 2절. 그대를 위하여 태어난 이름 / 꽃다운 스물둘 젊은 나이에 / 찢어진 넋두리 혼자서 달랬오 / 깨어진 맹서일랑 묻지를 마오 / 무너진 사랑은 말하지 마오 / 조용히 떠난 여인 그 이름은 강명화」
다음엔 1966년〈꽃피는 여수바다〉,〈잊을 수 없는 연인〉,〈눈물을 감추고〉,〈강원도 처녀〉입니다.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