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119. 1989년〈노래는 나의 인생〉,〈미스고〉(2023.07.03.)
내일은 필자의 둘째 딸이 태어난 지 10,000일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 저녁 어부인과 셋이서 전야제로 좋은 곳에서 자축할 것입니다.
오늘은 1989년도입니다.
이 해의 전통가요는, 이미자 선생님〈노래는 나의 인생〉(박춘석 작사·작곡), 김지애〈얄미운 사람〉(장대성/전영록) 문희옥〈사랑의 거리〉(정은이/남국인), 송대관〈정 때문에〉(장경수/정주희) 염수연〈사랑은 무죄〉(박정환 작사·작곡), 이태호〈미스고〉(조동산/원희명) 주현미〈짝사랑〉(이호섭/김영광)이 있고,
이해에는 1월 1일 국외여행 자유화, 대전직할시 설치, 1월 10일 아시아나 국내선 첫 취항, 6월 4일 중국 텐안먼사건, 9월 2일 세계기능올림픽 8연패 달성, 10월 7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2차 방문, 10월 11일 항공우주연구소 발족,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11월 15일 올림픽대교 개통, 12월 25일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부부 총살,
작고한 인물은 2월 4일 사상가 함석헌, 3월 7일 시인 기형도, 4월 21일 덕혜옹주, 4월 30일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등이 있습니다.
–〈노래는 나의 인생〉– 박춘석 작사·작곡, 이미자 선생님(1989년 거성레코드사)
1절. 아득히 머나먼 길을따라 뒤돌아 보며는 외로운 길 / 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
지금 나 여기 있네 / 끝없이 기나긴 길을 따라 꿈 찾아 걸어온 지난 세월 / 괴로운
일도 슬픔의 눈물도 가슴에 묻어 놓고 / 나와 함께 걸어가는 노래만이 나의 생명 /
언제까지나 나의 노래 사랑하는 당신 있음에 / 언제까지나 나의 노래 안껴 주는
당신 있음에 /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 뒤돌아 보며는 외로운 길 / 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 지금 나 여기 있네
2절. 나와 함께 걸어가는 노래만이 나의 생명 / 언제까지나 나의 노래 사랑하는 당신
있음에 / 언제까지나 나의 노래 아껴주는 당신 있음에 / 아득히 머나 먼 길을 따라
뒤돌아 보며는 외로운 길 / 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 지금 나 여기 있네
〈노래는 나의 인생〉1989년 이미자 선생님께서 부르신 노래로 1990년 작곡가 박춘석이 운영하던 거성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이미자 노래 30년, 노래는 나의 인생’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 〈노래는 나의 인생〉,〈바닷가에서〉,〈초우〉,〈황혼의 엘레지〉,〈물새우는 해변〉,〈언제까지나〉, SIDE B면.〈여심〉 , 〈무심천〉, 〈기다려야 할 사람〉, 〈어머님의 강〉, 〈가을초〉, 〈너무나 사랑한 당신〉이 수록됐습니다.
이미자 선생님께서 1959년〈열아홉 순정〉으로 정식 가수로 데뷔하신지 30주년 기념으로 작곡가 박춘석(1930년∽2010년)님이 헌정한 노래가〈노래는 나의 인생〉입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30주년 기념공연을 할 때는 여야 4당 총재들이 부부동반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등 대성황을 이룬 이후 남진, 심수봉 등도 공연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가수와 주부, 어머니로서의 역할 구분이 분명하신 이미자 선생님께서는 “가정에서는 ‘우리집 주인 양반’ 다음이 나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실 물을 떠다 드리고, 외출 하실 때는 와이셔츠부터 양말까지 전부 챙긴다. 식사는 직접 만들어서 갖다 드리고, 저녁에 들어오실 때에도 미리 준비해 놓는다. 밖에는 거의 안나간다. 그래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주위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산다. 나는 내 방식대로의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래가 그렇듯이…” “이제는 라이브로 무대에서 할 수 있는 한계가 왔어요. 그러나 영원히 기억되는 가수 이미자로 남고 싶습니다.” 노래는 선생님의 인생이시다. 오늘은 1989년 12월 30일 KBS 1989 가요대상 실황무대에서 부르시는 장면을 올립니다.
–〈얄미운 사람〉– 장대상 작사, 전영록 작곡, 김지애(1989년 킹레코드사)
1절.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람 / 슬픈 음악처럼 이 마음 울려놓고 저
멀리 떠나간 사람 / 미련만 남겨놓고 돌아가느냐 얄미운 사람 / 미련때문인가 멍들은
이 내가슴 아픔만 주고 간 사람 / 정주고 마음주고 사랑도 줬지만 지금은 남이 되어
떠나가느냐 / 이별의 아픔일랑 가져가 다오 아아아아 얄미운 사람 /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람 / 슬픈 음악처럼 이 마음 울려놓고 저 멀리 떠나간 사람
2절. 정주고 마음주고 사랑도 줬지만 지금은 남이 되어 떠나가느냐 / 이별의 아픔일랑
가져가 다오 아아아아 얄미운 사람 / 미련만 남겨놓고 돌아가느냐 얄미운 사람 /
미련 때문인가 멍들은 이 내가슴 아픔만 주고 간 사람 / 미련때문인가 멍들은
이 내가슴 아픔만 주고 간 사람
〈얄미운 사람〉1989년 김지애가 부른 노래로서 킹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김지애 4집, 방배동의 밤 / 미련’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방배동의 밤〉,〈얄미운 사람〉,〈잃어버린 책인가요〉,〈어디있나요〉,〈사랑의 연가〉,〈얄미운 사람〉(반주), Side B면.〈미련〉,〈사랑의 모닥불〉,〈한많은 아리랑고개〉,〈언젠가는 잊으리〉,〈방배동의 밤〉(Disco)〈사랑의 모닥불〉(반주) 등 12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김지애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덕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8군무대에서 활동하다 1983년 이미자 선생님 소개로 작곡가 박춘석을 만나 가수 백일희(1930년 해주 출생)가 부른 1957년〈목포부르스〉로 데뷔했고, 1986년〈물레야〉(금나영/박춘석)가 처음 히트하며 KBS 가요대상 신인상 후보로 선정돼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습니다. 1989년 군대에서 구전가요로 전해오던 노래를 전영록이 작곡한〈얄미운 사람〉이 KBS ‘가요 톱10’에서 5주연속 1위로 골든컵을 수상했습니다. 〈얄미운 사람〉은 처음에는 주현미가 취입할 예정이었지만 사정에 의해 김지애가 부르게 된 것입니다. 몇 년동안 딸과 함께 구리시에서 살아 가끔 본 적도 있는데, 지금은 이사가셨지만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대표곡은〈물레야〉〈몰래한 사랑〉〈미스터 유〉〈석류가 웃는 이유〉등이 있습니다.
–〈미스고〉– 조동산 작사, 원희명 작곡, 이태호(1989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미스 고 미스 고 나는 너를 사랑했었다 / 짧은 순간 내가슴에 머물다간 그 흔적
너무 크더라 / 시인처럼 사랑하고 시인처럼 가버린 너 / 계곡처럼 깊이패인 그리움만
남긴 너 / 미스 고 미스 고 나는 나는 사랑의 삐에로
2절. 미스 고 미스 고 나는 너를 잊지 못했다 / 짧은 순간 내가슴에 머물다 간 그 흔적
너무 깊더라 / 시인처럼 사랑하고 시인처럼 가버린 너 / 계곡처럼 깊이 패인 그리움만
남긴 너 / 미스 고 미스 고 나는 나는 사랑의 삐에로
〈미스고〉1989년 이태호가 부른 노래로서 1988년 6월 14일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이태호, 미스고 / 사랑시’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미스 고〉,〈옆에다 두고〉,〈가는 해를 잡고 싶어요〉,〈오늘밤은 왜〉,〈이별의 부루스〉, SIDE B면.〈사랑시〉,〈임진강〉,〈정주고 간 여인〉,〈따뜻한 남쪽나라〉,〈팔베개에 내린 정〉 등 10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가수 이태호 하면 딱 떠오르는 곡이〈미스고〉입니다. 필자가 떠올리는 이태호의 인기곡으로〈간데요 글쎄〉는 알았지만〈아버지의 강〉은 가요계의 미래인 숙녀가수 김태연이 ‘미스트롯 2’에서 불러 알게 되었어요.
여러 해 전 MBC 라디오 노사연 김흥국의 ‘2시 만세’에 전화로 인터뷰하던 분이 “전 울산에 사는 가수 이태호 장모예요” 하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아주 활달하고 좋으신 분 같았는데, 잘 지내시고 계시죠? 필자가 30대 때 제주도를 여행하는데 제주 고씨 성을 가진 어여쁜 관광버스 안내양에게 일행들이 “미스고” “미스고”하자 좋아하지 않으니까 짓굳은 장난으로 계속 “미스고” “미스고” 하면서 놀렸는데, 필자가 조용히 이름을 물어보자 어렵게 “고미영”이라고 대답해 필자는 그녀를 부를 때 “고미영씨”하고 부르니까 아주 좋으신 분 같다고 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여하튼〈미스고〉가 히트한 후 고씨 성을 가진 여성들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분 이름을 부를 땐 꼭 존칭하세요.
☞ 이태호(李台浩)의 본명은 이정호, 1964년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태어나 영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86년〈돌 같은 사나이〉로 데뷔했습니다. 이태호는 비록 트로트 4대 천황은 아니지만 앨범을 19집까지 발매한 중견 가수입니다. 이태호가 발매한 앨범은 1986년〈돌 같은 사나이〉1988년〈이태호〉, 1989년〈이태호 2〉, 〈이태호 89〉, 1990년〈이태호 1집〉, 1991년〈이태호 2집〉, 1992년〈골든 힛송 모음집〉, 1994년〈애오라지〉, 〈이태호 통기타 트로트 메들리〉, 1999년〈반지 하나〉, 2001년〈내 생에 못잊을 사람〉, 2002년〈자옥이〉, 2004년〈사는동안〉, 2006년〈버팀목〉, 〈사는 동안 / 유진 내 사랑〉, 2008년〈하늘다리〉, 2010년〈입술을 깨물고〉, 2017년〈임진강〉, 2022년〈욕심〉입니다.
–〈호랑나비〉– 이혜민 작사·작곡, 김흥국(1989년 반도음반)
1절. 하!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밭에 앉았는데 / 도대체 한 사람도 즐겨 찾는 이 하나
없네 / 하 예! 하루 이틀 기다려도 도대체 사람 없네 / 이것 참 속상해 속상해 못살겠네
/ 호랑나비야 날아봐 하늘 높이 날아봐 / 호랑나비야 날아봐 구름 위로 숨어봐 하 예!
2절. 아싸!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밭에 앉았는데 / 도대체 한 사람도 즐겨 찾는 이
하나 없네 / 호랑나비야 날아봐 하늘 높이 날아봐 / 호랑나비야 날아봐 구름 위로
숨어봐 / 예예 숨어 봐 / 헤헤헤헤 숨을 까 / 예예 숨었다 / 하하 하하 하하하하
〈호랑나비〉1989년 김흥국이 부른 노래로 1989년 2월 20일 반도음반을 통해 발매한 ‘김흥국 3집, 호랑나비 / (잊어)잊어 버리세요’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입니다. 당시 전국을 뒤흔들면서 가수 김흥국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그의 상징인〈호랑나비〉는 마치 나비가 갈지(之)자로 나는 것 같은 비틀거리는 막춤을 겯들여 코믹하게 부르면서 일약 스타가수로 떠오르게 해 1989년 10월 29일∼11월 26일까지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해 골든컵을 안겼고, 그해 ‘제4회 골든디스크 인기가수상’과 ‘MBC 10대 가수상’ 등을 수상하면서 각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하게 했습니다.
가수 배따라기 멤버로 싱어 송라이터 이혜민(1959년 진해 영길만 출생)은〈호랑나비〉를 만들어 1982년〈논개〉를 히트시킨 가수 이동기에게 줘 10월 30일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이동기 4집’ 앨범에 실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다시 1970년대에 주목 받은 가수 김홍경이 1987년 리메이크해 취입했지만 대중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이혜민은 MBC 다큐멘트리 ‘인간시대’에〈정아〉를 사용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아 노래를 부르기로 한 가수 김흥국을 만났고, 1959년 동갑내기인 두 사람이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자 세 번째로〈호랑나비〉를 주었습니다. 이에 김흥국은 다소 흥겨운 박자감을 실어 녹음을 했고, 방송에 출연하려고 콧수염도 길렀으며, 녹음할 땐 없던 “앗싸!” 추임새를 가미해 갈지자 춤을 선보이면서 코믹하게 불러 대박을 쳤습니다.
이에 이혜민은 다시 1987년 김남화가 부른〈왕십리〉를 김흥국이 부르고 싶다고 하자 취입을 반대했지만 김흥국의 끈질긴 성화에 못이겨 어린시절을 왕십리에서 보낸 둘은 1959년 동갑생이라〈59년 왕십리〉로 제목을 바꿔 1991년 발표해 히트를 시켰습니다. 1985년〈창백한 꽃잎〉으로 데뷔한 가수 김흥국을 필자가 처음 본 것은 1988년 2월 방영된 MBC ‘인간시대-정아의 겨울일기’에서 밤무대 무명가수로 출연했을 때였습니다. 10대 가수 김흥국 별칭은 콧수염 가수, 59년 왕십리, 월드컵 전문가수, 영원한 해병 등 그러나 최고의 애칭은 ‘호랑나비’. “호랑나비 하면 김흥국, 김흥국 하면 호랑나비 아입니꺼”
1990년 4월 15일 ‘부산MBC 창사 31주년 기념 그랜드쇼’에서 부르는 장면을 올립니다.
다음엔 1990년〈몇미터 앞에 다 두고〉,〈서울탱고〉,〈정때문에〉,〈미련 때문에〉4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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